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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평점 :
-20260421 (저자:수디르 벤카테시)
제목만 봤을 땐 사회학에 관한 여러 이론이나 통념을 깨는 연구 결과 등을 열거해 놓은 책 같았다. 그런데 원제를 확인해 보니 ‘하루 동안의 갱 보스’. 이쪽이 더 책의 고갱이를 잘 드러냈다.
사회학 대학원생 수디르는 정말 하루간 갱단 보스 역할을 체험하기도 한다. 실제로는 거의 수 년을 시카고의 흑인 빈민 주택단지 로버트 테일러 홈스에 드나들며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기록했다.
세상물정 잘 모르고, 강한 호기심에 이끌려 갑자기 남의 험한 동네로 뛰어든 학생처럼 본인을 그려 놨지만, 속표지의 소개 사진을 보면 저자는 체격도 다부지고 깡따구도 있어 보였다. 자신의 안전과 생명을 걸고 마약 거래와 총격전이 오가는 갱단의 관리 구역에 들어가 연구할 마음을 먹은 것을 보면, 수디르는 야심넘치고 학계에서 성공할 욕심도 크게 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 갱단의 보스 제이티와 주택단지 주민회장 베일리 부인 등을 중심인물로 하면서, 그 주변 인물들과 주민들의 삶을 그린 이야기가 이렇게 흥미롭게 읽히는 건, 저자가 서사를 만들고, 그렇게 읽히도록 많은 장면들을 편집하고 재배치한 덕일 거라고 생각했다. 삶은 드라마가 아니다. 그렇지만 어떤 이들의 삶은 어떤 드라마보다도 굴곡 많고 이야기거리도 많다. 수디르처럼 가까이서 오래도록 지켜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일상이 이야기로 남도록 그릴 수 있는 것이다.
마약 거래, 매춘, 뇌물, 갱단 간 전쟁, 부패 경찰, 온갖 지하경제가 한 동네 안에서 얽히고설켜 있다. 그들 나름대로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붙들고 있는 것일 수도, 그런 일이 아니면 더는 선택할 수 없어서일 수도 있다. 책으로 전해들었을 뿐 그 안에 뛰어들어 보지 않아서 짐작만 할 뿐이다. 심지어 그 동네는 재개발과 함께 사라져 버려서 옛 주민들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대신 이 책이 남았다.
유튜브는 잘 보지 않는데, 한동안 관심을 가지고 둘러본 채널이 있었다. 특히 ’나락의 삶‘이라는 다큐 형식의 컨텐츠가 흥미로웠다. 정신이 (나보다 더)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 젠더 퀴어, 크리에이터라고 하지만 그렇게 큰 수익을 누리지 못하고 대개 술방송으로 간팔이를 하거나 막장 방송을 하는 사람들, 도박중독, 성형중독, 성매매, AV배우 등 사회 대다수에게 인정 받지 못할 방식으로 생계를 잇고 있는 사람들이 잔뜩 등장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영상 속 사람들이 생각났다. 세상엔 다양하게 고달픈 삶이 존재하고, 멀리 치워두고 들여다보지 않아서 몰랐을 뿐, 나름대로의 삶을 어떻게든 끌고 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존재한다. 내가 저런 처지가 아니라고 안도하기보다, 제대로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기 전에, 그것 말고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을 삶에 대해서도 가끔 생각해 봐야 겠다.
+밑줄 긋기
-“백인을 절대로 믿지 말게나.” 어느 날 올드타임 할아버지가 내게 조언했다. “그렇다고 흑인이 그보다 더 나을 거라고도 생각지 말고.” (23, 색은 중요치 않다. 누구도 믿지 마...)
-우리는 이곳을 벗어나려고 애쓰느라 시간을 허비하면서 이곳에서 살고 있지. (24, 많은 사람이 그러고 살긴 하는데 로버트 테일러 주택단지는 더 그럴만 했다.)
-식품 잡화점 주인에게서 식료품을, 시카고 주택공사로부터 집세 면제를, 사회 복지 담당 공무원에게서 혜택 지원을, 경찰관으로부터 감옥에 간 친척들을 위한 특혜를 받을 수 있었다. 섹스를 화폐 대용으로 사용하다니! 그러나 그들의 설명은 일관되고 아주 현실적이었다. 아이가 굶주릴 위험에 처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다. 이 젊은 엄마들은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이런 생필품을 얻는 것을,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괴로워하는 듯했다. (292-293, 사회경제적으로 제일 어려운 지역 사회에서 제일 고통 받고 착취당하는 건 여성들이었다.)
-나는 경찰이란 일이 잘못되었을 때 도와주는, 믿을 만한 영웅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랐다. 그런데 여기서는 평범한 시민인 내게도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 (329, 무력을 사용하는 공권력을 가진, 좋은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쁜 사람도 일정 비율 늘 섞여 있다.)
-그래도 나는 선택권이 있어서 로버트 테일러 홈스에서의 생활을 그만둘 수 있었지만 그곳 주민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빈곤 문제 연구를 끝내고 나서 오랜 후에도 그곳 주민들 대부분은 여전히 가난한 미국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었다. (335, 선택할 여지가 없는 사람들. 그들도 좋아서 거기 사는 게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