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 젊은 의사가 고백하는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박정아 옮김 / 알마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0230703 베르너 바르텐스.

이 책을 집어든 건 감각의 박물학 읽다가 근시들에게 빨간색이 제일 도드라지게 보인다는 식의 서술을 본 뒤였다. 안경을 살짝 내리고 보니까, 정말 뒤태가 시뻘건 이 책이 먼저 보이더라…

제목에 ‘두려운’ 같은 말도 들어가고, 책표지도 막 피처럼 새빨갛게 해놓고, 왠지 선정주의 마케팅에 걸려든 것 같아…하면서 독일어 원제를 번역기 돌려 보니까…das ärztehasserbuch ein insider packt aus: 내부자가 풀어낸 의사 혐오책… ㅋㅋㅋㅋㅋㅋ오랜만에 번역서가 훨씬 제목 순화한 편이었다.

살면서 크고 작은 질환으로 병원을 찾았다. 누군들 안 그렇겠어. 생전 병원 한 번 안 찾고 튼튼해, 자신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말 하면 역신이 셈내서 아프다고들, 건강에 대해 자신하는 태도를 금기시하는 문화도 있다. 병원 경험을 풀어내자면 끝도 없겠다. 진짜 이상한 의사 선생님(어릴 때 열성 경련으로 동네 의원 갔는데, 할머니 의사 선생님이 손에 스테플러 같은 침기구 들고 부위 안 가리고 전신을 마구 따고 주사를 두 대나 놓았다…연세 생각하면 이미 돌아가셨겠지만 나는 이름도 안 잊어버렸다…)도 있었고, 다정하게 치료 단계와 방향 차근차근 설명해주시고 실제로 치료에 도움이 되신 선생님(피부과 월급 의사 선생님이셨는데, 거의 평생 앓던 아토피성 피부염과 스테로이드 연고 부작용으로 내가 엄청 힘들어 하니까 달래면서 스테로이드 복용이랑 사용 지침도 자세히 알려주고, 항생제 치료까지 마치고 호전되니까 프로토픽 처방도 천천히 해주시고 그랬다…엄마가 아토피면 아기도 그럴텐데 하면서 자기 나온 대학병원에서 잘 봐주시는 은사 교수님도 알려주고 자기가 처방 안 하더라도 대학병원에서 요청할 수 있는 대안적 치료들도 알려주고…)까지… 의사 선생님을 만난 전문 진료 과목도, 선생님들의 환자를 대하는 태도나 친절함도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스펙트럼이 넓었다.

그래도, 결국 치료에 가장 도움이 되고 끝까지 권하는대로 병원에 나가고 처방약을 순응도 높게 마저 먹게 만드는 것은, 의사 선생님의 질환과 치료에 관한 상세한 설명, 환자의 고통에 대해 귀기울이는 태도, 친절함이었다. 오진도 문제고 원인과 질환을 제대로 파악해내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러니까 많은 경험과 숙련도와 지식과 전문성 등등등 능력 측면도 매우 중요하지만, 중증 질환 아닌 삶의 행복도를 낮추는 만성 질환들은 저런 부분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부상부터 합병증으로 이어진 비교적 중증질환을 올해 겪으면서, 중간에 아쉬운 진료나 상황도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의료체계가 제대로 가동해서 진료의뢰도 적정 과목으로 이루어지고, 시간도 그리 지연되지 않아서 잘 살아 있고 치료 계속 잘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증질환이라 그런가 비싼 치료비 중 많은 비율을 의료보험이 부담하고, 오래 납입하던 실손보험에서 의약품 비용도 지원하는 걸 처음 알았고… 뭐 운이 좋은 시대를 산다. 잘못 타고났으면 돌연사 각인 것을…

어쨌거나 병원 겪을 일 많아져서 관련 주제 다룬 이 책도 궁금했을 것이다. 독일은 환자의 공보험 사보험 가입 여부에 따라 병원 수익이 많이 달라지고 그래서 환자 대우도 매우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종합병원 의사 하다가 관두고 저널리스트가 된 저자는 작정한 듯 자신이 겪었던, 지켜봤던, 취재해 알게된 수많은 의료사고, 태만하고 환자를 질색하는 의사들, 잘못된 의료관행들을 풀어놓는다. 그런 사례들만 엄청 모아놓아서 처음 읽을 땐 아 나 왜 이거 읽음…하고 조금 좌절하는 기분을 느꼈다. 혈전증으로 입원한 환자가 걱정하면서 “선생님, 전 죽게 되나요?” 하는 질문에 저자는 성의 없이 대꾸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게 뭐 문제냐…싶었다면 이 책도 안 나왔을 거고 저자도 의사 계속 잘 했을텐데 뒤늦게나마 스스로를 돌아보고 회의를 느낀 덕에 나도 저런 일이 있었구만…하고 알게 되는 것이다. 주로 나쁜 의사들 이야기 들려주면서 저자가 의사님들 이러지 말자…하는 식이라 뭐 내가 이거 봐서 어쩔 건가 ㅋㅋㅋ싶지만 그냥 야 여기는 독일 아니고 저 책도 벌써 나온지 십오년은 넘었고 앞으로는 아프지 말자…이럴 건 아니고 아이참 읽고도 그냥 운 좋길 바래야지 환자로서 뭘 할 수 있는게 참 없구나, 무력감이 많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이런저런 괴로운 사례 나열까지는 그냥 뭐 세상에 이런일이 보듯 읽을 만 했는데, 맨 마지막에 의사의 생존지침, 하면서 비꼬듯이 의사들의 나쁜 면모를 권유문 형태로 쓴 거는 이거는 뭐 재미도 감동도 없고 풍자와 해학이라기에는 사족 같았다. 환자의 생존 지침, 이건 의사들이 자기들끼리만 쓰는 은어 같은 것, 환자 뒷담화 같은 거를 모아놨는데 독일어 그대로 써 놔서 뭐 어쩌라고…싶었다.
모두 건강합시다…의사 선생님들 환자 미워하지 마시고 가엾게 여겨주시고 잘 부탁드립니다…

+ 독자를 꼬시는 뒤태…시뻘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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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7-03 19: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토피 인생이라 유열님 고생이 남일 같지가 않네요. ㅠㅠ 어릴때부터 앓았다가 고딩때부터 한 스물하나까진 잠잠하더니 막 사니까 다시 올라옴. 지금도 입술 따가워서 프로토픽 바르고 번들거리는 상태로 이 페이퍼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유열님 독서 스펙트럼 참 넓으시네요 ㅋㅋㅋ 이 책 좀 궁금하다. 근데 환자 뒷담화 제일 궁금한데 번역 안한거 성의 뭐야?

반유행열반인 2023-07-03 20:07   좋아요 2 | URL
이 책 드릴게요(책 막 드림) 가져가요 가져 가 (신종 알라디너 꼬시기 유괴범 느낌…엄마가 모르는 사람이 주는 책 읽지 말라 그랬지!!!) 그냥 진지한 듯 썼지만 가십모음집에 가까워요 별로 깊이 없고 한국이랑도 물정 다르고 시대도 너무 오래 되어 버림… 아토피 진짜 평생 동반자에요 저는 거기에 무좀도 추가…(TMI 무좀 있는 여자한텐 안 반하겠지)

은오 2023-07-03 23:40   좋아요 1 | URL
그럼 이건 안받을게요!! ㅋㅋㅋㅋ (나중에 다른 책 노려야지....) 아니 저 반하고 다니는거 유열님한테도 소문났나요? 근데 이미 반함..... 이미 반했으니 무좀따위 뭐 ㅋㅋㅋㅋㅋㅋ 근데 진짜 tmi긴 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