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를 4번 봤다.  그 숫자만큼 허진호 감독에게 반했다. 이혼녀 '은수'와 소년 같은 청년 '상우'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상우'에게 동화되었지만, 다시 볼 수록 난 '은수'에게 동화되었고, 마침내 내가 '은수'가 되었다.

그 기대와 설렘으로 '외출'을 기다렸다.  나의 보람은 서운케 무너졌다.  인수와 서영의 배우자들은 불륜의 관계였다. 배용준과 손예진은 배우자의 불륜에서 오는 배신감과 허탈감을 표현하지 못했다. 그저 예쁘게만 보이려고 했다. 또 배우자들의 불륜에 이은 자신들의 관계에 대한 불안감을 온몸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대사로 처리했다.  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리는 것은 또 다른 곳에도 있다. 배우자가 입원해 있으면 대개 같이 병실에서 생활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병원보다 이들이 지내는 모텔이 더 많이 나왔다. 봄에 눈이 내려 서영의 바람이 이루어진다는 설정은 자연스러운 감정을 유도하는 감독의 전작과는 달랐다.

그러고 보니, 허진호의 영화에는 항상 죽음이 있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는 주인공 정원의 죽음이,  '봄날은 간다'에는 상우 할머니의 죽음이, '외출'에는 서영의 남편의 죽음이 있었다.  전작들에서는 나타나는 죽음은  극의 흐름에 중요한 의미가 부여되었다.  정원의 죽음은 정원의 가족과 다림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상우 할머니의 죽음은 상우에게 실연의 아픔을 딛고 은수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또 상우 할머니는 지나간 봄날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출'에서 서영 남편의 죽음은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죽지 않아도 극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 영화는 전시된 음식같았다. 윤기는 흐르지만 먹지 못하는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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