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신령님이 보고 계셔 - 홍칼리 무당 일기
홍칼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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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2 홍칼리.


21년 전, 할머니 장례 때 모르는 할머니 한 분을 뵈었다. 할아버지에게는 누나 둘, 내가 아는 고모할머니들 말고도 여동생 하나가 있다고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결혼하고도 한동안 같이 살던 여동생 할머니는 어느 날 집을 나갔고, 무당이 되었다고, 아들 하나 있다고 했다. 그냥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은 할머니로 보였고, 무당이라는 사람을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제사를 열심히 모시는 집안이었고, 그래서 십 대 까지는 누가 종교를 물으면 조상숭배, 라고 우스개로 말했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을 겪을 뻔하다가 큰 화를 면하고 작은 액땜 쯤으로 끝나면, 조상이 보살폈나 보네, 어른들이 지나가듯 하는 말을 나도 속으로 읊조리곤 했다. 지금은 개뿔, 조상은 조까세요, 그렇게 자손 보살피는 조상이 있다면 왜 술주정뱅이 폭력살인범 할아버지랑, 그 판박이 같은 아버지만 돌보시나요. 평생 제삿밥 차리던 할머니는 왜 맞아 죽게 뒀나요. 그 제삿상 이어서 차리던 우리 엄마는 왜 그렇게 고생했나요. 나는 자손 아니냐. 왜 안 돌보냐.

글(또는 이런저런 창작으)로 유명해진 가족을 둔 사람이 다시 글로 먹고 사는 일이 어떤 일일지 이웃과 잠시 대화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이름이 너무 크면 늘 누구누구 자녀, 뭐 이런 게 따라붙어 싫겠다 싶었다. 이번에 읽은 책 저자도 비슷하다. 사실 먼저 본 건 페이스북 하던 시절에 돌아다니던 누군가가 공유한 홍승희의 글이었고, 그런데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여간에 이름이 비슷한 홍승은과 둘을 헷갈리다가 홍승은의 책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를 3년 전 읽었는데, 와, 내가 아는 에세이 작가(얼마 안 되지만) 중에는 제일 잘 쓰지 싶었다. 작가의 책 속에 동생 승희가 가끔 등장하는데, 다른 책에서는 칼리가 되었고, 아 이제는 세 식구였다가 네 식구가 되어 같이 사는 구나, 몇 권 읽으며 남의 식구 수도 알게 되고…
그러다가 이웃님이 무당을 인터뷰한 무당 작가의 책 읽고 평점 남긴 것을 보고, 홍칼리, 라는 이름 따라 들어간 책 소개에서 아, 무당이 되었구나, 동생이 쓴 책도 궁금해, 하고 ‘붉은 선’을 사 말아 하다가 전자도서관에 이 책이 있는 걸 보고 일단 이거 먼저 읽지, 했다.

무당도 종교인의 하나인데, 무당이 된 과정, 무당의 일과, 무당이 되고 나서 만난 손님이나 다른 무당들,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만날 기회였다. sns에 공유되던 이야기나, 이전에 나온 책이나, 고통과 자기탐구의 서사인 전사에 비하면 어쨌거나 무당이 되어 나를 구하고, 죽는 대신 삶을 택하고, 거기에다 남을 돕고 세상을 돕는 일에 의지를 불태우게 된 건 좋은 일로 보인다. 그렇지만 독특한 소재와 다양한 삶의 방식, 다양한 세계관, 뭐 거기 까지였고 그것들을 풀어내는 문장은 좀 아쉽구나… 그냥 나의 취향과 맞지 않다고 해야겠지… 글이랑 책으로는 음 더 잘 쓰게 되면 좋겠구나 싶었다.

딱 한 주 전이 나의 자매의 생일이었지만, 축하 문자 하나 보내지 않았다. 힘든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낸 뒤 동지가 되고, 같이 글쓰는 일을 하고, 심지어 혼인 관계로 맺어지지 않은 식구를 구성하게 되는 복 받은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 시절이 너무 힘들면, 그래서 다들 만신창이가 되고 그때 왜 안 말려줬어, 왜 날 안 구해줬어, 탓하는 사이가 되면, 혹은 그저 지켜보고 눈물 짜는 것 밖에 못해서 내내 죄책감 느끼고 서로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그 힘들던 시절이 떠오르는 사람들끼리는, 마냥 닿지 않는 먼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난 의지할 형제자매도, 종교도, 나만의 신당도 만신전도 없이, 종잇장이든 전자신호든 빼곡히 채워진 글자나 들여다 보며 여름을 난다. 난 그냥...과학책이나 볼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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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7-22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어어!!! 일단 반가워서 댓글 먼저 쓰고!! !
오늘 새벽 3-4시까지 읽은 책이 홍칼리 무당 책이었거든요 ㅎ열반인님 ㅉㅉ뽕

얄라알라 2023-07-22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이웃님이 저였어요^^

글쵸??어쩜 이리 글을 술술술 잘 쓰신대요.
심지어는 최신간에서는, 인터뷰하신 분들 - 주로 홍칼리님과 지인인 무당- 다들 말씀이 그냥 바로 활자화해도 문제 없을 지경으로 청산유수이시더라고요^^ 열반인님께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으셨군요.

반유행열반인 2023-07-22 18:52   좋아요 1 | URL
넴 이 글의 이웃님 중 한 분-무당책 소개-이 얄님 맞는데요 ㅋㅋㅋ저는 이 책 글은 좀 못 썼다고 많이 깐 건데요 ㅋㅋㅋㅋㅋ별 세 개 줄라다 올려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2023-07-22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3 0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