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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알코올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20
기욤 아폴리네르 지음, 황현산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8월
평점 :
-20230721 기욤 아폴리네르.
프랑스 문학 읽다보면 아무데서나 툭툭 기욤 아폴리네르가 튀어나온다. 사강 책 읽다 거기서도 나왔다고 독후감 써 놨길래 음…어디서? 하고 다시 찾아보는데 안 나오는 거다…포크너 보부아르 프루스트 다 찾았는데 아폴리네르는 안 나와…나 꿈 꾼 거냐…아님 기욤기욤 하고 홀린 거냐…나도 모르게 빠져든 듯…
4월에 읽다 만 시집을 다시 빌렸다. 그때는 잘 모르겠다, 했는데 기욤이 루에게 보낸 연서 모은 닭살 시집 한 권 읽고 나니 항마력이 생겼는지, 한 편으론 아니 이게 같은 사람이 쓴 거라고…싶게 ‘알코올’의 시들은 좋은 게 많았다. 다 와닿진 않았는데 그래도 장면과 비유가 오 어떻게 이렇게 써…싶은 게 많았다. ‘은둔 고행자’ 같은 시를 읽을 때는 뭔가 박상륭도 이 시를 읽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슷한 거라곤 겨우 해골 까마귀 나무 그런 이미지 뿐이지만… 대작가들은 뭔들 안 봤겠니…
기욤 아폴리네르를 알게 된 건 최성웅이 번역한 시 선집 속 시들 덕이지만, 거기 실린 시가 황현산 번역으로 이 시집에도 몇 개 겹쳐서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문득 번역 시 읽는 일은 참…제대로 읽는 중인 걸까. 언어가 달라지면 시는 나한테 얼마나 닿을 수 있을까. 같은 시 옮겨 놓은 것도 사람마다 이리 다른데… 번역자들은 소설이든 시든 새로 한 편을 써 내는 일들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0721/pimg_7921671143943606.jpeg)
’미라보 다리‘ 두 버전.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0721/pimg_7921671143943607.jpeg)
‘약혼 시절’ 두 버전.
이 시집 좋은 점이 책 말미에 시 주석을 황현산 선생님이 상세하게 달아 두셨는데, 그런데 나는 해설은 대충 봤다. ㅋㅋㅋㅋ 전자책 빌려 읽었는데 나중에 종이책 사서 제대로 읽으면서 그때 주석도 다시 보면 좋겠다 싶었다. 그치만 언제 볼 지는 ㅋㅋㅋ
기욤 아폴리네르는 연애가 망할 때마다 명시들을 남겼다. 연애 편지가 책 한 권이 되기도 한다. 시도 시지만 연보 보면 시인의 인생 자체가 흥미롭긴 하다. 엄마가 자유분방하게 살다가 기욤이랑 동생 낳았는데 둘다 아빠 모름… 하여간에 국적은 외국인임… 시 쓰고 먹기 힘든 시절에 야설 써서 팔아먹음 ㅋㅋㅋ오래도록 잊혔던 사드 작품 발굴함, 모나리자 도난 사건에서 누명 쓰고 감옥 갇히고 국외추방 당할 뻔함… 피카소랑 친구 먹고 피카소가 소개팅 시켜준 여자랑 잘 안 됨 ㅋㅋㅋㅋ 자기는 징집 대상도 아닌데 프랑스가 독일이랑 싸우는 전쟁 나가서 좋아하는 여자랑도 같이 못 있고 (아니 근데 전쟁터 나가서 약혼자랑 약혼자 아닌 다른 애인 있는 여자한테 동시에 편지질함 ㅋㅋㅋ) 가서 괜히 포탄 파편 맞고 다침, 스페인 독감 걸려 죽음, 얘 죽고 다음 해에 엄마랑 동생 죽음…. 남의 삶이 파란만장하면 나중에 보는 사람은 재밌지만, 그런 애들이 쓴 글도 재밌지만, 그렇게 살던 애는 참 힘들었겠다.
+밑줄 긋기
-나는 내 작품에 일곱 사람 이상의 애독자를 기대하지 않지만 그 일곱 사람의 성과 국적이 다르고 신분이 달랐으면 좋겠습니다. 내 시가 미국의 흑인 복서, 중국의 황후, 적국인 독일의 신문기자, 스페인의 화가, 프랑스의 양가집 규수, 이탈리아의 젊은 농사꾼 여자, 인도에 파견된 영국 장교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이 내 바람입니다. (전쟁 중 아폴리네르가 한 여자에게 쓴 편지글 중)
-우리아이들은
약혼녀가 말했다
은이나 금으로 빚은 것보다
에메랄드나 다이아몬드로 새긴 것보다
아아 반지가 깨졌네
더 예쁠 거예요 더 예쁠 거예요
창공의 별들보다도
오로라의 광채보다도
나의 피앙세 당신의 눈길보다도
더 맑을 거예요 더 맑을 거예요
우리 아이들은 더 향기로울 거예요
아아 반지가 깨졌네
갓 피어난 라일락보다도
백리향과 장미보다도 아니
라벤더나 로즈마리의 어린 싹보다도
….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가 말했다
수비둘기가 암비둘기를 사랑하듯이
야행성 날벌레가 불빛을 사랑하듯이
너무 늦었어요
산 여자가 대답했다
단념하세요 그 금지된 사랑을 단념하세요
저는 결혼한 몸이지요
이 반지가 반짝이는 걸 보세요
손이 떨리네요
눈물이 나네요 죽고 싶어요
(‘죽은 자들의 집’ 중)
-나는 별의별 인간을 다 안다
그들은 제 팔자를 감당하지 못한다
마른 잎처럼 불안정한
그들의 눈은 꺼지다 남은 불
그들의 심장은 그들의 문처럼 쉴 틈 없다
(‘마리지빌’ 중)
-시에 터를 잡은 우리가 우주를 짓고 허무는 말들에 권리를 가졌다고 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우습지 않게 울 수 있고 웃을 줄도 알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옛날처럼 담배 피우고 술 마시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기뻐하자 불과 시인들의 지도자인 사랑
별들과 행성들 사이 단단한 공간을
빛처럼 가득 채우는 사랑
그 사랑이 오늘 내 친구 앙드레 살몽이 결혼하기를 바라 마지 않기 때문이다
(‘앙드레 살몽의 결혼식에서 읊은 시’ 중)
-내 언젠가 히스나무 이 가녀린 가지를 꺾어두었지
가을도 가버렸으나 잊지는 말아라
우리는 이 땅에서 다시 보지 못할 거야
시간의 이 향기 히스나무의 이 가녀린 가지
그래 내 너를 기다리니 잊지는 말아라
(‘고별’ 전문)
-오! 밖에 나가지 마라
가을은 잘린 손으로 가득하다
아니야 아니야 그것들은 죽은 잎이야
그것들은 죽어 버린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손이야
그것들은 잘린 너의 손이야
(‘가을의 라인란트’ 중)
-마침내 나는 거짓말에 겁을 먹지 않는다
그것은 접시 위에 달걀 후라이처럼 구워지는 달이다
이 물방울 목걸이가 익사한 여자를 장식하리라
보라 이제 내 수난의 꽃다발이
가시관 두 개를 다정하게 바친다
거리는 방금 내린 비로 젖어 있다
부지런한 천사들이 나를 위해 집에서 일을 한다
달과 슬픔은 사라지리라
그 성스러운 날 내내
그 성스러운 날 내내 나는 노래하며 걸었다
한 여인이 창에 고개를 내밀고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노래하며 멀어지는 나를
(‘약혼 시절’ 중)
-미치광이들의 입술에 꿀맛 같은 달
과수원과 마을이 오늘 밤 단맛에 빠졌구나
별들은 포도넝쿨에서 방울 지어 내리는
저 빛나는 꿀의 꿀벌 노릇을 톡톡히 하는 구나
달디 달게 하늘에서 저들에게 떨어지는 달빛은
한 줄기 한 줄기 모두 한 칸 벌집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아주 달콤한 모험을 숨어서만 꿈꾼다
저 꿀벌 아르크투루스의 불침이 두려운 탓
내 손에는 허망한 빛줄기나 쏘고
바람의 장미에서 제 몫의 달빛 꿀을 거두어 갔지
(‘달빛’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