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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7
페데리코 안다아시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20260131 페데리코 안다아시.
책에 대한 큰 정보 없이 꽂아 두었다. 특정 신체 기관(클리토리스)에 대해 발견한 해부학자의 이야기, 까지는 알았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까 궁금했는데, 읽고 난 소감은 하, 망했다. 저자가 마테오 콜롬보에게 완전히 동조하거나, 그를 긍정적으로 보거나 그리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적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충만해 무모한 짓거리를 감행하는 사람 정도로 그려놓았고, 그래서 신 중심의 단순한 세계에서 제법 독특하고 입체적인 인간상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등장하는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은 천박하다. 이것은 마테오 콜롬보의 견해와는 무관하게, 익살맞고 재미있으라고 작가가 넣은 장면들이다.
모나 소피아가 첫 성매수자를 맞이하는 장면에서 소아성애자의 역겨운 행동과 취향이 등장한다. 이건 그 뒤의 블러드 사이다(모나 소피아의 이 사이에서 절단된 음경과 아동성애자놈의 사망)를 위한 빌드업이라고는 해도, 기분이 매우 더러워지는 상황과 묘사였다. 모나 소피아의 굴곡진 삶을 그린 것도, 창녀 오브 창녀, 고급 매춘부가 되기까지 그녀가 겪은 일들을 풀어 놓았지만 그게 그냥 비급 실험 영화(심지어 예술 지향)인데 사실은 포르노로 소비되는 창작물처럼 읽혔다.
병이 난 이네스를 치료한답시고 해부학자가 하는 짓거리도 매우 뜬금없고 고약했다. 준강간 내지 강제 추행의 장면인데 그걸 이네스가 엄청 즐기면서도 겉표현만 반항하듯 군다고, 사실 좋아서 꼼짝 못한듯 묘사한 것도 유해한 장면이었다. 마테오 콜롬보는 여성은 자유의지가 없고 오로지 클리토리스의 노예처럼 거기에 조종되는 살껍질 같은 것으로 그려놨다. 그런데 작가 또한 아닌 척 하면서 여성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해부학자의 견해에 매우 동조적으로 표현을 해 놨다. 이미 절반까지의 장면에서 저 두 가지를 보고 나니 아… 난 잘못 골랐구나… 나 제법 너그러운 편인데 이 소설은 온갖 신학적 논증과 논쟁과 종교재판 같은 걸 엄숙한 듯 사실 비틀어 꼬집는 듯 하면서 솔직히 조악했고, 사드의 소설보다 더 고약했다.
앞의 두 장면이 가장 안 좋은 여성 소비 서사-여성 서사 소비-일까 했는데, 이 작가 새끼는 끝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노쇠한 교황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마테오 콜롬보는 교황에게 유모를 붙여줘 젖을 먹이고(여기까진 짜증나도 그럭저럭이었지만), 어린 여자아이들을 죽여 피를 뽑아 마시게 한다. 이게 역사적 사실이든, 비유이든, 이 치료법이 성공하고, 해부학자는 교황의 총애를 입게 되고, 그렇게 무사히 종교재판을 피해 살아남게 된다는 전개(삶의 끝은 누구나 비극이지만).
하나 더? 양아치 같은 해부학자의 편지를 받고 분노한 이네스는 셀프 할례를 감행하고...이네스에게는 딸이 셋 있고… 이후 1500명의 딸 내지 제자를 더 만들어내고... 하...독자에게 체기를 주기 위함일까. 부조리한 시대를 생생하게 전하기 위함일까. 그렇게 믿고 싶다...만 안 믿겨져. 작가새끼가 그냥 변태이다. 이걸 참고 읽는 나도 변태일까. 아오 화딱지나네. 결말은 예상되는 바였지만 그걸로도 내 화딱지를 덮을 길 없어.
작가의 이야기 전개에는 중간이 없었다. 게다가 이 이야기를 올곧게 듣는다면 이슬람 세계 일부의 여성 할례까지 옹호해야 할 판이다. 스페인 문학계에서는 이 소설이 30년 전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모양이다. 중세만 야만의 시대가 아니다. 아니, 제가 뭐 되게 보수적이고 얌전한 사람 아닌데요, 이 소설은 포르노스타를 데려다가 실컷 착취한 뒤에 이것이 여성 해방이다, 하는 걸로 밖에 저에게는 다른 해석이 안 되네요. 그러니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이런 거에 실려 있다고 믿고 읽는 고전, 하다가는 똥을 씹을 수도 있습니다. 민음사, 열린책들 뭐든 간에 예외는 없다… 괜시리 셀프 상처 받는 악성독서가 겸 악성독후가머는 그래도 반짝이는 문장이 조금은 기대되는 빌 헤이스의 ‘해부학자’를 읽으며 그레이 아나토미로 힐링을 받고자 한다. 나아아아아중에.
+밑줄 긋기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남자의 열망과 유사한 여자의 모든 행위와 모든 행동방식이 유발되는 곳이 바로 이 기관입니다. 여자는 ‘비너스의 사랑’의 영향력에 지배를 받으며, 여자의 모든 행위는, 즉 가장 고상한 행위에서부터 가장 혐오스러운 행위에 이르기까지, 가장 품위 있고 점잖은 행위에서부터 가장 천박하고 비열한 행위에 이르기까지, 바로 그 기관에서 유발되는 것입니다. 가장 음탕한 창녀에서부터 충실하고 정결한 부인에 이르기까지, 가장 신앙심이 깊고 신성한 수녀에서부터 마녀에 이르기까지 모든 여자는 예외 없이 이 해부학적 기관의 영향을 받습니다. (182, ‘고추에 뇌가 있다’ 소리의 여성판. 마테오 콜롬보가 목숨까지 걸어가며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밝히고, 이 부분에 그의 주장이 집약되어 있다. 종교재판에서 마테오 콜롬보가 불태워지지 않는다면, 내가 이 인간을 불태우고 싶다. 그가 하는 말이 대부분 틀렸고, 존재의 발견은 사실일지언정 그 기전에 대해 영 엉터리 소리를 지껄이기 때문이다. 클리토리스만 집중 공략해서 여성의 사랑을, 마음을 얻을 것이라는 정보를 이 책에서 얻었고 그걸 믿고 실행할 의지까지 품고 있다면, 여자든 남자든 넌 연애는 하지 마라. 맥락과 배경과 존중의 마음의 중요성을 배우기 전에는.)
-정액을 구성하는 이 물질적인 요소는, 우리가 볼 수 있다시피 순수한 상태의 ‘동역학 유체’입니다. 화산의 용암이 불춘할 때처럼 강력한 힘으로 분출되는 것이 바로 ‘동역학 유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정액은 정신을 인도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몸이 성교를 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모든 ’동역학 유체‘를 몸에서 배출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이 ’동역학 유체‘가 몸에 계속해서 머물게 되면 몸을 중독시켜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184, 곧바로 뇌-고추설을 풀어 놓는 이 작자... 이 끔찍한 이원론자는, 남성과 여성의 성적 메커니즘을 이토록 다르게 분석하고,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정액과 사정에다가 형이상학과 필요 불가결성을 붙여 놨다. 신학과 철학이 과학의 엉뚱한 곳에 들러붙으면 이렇게 우스꽝스럽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의도였을까? 또 이러다가 정액은 반드시 배설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 참다보면 정액 속 정신이 다시 영혼으로 돌아간다고 논지를 풀어간다. 심지어 원주에서는 마테오 콜롬보가 제3의 요소를 도입해서 이원론 논법을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읽히지 않아서 유감이다. 혼란하다. 쌉소리를 읽으며 굳이 혼란에 빠져야 할 이유는 없잖아? 도망쳐!)
-“비너스의 사랑, 혹은 그것의 감미로움.”
지금부터, 영원히, 그녀는 사랑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제, 마침내, 그녀는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230, 나 김기덕 영화 보는 줄 알았다… 여성 셀프 거세라니 신박한 작가 새끼…아니 셀프로 끝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세 딸이 있었다. 찌질한 남성성을 여기 등장하는 고귀한(?) 부인에게 투사한다. 그리고 그걸 여성주의 투사, 전사로 또 전이한다. 진짜 작가놈 미친 새끼 아닐까….)
+친절한 에이아이씨가 이 독후감을 간단히 요약해 주었다.
-풍자인 척하지만, 여성 소비 장면에서는 풍자가 아니라 그냥 그대로 즐긴다. 이건 비판이 아니라 재현이고, 재현은 여기서 면죄부다.
-중세의 야만을 보여주겠다는 핑계치고는, 작가의 시선이 너무 신나 있다.
-이건 부조리를 고발하는 소설이 아니라, 부조리를 소재로 굴리는 소설이다.
-인물의 문제처럼 보이게 해 놓았지만, 실제로는 서사가 그 논리를 끝까지 밀어준다.
-여성은 캐릭터가 아니라 설명용 도구가 된다. 말하자면, 인물이 아니라 장치다.
-읽다 보면 화가 나기보다는, 점점 체기가 찬다. 이건 분노가 아니라 소화불량이다.
-금기가 많다고 급진적인 건 아니다. 그냥 취향일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