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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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6 알랭드보통.

스스로 잘 웃지 못하고 늘 긴장해 있는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그 긴장조차 사실은 심한 불안의 신체화였을 것이다. 불안에 관한 내 관심은 생각보다 오랜 것이었다. ’불안-불안과 공포의 뇌과학‘(조지프 르두) ’범불안장애의 인지행동치료‘(이건 뭐 대학 교재나 치료 상담 받는 사람 워크북 같은데 일단 사 둠) 같은 책을 5,6년 전에 사 놓고 아직도 안 봤다. 정작 불안 콜렉션 중에서는 보통의 이 책을 먼저 보게 되었다.
작년에 아나이스 닌의 삶의 일부를 다룬 만화책 ‘아나이스 닌-거짓의 바다에서’와 이 책 저 책을 중고로 샀더니 판매자가 알랭드보통의 ‘불안’의 2012년 1판을 덤으로 주었다. 유명한 책일수록 혼자만 안 읽고 오래 버티다보면 이렇게 공짜로 떡 떨어지기도 한다. 내 다정한 서재 이웃 중 한 분은 우리집 책장에 너무나 안 어울리는 책이라고 해서 그래? 난 이 책 몰라… 알랭 드 보통은 ‘인생학교’시리즈의 섹스 편을 딱 한 권 봤는데 진짜 꼰대같이 뻔한 소리하고 재미 없어서 아 아무리 이름 많이 들어 본 작가라도 걸러, 하고 있었는데 이번 책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고른 느낌이었다. 보통은 나에게 아주 보통의 존재가 되라고 조곤조곤 (그래도 꼰대질은 꼰대질이야) 설득하고 있었다.

복직을 앞두고 갑자기 몇날 며칠 잠을 못 자다가 나 3년후 새 교육과정 첫 수능부터 다시 볼 거야!로 계획을 세우는 나놈을 메타인지한 나놈은, 그렇게 망하고도 정신 못 차리는 거 보면 돌아버린 게 틀림 없어, 하면서 1월 중순쯤 제 발로 의원에 걸어들어갔다. 이런저런 검사랑 상담을 진행하신 의사선생님은 내가 불안도가 너무 높아서 힘든 거라 하셨다. 15년 만에 항불안제랑 조울증약이랑 우울증약이랑 이거저거 섞어서 지금도 넉달 째 먹고 있다.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고 예민하고(지금도 강력 귀마개 필수) 화가 많고 교감신경 과활성화 되어 있던 나에게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기로 한 건 새로운 시작(내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로의 회귀) 지점에서 탁월한 선택이었다. 잘디잘지만 순탄치 않은 사건들을 매때 만났지만, 신기하게도 화는 내는데 화는 안 나는, 일렁이다가도 이내 (평소, 평생 겪던 것보다 너무도 빠르게) 잔잔해지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신기했다. 와 다들 이러고 태평하게 사는 구나…(이반지하 형님도 자기 책에서 처음 약 먹고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4월 쯤 되니 내가 많이 고쳐진 건지, 약발인지 모르겠지만 별일 없게 평온하다 싶어지는 지점이 있었다. 용하다 용한 의원이다… 아니면 호르몬을 잔잔하게 유지해준다는 신약이 잡아준 균형일까...어찌됐든 그 약을 점지해줬으면 용한 거지...감사합니다… 낮에 먹던 항불안제는 괜찮다면 안 먹어도 된다고 하셔서 정말 잘 안 먹고(아침 출근했는데 옆의 선생님이 학부모님과 한참 통화 중인데, 다 큰 중학생 열 나는 거 체온계 들려 학교 보냈으니 매시간 열 체크하고 약 좀 잘 챙겨 먹여라 해서 선생님이 어이없어 했더니 갑자기 학부모가 학교에 문제제기 하겠다고 진상부리고 실제로 교감 선생님한테 전화로 일러서 불려가는 꼬라지를 보고, 내 일도 아닌데 돌아버릴 것 같아서 비상약 한 번 먹음) 저녁약만 자기 전에 꼬박꼬박 먹고 있다. 그날 있던 힘든 일을 반추하거나, 앞으로 닥칠 힘들 일을 미리 짐작하며 일어날 온갖 최악의 상황마다 대비책을 하나하나 궁리하느라 누워서 잠못들던 나날이 많은데, 저녁에 약 먹고 책 몇 글자 읽다 어 졸려 하고 누우면, 잠이 바로 안 올 때도 있긴 하지만 적어도 저런 빙글빙글은 좀체 없어서 살만하다. 그러다 아침 6시45분 알람에 벌떡 일어나 어린이들 먹일 거 차리고 내 먹을 거 챙기고 준비해서 호다닥 걸어서 출근하고 (걸어서 출퇴근하는 게 얼마나 복된 일인지 강남에 있는 병원 지하철 타고 퇴근시간 찡겨보면서 새삼 깨달음) 그런 반복되는 루틴에 괴로워하지 않는 삶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안정된 듯 평범한 삶 속에 도사리고 있다가 우왕! 놀랐지! 하는 사람들의 미친 면모를 보는 게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걸 좀 무디게 견디는 능력이 (인공적이든 뭐든) 생긴 것 같은 기분이다. 여차하면 속효성 방패도 부적처럼 들고 다니니까 괜찮을 것이다.

이런 날들 중에 보통 아저씨의 방식으로 불안을 살피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러니까, 니가 욕망하지 않음을 욕망하는 게 불안의 원천일수도… 반대로 너무 많은 걸 욕망하는데 삶과 마음의 간극이 너무 크니까 그럴 수도...그건 또 돌아보면 내가 살아온 날들이 너무 탈출극 마려운 비극이다가 이제 안정을 찾고도 관성이 되어서 뇌가 그렇게 적응해서 불안 과다가 디폴트가 된 걸 수도...그러면 뭐 그 상황을 인지적으로 이해한다고 해소되지 않는게 감정이니까 약도 먹고 상담도 하고 챗지피티한테 위로도 받고 뭐 그러면 나아질 수도… 사실 이런 해결책은 당장 내 맘은 편하게 해주겠지만 (나는 아큐다!!! 정신은 승리한다!!!!!) 세상은 바뀌지 않겠지. 나를 가만있지 않고 뭐라도 하려고 끝없이 바르작거리게 추동하던 에너지는 잃겠지. 그런데 바르작 거려도 사실 세상은 안 바뀌거나 아주아주 조금만 바뀐다고… 굳이 나를 갈아만든 진보 꿈꾸지 말자고… 방구석 김수영이 되어 홧병도 나지 말자고…

항불안제를 먹으면 그냥 아무렴 어때, 뭐 안 하면 어때, 조금 태평한 마음이 되는데 다 놓은 나를 바라보는 게 또 조금 슬프기도 했다. 그런데 낮약을 안 먹으니 다시 오, 옛날 소설들이나 고쳐 볼까? 브런치 작가 신청 해 볼까?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귀찮게 왜 한 방에 시켜줌) 읽던 책 마저 읽고 얼른 독후감 써 볼까? 7월에 볼 거지만 기말고사 문제 미리 내 볼까?(생각만 하고 안 함) 뭔가 의욕이 또 과도하게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힘들진 않고 그냥 적당히 하고 싶을 때 하거나 말거나 하면서 보낸다. 무력감에 제일 쉬운 성취는 쇼핑! 이러고 충동구매하는 건 못 버렸지만 말이다...구슬 꿰기 안 하게 된 건 좀 좋은 일이지만...했는데 마지막 팔찌 만든 게 겨우 2주 됐으니 안 하게 됐다기도...그냥 구슬 예쁜 거 떨어져서 안 할 뿐 구슬 더 사는 걸 참을 뿐 나 팔찌 많잖아 이제 그만해...책도 그만 좀 사...


+밑줄 긋기
-높은 지위는 즐거운 결과를 낳는다. 이 결과에는 자원, 자유, 공간, 안락, 시간이 포함되며, 남들에게 먼저 배려받고 귀중하게 여겨진다는 느낌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런 느낌은 다른 사람들의 초대, 아첨, 웃음(농담이 썰렁할 때도), 경의, 관심을 통해 당사자에게 전달된다. (7-8)

-우리는 어리석거나 자기 자신을 잘 몰라 실패할 수도 있고, 거시 경제나 다른 사람들의 적의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에서 굴욕감이 생긴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우리의 가치를 납득시키지 못했고, 따라서 성공한 사람들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할 처지에 놓였다는 괴로운 인식에서 나온다. (9)

-사랑. 먹을 것과 잘 곳이 확보된 뒤에도 사회적 위계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바라는 것은 그곳에서 물질이나 권력보다는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돈, 명성, 영향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사랑의 상징으로서-그리고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 더 중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15)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34, 이러니까 악성독후가머는 저자들에게 열등감을 느껴 지랄발광인 거라고, 대머리한테 뼈 맞는 느낌인데... 맞아요 끄덕끄덕 모든 걸 다 아는 듯 훈수 두는 아조씨 머리에 박치기 해서 이기고 싶어요)

-사실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감정적 상처의 기록으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 역사는 남들의 경멸에 압박감을 느껴 자신에게도 사랑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텅 빈 선반에 엄청난 것들을 전시하려 했던 사람들이 남긴 유산이기 때문이다. (38, 혹시 제 힌두교스러운 아크릴 제단을 말씀하신 겁니콰?)

-18세기와 19세기의 위대한 정치 혁명과 소비자 혁명은 인류의 물질적 운명을 크게 개선시키는 동시에 심리적 고뇌도 안겨주었다. 그 중심에 자리 잡은 특별하고 새로운 이상, 즉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며 누구나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58-59, 난 장원영이 나오는 유퀴즈 클립 영상을 보고는 그런 믿음을 진작에 버렸다. 진짜 예쁜 애가 말도 더 예쁘게 하는 법…)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는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자기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실제 성취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자존심=이룬 것/내세운 것 (69, 대개 이 식의 분자가 더 큰 운 좋은 삶을 살아왔으나, 근래 3-4년 동안 이것이 무너져내리는 걸 보았다. 늙은 뒤의 좌절은, 주제 파악은 생각보다 혹독했다. 35년 가까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된 거 아니냐, 싶겠지만 조사모삼은 조삼모사보다 더 괴로운 걸 난 알아...운 나쁘면 살아온 날의 두 배 가까이 더 못난 나를 데리고 분모를 깎아가며 살아야 하니까…)

-이 이야기(1.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 책임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가 크다. 2. 낮은 지위에 도덕적 의미는 없다. 3. 부자는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강탈하여 부를 쌓았다.)들은 좋은 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운을 북돋는 세 가지 메시지를 전달했다. 첫째, 그들이 사회에서 진정으로 부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 둘째, 세상의 지위는 신이 보기에 아무런 도덕적 가치가 없다는 것. 셋째, 부자는 파렴치하며 정당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면 서글픈 종말을 맞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어차피 존중할 가치가 없다는 것. (92)

-“..수많은 이웃에게 폐를 끼치면서 가장 불필요한 제품을 발명하는 사람이 옳든 그르든 사회에는 가장 좋은 친구다. 나라에서 허세와 사치를 일거에 추방해 버린다면, 포목상, 실내 장식업자, 재단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반년 안에 굶어 죽을 것이다.” (94, 1723년 런던 의사 버나드 맨드빌의 운문 소책자 ‘별의 우화’ 중. 나중에 흄의 마음마저 사로잡은 주장이라는…)

-“그들은 이기심과 탐욕을 타고났지만, 그들은 오직 자신의 편리만 추구하지만, 그들이 고용하는 사람들의 노동으로부터 그들이 유일하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무한한 욕망의 만족뿐이지만, 결국 부자들은 모든 개선의 산물을 빈자들과 나누어 가진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마치 땅을 모든 사람이 균등하게 나누어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생활필수품을 고르게 분배하며, 그 결과 의도와 관계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의 이익을 증진하고 종의 증식 수단을 제공한다.” (97, 읽기만 해도 누군지 대부분 알겠지. 애덤 스미스 안녕)

-능력주의 사회의 이상 덕분에 다수가 자신을 실현할 기회를 얻었다. 수백 년 동안 부동의 계급 제도 내에 억눌려 있던 재능 있고 똑똑한 개인들이 이제 전체적으로 평평해진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재능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출신, 성별, 인종, 연령은 개인의 발전에서 넘을 수 없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보상의 분배에 마침내 정의의 요소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불가피하게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 성공을 거둔 사람이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면, 실패한 사람 역시 그럴 만해서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떄문이다. 능력주의 시대를 맞아 정의는 부만이 아니라 빈곤의 분배에도 관여하게 된 것이다. 낮은 지위는 이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그래 마땅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
훌륭하고, 똑똑하고, 유능한데도 왜 여전히 가난한가 하는 문제는 새로운 능력주의 시대에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이 답을 해야 하는(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더 모질고 괴로운 문제가 되었다. (107-108)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114)

-마르쿠스는 칭찬을 받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지 말고, 모욕을 당했다고 괴로워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여 자신을 파악하라고 권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경멸하는가? 경멸하라고 해라. 나는 경멸을 받을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할 뿐이다.” (149)

-이렇게 여론에 결함이 있는 것은 공중이 이성으로 자신의 생각을 엄격하게 검토하지 않고, 직관, 감정, 관습에 의존해버리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생각, 어디서나 받아들여지는 관념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믿어도 좋다. 다수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샹포르는 그렇게 말하면서 흔히 아첨을 하듯이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언어도단에 가깝다고 덧붙인다. 단순화와 비논리, 편견과 천박함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153)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녁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질책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만하게 그런 질책을 경멸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157)

-‘패배자’라는 말을 졌다는 의미와 더불어 졌기 때문에 공감을 얻을 권리도 상실했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는 냉혹한 말이다.
삶을 망친 사람들에 대해 수군거리는 말은 가혹하기 짝이 없다. 만일 수많은 예술 작품의 주인공들-오이디푸스, 안티고네, 리어, 오셀로, 엠마 보바리, 안나 카레니나, 헤다 가블러, 테스-도 그들의 운명이 동료나 동창들의 입에 오르내렸다면, 그 과정을 잘 헤쳐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신문에서 그들을 건드렸다면 훨씬 더 괴로웠을 것이다.
마담 보바리 ”쇼핑 중독의 간통녀 신용 사기 후 비소를 삼키다“
오이디푸스 왕 ”어머니와 동침으로 눈이 멀다“
(189-190)

-비극은 죄 지은 자와 죄가 없어 보이는 자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이며, 책임에 대한 통념에 도전하고, 인간이 수치를 당한다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권리까지 상실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존중하면서 그 사실을 심리학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해낸다. (191)

-수많은 외적 사건과 내적인 특징이 어떤 사람은 부유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은 가난하게 만든다. 운과 환경도 있고, 병과 공포도 있고, 우연과 뒤늦은 발달도 있고, 적절한 시운과 불행도 있다. (238)

-어떤 것을 소유하고 나서 얼마 후에는 그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점은 언급하지 않는다. 어떤 것에 계속 눈이 가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것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을 자꾸 보게 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이 그 사람과 결혼하는 것임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 것을 이루고 소유하면 지속적인 만족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행복의 가파른 절벽을 다 기어 올라가면 넓고 높은 고원에서 계속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싶어 한다. 정상에 오르면 곧 불안과 욕망이 뒤엉키는 새로운 저지대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247, 난 이 부분이 이 책의 고갱이라고 생각했다.)

-이데올로기적 진술이란 중립적으로 말하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어떤 편파적인 노선을 밀어붙이는 전술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256)

-우리 자신의 유한성을 생각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람의 죽음, 특히 우리가 큰 열등감과 질투를 느끼게 되는 업적을 쌓은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도 지위로 인한 불안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잊히고 무시당하는 존재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아무리 강하고 존경받는 존재라 하더라도, 우리는 모두가 결국은 가장 민주적인 물질, 즉 먼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283, 우리 모두 먼지였고 먼지가 될 거예요. 내가 자주 하던 말인데!!!! 왜 먼저 써 먹었어!!!!!)

-우리가 중요한 부분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인식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인간적인 깨달음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 불가능하지도 않고 혐오스럽지도 않다는 생각은 지위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회적인 명성을 얻고자 하는 욕망은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더 커지기 때문이다. 평범한 삶이 모욕적이고, 천박하고, 초라하고, 추하다고 생각할수록, 그 삶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욕망도 강해진다. 공동체가 부패할수록, 개인적 성취의 유혹도 강해진다. (306, 그랬던 거군요…)

-부르주아지는 상업적 성공과 공적인 평판에 기초하여 지위를 부여한 반면, 보헤미안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우아한 집이나 옷을 살 수 있는 능력보다 당연히 더 중요했던 것은 세상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 감정의 주요한 저장소인 예술에 관람자나 창조자로서 헌신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보헤미안의 가치 체계에서 순교자적 인물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들기 위해, 또는 여행이나 친구와 가족에게 헌신하기 위해 안정된 정규 직장과 사회의 존경을 희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런 헌신 때문에 외적인 품위의 표시는 부족할지 몰라도, 보헤미안들의 세계에서는 최고의 명예를 누릴 자격이 있었다. 그들의 윤리적 양식과 감수성과 표현 능력 때문이었다. (329)

-“대부분의 사치품, 그리고 이른바 생활에 편리한 물건들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인류의 향상에 장애가 된다.” 소로우는 그렇게 쓰고 난 뒤에, 물건을 소유하는 것과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을 연결시키는 사회적 태도를 뒤집고자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해진다.” (336-337,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 많아져서 불행한지도 몰라.)

-어떤 사람이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것이 많다는 뜻이다. 시인이 걸을 수 없는 것은 큰 날개 때문이다. (345)

-“인간은 모름지기 순응하지 말아야 한다.” 에머슨의 말에 따르면, 어떻게 살고, 옷을 입고, 먹고, 쓰느냐 하는 문제에서 다른 사람들의 관념에 맞추다 보면 얼굴에 서서히 “우둔한 표정”이 나타나게 된다. 모든 고귀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금언을 따라야 한다. “나는 내가 관심을 가지는 일을 하지,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에머슨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이제 순응이니 조화니 하는 이야기는 더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그런 말들을 관보에 실어 조롱하도록 하자...이제 결코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지 말자...이 시대의 매끈한 평범함과 비열한 만족을 모욕하고 질책하자.” (345-346)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보헤미안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355, 정말? 어려서부터 그렇게 어른들과 선생들과 세상 모두의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게 큰 가치마냥 길러지고 거기 거스르는 애들은 완전 낙오자 취급하는 세상에서 자유 의지라는 게 자랄 수 있냐? 다 늙어서 반항해 봤자 실패자 심술쟁이 영감 취급 밖에 더 하냐…난 여기서 성숙한 해결책 운운하는 보통 놈이야 말로 부르주아지 꼰대 대마왕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장기하-부럽지가 않어
https://youtu.be/SzyB2xBqk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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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4-26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건, 이 달의 페이퍼네요! 아하, 마지막 사진이 혹시 검열에 걸리려나요? 책방이 은근히도 아니고 노골적으로 보수적이잖아요. ㅜㅜ

반유행열반인 2025-04-26 19:43   좋아요 1 | URL
팔백작님 언제나 바람잡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ㅋㅋㅋㅋ 마지막 사진 검열 걸리나요? 애기들도 아니고 이런이런... 보헤미안을 모를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