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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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4 장하준.


책을 지금보다 덜 읽던 시절에도 장하준 교수의 책은 대부분 보았다. ‘나쁜 사마리아인’을 읽고 주장하는 바나 서술이 마음에 들었는지 먼저 나온 책들이랑 이후 나오는 저자의 책들을 챙겼다. 대세가 되어 버린 신자유주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고, 자라나야 할 개발도상국에게 저개발의 해결책인 양 강요하는 건, 지들 자라날 땐 보호무역으로 잘 해 처먹은 선진국들의 횡포라고, 비교적 경제성장에 성공한 우리나라 등등을 예로 들면서 국가 주도적 성장, 복지의 확대 등을 옹호하고 있었다. 대학 강의실에서는 주류경제학 위주로 배우고 곁다리로 그 한계 언급하는데 다른 학파들의 주장을 조금 배운 정도라, 반미 반제국주의,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는 강의실 바깥 움직임에 동조는 하면서도 막연하고 쭈그러지는 느낌이 있었다. 장하준 책은 거기다가 온갖 예들 모아 힘을 보태주는 느낌이었다. 곁의 사람은 비슷하게 폴 크루그먼 책을 재밌다고 찾아보는 편이었다. 공돌이에다 라이트노벨이나 만화책 아니면 다른 책은 쳐다도 안 보는 것 같은데, 유일하게 보는 경제학책이 (나도 한 권도 안 보고 이야기만 주워들은) 폴 크루그먼이라 신기했다. 나름 둘다 케인지언 옹호자들이었던가…

지금은 잘 모르겠다. 위치가 달라지면, 가진 게 쥐톨만큼 이라도 생기면 사람은 바뀌는 걸까. 그보다도 인간은 생각보다 불완전하고 국가도 관료도 마찬가지여서, 선한 의도로 뭔가 해 보겠다고 열심인게 오히려 많은 것들을 망치고, 정부 주도, 정책이라는 게 국민을 위한다는 말로 국민을 억압하고, 심지어 그 위한다는 말조차 말뿐일 뿐 사실은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의구심이 자주 들면서 회의주의에 빠진 것도 같다. 그냥 날...존나 자유롭게 죽게 내버려 둬라…
말은 이래도 새끼들 키우는데 육아수당 꼬박 나오고 보육비 무료고 사회 복지 정책의 혜택을 제법 보고 있지… 이건 첫애 어릴 때랑 둘째 어릴 때 극명하게 차이를 체험했다. 오히려 큰애 낳았을 때가 완전 가난뱅이였는데 그땐 지원이나 혜택이 훨씬 적었다. 그치만 그때보다 출산율이 점점 바닥 찍는 거 보면, 전쟁 후 굶어 죽겠어도 여서 일곱 낳던 할머니 세대 생각해 보면, 정책이 사람들에게 애를 더 낳거나 덜 낳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오래도록 지나치게 지구 잘 파먹고 살았으니 이제 그만 파먹고 소멸하자 인류야…

이런저런 취향(?)의 변화로, 장하준 신간 소식을 듣고도 어머 이건 꼭 읽어야지! 하지 않았다. 사 보진 않을 것 같고… 그런데 전자도서관 여기저기 신간 입고되었는데 예약이 많아서 딱히 줄서서 보고 싶지도 않아… 레시피라니 음식 던지고 거기다가 적당히 경제 관련 내용 갖다 붙이는 식이겠지… 크게 흥미롭지 않아… 하다가 책읽기가 하도 부진하던 어느날 대출 자리 하나 비는 걸 충동적으로 빌렸다.

오, 오랜만에 읽는 경제책은 뭔가 고향에 온 듯 편안. ㅋㅋㅋㅋ 짐작대로 음식 하나 툭, 거기에 경제 썰 좔좔, 그런데 시작부터 오, 예전 책들, 그것도 일반인 대상 교양서라고 (저자가 이 책 말미에서)하는데 그래도 제법 학술적인 내용 담고 서술도 그러했던 (주석 좔좔 참고문헌 좔좔) 전작들과 달리 에세이 느낌이 났다. 자기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특히 마지막 ‘초콜릿’ 장을 보면 아...장하준 교수는 초콜릿 덕후다… 이 장 쓸라고 이 책 쓴 거 같다...하는 느낌이다. (새로운 지식 ‘장하준은 초콜릿을 아주 매우 좋아한다’를 획득하셨습니다.) 나머진 경제 관련 내용은 전작을 다 봤다면 딱히 더 새로울 게 없었다. 이전 주장들을 음식이랑 연결한 정도… 그런데 그 연결고리도 뭐 그냥 이야기 도입용, 관심 환기용 정도지 엄청 납득될 만큼 탄탄하진 않다. 그게 특히 심했던게 ‘고추’ 장에서 돌봄 노동과 쓰촨 요리 식당 메뉴 속 당연한 고추를 연관짓는 것...그거 너무 어거지… 잘 이해도 안 됨… 메뉴판에 고추로 맵기 표시했지만 고추 안 그려진 음식에도 고추는 들어간다...그건 마치 너무 당연하게 여겨져서 잊고 마는 우리 곁의 돌봄 노동처럼… 나만 이 연결이 이해가 안 되나? 이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듯 저자 후기에 자신 없던 부분인데 부인 덕에 쓰게 되었다고 해명? 변명? 나도 쫌 그래...그런 느낌으로 언급은 되어 있었다. ㅋㅋㅋㅋ

그냥 가볍게, 주류 경제학의 통념에 다양한 근거로 반박하는 저자의 주장을 훑어보고 싶다면, 그리고 생각보다 음식에 진심인 경제학자의 음식 썰을 보고 싶다면 (나는 음식 책을 봤는데 경제학 지식도 석학의 통찰도 겟!) 나쁘지 않을 책이었다. 유머도 과하지 않고 적당하다. 영국 살이가 길어서 음식이든, 식당 소개든, 경제사의 사례든 영국 예가 많다. 외국인들에게 읽힐 것을 염두에 두고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걸 보면 그런 식의 서술도 제법 흥미롭다. (한국 출신이지만 외국 오래 살면서 외국애들한테 우리가 당연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한국 음식 문화에 대해 묵은 말야- 잡채는 말야- 하는 거. 케이 열풍을 타고 전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고자 하는 야심도 느껴진다면 억울하다고 할 것 같지만ㅋㅋㅋㅋㅋ)

고향 방문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다음엔 ‘물리적 힘’을 읽을까… (됐고 제2의 고향인 소설을 읽을까… ㅋㅋㅋㅋ)


+밑줄 긋기
-한국인은 곧 마늘이다. (당신이 먹는 건 당신이 아닙니다 선생님… 아, 내가 초근목피하면 식물인간이 되...삼겹살을 많이 먹으면 돼지가 돼...죄송합니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경제학이 과학이 아니라는 점, 반론의 여지 없이 증명할 수 있는 해답은 없다는 점이다. 모든 상황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경제학적 해결책이나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 경제가 처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 거기에 맞는 경제학적 답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더해 자국 시민에게 도덕적으로 또는 윤리적으로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는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 어디가서 사회‘과학’이라고 하지 마라 창피하니까… 침대도 과학이라는데 경제학은 과학이 아니라는 경제학자의 양심 선언)

-이교도와 벌이는 전쟁이란 의미로 알려진 지하드는 원래 가치 있는 목표를 위해 지난한 노력을 한다는 뜻이다. 이슬람 교리 중에는 군국주의적인 해석을 가능케 하는 부분도 있고,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리도 있다. 후자는 “순교자의 피보다 학자의 먹물이 더 숭고하다”라고 강조한 선지자 마호메트(무함마드)의 말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렇다고 막 죽이진 마셈… 위인들은 다 왜 극단일까 어떤 새낀 책이고 학자고 다 구덩이에 파묻고 태우질 않나…)

-힘은 보복이 두려워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것이 자기 이익에 반한다고 믿도록 만들기도 한다. (권력의 까쓰라이팅)

-요즘 미국을 비롯한 부자 나라 사람들은 ‘바나나 리퍼블릭’을 의류 브랜드 이름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이 표현은 원래 부자 나라의 거대 기업들이 가난한 개발도상국을 거의 완전히 장악했던 어두운 현실을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였다. 이 의류 브랜드의 이름은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 좋게 봐 줄 수도 있지만 나쁘게 보자면 굉장히 모욕적이고 불쾌하다. 뭐랄까, 커피 원두를 갈아 주는 힙한 가게를 ‘사탄의 공장Satanic Mills’이라고 부르거나 고급 선글라스 가게를 ‘암흑의 대륙Dark Continent’이라고 부르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근데 나는 사탄의 공장도 암흑의 대륙도 마음에 드는데… 죄송합니다 인종감수성 부족한 감각…)

-좌파는 모든 사람에게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 공평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마다 다른 필요와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반면에 우파는 기회의 평등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정으로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개인 간의 역량이 어느 정도는 균등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싸우지 말고 둘이 애를 낳아라...중파를 낳아라…)

-우리는 돌봄 노동이, 그것이 무보수가 되었든 보수를 받고 하는 일이 되었든, 인간 생존과 복지에 얼마나 중요하고 핵심적인 활동인지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뭔가의 가치가 시장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시각을 버려야 한다. 또한 돌봄 노동이 여성의 일이라는 생각과도 이별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돌봄 노동을 태업하고 있단다...ㅋㅋㅋㅋㅋㅋ팥쥐엄마)

-남녀 임금 격차는 세계 평균 20퍼센트지만 파키스탄, 시에라리온 등에서는 45퍼센트까지 차이가 나고, 태국처럼 격차가 전혀 없거나 필리핀, 파나마처럼 여성이 더 높은 임금을 받는 경우도 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20년 6월 발표한 ‘남녀 임금 격차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 the Gender Pay Gap’ 자료 참조.(여성 인권 거덜난 나라들이 돈도 안 준다 소한테 밭갈이 시키고 돈 안 주듯이…)

-그리고 나 자신의 괴상한 의식의 흐름을 따라갔다는 것도 인정한다. 물론 앨런 베넷Alan Bennett과 W. G. 제발트W. G. Sebald가 거장으로 꼽히는 이 장르에 누가 되지는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아니 여기다가 제발트 운운하는 게 더 누가 아닐까… 조이스나 프루스트는 참은 거죠? 유일하게 과한 유머가 후기에...ㅋㅋㅋ)

+서가의 (한 줌) 경제학 코너의 제법 높은 비중을 차지한 장하준의 책 다섯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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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10-16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추억돋네요. ㅋㅋㅋ 장하준… 책장에 있는 책 4권 읽었스니다! (균형잡힌 사고방식의 경영학과 생 씀) 저는 다 버렸고 사다리 걷어차기는 있을지도…

반유행열반인 2023-10-16 18:27   좋아요 0 | URL
와 쟝님은 경영학과 찐 사회과학도셨군요 ㅋㅋㅋ저는 유사사회(?)잡종이라 한 우물 못 파고 뒤늦게 방황중...

공쟝쟝 2023-10-16 19:56   좋아요 1 | URL
경영학과는 맨큐랑 (좀 빠지면 하이예크) 읽어요. 저는 경영학과에서 정치경제학 읽은 이단아… !!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