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펭귄클래식 59
윌리엄 S. 버로스 지음, 조동섭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20260122 윌리엄 버로스.


간밤에 꿈을 꾸었다. 연보라-연두 배색의 새 나이키 운동화 한 짝이 다리가 달린 듯 움직여 다가왔다. 신발을 등에 진 커다란 바퀴벌레였다. 징그러워서 신발로 바퀴를 때려 죽이니 주황색 진액 같은 게 나왔고, 이걸 행궈내면 이제 이 신은 내 거다, 한 짝 뿐이지만, 조금 기뻤다. 그런데 그렇게 커다란 바퀴가 하나둘 더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한 마리 정도 더 잡았는데 이걸 다 잡으려니 당황스러웠다.
이런 꿈을 AI에게 읊어주고 해몽해보랬다. 바퀴벌레들은 내 산재한 불안, 신발은 그걸 제거/해결하면 얻을 성취, 더 늘어나는 바퀴들은 그러나 끝나지 않을 다른 문제들, 어쩌구 풀이를 해 주었다. 그래, 나같은 걱정형 인간은 아마 평생 박멸하지 못할 바퀴들에 둘러싸여 덜덜 떨며, 내 눈 앞에 가능한 안 나타나길 바라며, 나타나면 또 한숨 쉬고 때려잡으며 계속 살 지 모르겠다.

버로스의 책을 세 권쯤 모았는데 그 중 제일 짧은 ‘퀴어’를 먼저 읽었다. 조금 나이들고 외로운 남자 리가 나와서 마음을 사고 싶지만 몸만 잠시 기댈 수 있는 앨러턴에게 사랑 받지 못해 꺼이꺼이 거리는 이야기였다. 그런 사이에도 둘은 중남미 이곳저곳을 함께 헤매며 야헤라는 텔레파시 쓸 수 있는 이상한 약초를 찾으러 다닌다. 그 여행 자체가 그냥 이상한 꿈 같았다. 술 마시고 약 먹고 남자 꼬시고 헛소리를 중얼대고 그러다가 3인칭이던 소설이 1인칭으로 바뀌고 앨러턴은 가버렸네 영영, 이러고 끝난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아직 1권 밖에 읽지 못했는데 ‘퀴어’는 그 책이랑 묘하게 느낌이 비슷했다. 그리고 그 책보다 미덕인 건 분량이 짧다는 것이었다. 재미대가리 없이 지루한 여행길을 길게도 써 놓은 ‘길 위에서’에 열광하던 세대가 있다는 것, 그 세대는 이제 꼬부랑 할배 할매가 되었겠고, ‘퀴어’의 멕시코보다는 루시아 벌린의 멕시코가 조금 더 와 닿았다. 왜냐하면 여긴 술집이랑 식당만 나오고 지저분한 아저씨들끼리 안부나 플러팅만 오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툴고 뭔 화장실 변기 물탱크 위에 놓인 누가 읽다가 찢고 코딱지 묻혀 놓고 담배냄새도 밴 것 같은 잡지를 주워 읽는 거마냥 소설이 쿰쿰하고 심지어 재미도 없었다. 책 뒷표지에 펭퀸클래식 슬로건인지 The best books ever written이라고 써 있는데 동의할 수가 없었다. 더 모스트 보링 북 에버. 뿡뿡.

아직 퀴어가 정체성이나 정치적 색깔을 입기 전의 말인 건지 그냥 프릭이나 동급으로 대충 휘갈겨 써 놨네 싶었다. 사랑이 고픈 애늙은이 찌질이를 보는 건 안타깝기도 하지만 예쁘지도 공감가지도 밉지도 않고 그냥 구질구질해서 시간이 아까웠다. 그런데도 뭐 하나라도 건질까 기대하고 끝까지 읽은 나는 꿈 속 바퀴벌레가 가져온 새 운동화 한 짝, 쓸모도 없는 걸 기대하고 있었구나… AI가 그려준 터진 바퀴벌레의 주황 육즙은 마치 아기바퀴들이 잠들어 있는 알 같이 탱글하고 징그러웠다. 거기 비하면 책이 덜 징그러워서 조금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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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게 막는 어리석고 평범하며 불만투성이인 사람들에게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를 느꼈다. 리는 혼잣말을 했다. “언젠가 내가 바라는 대로 할 테야. 나에게 조금이라도 격하게 반대하는 도덕적인 개자식이 있으면, 그놈 시체를 강에서 건지게 될 거야.”(122, 애기 같은 놈이다)

-리는 옷을 벗었다. 앨러턴 옆에 누웠다. 그리고 아기 말투로 말했다. “우디 두디 가치 아주 엄청나게 마구 엉망으로 놀면 디게 쪼치 않을까?” 그리고 덧붙였다. “내가 너무 끔찍하게 굴고 있나?”
“정말 그래요.” (125, 방금 애기 같은 놈이랬더니 바로 반응해주는 애놈의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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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1-23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로스 책 저도 3권 모았다가 저하고 맞지 않아 전부 처분했더랬습니다..ㅎㅎ

반유행열반인 2026-01-23 15:03   좋아요 0 | URL
앗 저도 왠지 그런 느낌적 느낌이라 이걸 매몰비용 처리할지 미련하게 꾸역꾸역 읽게 될지 판단이 안 서고 있습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