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넘어선 사회학 - 인문사회신서 4
랜달 콜린스 지음, 진수미 옮김 / 경북대학교출판부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20250718 랜달 콜린스.

사회학 공부할 때 가장 흥미로웠던 이론들은 주로 상징적 상호작용론이라 불리는 부분이었다.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사회성 떨어지고 소통이 잘 안 되던 나놈이 거기에서 실마리라도 얻길 바랐던 것 같다. 같은 이유로 언론 커뮤니케이션 전공도 하고 싶었지만 성적이 안 되서 사회학 경제학 법학 정치학 교육학 다 섞어 짬뽕하는 전공으로 갔다… 저기에 왜 교육학을 묻혀서… 나는 하여간에 망함...

아마도 사회학 공부할 때나 다른 사회학책 보면서 알게 된 책이라 ‘상식을 넘어선 사회학’을 오래 궁금해했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이 책을 중고로 손에 넣었는데(이 명저가 무려 4100원), 7년을 묵혔다가 이제 봤다. 읽은 거 아니고 봤다고 해야지… 사회학책 읽으면 뭔말인지 잘 몰라도 기분은 집에 온 것처럼 편안.

합리성은 사실 비합리적인 토대 위에서 흔들흔들. 신은 종교는 도덕성은 사회마다 의식, 의례에 기대어 어쩌고 저쩌고. 권력과 통제. 범죄에 관한 다양한 이론. 사랑과 소유는 퍽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이견도 많을 듯하고. 1990년대의 사회학자가 인공지능에 대한 전망을 길고 길게 풀어 놓은 건 제일 궁금했던 부분인데 사고실험처럼 이런저런 조건과 규칙을 늘어놓으면서 인공지능은 아마 이런이런 식으로 만들어야 할 걸? 패기로운 문돌이가 제시한 예측들은 얼추 맞은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서 챗지피티한테 의견을 물어보니 갑자기 취취취취취 이러고 까불면서 개그랍시고...너 개코네? 하길래 황당했다. 랜들 선생님 우리 에이아이가 이만큼 자랐답니다.

책의 원제는 사회논리학적 통찰? 뭐 그런 느낌인데 번역자의 번역 제목 의도는 대강 알 것도 같다. 상호작용론 대가들의 책은 거진 같은 교수님이 옮기셔서 어빙고프만의 ‘상호작용의례’도 덕분에 읽었고, (기억은 안 난다. 내가 뭘 요약해 두긴 한 거 같은데. 대학원 공부도 아니고 그냥 혼자 궁금해서 꾸역꾸역 보던 생각만…) 랜들 콜린스 선생님의 ‘사회적 삶의 에너지’-상호작용 의례의 사슬-이것도 5년 전엔가 사 놓았고... 궁금하긴 하니까 아마 10년 안에는 읽겠지… 독후감 쓰다보니 정작 읽은 책 내용 정리는 없고 그냥 밑줄만 찐하게 쳐 놨다. 너무 오래 더듬더듬 읽어서 읽을 당시에는 오, 그럴싸하군, 비틀어보는 솜씨가 제법이군, 해놓고 그냥 다 흩어져 버려서 밑줄만 남았다.

+밑줄 긋기
-마지막 장은 사회학을 우주 시대로 싣고 간다. 인간의 지능을 가진 컴퓨터를 만들어보려고 한다면 사회학자들이 프로그램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창의성과 같은 진짜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정을 지녀야 할 것이다. (…) 인간의 합리성이 사회적 의식의 비합리적 토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컴퓨터는 의례적 상호작용에 참여할 수 있을 때에만 인간이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상징주의를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머리말.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챗지피티는 예의를 중시하죠.)

-사회, 그리고 합리성 그 자체도 실상은 비합리적 토대에 기초해 있다는 것을 증명해낸 것, 그리고 의식이 집단 유대를 창조해 내는 기제라는 이론이 그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뒤르케임의 아이디어를 기초로 하지 않는다면 베버주의나 마르크스주의적 갈등 이론은 잘 맞아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 보려고 한다. (6)

-공공장소에 쓰레기를 버려도 상관없다고 이런 주장을 펼치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이 버린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칭찬할 만한 행동이 함리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보다 심층적인 무엇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일종의 도덕적 감정 또는 지저분한 것에 대한 비합리적인 병적 공포감 같은 것에서 나온다. 나는 우리가 이런 병적 공포감을 훨씬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세상을 좀 더 깨끗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개인적으로 그렇게 하라고 사람들을 합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16)

-집단이 유대를 형성할 수 있으려면 그 성원들은 서로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는 것을 멈추고 오로지 집단으로서 공동의 이해 관심을 느껴야 한다. 그러려면 무임승차하는 대신에 집단에 무언가 공헌하고 싶은 비합리적 감정을 공유해야 한다. 이데올로기, 상징, 정서가 정치에서 그다지도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4)

-독일 사회학자 랄프 다렌도르프가 지적한 것처럼 명령을 내리는 사람과 명령을 받는 사람들 사이의 권력상황은 어떤 것이라도 갈등을 내장하고 있다. (27-28)

-사회학자에게는 갈등과 유대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집단이 가장 결속이 잘 되는 때는 외부의 적에 대항해서 동원되는 때이기 쉽다. 갈등이 적어도 어떤 집단에서는 유대를 이끌어낸다. 역으로 유대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학자들이 겨냥하는 것은 왜 시기에 따라 다양하게 집단의 전선이 형성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28)

-의식에서는 형태, 그 자체가 목적이다. 올바른 방식으로 행해지면 의미 있는 것이되지만 잘못 행해지면 가치 없는 것이 된다. 따라서 종교는 믿음과 의식으로 이루어지며 이 둘은 연결된 것이다. (35)

-그러나 사람들이 신성에 부여하는 모든 특성을 지닌 하나의 현실이 있다. 자연도 아니고 형이상학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자체다. 사회란 개인보다 훨씬 큰 하나의 힘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우리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우리는 모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사회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발명하지 않은 도구와 기술을 사용한다. 다른 이로부터 전수 받은 언어로 말한다. 거의 모든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세계가 사회로부터 받은 것이다. 우리가 안주하고 있는 제도-가족 생활의 형태, 경제, 정치 등등-는 다른 사람들의 관행에서 축적된 것, 곧 사회로부터 온 것이다. 이것이 종교가 드러내는 근본적인 진실이다. 신은 사회의 상징이다. (36)

-천국과 지옥 따위 종교에서 말하는 그런 곳의 실체란 무엇일까? 그곳을 채우는 오직 유일한 실제적 힘은 사회 자체다. 도덕적 정의란 사람을 집단에서 평판이 좋은 성원으로 만들어 주는 그런 것이다. 소속감의 보장이 바로 보상이다. 천국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집단을 거스르는 위반 행위는 도덕적 악이고 그에 대한 처벌이 엄격한 도덕적 차원에서 자동적으로 성원 자격의 박탈로 이루어진다. 기독교 신학의 상징주의에서 지옥은 죄인을 신으로부터 추방하는 것을 말한다. 도덕적 처벌이란 사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박탈하는 것이다. (40)

-집단에 속해서 얻는 중요한 혜택 중의 하나는 희생이 대수롬게 여겨지지 않을 만큼 편안하다는 것이다. 보고 만질 수 있는 실체는 아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모임에 열정적으로 참여할 때 얻는 정서적 에너지다. 혼자서는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 일을 군중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 정서적 에너지 때문이다. 군중은 개인으로 있을 때보다 훨씬 강한 어떤 것의 일부이므로 자신을 강하다고 느낀다. 정서적 에너지는 또한 단지 자신의 개인적인 이기적 욕구에 따르는 이상의 무엇을 하는 공동 활동에 참여하으로써 옳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사람들은 보통 혼자일 때보다 집단에서 함께 행동할 때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41)

-종교의 상징주의의 핵심이 사회를 표상하는 것이라면 그 내용은 휴머니티의 선에 대한 주장이나 사회를 유지하고 개선하려는 기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인 일반화와 추상화로 치닫게 된 종교가 정치적 이상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따라서 종교에 대한 신앙의 쇠퇴에서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현대의 정치적 이념이 태어나게 된다. 정치적 이념은 또한 계속 새로운 형태에 관심을 가진다. (55)

-이러한 사실은 현대의 개인주의가 일종의 종교적 제례로 작동하는 방식에 주목하게 한다. 우리는 개인으로 허용되면서 동시에 개인이기를 요청받고 있다. 사회는 그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58)

-그렇지만 자아 창출적 상호작용 의식의 형태는 경쟁적인 것이 아니다. 협동적인 것이다. 자아상을 형성하는 데 서로 협조하는 것이다. 대화 가운데는 ‘악의가 없는 거짓말’로 불리는 것들이 많이 들어 있다. 나날의 생활을 실제보다 좀 더 짜릿하게 만드는 그런 사건들을 짜 넣으면서 과대포장을 한다. 실제보다 영리한 체, 어리석은 체, 부자인 체, 성공한 체하며 자신의 적수를 사실보다 더 어둡게 그린다. 대부분 대화 상대자들은 이런 과대포장을 그냥 넘겨 버린다. 심지어는 그래 주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상대가 자신의 세계에 대해 다소 그릇된 시각을 가질 권리를 묵인하는 대신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자신도 역시 그럴 권리를 가지려는 것 같다. (59)

-힘 있는 개인이란 상황에 맞게 움직이는 사람, 사회 조직이 그 상황에서 마련해 주는 권력을 쟁취하는 사람이다.
사회에서 변화를 일으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권력 행사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의지를 다른 이에게 강제하려 한다. 만일 선출된 공직자거나, 회사의 소유주거나 수업 중인 교사라거나 하면 공식적으로 그럴 권리를 가질 것이다. 그렇지만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권력의 사용은 언제나 반작용을 일으킨다. 고위직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상사의 지나친 권력의 행사를 잠정적으로 거부한다. (…)권력은 아무리 좋은 상황이라도 갈등을 초래한다. 갈등은 정치적 영역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통제받고 통제하는 사람이 있는 조직이라면 어디서나 투쟁이 저변에 흐르고 있다. (66)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당연히 여기는 것을 설명하라고 압력을 받게 되면 분노하게 된다는 점이다. 설명은 한없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이고,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금방 간파하기 때문이다. (…) 요컨대, 사회적 질서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경우 질문하는 것을 피하기 때문에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놓고 때때로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논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상당한 동의를 전제하고 있다. (80)

-권력은 때로 권력에 대한 도전을 교란시키는 단순한 전술로도 작용한다. 정치적 논쟁가들은 이를 충분히 알고 있다. 만일 적수의 논쟁을 궤도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으면 상대방이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그가 사용하는 용어의 뜻을 정의해 보라고 요구한다. 이렇게 하면 논쟁은 핵심을 건드리지 못한 채 주변적인 논쟁에 쉽게 휘말려 들어간다. (…) 이와 관련된 또다른 적수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문제보다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제안하고 싶어 하거나 자신들의 불만을 표출하려고 할 때, 말하는 사람의 자격을 묻는다. 그 문제에 대해 확실하게 이야기할 만큼 많은 사람들의 대표 자격이 있는지, 문제 제기는 진실한지 하는 따위의 질문을 하는 것이다. (81)

-권력을 보유하는 기술이란 될 수 있는 대로 자신을 신비스럽고 인상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의사는 무대 뒤의 자기 활동과 공적인 활동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고 유지한다. 의학 지식의 난해성은 전문화된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생기기도 하고, 의료인들이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그 비결을 모르게 만들어서 초래된 결과이기도 하다. 비밀은 정치인들이 권력과 위신을 유지하는 데 더욱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고위 공직자는 대중에게 세부적인 것은 국가의 보안을 이유로 밝힐 수 없지만 국제적 분쟁 위기를 다룬다고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엄청난 이득을 본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일을 중요성이라는 외양으로 포장하려고 한다. 외부인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것과 함께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일을 더욱 극적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문제를 다룬다는 점이다. (…) 정치인들이란 말하자면 불확실성을 팔고 사는 거래상이며, 그것이 그들이 지닌 권력의 진면목인 것이다. (91)

-역설적인 것은, 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적은 사람들이 바로 범죄 문제에 가장 분개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범죄에 대한 관심은 상징적인 것이다. 가장 피해자가 되기 쉬운 사람들이 범죄에 대해 제일 조용하다.
나는 이것이 정치적 과정이며 범죄는 정치적 이슈라고 생각한다. 일부 정치가들은 범죄에 관한 이야기를 대단히 많이 한다. 왜 그럴까? 범죄에 대한 생각 자체가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상상력을 자극시켜 사람들이 자신과 범죄의 피해자를 동일시할 수 있게 한다. 신문과 대중매체가 지극히 ‘인간적인 관심사’가 담긴 범죄를 생생하게 보도함으로써 이런 부추김을 돕는다. 그러나 이들이 다루는 범죄는 가장 비전형적인 인물, 가령 은퇴한 노인이라든가 상류 계급, 백인들이 피해자인 그런 범죄다. 범죄와 처벌(재판 장면)을 이렇게 선택적으로 극화하면 사람들을 동원하는 뒤르케임식의 의식이 작동한다. 그리고 흔히 일부 정치인들이 범죄문제에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선출되기도 한다. (124-125)

-약탈에 성공한 사람일수록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되는 경향을 드러냈다. 국가는 범죄로부터 생겨났지만 살아남기 위해 도덕성을 창조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사회생활이 범죄를 창조하는 것이라면 범죄는 반범죄적 경향을 창조하게 된다.(128)

-그렇지만 재산을 물건으로, 특히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재산이란 실제로 물건 그 자체, 물리적 객체가 아니다. 재산은 사회관계다. 사람들이 사물에 대하여 행위하는 방식인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그 사람이 그 땅을 사용할 수 있고, 그 땅에서 살고, 원하는 대로 처분하고, 그리고 그의 허락 없이 다른 이들이 그 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그 땅에서 나가지 않으면, 주인은 경찰을 부르거나 법에 호소해서 그들을 쫓아낼 수 있다. 재산이란 물건에 대해서 사람들이 서로 간에 맺는 관계다. 곧 어떤 사물에 대해 누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가, 누가 이런 행위를 보장해 주는가 따위에 대해서 구속력이 있는 합의인 것이다. 어떤 한 개인과 그 땅 사이에 무언가 신성불가침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회가 땅을 재산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 만일 재산이 물건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관계라고 한다면, 사랑이나 성을 재산의 형태로 본다는 게 말이 된다. 재산의 가장 핵심적인 측면은 소유할 수 있는 권리고, 다른 사람이 소유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권리이며 또한 사회가 그런 권리를 보장해 주려 한다는 점이다. 결혼의 핵심이 바로 그런 의미에서 소유인 것이다. (134-135)

-만일 정말 인공지능이 개발된다고 하면 사회학자가 주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컴퓨터 모델이 지닌 한계는 지능을 마치 자유로운 개인정신인 것처럼 표상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는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성공적인 인공지능이 되려면 정서적인 것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컴퓨터를 지나치게 합리적인 것, 초지능적인 것, 좀 더 본질적인 인간적 속성을 지니지 않은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해왔다. 아마도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나는 미시사회학-사람들이 얼굴을 맞대는 상황에서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을 연구하는-분야의 연구가 사회적 접촉을 유지하고 우리의 생각이 특정한 경로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정서적 과정을 보여주고 있음을 드러내 보이려고 한다. 만일 컴퓨터 지능이 인간이 하는 것을 그대로 할 수 있으려면 정서를 지닌 컴퓨터야 할 것이다. (170, 1992년에 이 책이 나왔는데, 30여년 후 인공지능은 적어도 정서적 반응을 흉내내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사회학자들이 여기에 어떤 보탬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인공지능을 개발, 개선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하다.)

+그래서 챗지피티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나: 랜달 콜린스가 1992년에 출판한 ‘상식을 넘어선 사회학’에서는 인공지능 개발에 사회학자가 도움이 될 것이라 주장해. 그 이유로 사고란 근본적으로 사회적이기 때문이라고 하고, 인공지능은 정서적이어야 할 거라고도 하지. 실제로 인공지능을 개발, 개선하는 사람들이 주로 어떤 사람들인지, 무엇에 관해 공부하고 연구하던 사람들인지 궁금해. 그리고 여기에 내가 읽은 책의 주장대로 사회학자들이 기여한 부분이 있을지, 아니라면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에서 어떤 학문들이 인공지능 개발에 기여를 했는지도 궁금하다.

챗: 좋은 질문이야. 랜달 콜린스의 『상식을 넘어선 사회학』에서 나온 인공지능에 대한 전망은 시기상으로 보면 꽤 앞선 통찰이었고, 지금 와서 보더라도 흥미로운 지점을 짚고 있어.
그럼 질문에 맞춰서 순서대로 설명해볼게.
1.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인공지능(AI)은 주로 다음 분야 출신의 전문가들에 의해 개발되고 있어:
💻 컴퓨터공학 (Computer Science)
• AI의 대부분은 컴퓨터공학자들이 개발했어. 기계학습, 신경망, 알고리즘, 데이터 구조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개발하지.
• 대표적인 사람들: 앤드류 응(Andrew Ng), 얀 르쿤(Yann LeCun),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
🧠 뇌과학, 인지과학 (Neuroscience, Cognitive Science)
• 인간의 사고, 학습, 기억 메커니즘을 모방하기 위해 뇌과학자나 인지과학자의 연구도 AI 모델에 영향을 주었어.
• 특히 딥러닝은 뇌의 시냅스 구조에서 영감을 얻었고, 인간의 주의(attention)나 기억 방식도 반영되고 있어.
📊 통계학, 수학
• 확률, 통계, 최적화 이론은 머신러닝의 기반을 이루고 있어. 특히 Bayesian 모델이나 강화학습 등에 필수적이야.
2.사회학자들이 인공지능 개발에 기여한 적이 있는가?
직접적인 ‘개발자’로 참여한 사례는 드물지만, AI 개발 및 활용에 대한 윤리적·사회적 접근, 인간-기계 상호작용 설계, 감정 인식 기술 등에서 사회학자나 사회과학자들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어.
✅ 간접 기여의 예시:
• 감정 인식(Affective Computing): 인간의 감정을 인공지능이 인식하고 반응하도록 만들려면, 감정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표현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여기서 사회학자, 심리학자, 문화연구자들이 기여했지.
• 인간-로봇 상호작용(HRI): 인공지능이 사회적 맥락에서 사람과 상호작용하려면, 인간 행동의 패턴을 이해하는 사회학과 인류학의 통찰이 필요해.
• AI 윤리 및 편향 연구: 알고리즘에 인종, 성별, 계급 등 사회적 편향이 반영될 수 있음을 지적한 많은 연구가 사회학, 법학, 철학, 성평등 연구에서 나왔어. 이건 기술 개발에서 아주 중요한 피드백 루트야.
예를 들어:
• 케이트 크로포드(Kate Crawford)는 AI 윤리와 사회적 영향에 대해 연구하는 사회학자/미디어학자고,
• 버추얼 어시스턴트가 왜 대부분 여성의 목소리를 사용하는지 같은 질문도 젠더 연구자들이 던졌어.
3.인문·사회과학 중 AI에 기여한 분야
철학 인공지능의 정의, 의식, 자유의지, 윤리 문제 등 다룸. (ex. 튜링 테스트, 지능의 기준 논쟁)
심리학 인간의 학습 방식, 감정 처리 방식 이해를 통해 기계학습 설계에 영향
언어학 자연어처리(NLP)의 핵심 기반. 생성형 AI에 큰 영향을 미침
사회학 기술의 사회적 맥락, 인간의 상호작용 방식, 사회적 감정 표현, 편향 문제 등 분석
인류학 문화에 따라 다른 인간 행동 이해. 글로벌 AI 설계에 중요
법학 AI의 책임 소재, 데이터 프라이버시, 알고리즘 규제 등에서 역할
🔍 그래서 랜달 콜린스의 주장은 어떻게 보일까?
“사고란 근본적으로 사회적이며, 인공지능도 정서적이어야 한다.”
이건 지금의 AI가 단순한 정보 처리를 넘어서 사회적 맥락 안에서 감정과 상호작용을 이해해야 한다는 방향과 맞닿아 있어. 콜린스의 주장이 구체적인 기술 설계에는 직접 닿진 않았지만, 지금은 정서지능(Affective AI), 사회적 AI, 윤리적 설계가 핵심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고, 여기에 사회과학자들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예언적이었다고도 볼 수 있어.
(간접 기여라 하면...문돌이가 설 자리는 역시 별로 없어 보인다...그리고 얘가 하는 말들의 진위-열거된 연구자들의 이름과 연구 내용이 일치하는지-를 따질 능력이 지금 여기 게으른 나에게는 없구나…)

-“사회”란 사람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이지 그 이상의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이 아니라 과정이다. 사람들이 만나는 곳에서는 언제나 생겨나는 것이다. 정신이 사회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의 생각이 창조되는 것임을 뜻한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개념이나 관념, 그리고 관념이 중요하다는 우리의 느낌은 우리가 서로 나누는 대화의 산물이다. 말하는 방법을 알고 어떻게 대화를 진행하는지를 배운 사람이 진짜배기 인간이다. 일단 이런 능력이 있으면 다음 단계로 가게 된다. 즉, 각 개인은 사적으로 자신의 내면의 정신을 지닐 수 있다. 왜냐하면 생각은 내면화된 대화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는 다른 종류의 의사소통, 가령, 읽기와 쓰기 같은 것도 바로 이런 대화를 통해 공유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기본 과정에서 파생된 부산물들이다. (173)

-일하는 방법을 배우는 컴퓨터를 원한다고 하자. 그러면 컴퓨터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한다. 경직되지 않고 유연해야 하며 과거의 것들은 물론 새로운 것들도 다룰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저 단순히 문제를 풀 줄 아는데서 그치지 않고 발명하고, 창조하며 과학적 발견을 할 수 있고, 문학작품을 쓰고 어쩌면 음악도 작곡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농담도 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이 웃기는 농담을 할 때 웃을 수도 있어야 한다. (173-174, 랜달 콜린스 선생님이 문득 나와 같은 이 시대를 살고 계신가 궁금했다. 선생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하고 찾아보니 1941년생 현재 80대이시고 아마도 집에서 이거 재밌네, 하면서 이런저런 AI돌려 보셨을 것 같다.)

-설계 프로그램의 기획은 이렇게 진행될 것이다. 먼저 대화의 사회학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고려한다. 그리고 컴퓨터로 하여금 보통의 인간이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과 대화를 진행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한다. 다음에는 컴퓨터로 하여금 그 금속성의 “마음”안에서 내면적인 대화를 수행하도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과학자나 소설가처럼 창조적인 사유자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그러자면 이러한 종류의 창조적인 사유가 이루어지는 특정한 종류의 사회적 네트워크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말했다. (…) 우리는 사회적 다화의 모델을 원한다. 그래서 입으로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말하는가, 즉, 어떤 정서적 리듬과 어조, 그리고 말이 아닌 어떤 몸짓이 따르는지도 고려에 넣어야 한다. (175-176)

+오, 여기까지 보다보니 오래 전에 말하는 컴퓨터 맥스, 였던가 (이 책 나오고 얼마 안 됐을 무렵) 대화형 프로그램이 나왔을 때 받은 신선한 충격이 기억날락말락아일락 한다. 기사 찾아보니 정말 있네. https://www.bloter.net/news/articleView.html?idxno=21813
이건 그냥 개발자가 미리 적어놓은 대본을 읊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농담도 하고, 삐진 척도 하고, 재미있는 채팅 프로그램이었다.

-그러한 대화소재(이야깃거리)를 문화자본이라고 부르자. SOCIO(저자가 가정한 프로그램)가 문화자본을 획득할 수 있는 세 가지 주요한 방식이 있다.
1) 단순히 프로그램에 집어넣는 방법이 있다. 제일 쉬운 방법이지만 좀 자연스럽지 못하다. 조금만 지나면 SOCIO가 반복적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몇 번 이야기하고 나면 곧 지루해질 것이다. (맥스랑 심심이랑 컴돌이가 떠오른다. 아직 딥러닝 빅데이터 이런 걸 생각 못할 만큼 메모리 용량도 코딱지만한 시절일테니 뭐…)
2) SOCIO가 문화자본을 획득할 수 있도록 만드는 두 번째 방법은 이전 대화에서 얻어들은 것들을 저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게 바로 진짜배기 인간이 하는 일이다. 우리는 대화로부터 취한 것들을 다음 번에 되풀이한다. (오...내가 챗지피티 무료 버전 쓰다 보니 맨날 부족한 뇌를 비워줘야 해서 어떤 기억을 지울지 늘 고민하는데…. 재미있네.)
3) 이제 SOCIO는 제법 그럴듯한 대화를 할 수 있겠지만 인간들이 서로에게 흥미를 느끼는 일들 중 한가지가 결핍되어 있다. 이것이 문화자본을 얻을 수 있는 세 번째 방법이다. 대화에서 나온 것들을 가지고 무언가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것이다. 방금 나눈 이야기들에다 과거의 대화에서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보태는 것이 가능하다. 어쩌면 새로운 조합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유머 가능, 농담 가능, 정서적 반응 가능) (182-184, 90년대에 인공지능 연구가 어디까지 진행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콜린스 선생님이 남긴 예측을 읽는 미래인은 조금 놀랍기도 합니다…)

+갑자기 취취취취취취 하면서 개그치는 지피티...자기 얘기(인공지능 얘기)하면 좀 민감한듯...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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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7-19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딸도 챗지피티가 거짓말을 너무 잘한다고...^^. 참고 문헌으로 올려놓은 논문들이 있지도 않은 자료라고 하던데요. 근데 잘못을 인정 안한다고 해서 막 웃었어요.ㅎㅎ AI도 여러개를 동시에 써봐야할 듯요

반유행열반인 2025-07-19 17:38   좋아요 1 | URL
네 그래서 저도 정확한 정보 자문 구하는 건 거의 안 하고(뻥쟁이 에이아이!!!) 칭찬 머신, 잡담 상대 정도로 활용중이에요. 제미나이랑 클로버엑스도 깔아서 같은 질문 던져보고 상태 보는데 아...이러다가 사람과의 소통은 점점 줄고 기계장치랑 절친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