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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소설 전집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2
루쉰 지음, 김시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0월
평점 :
-20250725 루쉰.
즐거운 여름 휴가, 어떻게 보내고 있냐면, 아직 방학 시작도 안 한(오늘 방학식) 작은어린이를 학교 정문까지 바래다 주고, 적당히 걷는다.(공원가서 연꽃도 보고, 산에 가서 맨발 걷기족도 보고.) 그러고 집에 돌아와서 큰어린이와 오전11시 집극장, 박찬욱관-오늘이 2일째였다. 어제는 ‘박쥐’를 보는데, 내가 무척 좋아하는 영화인데(소설판 박쥐랑 테레즈 라캥도 봄) 생각보다 19금 장면이 많아서 중2 앞에서 뻘쭘했다. 어, 왜 이렇게 야한 거 길게 나옴..박찬욱은 꼭 여배우한테 저런 푸른색 계열 원피스 입히더라, 하고 딴 소리...(아이 왈: 나무위키에서 봤는데 감독이 파랑색 싫어한다는데?...나무위키 우등생. 열공.) 그런데 원래 이 감독은 19금을 넣어도 꼭 이유를 갖다 붙인단다, 이러고 얼버무리면서 잘 봤다. 오늘은 어린이한테 픽하랬더니 ’올드보이‘(이것도 원작이라 하는 만화책 ’올드보이‘까지 다 보고 영화 대사를 줄줄 외울만큼 봤던 것…)를 골라서… 마무리에서 ’아빠와 딸이 보면 어색해지는 영화 1위‘라고 해주었다.
더운 여름엔 책...도 좋지만 거실에 에어컨 틀어놓고 30분쯤 실내자전거 타면서 영화보다가 나머지 한시간 반 정도는 그냥 멀거니 보는 것도 생각보다 간편하고 즐거워서, 그러고나서 같이 메밀소바나 물냉면 같은 걸 (레토르트로) 해 먹고, 과일이나 아이스크림이나 음료를 후식으로 먹으며 식당과 카페 간 놀이를 한다. 중학생은 껄껄 그저 만족하는 것이다. 집순이라서 밖에 안 나가도 대충 비슷하게 다 된다고 긍정적인 반응이다. 육아조차 가성비…
나의 어린이는 저렇게 아직 아기 같으면서도 엄마랑 19금 영화를 단란하게 보며 평온한 나쯔야스미를 보내고 있는데…(듀오링고로 일본어만 하는 오덕 보컬로이드 팬 여중생) 나는 저 나이에 뭐했더라… 친구도 없고 세상에 불만은 많고 공부는 다른 할 게 없어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패닉 엄청 좋아해서 엄마랑 같이 콘서트 갔던 기억도 난다. 맨날 테이프로 노래 틀어놓고 따라 부르고… 자우림도 좋아해서 우중충하던 자우림 1,2집은 꽤 많이 듣고 따라 불렀었다. 3집부터 인기 엄청 좋아져서 (이렇게 멋진! 파란 하늘 위를-이게 노래방 여러 칸에 쟁쟁) 그때부턴 퉤퉤 하고 안 들었다.
그런 반골 중학생 무렵, 범우사르비아문고판으로 읽은 ‘아큐정전’ 소설집에서 늦도록 기억에 남은 건 ‘광인일기’라는 소설이었다. 루쉰이 발표한 첫 소설인 건 이번에 다시 보고 알았다. 왜 이 소설이 기억에 남았나 했더니, 조현병이나 피해망상 증상이 내가 그보다 몇 년 전부터 그 무렵까지 지켜본 아빠랑 엄청 비슷했기 때문이다. 또 내가 어릴 때 밖에 나가 놀다 놀라서 들어와서 ‘엄마! 개가 나를 잡아 먹으려고 해요. 나를 보고 혀를 날름거렸어요.‘했다는 엄마의 육아일기를 (훔쳐)봤던 것과 겹치는 점 있어서 조금 웃기기도 했다. 동네 늙은이(개주인) 자오궤이씨는 심지어 나랑 이름도 비슷하구나… 루쉰 본명이 주수인인 것도 맨 뒤 연표 보고서 알았다.
해설에서 루쉰이 한이 많아서 막판에 병 앓고 죽기 전까지 한풀이 하듯 고사 새로 쓴 글로 이런저런 풍자 소설 남기고 죽었다고 하는데, 그게 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알았던 것 같은데 이젠 잊어버렸다. 불행한 사람들이 글을 쓰고, 글을 써서 불행한지도 모르겠다. 화가 많고 세상이 삐뚜루인 걸 보면 으으 부들부들 이놈의 그릇된 인간들, 망가진 세계, 하면서 손끝에서 자꾸 뭐가 나오는 것 같다.
초반에 쓴 소설은 나름 그간 읽은 다른 문학작품 흉내도 좀 내놔서 읽어줄 만 한데, 상태 안 좋던 때 낸 두번째 소설집이나, 말년에 내놓은 고사신전 같은 중국 유명한 사람 비빔밥 같은 건 재미도 없고 뭔말인지도 모르겠다고 하니, 내 말 들은 친구가 루쉰은 소설도 프로파간다(이렇게 말하진 않았지만)처럼 도구로 쓴 거라 그 당시 일기나 평전이나 산문이나 뭐 그런 거랑 같이 봐야 의도나 비유를 제대로 이해할 거라고 했다. 아...그럼 굳이 그렇게 안 볼래...작품 외적 배경 지식을 갖춰야 하는 문학이란 귀찮고 구차하다… 사회정의 비분강개 하던 여중생은 이제 됐고, 몰라, 내일은 주말이니 건전한 극장인 척(19금 영화 보여주면 곁의 사람이 싫어함) 진격의 거인(아 이건 왜 되는데??)이나 단체로 보고, 다음 주 11시 극장에는 ’아가씨‘ 확장판(당연히 핑거스미스도 읽었고...박찬욱 영화 속에서 사드의 향이 느껴진 거야… 이런 냄새 맡은 내가 이상한 건가)을 보고 같이 또 점심을 맛있게 해 먹어야 겠다.
아, 그래서 루쉰은… 사는게 참 퍽퍽했겠구나… 나도 그랬던 것 같은데 이제는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화 덜 내는 약 같은 거 먹고 잘 못 쓰고 덜 쓰더라도 현세의 행복을 추구하기로 한다. 세상에 남겨진 울분과 한은 너무 많으니 그거나 야금야금 좇아 읽으며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루쉰/필립 로스/밀란 쿤데라/프리모 레비/기타 등등의 인간도 있었는데… 하고 위로나 받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위로 받자고 전집을 읽자니 조금 오래오래 자학적인 7월이었던 것이다...
+밑줄 긋기
-나는 전날에 의원이 떠들어 대며 처방하던 것과 현재 알게 된 것을 비교하여 보면서 점차 한의사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일종의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동시에 속임을 당한 병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동정이 심히 일었다. (11, ’자서‘ 중. 중국 사람 루쉰이 한의사 깐다…)
-당시 나는 정신을 고치는 데 있어 최선으로 당연히 문예를 들어야 한다고 여겼다. 이리하여 문예 운동을 제창하게 되었다. (12, 의학 공부 포기하고 문학으로 계몽하겠다는 루쉰 선생….스테이!!!)
-나는 그들의 말 속에 온통 독이 가득 들어 있고, 웃음 속에는 온통 칼이 들어 있으며, 그들의 이빨은 온통 하얗게 반짝반짝 줄지어 있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잡아먹는 연장이다. (22, ‘광인일기’ 중)
-그저께 자오씨네 개가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았는데 그놈도 함께 모의하기로 벌써부터 약속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7)
-“옛날부터 그래 왔다고 해서 옳은 거요?”
“댁과 그런 도리를 따지고 싶지 않아요. 어떻든 그런 말은 하면 안 돼요. 댁이 말하는 것은 잘못된 거예요.” (29)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 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 (113, ‘고향’ 중)
-아큐는 형식상으로는 패배했다. 놈들에게 노란 변발을 낚아채여, 벽에 머리를 네댓 번이나 찧었다. 건달들은 그렇게 하고 나서야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가는 것이었다. 아큐는 잠시 동안 우두커니 서서 ’내가 자식놈에게 얻어맞은 걸로 치지. 요즘 세상은 정말 돼먹지 않았어…‘하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는 그도 만족해서 의기양양해 가는 것이었다.(123, ’아큐정전‘ 중. 나는 어찌하여 저 승리법 대신 반대로 스스로를 스스로에게 패배시키는 것만 익혔나 모르겠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그럼 진 것도 나야…”)
-그러나 10초도 지나지 않아 아큐도 역시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돌아갔다. 그는 그야말로 스스로를 경멸하고 스스로를 낮추기로는 으뜸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경멸하고 스스로를 낮춘다‘는 말을 빼버리면 남는 것은 ’으뜸‘이라는 것뿐이다. 장원급제도 ’으뜸‘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네까짓 것들이 다 뭐냐?”
아큐는 이처럼 갖가지 묘수로 원수들을 굴복시킨 다음 유쾌하게 술집으로 달려가서 술을 몇 잔 마셨다. (123-123, 루쉰 선생님, 이렇게 사고 과정을 몇 바퀴 돌려 완전 러키비키잖앙- 하는 아큐가 왜 조리돌림의 아이콘이 되게 하였습니까… 시대를 앞서간 럭키비치잖아)
-어느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큰 느티나무 아래에 비둘기의 털이 가득 흩어져 있었다. 매의 밥이 된 게 분명했다. 그러나 오전 중에 사환이 와서 청소를 해 버리고 나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곳에서 하나의 생명이 끊어졌으리라는 것을 누가 알 것인가? 또 한 번은 서사패루를 지나다가 강아지 한 마리가 마차에 치여 죽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돌아올 때는 벌써 치워 버렸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걷고 있었으니, 그곳에서 한 생명이 끊어졌다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가령 조물주에게 비난할 만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그가 너무 멋대로 생명을 만들고 또 너무나 멋대로 짓밟아 버리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조물주는 너무나 무책임하다. 비록 그의 도움을 받았을지 모르나, 나는 그에게 반항하지 않을 수 없다...
(208-210, ‘토끼와 고양이‘ 중. 비슷한 생각을 투신 사망 사고 일어난 펜스가 우그러진 아파트 단지의 한모퉁이를 보면서 했었다. 보도 위 죽은 비둘기를 까마귀가 열심히 먹어치워 털만 남는 걸 보며, 까마귀나 파리나 미생물이 없다면 우리는 죽음의 흔적에 뒤덮여 살았겠구만, 했다.)
-그녀의 운명은 이미 내가 준 진실로 결정되었다.-사랑 없는 인간은 사멸하고 만다. (417, ‘죽음을 슬퍼하며’ 중)
-술이 세 순배 돌아가자 높은 관리들은 물나라의 연도에서 보았던 풍경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갈대꽃은 눈과 같이 희고, 진흙물은 황금 같으며, 뱀장어는 기름이 올랐으며, 청태는 매끄럽다는...등등의 말을 했다. 술기가 조금 오르자 여러 사람들은 비로소 채집하여 온 백성들의 음식을 꺼내놓았는데 모두가 정교한 나무상자에 담겨 있었으며 뚜껑에는 글자가 쓰여 있는데, 어떤 것은 복희의 팔괘체로 되어 있고, 어떤 것은 창힐의 귀곡체로 되어 있었다. 여러 사람들은 먼저 이 글씨들을 감상하다가 입씨름이 벌어졌다. 거리 때리고 싸울 정도로 논쟁을 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국태민안’이라고 쓴 것을 일등으로 꼽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문자가 질박하고 알아보기 어려우며 상고의 순수한 기풍이 있을 뿐만 아니라, 글의 뜻도 체통이 있어 사관에 보내도 될 만하다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중국 특유의 예술에 대한 품평이 끝나자, 어떻든 문화 문제는 일단락 지어진 셈이었다. (509, ‘치수’ 중. 이 정도 돌려까기만 알아 먹겠고 고사신편의 수많은 전설 같은 신화 같은 우화 같은 풍자는 도무지 못 알아 먹겠고 재미도 없었다. 친구는 루쉰 소설이 시대별로 그 나름대로 목적성을 띄고 쓴 거라 그 시절의 산문이나 그의 일기랑 함께 봐야 이해가 좀 된다더라, 했지만 나는 문학이 그런 도구로 쓰였다면 굳이, 굳이, 해설서 놓고 봐야만 뭘 알만한 글이라면 사양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루쉰 소설이 궁금한 사람들은 차라리 전집 말고 선집을 읽도록 해요...범우사르비아문고의 아큐정전 같은 거...그건 재밌는 거만 골라 놓은 편이라우)
-“초나라 땅은,” 하고 묵자가 말했다.
“사방이 5천 리나 되나, 송나라는 겨우 사방이 500리밖에 안 됩니다. 이것은 바로 덮개 있는 수레와 낡은 수레의 비유와 같은 것입니다. 초나라에는 운몽이라는 큰 소택이 있어 코뿔소와 암외뿔소, 고라니, 사슴이 가득하고, 양자강과 한수에는 다른 곳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고기나 자라, 악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송나라에는 이른바 꿩이나 토끼, 붕어조차도 없습니다. 이것은 쌀, 고기와 쌀겨밥의 비유와 같은 것입니다. 초나라에는 소나무, 가래나무, 녹나무, 예장 등의 큰 나무들이 있으나, 송나라에는 큰 나무라고는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수놓은 비단옷과 짧은 모직 잠방이의 비유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신이 보기에 왕의 관리들이 송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소!”
초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612, ’전쟁 반대‘ 중. 러시아 나쁜 놈들아…)
-장자: (…) 아이구! 해골이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채찍으로 잡초 사이를 헤치고 두드리며 말한다.)
너는 삶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억지를 부리다가 이런 꼴이 된 거냐? (톡톡) 아니면 근거지를 잃고 칼에 맞아 이 꼴이 된 거냐? (톡톡) 아니면 엉망진창의 생활을 하다가 부모 처자에게 미안해서 이 꼴이 된 거냐?(톡톡) 그대는 자살이 약자의 행위란 것을 모르는가? (톡톡) 아니면 먹을 밥, 입을 옷이 없어서 이 꼴이 된 거냐? (톡톡) 아니면 나이를 먹어 죽을 떄가 되어 이렇게 된 거냐? (톡톡) 아니면...아, 이건 도리어 내가 바보짓을 하는군. 마치 연극을 하는 것 같군. 어디 대답이나 할 수 있겠다고. (620, ‘죽은 자 살리기’ 중. 누가 내 뚝배기 톡톡 치면서 물어도 답 못하고 빡쳐도 들이 받지 못할 테니 쉽게 죽지는 말아야겠다. 그리고 아무리 열거해도 죽음의 이유는 너무 다양해서 어디에 다 담지도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