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없는 기분
구정인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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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0 구정인.

연 끊자는 아버지와 안 본지 이 년 후, 혜진은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가 고독사하셨다. 사후 몇 주만에 발견이 되었다. 유품정리 및 청소업체를 섭외한다. 사시던 집과 건네받은 유품에서 젓갈 냄새 같은 시취가 난다. 장례를 치른다. 상속포기를 한다. 슬프지도 화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기분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무기력에 빠져 이부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먹고 가족의 도움으로 조금씩 이겨나간다.

2007년에 집을 나왔으니까, 16년쯤 되었다. 나오고 몇 년간은 아빠가 우리를 찾아내서 해코지하는 건 아닐까 불안에 시달렸다. 집나오고 얼마 안 되어서 아빠는 자기가 요금을 내주던 휴대전화를 모조리 해지했는데, 또 새로 만든 내 번호를 어찌 알았는지, 심지어 아주 최근에는 엄마 번호도 어찌 알아내고 전화를 걸어와서 둘다 번호를 다시 바꿨다. 상습적으로 음주 운전 사고를 내던 아빠 뒤치닥거리를 해주던 지인 보험설계사 아저씨는 집 나오고 얼마 안 되었을 때 내게 전화를 걸어 타이르듯 말했다. 그래도 아버지인데, 연락도 하고 챙기기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술 먹고 폐차하고 입원하는 짓을 반복하는 사람 입원바라지를, 술 먹고 부인을 바닥에 거꾸로 메다 꽂고 말리는 자식 팔을 비틀어 멍투성이로 만들어 죽겠다 싶어 경찰 신고하고 응급실 거쳐 탈출한 마당에, 그래도 아버지, 그 말은 참 싫었다.
2010년에 우울증 진단을 받고 반 년 쯤 약을 먹었다. 3년 전 이맘쯤 이러저러해서 집을 나왔는데, 그 무렵인 6월쯤이 되면 많이 힘들다 하니까 의사는 단호하게 그런 거랑 병이랑 상관 없다고 했다. 부정적인 감정, 상태와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계절을 연관짓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고 정말 상관 없는 건지도 모르지만, 더워지기 시작한 6월 무렵이면 아빠 상태가 심해진 것도 사실이고 (아 사시사철 퍼마셨으니 아닐 수도ㅋㅋㅋ) 연애 중 6월에 이별한 적도 있고 대학 때도 6월에 방황을 제일 많이 했었단 말이다.
뭐 올해 6월은 그럭저럭 마음은 평안합니다. ㅎㅎㅎ몸도 평안에 가까워지는 중입니나. ㅎㅎㅎㅎ

아빠는 잠시 같이 살던 중국 동포 아줌마랑도 곧 헤어졌다는 소문을 들었으니, 아무래도 혼자 돌아가실 가능성이 높다. 저렇게 술을 먹고 사고를 여러 번 당하고도 매번 살아나는 걸 보고 주정뱅이 원조 할아버지는 아빠를 조상이 돌본다고 했다. 미친 조상놈들은 왜 술처먹고 가족한테 폭력 저지르는 자손을 보호하는 거야…나는 자손 아니냐…

내가 겪을 수도 있겠다 싶은 일이 만화로 그려진 걸 보니 조금 도움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만화 속 혜진은 아버지 사망 이후 우울증 겪었는데 나는 미리 겪었으니 괜찮지 않을까…나는 아빠 장례식도 안 가려고 했는데, 왠지 아빠가 나보다 오래 사는 거 아닌가 싶은 때도 많았는데, 이제는 왠만하면 내가 더 살아야 겠다 싶다. 하여간에 돌아가시면 장례식 가는 건 생각해보고 최소한 3일 정도는 축하파티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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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1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11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eagene 2023-06-13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토닥토닥...

반유행열반인 2023-06-13 21:12   좋아요 1 | URL
저는 이제는 괜찮습니다 ㅎㅎㅎ감사합니다!

은하수 2023-06-16 1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파티라셔서... 전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충분히 이해갑니다
친구 아버지 중에 그런 분 계셨는데 하도 시달려서 가신 후에 시원해 하더라구요
지금은 괜찮으셔야죠 앞으로도요^^

반유행열반인 2023-06-16 14:0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애도든 축하든 상황과 형편에 맞게 하면 되겠죠 ㅋㅋㅋ의례란 거 일률적으로 할 필요는 없겠다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