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조어론 2 - 제1부 중도(관)론 2
박상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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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5 박상륭.
인간인 것의 지난함이여, 인간인 것의 지복함이여.

저녁에는 버터마늘새우구이 해 본다고, 냉동실에 아프기 전에 사 놓고 못 먹고 있던 블랙타이거새우 열두 마리를 꺼내 손질했다. 삐쭉한 윗뿔 아랫뿔 수염 다리 다 잘라내고, 왠지는 모르지만 검색하면 죄 똥창자 제거하라니까, 가위로 등을 따서 이쑤시개로 등허리 마디를 후비적대면서, 뭐가 차 있거나 아무 것도 없어서 투명한 가늘고 긴 새우 내장을 끄집어 내려고 애를 쓰고 있자니, 너는 무슨 죄를 지어가지고, 살이 그렇게 맛있는 거 말고는 물 속 눈에도 안 보이는 물벼룩이나 좀 건져 먹었을 건데, 겨우 그런 죄 가지고 나한테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구나… 언젠가 너랑 내 자리가 바뀌어 검고 둥근 눈을 한 새우가 이쑤시개보다는 굵은 창 같은 걸 들고 창자를 꺼내야 안 비리고 신선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아마 그럴 일은 없을텐데도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새우 내장을 잡아 당겼다.
그러고나서 마늘이랑 버터 발라 파슬리 송송 뿌려 냠냠 새우 대가리까지 오븐이랑 에어프라이어에 바싹 구워 잘 먹었습니다.

천천히 보기로 해놓고, 1권 다 본지 열흘 만에 칠조어론 2권을 다 봐 버렸다. 그 사이 논 건 아니고 시집이랑 만화책 치트키를 쓰긴 했지만 독후감 여섯 권이나 썼잖아? 너무 빨리 봤다…
1권에 촛불중의 잡설이 길게 이어진 걸 보상하듯, 2권은 드디어 이야기가 이어진다. 혹여, ‘죽음의 한 연구’를 힘겹지만 재미있게 읽고 나서, 그 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싶은 동료 독자에게 응, 그냥 칠조어론 1권 건너뛰고 2권부터 ‘속 죽음의 한 연구’보듯 보셔도…하고 말하고 싶은 유혹과, 아니 그럼 박상륭 선생님이 힘들게 쓴 것이나, 열심히 편집 교정한 선생님들께나, 다 죄송스러운 일이 아니겠냐…무엇보다도 죽을 똥 싸고 1권 읽은 며칠 전 나새끼한테도 미안하지 않냐… ㅋㅋㅋㅋ앞에 길고 긴 잡설도 다 의도와 뜻이 있을 것인데 맘대로 빼고 읽으라 그러냐…하고 나를 한 대 쥐어 박는다. 그냥 뭔말인지 모르겠다…하면서 휙휙 넘기는 수고로움을 견디시고 읽으시면 2권은 서사가 있습니다…
그 사이 ‘소통의 잡설’이라는 요약본? 해설서?도 조금 보았는데, 고것 먼저 보고 책을 읽어도, 또는 책을 읽고 아 이렇게도 정리할 수 있군, 사후 되새김질 하는 것도 다 괜찮을 것 같다. 그러니까 꼼꼼히 읽기 책의 도움으로도 어려운 건 어려운 것… 읽고 싶은 대로 읽으세요…

죽음의 연구에도, 칠조어론에도, 유리에 사는 등장인물들은 이름이 없다. 육조스님도, 칠조스님도, 자기 형벌에 관한 문서를 받아들고 본적란에 유리, 법명란에도 유리, 이렇게 써 버린다.
오조촌장, 육조 촌장, 읍장, 읍장 손녀딸, 수도부, 목사 딸 수도부, 판관 나으리, 형장 나으리->읍장겸판관 나으리, 청지기, 이렇게 사람들은 직위나 지위로 칭해진다. 그런데 예외가 촛불중, 촛불 스님이다. 이건 직위도 지위도 아니고, 수도부들이 붙여준, 그나마 이름에 가깝다. 육조도 얻지 못했던 이름을 촛불중은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더 큰 수난이 예상된다… 아참 존자 스님도 있긴 했지… 이름을 갖는 사람은 하여간에 비참하게 죽는 것이 예상됩…

2권은 약간 전개상에, 시간상에 혼란이 있어 자꾸 뒤로 돌아가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육조 열반->읍장이랑 판관 다 죽음->큰형장지기가 읍장겸직판관됨->읍장손녀딸이랑 강제로 혼인함->어느 밤 읍장겸직판관이 들이닥쳐 읍장손녀딸 쥐어패는 바람에 읍장손녀가 임신하고 있던 육조의 유복녀 사산->읍장겸직판관이 육조 나무 밑에 죽은 아기 묻고 자기도 나무에 목매고 죽어서 그 나무 밑에 묻힘

그러니까 읍장겸직판관 죽었어? 뱃속에 아기 있을 정도고, 조산할 정도면 육조 돌아가시고 얼마 안 된 시기인데, 그런데 또 유리에 칠조 촛불중 돌아와서 설법하고->육조 모신 나무 밑(아기도 묻히고 음장겸직판관도 묻힌) 제실에서 읍장손녀딸이랑 교접하고(그런데 왜 계간, 비역, 그런지 모르겠음…왜 멀쩡한 데 놔두고 거기다 하냐고 비역쟁이 촛불중놈아…)

그런데 또 다음 전개 보니 읍장겸직판관 살아 있고 열심히 중들 때려 잡다가 촛불중도 친구지만 너도 예외 없지…이러고 촛불중의 수난이 시작된다. 촛불중은 예쁜 남자였는데, 오랜 세월 돌고 돌아 찌든 얼굴이 되어 있는 설정이니, 그런데 읍장손녀딸은 여전히 곱고…

나는 여기서 내가 서사에서 뭔 설정이나 흐름을 놓친 것인가…왜 읍장겸직판관 죽었다 살았어? 시간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어디까지가 꿈이고 현실인가…헤매다가 원래 듣보잡 신인작가가 이런 식으로 서사 구성하면 이새끼 시간 시점 다 꼬이고 틀렸어! 할 것인데 대작가님이 해 놓으신 건 다 뜻이 있고 인간사 세속의 시간과 소설, 잡설 속 시간은 뭔가 다르다…우리는 다른 차원에 있어!!! 뭐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꾸 신경 쓰여서 못 읽겠으니 그럭저럭 넘어가기로 했다… 혹시 먼저 읽으신 도류 중 제 오독 지적하시고 정리 잘 해 주실 분 계시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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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9 셀프로 오독 바로잡기
-읍장 겸직 판관≠판관 겸직 읍장(3312쪽에서 별세한 읍장 겸직 판관~새로 판관을 겸한 읍장직 괄호 안에서 교체 장면 등장, 겸직 순서로 두 사람 구분한 것 놓침)
”겸직 순서가 중요 ㅋㅋㅋ“

-읍장 겸직 판관은?
읍장 죽고 그 아들 판관 죽으면서 황토고갯집 외동아들 ‘큰 형장 나으리’에게 읍사를 부탁함. ‘죽음의 한 연구’에서 육조와의 씨름에서 지고 나서 육조를 형님으로 모심.별세한 읍장 손녀와 강제 혼인, 육조 유복녀 유산하게 만들고 죽음.

-판관 겸직 읍장은?
읍장 겸직 판관이 큰 형장 지기였을 때부터 친구, 과거 큰 형장 문지기(3223쪽) ‘지혜의 주머니’, 심복이었던 자. 권좌 공백기의 그의 권력 승계?탈취?는 읍장 겸직 판관 실종 및 사망 확인되는 3310쪽 부터 3312쪽까지 다 나옴…
촛불중 옛 친구, 촛불중에게 형벌을 내리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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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2권 말미에 드디어 패션 오브 촛불중이 시작되었다. 새우 배 따면서 내가 언젠가 이 새우가 될지도…한 것이, 촛불중이 판관 겸직 읍장한테 형벌을 받고 죄수가 되면서 자꾸만 육조를 처형하던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육조는 사람들이 제법 단죄를 끄덕일 만한 짓을 저지르긴 했다. 존자스님이랑 애꾸스님 둘이나 원샷 투킬로 죽여버렸으니… 촛불중은 육조의 눈에 비상 섞인 검은 초로 촛농을 뒤덮어 시력을 앗아가고, 육조의 바람대로 나무 위에 매달아 생명을 거둔다. 그런데 칠조의 죄목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이유도 그랬고, 사실 순교하고 희생되는 사람에게 붙는 죄목이란, 이유란, 상관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저들은 이미 죽이기로 마음 먹었고, 죽을 이는 죽어도 별 수 없다, 죽음도 불사한다, 뭐 이런 상태로 보였다. 판관겸읍장은 칠조의 발바닥을 달군 쇠로 지져버리고, 고, 해, 두 글자 새기고 신발 속에 썩어가게 만든다. 그 순간마다 촛불중은 육조의 수난을 떠올리고, 읽는 사람도 저 정도 고난이면, 촛불중도 가엾네,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조금 화가 났다. 이새끼의 진짜 죄는 죽음의 한 연구에서 수도부였던 보살 같은 비구니 스님을 찢어발기고 강간하고 오줌까지 뿌려 결국 죽게 만든 게 아닌가… 와 그런데 그 수도부 스님은 칠조어론에서 진짜 손톱만큼도 회자되지 않는다. 초대 읍장의 또다른 손녀 겸 수도부가 된 이는 지독하게 살아남아 짐승성 드러내는 인물로 계속 나오긴 하지만, 하여간에 똑같이 죽었어도 나무에 매달린 육조는 여전히 모두가 그리워하고 숭배하는 대상이고 보살 같은 비구니는 다 잊어버렸어… 이 부분은 돌아가신 작가님께 매우매우 유감인 부분이고…

흥미로운 부분은, 그 사이 읽은 진화심리학, 문화인류학이랑 비슷한 이야기였는데, 큰형장이 판관겸읍장의 실험적 통치(?)에 따라 잠시 자유 섹스존(?)같은 게 되었을 때, 여자 수인들은 범성애자 마냥 잘 적응해서 잘 지냈는데 남자 수인 및 형리들은 다 빙구마냥 집착부리고 사달나고 뭐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들이 글이라도 배우면 지들은 생리대 빨래나 해야 되는 찌질이로 전락하고 그나마 빨래도 제대로 못하는 빙충이들이다… 이런 주장이 등장했다. 끄덕끄덕 하다가 갑자기 1권에서 좀 웃겼던 장면이 생각났다. 왠 노인네가 독룡한테 고통받는 마을 와서 사람들한테 가르침? 훈수? 이런거 두다가 아무 여자나 술 따라 봐라, 그런데 그럴 만한 사람이 없어서 마을 지도자의 부인인 할머니가 와서 술을 따라주며 조곤조곤 달랬다. 거기다 대고 노인네가 급발진하며 막 상스러운 소리 지껄이니 내내 찌그러져 있던 마을 남자 사람들이 그 모욕에 다들 열이 받아서 노인네를 죽일 기세가 되었다. 그러자 노인네가 이게 다 너희들의 분노를 끌어 올리기 위한 책략이지, 이러고 할머니한테 예 갖추고 자리 물러나게 하는 장면 ㅋㅋㅋㅋ뭔 피씨방에서 전원 내리는 분노 실험 장면도 아니고 그냥 개웃긴 장면…왜 갑자기 뒤늦게 생각남…

그리고 마음이 있다, 없다, 마음 꺼내 봐, 하는 장면은 직전에 읽은 시에서도 자꾸 어른거리던 이야기라 많은 책들은 시간 공간 장르 넘나들며 통하는가…싶었다.

하여간에 이 여름에 남들은 마동석 월드와 범죄 도시에 빠져 있을 때 난 박상륭 월드와 막장 촌락 유리에 빠져 있고… 칠조어론 다 보면 다시 수학 하기로 했는데 왜 벌써 절반이나 봤어… 이제는 좀 쉬엄쉬엄 딴 책 먼저 보고 천천히 보기로 한다… 촛불스님은 좀 더 아프다 천천히 죽어도 되요… 스님도 발이 아프군요… 제 발목은 많이 나았답니다… 폐동맥도 잘 낫는 중이랍니다… 먼저 가 계시면 천천히 따라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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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6-27 0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쉽지 않을 것 같은 소설이네요 박상륭 작가 이름은 알아도 소설이 어려워 보여서 읽어 본 건 없어요 박상륭 작가 소설 좋아하는 사람은 재미있게 보겠지요


희선

반유행열반인 2023-06-27 09:48   좋아요 0 | URL
읽을 땐 어려운데 읽다보면 재미도 있고 성취감(?)도 있고 중독성도 있고 그렇더라구요 ㅋㅋㅋ아직 작가 작품 안 읽은 게 많아서 좋아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