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 소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0230919 류진운.

거위털도 개털도 아니고 닭털 같은 나날이라니, 닭의 깃털이 어떤 색감과 느낌인지는 어렴풋이 알겠는데 그렇게 고상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살아 있는 닭을 본지도 오래 되었다. 먹어 치운 죽은 닭의 수가 훠------------------------------월씬 많다.

세 편의 중편소설이 실려있다. 마지막 글은 작중에 이건 소설이 아니다, 선언하기도 하고, 르포에 가깝지만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소설처럼 읽힐 수 있겠다. 관료제를 비판하고, 자본주의 안에서 가정을 유지하고 애를 키우고 삶을 꾸리는 지난함을 그리고, 그 안에서 우스꽝스러워지는 인간과 부조리한 상황들을 던져주는 걸 보면서 다른 이웃님 리뷰에서 중국산 카프카 이야기 하던 생각이 났다. 그건 다른 중국 작가였지만, 아니 중국은 왜 카프카가 이리 많냐...했다. 검색해보니 중국의 면적은 체코, 오스트리아, 독일 합친 것의 18배가 넘는다고 하니 앞으로 18명 이상 더 꼽아도 될 것 같다. 사실 중국 소설 많이 읽지 않았구요… 쌈마이 옌롄커의 병맛을 애정합니다… 마오주석 모독하고 상징물 파괴하면서 내가 더 사랑해! 하는 미친 커플이나, 시아버지를 자기가 운영하는 업소에서 복상사 시키는 며느리(…) 같은 것… 누구든 이거 이상으로 써 내놔봐요. 제가 사랑합니다. ㅋㅋㅋㅋㅋ

류진운의 소설은 그보다는 더 현실 밀착형이었다. ‘임의 집에 두부 한 근이 상했다.’(11)로 시작하는 ‘닭털 같은 나날‘은 아이를 키우고 고된 직장 생활을 하며 조금이라도 나은 생활을 하려고 아득바득하는 부부의 일상을 그려놓았다. 크게 미친 놈도 안 나오고 엄청난 불행도 닥치지 않는데, 소소한 좌절과 소소한 이득과 그 작은 이득 뒤의 씁쓸하고 불쾌한 사연 같은 걸 건조하게 그려놨는데도 인간 살이의 구질하고 너절한 것들이 마구 몰려들었다. 그냥 사는 건데 참 인간 힘들게 산다… 체념하고 끌려다니는 일상이, 가족과 가정과 가계의 유지가, 그렇게 녹록한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고 그걸 계속 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다 대단한 것 같다.

’관리들 만세‘는 읽기도 전부터 제목이 비꼬는 거겠구나 싶은데, 공공기관인지 공기업인지 이새끼들 일은 안 하고 조직 개편 시기에 어떻게든 자기 밥그릇 지킬려고 암투 벌이는 모습이 지긋지긋했다. 이혁진 ’누운 배‘도 좀 생각나고… 진짜 정이 가는 인간이 하나도 안 나오는 소설도 있구나… 초반부에 나오는 화장실 넘쳐 들끓는 구더기 보는 심정...그런데 저 앞 소설의 평범한 일상 속 고군분투하는 인간이나 조직 안에서 아득바득하는 인간이나 다 같은 존재라는 게 문제지… 인간을 마냥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다.

’1942년을 돌아보다‘는 그해 하남성에 대기근이 닥쳤던 것을 기록과 생존자 인터뷰를 통해 돌아보고 장개석을 까는 이야기였다. 문득 그보다 나중 이야기이지만 문화대혁명 잘 그린 소설 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하나 보긴 봤구나… 옌롄커의 ‘사서’… 주목 받는 역사적 사건과 대기근 같은 재앙은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봤지만, 1942년은 정부나 권력자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역사 속에 잘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작가가 태어나기 전 작가의 고향인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기근의 영향을 받아 죽었고 처참한 상황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친구에게 콩나물과 족발을 얻어먹고 남한테 떠밀려 1942년을 조사하는 듯싶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고 겪지 못하고 잊히는 것을,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다 보여주는 게 소설가의 일이겠다 하면서 읽었다.

마지막에 덧붙은 황석영의 감상문?이 인상깊었다. 와, 글을 잘 쓰네...하다가 수능 국어 기출 말고는 읽은 게 없어서 ‘나 황석영 한 권도 안 봤네’했더니 엄마가 엄청 놀랐다. 잘 쓰는데? 하면서. 엄마가 모아둔 중단편전집이랑 최근 소설들이랑 희곡집이 있는데 안 본게 놀라운가 봄...뭐 엄마가 좋게 본 거 내가 안 본 건 너무 많은데요...오정희도 엄마는 필사까지 했는데 난 유년의 뜰 한 편(한 권 아니고 그 소설만) 보고 안 봤는 걸요… 볼 게 너무 많다. 지금부터 책 그만 사고 한 십 년 책만 읽어도 쟁여둔 것 다 못 볼 듯...

+밑줄 긋기
-정말 괴로운 것은 능력이 못 미치거나 일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시비를 걸고, 서로 경멸하고, 서로 인정하지 않으며, 오줌을 일부러 오줌통에 싸지 않고 사방에 싸 놓아, 자신이 그 모든 걸 수습해야 한다는 사실 아닌가? 힘을 일하는 데 쏟지 않고, 서로 헐뜯고 서로 비웃는 데 쓰고, 겉으로는 친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칼을 갈고, 위에서는 악수를 하지만 아래에서는 발을 거는 형국이 아닌가? 도대체 이토록 많은 ‘계급적 원한’이 어떻게 일어난단 말인가? 정말 이것을 공산당에 걸맞은 기관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107)

-(할머니 생애) 92년 동안 등장했던 수많은 집정자들을 비난해도 소용이 없다. 다만 집정할 당시에 그의 백성이 도처에서 굶어 죽었다면, 그 위정자는 마땅히 우리 할머니보다 더욱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그것은 자기의 가족과 자손들은 결코 굶어 죽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통치를 받는다는 것이, 정말 얼마나 불안하고 겁나는 일인가? 하지만 할머니의 담담함에 흥분과 분노는 사라지고, 자조의 쓴웃음이 지어졌다. (212)

-지상에서의 영구혁명론이란 그야말로 말에 지나지 않으며, 혁명적 상황은 삶과 체제가 한 몸이 되어 엉겨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 드러난 이 현실을 브레히트는 ‘도달하기도 전에 거기 저 혼자 피어난 장미’로 비유했다. (298, 황석영의 붙이는 글 중)

-생활은 정치보다 중요하고, 국민은 정치가나 관료보다 중요합니다. 후자가 전자보다 중요할 때, 그 민족의 생활은 정상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305, 작가와의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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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0 11: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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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0 1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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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0 1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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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0 1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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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3-09-20 11:39   좋아요 1 | URL
좋더라2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