톨스토이 단편선 1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보리스 디오도로프 그림 / 푸른숲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류비셰프를 신처럼 숭배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러시아 역사와 문화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 특히 2월 혁명이 성공하여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진 폐허 위에 선 소련 안에서 꽃피었던 문화에 주목했다. 내가 숭배하는 인물인 류비셰프가 눈부시게 활약한 시기이도 하지만, 사실 그 말고도 뛰어난 위인들이 수없이 나타나 활약한 그야말로 러시아 문화사에서 가장 뚜렷한 융성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 문화사를 제대로 공부하지는 못했다. 혼자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서 뒤적거리고 러시아 작가들이 쓴 소설을 읽을 뿐이라서 그런지 항상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동안 그나마 쌓은 지식과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보고 싶어도 여의치 않다. 아는 사람들이 여러 단대에 나름대로 널리 퍼져 있지만, 노어노문학과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러시아 역사와 문화에 관하여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만한 사람이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읽은 것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어디에서든지 문학이 지닌 힘은 위대하다는 결론 정도는 혼자서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막심 고리키,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갚은 위대한 문호들은 로마노프 왕조가 휘두르는 폭정 아래 신음하는 러시아 민중들을 각성시키고 러시아가 처한 암울한 현실을 비판하고자, 온 힘을 쏟아 주옥같은 작품들을 거침없이 써내려갔다. 수많은 이들이 그 작품들을 읽고 자기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에 눈을 뜬 뒤, 혁명가가 되어 민중 계몽에 나섰다. 현실에 눈을 뜬 민중들은 폭압을 일삼는 로마노프 왕조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처절한 투쟁 끝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민중들이 열망한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탄생했다. 사회주의 비판과 폭력 혁명이 정당한지에 관한 논쟁에는 상관없이, 민중들이 순수한 이상을 찾아 나선 끝에 이루어낸 결과라는 사실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비록 사회주의가 실패작으로 판명되고 소련이 역사 뒤안길로 사라지기는 했지만, 러시아 문학이 보여주는 그 위대한 계몽성과 예술성은 빛이 조금도 바래지 않았다. 이 책 '톨스토이 단편선'에 나오는 여러 단편만 봐도 알 수 있다. 톨스토이는 민중을 들쳐먹는 거짓된 모리배들과 위선으로 가득찬 지식인들을 비판하고, 오로지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내린 진정한 힘인 사랑으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교훈을 단편 안에 끈질기게 집어넣엇다. 그 때문에 반체제 운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까닭으로, 작품이 완성되자마자 출간을 금지당하는 시련을 몇 번이고 겪어야 했다. 톨스토이도 그 무자비한 검열이 난무하는 현실에 절망했다.

 

그래도 그는 꾸준히 글을 쓰면서 결코 희망과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 결과 톨스토이는 러시아 낳은 가장 위대한 문호 가운데 한 명으로 지금까지 인정받고 있다. 그에 따라 그가 지은 소설들도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문학 작품이자 많은 사람들이 교양을 쌓고자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 작품 목록에 이 책도 물론 들어간다.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민중들을 계몽하고자 쓴 단편 소설들이라서, 쉽게 재미있으므로, 읽는데 아무런 부담이 없다. 말에 견주었을 때 내용이 꽉 찼다는 느낌이 저절로 들 것이다. 은총이 가득하신 하느님이 인류를 구원하고자 어떤 가르침을 내렸는지 진심으로 깨닫는 즐거움이야말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반드시 느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읽는 이들이 신을 믿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

 

일단 이 글에는 제 1권에 관한 내용만 적겠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집도 없고 땅도 없는 가난한 구두장이 세몬은 마누라 마트료나가 오랫동안 사고 싶어했던 양가죽 털을 사러, 그동안 모은 돈을 가지고 마을로 나간다. 하지만 농부들이 자기가 빌려준 돈을 갚지 않자, 세몬은 화가 나서 술만 마시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가는 길에 미하일이라는 미소년을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 뒤, 같이 구두장이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미하일은 원래 천사였다. 한 산모에게서 혼을 거두라는 명을 받고 그녀에게 가지만, 그녀는 남편도 죽고 없는 마당에 자기마저 죽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하냐면서 울부짖는다. 마음이 약해진 미하일은 명을 거역하고 하느님에게로 돌아간다. 그러자 하느님은 혼을 거둬오라고 다시 명을 내리면서 미하일을 인간 세상으로 떨어뜨린다. 그러면서 세 가지 물음에 답을 찾으면 다시 천사가 될 수 있다는 계시를 내린다. 사람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건 무엇인가, 사람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산모를 하느님에게 대려간 뒤 인간 세상으로 떨어진 미하일은 세몬과 마트료나가 자기를 보살펴 주고 걱정해 주는 것을 보고, 사람 안에는 하느님이 내린 사랑이 잇다는 첫 번째 답을 얻는다. 그리고 거만한 부자가 자기 뒤에 사자(死者)가 서 있는 걸 전혀 모른 채 미하일에게 한 해를 신어도 끄덕없는 장화를 만들라고 명령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에게는 자기 몸에 정말 필요한 것에 관한 지식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두 번째 답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미하일이 혼을 거둔 여자가 낳은 두 아이들이 엄마가 없어도 두 자식을 잃은 부인이 그들을 거둬준 덕분에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며, 그리고 자기 아이가 아닌데도 불쌍하게 여겨 눈물을 흘리는 부인을 보며, 사람은 사랑으로써 산다는 세 번째 답을 얻는다.

 

하느님은 사람들이 뿔뿔이 떨어져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렇기에 사람 각자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계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야말로 나는 깨달았다. 모두가 자신을 걱정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사실은 사랑으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 속에 사는 자는 하느님 안에 살고 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람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

 

늘 재료도 좋은 것만을 쓰고 약속도 꼬박꼬박 지키는 솜씨 좋은 구두장이 마르틴 아브제이치는 가족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비판에 잠기며 하느님을 원망하지만, 고향에서 온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노인이 한 충고대로 성경을 읽기 시작한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성경에 깊이 빠져들어, 예전처럼 쓸데없이 빈둥거리는 시간을 없애고, 일과 성경에만 몰두하며 조용하면서도 만족스럽게 살아간다.

 

어느 날 그리스도가 그를 찾아가겠다고 계시를 내린다. 깜짝 놀란 마르틴은 조촐하게나마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그리스도를 기다리지만, 그리스도는 오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그는 추위에 떨던 늙은 병사 스테파니치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하고, 겨울옷이 없고 목도리도 저당 잡힌 가난한 여인과 아이에게 외투 한 벌과 저당 잡힌 목도리를 찾을 20 코페이카를 준다. 사과장수 할머니에게서 사과를 훔쳐 달아나려던 아이가 그만 할머니에게 붙잡혀 경을 치려는 것을, 마르틴이 나서서 아이는 잘못을 인정하게 하고 할머니는 아이를 용서하게 한다.

 

날이 저물고 그는 그리스도가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그러나 곧 그는 깨달았다. 낮에 그가 대접한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오 복음서 제 25장 40절)."

 

 

<불을 놓아두면 끄지 못한다>

 

어떤 마을에 이반 쉬체르바코프라는 농부가 살고 있었는데, 아무 것도 부족하지 않은 유복한 살림살이를 꾸려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웃인 가브릴로 고리제예프라는 사람 집에 자기 집 닭이 날아가서 알을 낳다. 그 달걀 하나 때문에 집안 여자들끼리 싸우기 시작하면서 눈덩이처럼 일이 커져 두 집안이 서로 싸우게 된다. 그냥 싸우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결국 서로 고소까지 하며 험악한 욕을 퍼붓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결국 이반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온힘을 다해 이반에게 담긴 유언을 듣고 가브릴로가 저지른 악행을 용서하는 순간, 모든 반목과 대립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 버린다.

 

혈기 왕성한 이들이 흔히 저지르는 어리석고 하찮은 다툼이 얼마나 큰 재앙을 낳을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사람이 싸우는 것은 어느 혼자서 나쁜 짓을 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두 사람이 모두 잘못해서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상대방이 잘못한 것은 훤히 꿰뚫어 보지만, 자기 잘못은 눈을 아무리 비비고 살펴보아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흔히 지니고 있는 간사한 속성을 고발한다. 그 속성을 억누르고 악행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악에 맞서 이길 수 있는 단 하나뿐인 힘,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뿐이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다. 악에 악으로 맞서면 불을 키우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악이라는 불은 절대 놓아두지 말고 사랑으로 꺼야 한다.

 

 

<두 노인>

 

예핌 타라스이치 쉐베료프라는 부자 농부와 예리세이 보드료프라는 평범한 농부가 순례를 다녀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는 두 노인이 보여주는 뚜렷한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핌은 깐깐한 성격으로 무슨 일이든지 빈틈없이 해낸다. 술과 담배는 전혀 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풍족한 살림살이를 일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깐깐한 성격 때문에 인간미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자기 능력을 너무 믿고 있어서 무엇이든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고 화가 난다.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에도 그는 집을 새로 짓는 공사에만 몰두하다가, 예리세이가 영혼보다도 중요한 것은 없다면서 그를 설득하자, 마지못해 순례를 나선다.

 

순례를 나서기 전에 예핌은 아들에게 자기가 하던 방식대로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다 지시한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도 그는 자기가 지시한 대로 일이 잘 굴러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견디기 힘들어하고, 심지어 순례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돌아가서 자기가 일을 다 해치우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낀다. 그런 그에게는 진정한 신앙심과 사랑이 스며들 수 없다. 순례를 다녀오는 자체가 중요할 뿐, 순례가 지니고 잇는 뜻을 되새겨 볼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예리세이는 성품이 착하고 명랑하며, 마음 편하게 보드카도 마시고 담배도 피운다.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자기 형편이 닿는 대로 선행을 베푼다. 순례를 떠나기 전에도 집안일은 아내와 아들이 잘 할 것이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새로 생기는 애벌을 이웃집 사람에게 빠짐없이 넘기라는 말만 한다. 순례를 떠나자마자 그는 집안일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예핌과 어떻게 잘 다녀올 것이며 순례 때 어떻게 예배하고 기도하며 하느님에게 감사할 것인지만 생각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예핌과 예리세이가 헤어지고, 예리세이가 일가족이 모두 죽어가는 집에 들어가면서 예리세이는 하느님이 내리신 분부를 자기도 모르게 실현한다. 죽어가는 일가족을 살린 그를 하느님은 기꺼이 받아들인다. 나중에 순례에서 돌아온 예핌은 뒤쳐졌던 예리세이가 어떻게 자기를 앞지를 수 있었는지 깨닫고 한숨을 쉰다.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항상 뭔가 빠진 것 같은 느낌에 시달리는 내가 이 책에 실려 있는 여러 이야기 가운데 가장 주목한 이야기이다. 이 세상 어느 가치와도 견줄 수 없는 절대 가치를 지닌 것을 찾아나서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내가 쓰는 시간통계법에는 그 가치가 온전히 반영되어 있는가?

 

"그(예핌)는 깨달았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죽는 날까지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를 사랑과 선행으로 다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것이 하느님이 하신 분부라는 것을."

 

 

<촛불>

 

농노가 해방되지 않았을 때 지주에게 빌붙어 농노를 등쳐먹는 마름에게 맞서려는 농민들을 말리는 한 농부가 옳다는 결론을 내는 이야기이다. 자기들을 밑도 끝도 없이 수탈하고 짐승처럼 부려먹기만 하는 끝없는 욕심에 사로잡힌 마름 미하일 세묘니치에게 깊은 원한을 품은 농민들은 마름을 죽이겠다고 온갖 험악한 욕을 쏟아내지만, 페트로시카 미헤예프라는 농부는 마름이 저지르는 악에 맞서고자 살인이라는 또 다른 죄악을 저지르는 건 안 된다고 강조한다.

 

"농민들은 하느님의 힘은 악을 악으로 갚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착한 일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보 이반>

 

세계 전래 동화집에서 읽었던 이야기라서 아주 빠르게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강한 권력을 원하는 첫째 세몬, 누구보다도 많은 돈을 원하는 둘째 타라스, 아무 것도 원하는 것이 없고 그저 무식하게 일만 하는 셋째 이반이 나온다. 세몬과 타라스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든지 얻어내지만, 마귀가 꾸민 흉계에 넘어가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무식하고 일밖에 모르는 이반은 마귀가 어떻게든지 손을 써 봐도 걸려들지 않고, 결국 모든 마귀를 죽여 버린다.

 

지금과 같이 불공정하고 타락한 세상은 한 사람이 꾸미는 흉계에도 너무나도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땀흘려가며 손으로 일하는 사람들만이 밥을 먹고 살 수 있는 이반 왕국(?)이라는 이상을 제시한다. 그 안에서 머리를 써서 일하는 사람은 발붙일 곳이 없다. 권력과 제물에 관한 탐욕은 반드시 무고한 사람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준다는 사실도 강조하면서(이반과 세몬이 타라스에게 군사와 돈을 만들어주지 않는 까닭), 폭력에도 비폭력으로 맞서야 한다는 주장(마귀가 타라칸 왕을 꼬드겨 군사들을 이끌고 이반 왕국에 쳐들어가서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빼앗고 불을 지르지만, 사람들은 울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일 뿐 저항하지 않는다. 결국 맥이 풀린 군사들은 싸울 의욕을 잃고 해산해 버리고, 마귀는 망연자실한다)도 드러낸다.

 

이야기 전체에 다양한 교훈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 교훈은 현대 사회에서는 절대 실현될 수 없는 것이라서 그런지, 이 이야기에서는 계속 드러나는 교훈이 마음속에 와 닿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너무나도 엄혹한 것이어서 말이다. 실제로 이 이야기도 발표된 뒤에 여러 사람들에게서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민중들을 계몽하기는커녕 오히려 현실을 무시하는 바보로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어떻게 작은 악마는 빵 조각을 보상하였는가>

 

탈무드에 나오는 '악마가 사람에게 준 선물'이라는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 잔을 마시면 여우처럼 꼬리를 흔들며 교활해져 서로를 속이고, 두 잔을 마시면 심술 사나운 이리처럼 서로 싸우고, 세 잔을 마시면 돼지처럼 이성을 잃어버리고 욕지기가 치밀어오를 정도로 지저분해진다. 술이 일으킬 수 있는 폐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탈무드는 종교전설을 그대로 나타냈지만, 톨스토이는 그를 반박하면서 사람이 지니고 있는 속성을 사람이 스스로 일깨우는 것이 죄악이라고 이 이야기에서 주장한다. 종교전설이 지니고 있는 안개와 같은 환상이 햇빛처럼 뚜렷한 현실로 바뀌면서, 개인이 도덕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개인 책임론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람 안에는 여우와 이리와 돼지가 지니는 속성이 모두 있는데, 하느님이 내리신 은총인 곡식으로 밥과 빵을 만들어 먹지 않고 악마가 유혹하는 대로 술을 빚어 마신다면, 그 속성이 드러나 사람은 사람이 아니게 된다고 경고한다. 시름을 술로 잊으려다가 오히려 알코올 중독에 빠져 너무나도 무기력해지고 열심히 살아갈 가장 적은 의지마저도 잃어버리는 민중들을 일깨우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 같다. 막심 고리키가 쓴 소설 '어머니'에서도 틈만 나면 술에 취해 아내를 마구 패는 남편이 등장하지 않는가?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예전에 이것과 비슷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여러 다른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톨스토이가 교훈을 드러내고자 각색한 것 같다. 자기가 소작하고 있는 땅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말하는 바흠을 본 악마가 계략을 짜고 거기에 바흠이 걸려든다. 악마가 의도한 대로 여자 지주에게서 땅을 산 바흠은 자기 땅이 생기자 땅에 집착하기 시작하고 재산에도 욕심을 내기 시작한다. 이웃들과 재산 때문에 틈만 나면 싸우고, 악마는 쾌재를 부른다. 아귀 같이 계속 재산을 불려나가던 바흠은 자기 땅이 계속 넓어지기를 바라고, 마침 어떤 나라에 다녀온 사람들에게서 그 나라에서는 땅을 헐값에 살 수 있다는 솔깃한 소문을 듣고, 당장 그 나라로 간다.

 

여기에서부터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가 나온다. 바흠은 어느 지점에서 출발하여 하루 종일 걸은 곳을 경계로 삼아 그 안에 있는 모든 땅을 헐값에 팔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었으니, 해가 지기 전에 출발지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된다는 것이다.

 

욕심으로 활활 타오르는 바흠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자 출발점에서부터 멀리 돌아가다가, 시간에 쫓기면서 나중에는 쉬지도 못하고 계속 뛴다. 그렇게 뛰어 간신히 출발점에 도착하지만 바흠은 너무 지쳐 죽어버리고, 그에게 실제로 주어지는 땅은 그가 죽은 자리에 묘지를 만들 땅뿐이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미하일이 얻은 두 번째 깨달음과 이 이야기를 연관하여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달걀만한 씨앗>

 

인류가 하느님을 경배할 때는 달걀만한 씨앗이 있었고, 그 씨앗에서 난 곡식을 먹은 오랫동안 젊고 건강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인류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자 인류에게 풍요로운 먹을거리를 주고자 하느님이 내린 씨앗도 갈수록 작아졌고, 인류는 더는 예전처럼 그들이 좋아하는 젊음을 오랫동안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젊음 또한 하느님이 내리신 은총이며, 그 은총을 영광으로 여기고 그에 고마워할 줄 아는 이들만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다만 곡식과 땅을 팔고 사는 거래 자체가 죄악이며 오로지 노동만이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은 원론 차원에서는 이해할 수 있을지언정, 이미 공산주의가 불러온 무시무시한 폐해를 뼈저리게 경험한 현대인들이 현실에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논리이다. 나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뜨악한 기분이 좀 들었다. 아무리 다가가려고 해도 이상은 역시 아상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마지막에 왕이 세 번째 노인에게 지금은 왜 달걀만한 씨앗이 나지 않고, 노인이 손자와 아들보다 왜 훨씬 더 건강한지 묻자 노인이 한 대답에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문하신 두 가지 까닭이란, 다름이 아니오라 세상 사람들이 제 품으로 살아가기를 그치고 남의 것을 넘보게 되었기 때문이옵니다. 옛날 사람들은 신의 뜻을 좇아 살았사옵니다. 제 것을 가질 뿐, 남의 계획을 탐내지 않았던 것이옵니다."

 

 

<대자(代子)>

 

대부(代父)에게는 대자(代子)가 있기 마련이다. 이 이야기에서 대부는 하느님과 같은 신비로운 존재로 나오고, 대자는 평범한 소년으로 나온다. 대부를 하느님, 대자를 사람으로 봐도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다.

 

대자는 대부를 찾아가다가 대부를 만나 그와 함께 살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대자는 대부가 들어가지 말라고 지시한 '금단의 방'에 들어가서 온 세상에 죄를 퍼뜨리고 자기 부모와 대모를 망하게 하는 죄를 저지른다. 대부는 대자가 지은 죄를 씻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대자는 그대로 따른다. 몇 번이고 혼란과 회의가 찾아오지만 그는 세 가지를 깨달으면서, 대부가 알려 준 은자가 지시한 대로 냉과리(덜 구워서 연기와 그을음이 나는 숯)에서 사과나무가 자라도록 하는데 성공한다.

 

1. 아낙네가 걸레를 깨끗이 빨았을 때 비로소 탁자를 깨끗이 닦을 수 있었다. 그처럼 자신을 걱정하지 말고 자기 마음을 맑게 할 때 다른 사람 마음도 맑게 할 수 있다.

 

2. 농민들이 받침대를 탄탄하게 고정시켰을 때 수레바퀴로 쓸 나무를 휠 수 있었다. 그처럼 자기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삶을 하느님 안에 탄탄히 고정시켰을 때 굽힐 줄 모르는 악한 고집도 꺾인다.

 

3. 거간꾼들이 피운 화톳불도 불기운이 강해졌을 때야 비로소 생나무가 탔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 마음이 뚜렷하게 타올랐을 때 다른 사람 마음도 타오르게 할 수 있다.

 

 

<머슴 예멜리얀과 빈 북>

 

그야말로 동화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

 

머슴 예멜리얀이 우연히 선녀 뺨 칠 정도로 아름다운 아내를 얻는다. 그 아내를 본 왕이 아내를 빼앗고자 온갖 흉계를 꾸미지만, 아내가 지니고 있는 초능력 때문에 무슨 수를 써도 안 된다. 나중에 왕이 아내도 어쩔 수 없는 기가 막힌 꾀를 짜낸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가서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찾아오라'

 

그야말로 생억지지만, 예멜리안은 나름대로 답을 찾아 돌아온다. 하지만 왕이 억지를 부리자 예멜리안도 억지를 부리면서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가져온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두들기자, 왕이 거느리는 군대가 모두 그를 따라가고 그가 그것을 부수자 군대가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책을 읽으면 된다.

 

 

<세 아들>

 

아버지(하느님)가 세 아들(사람)에게 재산과 토지(생명)를 나누어 주며, 자기처럼 살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한다.

 

첫째 아들은 흥청망청 즐기면서 살다가 재산을 탕진한 뒤, 도와주지 않는 아버지를 저주하며 죽는다. 둘째 아들은 첫째처럼 되지 않으려고 재산을 모을 궁리만 하다가 결국 재산은 재산대로 바닥나고 삶은 삶대로 헛되이 보낸다. 그 역시 도와주지 않는 아버지를 저주하며 죽는다. 셋째 아들은 첫째와 둘째처럼 되지 않으려고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곰곰이 되새겨 본다. 그 결과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좋은 일을 베풀어 주었으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어떤 자는 삶은 쾌락이 연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신에게 귀의하지 않았으므로 삶이 띠는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허무 속에서 신을 부정하고 저주하며 죽는다(첫째 아들). 어떤 자는 현실 세계에서 열심히 살지만 역시 신에게 귀의하지 못했으므로 공허해진다(둘째 아들). 어떤 자는 신이 사람에게 선을 베풀고 남에게도 그같이 하라고 명령하므로, 사람도 신처럼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에 따라 산다(셋째 아들).

 

다 좋은데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자아실현을 목표로 살아가는 나로서는 둘째 아들로써 톨스토이가 드러내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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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버지
이중원 지음, 김홍모.임소희 그림 / 다산북스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멋들어지게 정복을 차려입고 휴가를 나가기 전에 부모님에게 연락해 드리면, 부모님께서는 그때부터 아무 것도 제대로 못하고 집에서 나만 기다리셨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조금이라도 늦는다 싶으면 어머니는 나를 걱정하는 말씀을 몇 번이고 하셨고,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신문이나 TV를 보시다가 몇 번이고 현관문 쪽을 쳐다보셨다.

 

그러다가 내가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는 얼른 뛰어나와 나를 와락 끌어안고 우리 똥강아지 왔냐면서 등과 엉덩이를 탁탁 두들기며 집안으로 이끄셨다. 아버지는 그때까지도 가만히 신문이나 TV를 보고 계시다가, 내가 인사를 드리려고 방으로 들어가면 그때야 푸근하게 웃으며 손을 내미셨다.

 

그 손을 잡고 나는 아버지 얼굴을 쳐다보았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많이 늘어났고 얼굴에도 주름이 꽤 많다. 내가 그 흰머리와 주름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지금까지 지독하게도 부모님 속을 많이 썩게 한 것이 너무나도 죄송하다. 부모님 가슴에 박힌 굵은 못은 오로지 자식만이 뺄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어떻게 해 드려야 그 못을 다 뺄 수 있을지 방법이 뚜렷하지 않으니, 그저 걱정스럽기만 하다.

 

아버지는 도대체 나에게 어떤 분이셨는가. 외모와 성격을 꼭 닮은 것일 뿐, 그 아상도 그 이하도 아닌가? 그렇다면 아버지는 도대체 나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셨는가? 이병 계급장도 없던 훈련병 시절부터 어엿한 병장이 된 지금까지 나는 그에 관해 무던히도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 책 '대한민국 아버지'를 읽으면서 평소와 다르게 아버지께서 우리 집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가늠해 보았다.

 

6, 70년대 혹독한 개발독재 시대에 아버지 세대는 한창 배우고 일할 젊은이와 중년으로서 '한강의 기적'을 일구고 지키는 주역이었다. 마을을 지키는 듬직한 당산나무와 같은 존재인 아버지를 아내와 자식들은 그만큼 존경하고 대접해 주었고, 사회도 그들을 존중했다. 하지만 저자가 서문에 밝힌 것처럼 대한민국을 이만큼 일으켜 세운 아버지 세대는 요즘은 집안에서나 사회에서나 권위를 잃어가고 있다.

 

이 책 '대한민국 아버지'를 지은 이중원 씨는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그동안 든든한 서까래 구실을 거뜬히 해낸 아버지들이 권위를 잃고 방황하면서, 사회를 이루는 근본인 가정이 무너져 사회가 이토록 어지러워지고 혼탁해졌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방황하는 대한민국 아버지들이 주인공이다. 그 주인공들이 다시 가정에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초라해진 아버지를 존중해 주면 좋겠다는 소망르 담아서, 자기가 만난 한 가정에서 아버지였던 이들이 살아온 눈물겨운 이야기를 요란하지 않게 풀어냈다. 굵직한 펜으로 투박하고도 거침없이 그린 것 같은 삽화가 이야기와 어우러져 매우 강한 느낌을 전달한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준다고나 할까. 책을 처음 쥐어들었을 때 손에 전해진 그 느낌과 누런 표지까지 한꺼번에 생각하니, 진한 된장 국물과 같은 깊은 맛이 느껴진다.

 

그 깊은 맛은 아버지들이 그동안 얼마나 묵묵히 열심히 일했는지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아버지들은 그렇게 일한만큼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그저 한 결 같이 고달프고 슬프기만 하다. 한 대기업에서 노동자로 15년 동안 일하다가 위암으로 죽어가면서, 자기가 고통 때문에 울부짖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자식들에게 임종을 지키지 못하게 한 남자. 야구선수인 아들을 둔 대리운전자. 자기를 고아원에 두고 떠난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와 자식을 놔두고 평생 동안 아버지를 찾아다녔지만, 아들마저 자기처럼 만들고 싶지 않아 아내와 아들이 살던 옛집으로 찾아간 한 남자. 아들을 병과 사고로 떠나보낸 남자. 기러기 아빠 신세를 한탄하다가 아내와 자식들이 돌아가겠다는 말 한 마디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남자. IMF 때문에 회사에서 잘려 아내와 자식 눈치를 하루에도 몇 번씩 봐야 하는 남자……

 

우리 아버지 이야기가 이 책에 실린다면, 과연 그 제목이 무엇일까? 지금까지 한 가정을 묵묵히 지켜온 아버지께는 대단히 시례인 말일 수도 있지만, TV나 신문에서 보는 불우한 사람들처럼 가정 형편이 그토록 어렵지는 않았다고 나는 느꼈다. 여전히 철이 없어서 그렇다고 호되게 꾸중을 들어도 드릴 말씀이 없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렇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참 많이도 아버지 속을 썩였다는 사실이 더욱 심하게 가슴을 쥐어짠다. 나만 아무 탈 없이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했으면 아버지는 굳이 그토록 근심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그 많은 흰머리와 주름살도 지금보다 절반은 적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남기신 빚은 어떻게든지 돈을 벌어서 갚으면 그만이었겠지만, 자식이 삐뚤어지는 것은 아무리 아버지라 하더라도 마음대로 손을 써 원하는 방향으로 돌려놓기가 어려운 것이었으니 오죽했겠는가. '자식 때문에 속이 썩는 아버지'라는 제목을 생각하니 갑자기 심한 발작이 일어나려고 한다.

 

모든 휴가가 다 그렇지만 주말 외박은 특히 짧았다. 부대로 돌아가기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는 똥강아지 간다면서 현관까지 따라 나오셨고, 아버지는 조용히 웃음을 머금으며 열심히 하라는 한 말씀만 남기셨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쓸쓸해 보였다. 하지만 예전에 느꼈던 그 든든함도 그 속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막중한 자리에 앉아 계시는 분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아버지' 가운데 한 분인 우리 아버지이시다. 그런 아버지를 나는 존경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지른 불효를 항상 죄송하게 생각하며, 헛되이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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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있는 사람의 시간관리
줄리 모건스턴 지음, 노혜숙 옮김 / 더난출판사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시간통계법을 무작정 쓰기 시작한 지 어느덧 마흔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류비셰프보다 훨씬 더 유리한 조건에서 나름대로 시간통계법을 꾸준히 보완했지만, 들인 시간과 힘을 감안할 때 성과는 신통치 않아 보인다. 류비셰프가 쓴 최종판에 그나마 가장 가깝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 4차 수정판을 2007년 8월 말에 거의 완성에 2007년 9월 1일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스스로 세운 온갖 조건을 다 지키려니 버거워서 견디기 힘들다. 도대체 류비셰프는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자기가 할 모든 일과 그에 쓸 시간을  예측하고, 그에 따라 거의 항상 전체에서 9할이 넘는 목표를 이룬 걸까? 지금 내 수준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공룡과 같은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았던 사람이 바로 류비셰프라고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이 말한 까닭만 충분히 이해했을 뿐이다.

 

대개 계획을 세우는데도 발전이 없고 실패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유형 가운데 한 가지에 속한다. 첫 번째 유형에는 아주 하찮은 계획만 세우고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시간을 헛되이 쓰는 사람들이 속하며, 두 번째 유형에는 자기가 지닌 능력과 처한 환경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의욕만 너무 앞서서 절대 실현할 수 없는 무리한 계획을 세운 뒤, 계획대로 해내지 못했다고 실망하고 시간 관리와 계획 짜기를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이 속한다. 내가 알기로는 나를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두 번째 유형에 속한다.

 

이 책 '능력 있는 사람의 시간관리'가 앞에서 말한 두 번째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쓴 줄리 모건스턴은 매우 다양한 직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에게 맞는 시간 관리법을 생각하고 제시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시간 관리 원칙을 뽑아내 다듬을 수 있었다. 원칙이라는 것은 적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신뢰성과 정확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 책에 담겨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수집한 사례를 바탕으로 한 시간 관리 원칙들은 매우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봐야겠다. 그 훌륭한 원칙들이 군더더기 없는 건조체로 깔끔하게 인쇄되어 있다. 인쇄 상태는 요즘 나오는 책들과 다를 바가 거의 없는데도, 시간 관리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책이 참 맛깔스럽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독후감을 쓰기 전에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가지 도움말에서 뽑아낸 원칙들을 나름대로 다시 분류해 보았다. 이 책에 나오는 차례대로 원칙을 분류한 결과는 왠지 적절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많이 겹치는 것들은 뺐다.

 

 

<일할 계획에 관한 원칙>

 

1. 계획표를 만들고 일과 약속을 담아라.

2. 해야 할 일과 미뤄도 되는 일을 나누고, 적절한 목록을 만들어라.

3. 뜻밖인 시간에 할 일을 마련한 뒤에,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일을 하라.

4. 처음 하는 일에 시간을 더 집어넣고, 지금 해야 하는 일을 골라라.

5. 반복되는 일을 단순하게 만들어라.

6. 일에 걸리는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하라.

 

 

<일하는 능력과 환경에 관한 원칙>

 

1. 공간을 제대로 정리하라.

2.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라.

3. 쉬는 시간도 계획하라.

4. 일이 너무 많을 때는, 해야 할 일을 골라내고 건강에 신경 써라.

5. 상대와 안 맞을 때는, 공동인 목표를 찾고 시간을 효율 높게 쓸 방법을 의논하라.

6. 체력이 줄어들거나 과도기가 찾아왔을 때는, 상황을 인정하고 규칙을 다시 짜라.

7. 일에 제자리가 없으면, 중요한 일에 일정한 시간을 마련하라.

8. 활동 시간이 적당하지 않으면, 저마다 다른 에너지와 집중력을 고려하라.

9. 복잡하고 규모가 큰일은 미루지 말고 잘게 쪼개어 처리하라.

 

 

<일하는 자세에 관한 원칙>

 

1. 실패와 성공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즐겨라.

2. 일을 끝내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지내라.

3. 어느 선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워라.

4. 잘 하는 일과 못하는 일을 구분하라.

5.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생략하라.

6. 위임할 수 있는 일은 위임하라.

7. 자기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면 단호하게 거절하라.

8. 만능해결사가 되려는 생각을 버려라.

9. 자기가 하려는 일이 계획에 포함된 일인지 판단하라.

10. 계획대로 시작하고 계획대로 끝내라.

 

 

이 책에 나오는 이 모든 원칙을 활용하여 계획을 짜는 건 자기 마음에 달렸다. 내키면 하고 안 내키면 안 해도 그만이다.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자기 삶을 충실히 가꿔 나갈 수 있거나, 계획을 짜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바쁘게 사는 사람들은, 굳이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다. 이 책도 그런 사람들이 아닌, 계획 없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거나 마음먹은 만큼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까닭이 무엇인지 몰라 걱정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 읽을 때, 읽은 뒤에 위에서 제시한 원칙보다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다. 무엇이든지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사람들은 일단 자기가 원하는 목표가 왜 생겼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 모호한 이미지만 머릿속에 그리며 사는 사람은 그것을 현실로 옮기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이 책에서 가장 처음에 나오는 대로 자기 이미지를 확실하게 구축해야 한다. 일, 가족, 자기 자신, 사랑, 우정, 재정, 학습, 가정, 정신……목표를 적고 되새기며 꿈을 꿔야 한다. 5년이나 10년 뒤에 자기는 어떻게 변해 있을지, 자기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단기 계획과 장기 계획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그 모든 것을 글로 나타내 보면 매우 좋다. 모호한 이미지를 글로 뚜렷하게 표현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뚜렷한 목표가 있다면 그를 이루고자 계획을 짜고 행동하기에도 더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고자 세운 계획은 자기가 만족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자기가 지닌 능력과 처한 환경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의욕만 너무 앞서서 절대 실현할 수 없는 무리한 계획을 세운 뒤, 계획대로 해내지 못했다고 실망하고 시간 관리와 계획 짜기를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은, 아예 계획을 세우지 않고 사는 사람들보다 못할 수도 있따. 시간은 시간대로 쓰고 의욕과 열정도 꺾여버리기 때문이다. 자기 능력 안에서 지킬 수 있는 계획을 세워서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목표를 크고 높게 잡고, 그에 맞춰 자기 능력도 꾸준히 개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자아를 풍요롭게 가꿀 권리를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권리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 보인다. 워낙 바쁜 세상이다 보니까 이런저런 일에 정신없이 쫓기다 보면,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냥 시간을 흘려보낼 확률도 매우 높다. 심지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바라는 목표만큼 일을 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들도 많다.

 

앞에서 말한 모든 이들에게는 시간 관리가 절대 필요하다. 관리하는 방법이 머리로만 아주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든, 온갖 표와 그래프를 그리면서 하는 것이든 상관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바라는 것을 이루는데 알맞은 시간 관리 계획이다. 자기가 시간을 잘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계획에 따른 행동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하며, 계획을 이어나갈 의욕과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멋진 계획을 세우는데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자기 관리와 시간 관리에 성공한 멋진 삶을 꾸려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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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변화시키는 나비효과
스산 수이 지음, 박수진 옮김 / 시간과공간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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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자기 개발에 관한 책을 읽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기를 이끌고자 힘쓰고, 그들에게 감동을 주고자 자기 개발에 관한 따끈따끈한 새 책이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수없이 출판되어 나온 탓인지, 아니면 출판업계가 지니고 있는 문제 때문인지 어쩐지는 판단하기 힘들더라도, 이제는 그저 그런 자기 개발 서적은 초판이 나온 뒤 며칠 뒤에 출판사 영업자금이나 날리고 사라져 버리기 일쑤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자기 개발에 관한 책을 적어도 대여섯 권은 읽었고, 서평이나 독후감을 즐겨 쓰는 이들도 자기 개발을 주제로 삼은 책을 읽고서는 웬만해서는 깊이 있게 글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자기 개발에 관한 책을 쓴 사람들은 대개 모범이 될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고 그 자질을 갖춰나가는 과정이 어떻게든지 다르기에, 그들이 쓴 책은 나름대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이들에게는 모든 책이 거기에서 거기처럼 보이므로, 특별한 감동을 얻지 못한다면 김이 새서 실망하기 마련이다. 그 특별한 감동은 책에 나오는 이야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 모든 이야기를 기억한다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글을 쓸 때는 여러모로 도움이 되겠지만, 남다른 감동을 얻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감동은 대개 작가가 겪은 일을 거짓 없이 풀어놓은 이야기에서 받기 마련인데, 그런 이야기는 없고 주장을 뒷받침하는 온갖 자료만 긁어모아 정리해 놓은 재미없는 책이 있다.

 

군대에서 자기 개발을 주제로 삼은 책을 어림잡아 20여 권 정도 읽은 것 같다. 앞에서 말한 것들로 미루어 판단할 때, 그 가운데 이 책 '나비효과'가 가장 재미없었다. 본문에 소개된 다양한 이야기 가운데 핵심에서 또 일부를 간추려 소개한 차례와, 중요한 내용은 눈에 뚜렷하게 띄도록 색깔을 집어넣어 구분한 깔밋한 편집은, 칭찬할 만하다. 내용을 읽기에도 요약하기에도 쉽게 쓴 것은 더욱 훌륭하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스산수이가 겪은 이야기는 없다. 여러 가지 사례를 풍부하게 집어넣기는 했지만, 지겹도록 들었던 이야기를 보충하는 자료일 뿐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분명히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내 방식대로 독후감을 쓰기에는 적절한 대상은 되지 못하는 책이다. 앞으로 마음을 울리는 일이 없고 새로운 정보를 얻는 성과가 있더라도 글을 쓸 의욕은 나지 않도록 하는 이와 같은 책을 읽은 뒤에는 독후감을 쓰지 않겠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내가 하는 행동에 얼마나 반영되어 있는지 점검한 뒤, 요약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알고 있는 것도 되새기는 데만 쓰면 충분할 것이다. 책에 있는 핵심 문장을 그대로 옮겨 본다.

 

 

1. 작고 사소한 것을 중시하라. 별 것 아닌 일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2. 사소한 문제점이 발생하면 즉시 대처하라. 작지만 나쁜 습관이 비극을 초래한다.

 

3. 시기적절한 때에 과감히 처리하라. 소홀히 여겼던 문제가 큰 재앙을 부른다.

 

4. 좋은 습관을 길러라. 작은 습관이 인생을 변화시킨다.

 

5. 작은 힘으로 큰 일을 할 수가 있다. 보잘것없는 사람도 큰 업적을 세울 수 있다.

 

6. 매사에 최선을 다하라. 작은 노력이 모여 큰 결실을 맺는다.

 

7. 머리를 써라. 작은 아이디어가 놀라운 기지를 발휘하게 한다.

 

8. 매일 조금씩 진보하라. 한 걸음 한 걸음이 기적을 만든다.

 

9.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노력하라. 작은 노력이 모여 큰 성공이 된다.

 

10. 전체를 파악할 줄 아는 넓은 시야를 가져라. 작은 사소한 변화가 전체적인 환경을 좌우한다.

 

11. 위기에 안이하게 대처하지 마라. 결국 큰 고통을 맛보게 될 것이다.

 

12. 긍정적이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라. 작은 즐거움이 큰 행복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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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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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살아계실 때 꼭 해드려야 할 45가지'를 읽으면서, 모든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나는 지금까지 몇 가지나 해드렸는지 확인하고, 못 해 드린 것을 어떻게 해 드릴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 책에 나오는 대로 반드시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은 곧 접었다. 부모님마다 원하시는 것이 다를 것이며, 내가 어떻게 부모님을 속상하게 했는지 잘 알고 있는 만큼, 내가 부모님 가슴에 박은 못을 어떻게 빼드릴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 연세가 올해에 벌써 50대 초중반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흘러간 시간은 절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어서, 그토록 나와 부모님 사이에 갈등이 많았던 10여 해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부모님 속을 썩였는지는 추산할 수조차 없고, 내가 걸어야 할 길도 아직 제대로 닦지 못했기에 해야 할 일은 태산처럼 쌓여 있다. 그런 형편에서 과연 내가 얼마나 부모님에게 효도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게다가 부모님이 만약 일찍 세상을 떠나실 수도 있다는 걱정까지 머릿속을 어지럽게 한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할 시간조차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온 힘을 기울여 집중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여러 책에서 읽고 깨달아 놓고도, 부모님이 돌아가실 날을 생각한다는 것은 아는 바를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님이 바라시는 대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해서 세상 앞에서 떳떳해지자고 마음먹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도, 부모님에게서 차츰 늘어나는 흰 머리카락과 꼬불꼬불한 주름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버린다. 나 때문에 얼마나 속이 상하셨으면 저렇게 되셨을까……군대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조직'이라는 정훈 교육 내용 때문에 나도 모르게 모든 가능성, 특히 안 좋은 일이 벌어질 확률을 염두에 두는가 보다.

 

특히 이 책 '등대지기'에 나오는 어머니처럼 부모님이 치매(알츠하이머 병)에 걸리신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하면, 그저 한숨밖에 안 나온다. 기억을 없애고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가장 기본인 품위마저 지키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치매는, 그 병에 걸리지 않은 주위 사람들을 너무나도 지치고 힘들게 한다. 치매에 걸린 부모님 때문에 한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보고 들었다. 그런 부모님도 지극히 모시는 이야기는 전래설화에서나 볼 수 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요즘같이 인간미가 없는 세상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라고 해서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기가 힘들다. 내가 지금까지 너무 세상을 부정하기만 한다는 지적도 하기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세상이 그렇게 살벌하고 메마르지많은 않다고 가르쳐 주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이 책 '등대지기'를 쓴 조창인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다. 이미 '가시고기'와 '첫사랑'을 읽으면서 조창인이 쓴 소설이 지닌 매력에 푹 빠졌던 터라, 중대 사무실에 있는 낡은 나무 서랍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작가를 확인하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당직을 서면서 소설을 읽는 편안한 기분은 꽤 즐길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그 편안한 기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불편한 느낌이 메우기 시작했다. 이건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 부분까지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구명도에서 등대지기로 일하는 주인공 재우는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고 죽도록 미워한다. 재우가 어머니와 형제들이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숱한 괴로움과 좌절 그 자체였다. 그를 누구보다도 사랑해 주고 보듬어 줘야 할 가족들이 그에게 너무 큰 고통을 안겼다. 재우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기억 속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재우가 그토록 좋아했던 난희네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는 어머니는 난희를 좋아하면 안 된다고 그토록 심하게 그를 말렸으며, 그런 그런 어머니가 싫고 창피했다. 형과 누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무엇이든지 어중간한 재우에게 어머니는 결코 잘 대해주지 않았다. 형이 재우를 심하게 패는데도 어머니는 옆에서 그저 지켜보기만 하고, 말리지는 못할망정 심지어 거들기까지 했다. 어머니 대신 누나라도 재우를 잘 챙겨줄 수도 있었지만, 누나나 형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형은 매우 큰 회사에 취직해 잘 나가는 직장인이 되었고, 누나는 정치인에게 시집을 가서 남편이 권력을 잡기만을 바라며 나름대로 팔자가 잘 풀렸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어중간하기만 했고 가정에서마저 편안함을 찾지 못해 어떻게든지 발전하지도 못한 재우는, 고만고만한 말단 공무원이 되어 등대지기가 되었다. 형제끼리 서로 연락을 끊은 지는 꽤 오래 되었다. 형과 누나는 재우를 너무나도 창피하게 여겼고, 그런 형과 누나를 재우는 증오했다. 그런 그들이 모시고 있는 어머니에 관한 애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가족이 아니라 남남과 같았다.

 

하지만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맡기 싫은 형과 누나가 떠올릴 사람은 재우밖에 없었다. 어머니에 관한 좋은 기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재우는 당연히 어머니를 맡기 시작한다. 하지만 형과 누나는 이런저런 까닭을 들이대면서, 심지어 재우를 속이기까지 하면서 결국 어머니를 재우가 있는 구명도에 보낸 뒤 연락을 끊어버린다. 한 달만 부탁한다고 눈물을 보이면서까지 재우를 설득했던 형수는 구명도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형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고, 누나는 어머니 때문에 남편이 선거를 치르는데 해를 입을 까봐 연락을 끊는다.

 

그토록 미워했던 어머니, 게다가 치매에까지 걸려 가는 곳마다 동물처럼 행동해 모든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어머니를 모시게 된 재우는 극한까지 치밀어 올라버린 증오와 그래도 어머니라는 자식 된 도리에서 나오는 생각 사이에서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방황한다. 어머니가 그렇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공부 잘 해서 나중에 어머니를 잘 모실 줄 알았던 큰아들과 딸이, 막상 다 자라자 나 몰라라 하면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대 놓고 야멸차게 대할 줄이야.

 

소설 초중반에서 작가는 이야기를 느릿느릿 이어나갔다. '가시고기'와 '첫사랑'에서도 그랬듯이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등대지기로 일하다가 형과 누나에게 속아 어머니를 모시게 되는 현재와 난희와 가족에 대한 애증이 수도 없이 엇갈리는 과거를, 뒤섞어서 차분하게 썼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작가가 '가시고기'와 '첫사랑'과는 다르게 이 소설을 썼다고 봐야겠다. 앞에서 말한 두 소설에서는 눈물겨운 부성애와 연애를 처음부터 분명히 드러냈다. 그 뒤 다정다감하면서도 치밀한 느낌을 문체와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이 책 '등대지기'에서는 100여 쪽을 넘겨도, 모성애와 자식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그 100여 쪽을 읽으면서 나는 너무 괴로웠다. 차분하게 느리게 흐르는 이야기는 읽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부모님과 거의 항상 대립하면서 눈에서 불꽃을 튀기기만 했던 시절이 떠오르자, 머리카락을 모조리 쥐어뜯어내고 싶을 정도로 온몸에 심한 발작이 일어나려고 했다. 모두 내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생긴 일이다. 터무니없는 망상에 잠겨 있던 내가 부모님 가슴에 칼을 박은 것이다.

 

그런 내가 나이를 좀 더 먹은 그제야 효도를 좀 해 보겠다고 할 때 이 책에서처럼 부모님을 증오하게 된다면, 그건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다. 나는 그런 죄악에 물들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재우처럼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나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중반부가 거의 끝날 무렵에야 간신히 그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머니 때문에 등대 직원들과 상사들에게 하루에 몇 번씩이고 잔소리와 호통을 들어가며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재우는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다. 하지만 퇴직한 뒤에도 재우와 등대를 찾아오는 정 소장에게서 모성애와 자식 된 도리에 관해 나지막하지만 엄한 충고를 수시로 듣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게 어머니가 재우에게 지니고 있던 진심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결국 모성애는 위대했다. 치매도 본능과 같은 모성애를 막지 못했다. 재우는 그 모성애 덕분에 죽음에서 벗어나면서 그동안 이해하지 못한 모성애를 가슴 깊이 새기고, 등대를 떠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정 소장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배를 타려는 재우를 보면 매우 안타깝다. 사랑도 떠나고 형과 누나와는 계속 연락하지 못하고 하반신이 마비되는 주인공을 보며 어찌 안타깝고 쓸쓸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그 결말에 내 마음이 영향을 받아 침울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벅찬 가슴을 가라앉히기가 힘들었다. 

 

그 느낌은 '가시고기'와 '첫사랑'을 읽으면서 느낀 것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었다. 세 가지 다른 느낌이 내 안에 모였다. 그리고 하나가 되었다. 그 순간 삼색 비빔밥(?)과 같은 세 가지와는 또 다른 풍요로운 감정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작가가 드러내려고 했던 세 가지 사랑이 지닌 위대한 힘, 곧 부성애, 모성애, 연애를 모두 가슴 깊이 느끼면서 나오는 것이리라. 이런 다채로운 감동을 느끼게 해 준 작가에게 그저 깊이 고마워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내 안에 스며들었다고 해서 그저 감동만 하고 있을 까닭이 사실 전혀 없다. 나는 여전히 부모님과 나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계속 생각한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쾌한 기분이 나중에 현실이 될까봐 여전히 걱정한다. 앞날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며, 지금 내가 한 것이 모여 앞날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알고 있는 것이 행동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런 일은 원래부터 지니고 있기는 했는데 군대에서 더욱 강해진 나쁜 습관 때문에 생기는 일일 것이다. 나쁜 습관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쓴 뒤에는 그런 재수 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다. 그저 부모님이 살아계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기의식을 항상 되새기고, 어떻게 하면 지금까지 내가 박은 굵은 못을 빼드리고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더욱 현명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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