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문학동네 시인선 187
안미옥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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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6 안미옥.


 저는 제대로 보고 싶어요.


 작년 6월 수능 대비 평가원 모의고사에는 비타민K와 혈액응고에 관한 독서 지문이 출제되었다. 모의고사를 볼 때도, 나중에 기출 복습을 할 때도, 아니, 고3이 항응고제 기전이랑 종류까지 알아야 해? 했는데. 고3을 위한 게 아니었다. 일 년 뒤 나를 위한 것이었지. 내가 먹는 항응고제는 출제된 와파린 헤파린 같이 비타민K와 영향을 주고 받는 게 아닌 아픽사반이라는 신약이었다. 그래서 식이제한도 없고 그냥 일주일 동안 2알씩 하루 2회, 먹다가 이후로는 주욱 1알씩 하루 2회, 그게 내 치료의 전부이다. 


수험생들아 2306 평가원 독서 지문은 나중에 혈전증이 생기면 조금은 도움이 된단다


 열이틀 약을 먹으니 동맥에 혈전은 잘 녹고 있는가 보다. 산소포화도는 95% 이하로 가끔 떨어지던 게 이제는 99%를 찍도록 올라갔다. 조금만 움직여도 분당 100 넘는 빈맥이 되고 눕기만 해도 가쁘던 숨은 이제 왠만큼 움직여도 괜찮고 맥박 수도 점점 줄어들면서 안정화 되는 느낌이었다. 2년 전에 백신 맞고 심장이 이상해, 하면서 샀던 미밴드랑 코로나 때 곁의 사람 회사에서 보내준 산소포화도 측정기가 이제서야 제대로 쓰이고 있다. 


 많은 것들이 아플 때를 대비해 미리 준비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왜 없는 게 없냐…

아이폰 건강 메뉴에는 투약, 이라는 기능이 있다. 약 빼먹으면 치명적인(?)이들에게 유용하겠다

앱 알림을 해 놓고도 이제는 나새끼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날짜랑 모닝, 나이트, 이렇게 표시를 해 놓고 이중 확인을 한다. 


 이틀 전에는 책상에 앉아 책 좀 봤다고 다친 발목이 다시 부었다. 조금 겁이 나서 어저께는 텔레비전 앞 쇼파에 발받치는 쇼파에 다리를 펴 놓고…드라마를 열두 편이나 봤다. 내가 드라마를 얼마나 안 보냐면…섹스앤더시티 후속작 보기 전 마지막 본 드라마가…2년 전 부부의 세계ㅋㅋㅋ 그전에는 응답하라 1988 그것도 완결되고 한참 뒤…그전에는 태교용으로 덱스터(미친 ㅋㅋㅋ)…

 집에는 넷플릭스고 디즈니고 뭐고 구독하는 게 없는데,  곁의 사람이 추리게임 예능 본다고 모바일로 신청해둔 OTT가 티비에도 연결되어 있어서 그걸로 섹스앤더시티 리부트를 신나게 봤다. 그러고나서 뒤져보니 노멀피플도 있었다. 오, 그래서 어제 노멀피플 두 편을 보고 괜히 메리앤에 빙의하고…나온지 20년도 넘은 섹스앤더시티 시즌1을 어제 오늘 걸쳐 정주행, 시즌2도 1화까지 봤다. 일단 캐리와 맨해튼친구들이 나보다 젊었던 시절이 나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시즌1은 딱 한 번 봤어서 다시 보는데도 처음 보는 거 같아서 또 신기하고, 시즌2는 또 너무 많이 봤는지 거의 20년 만에 보는데도 장면이랑 인물이랑 대사랑 확 다 살아나서 또 신기했다. 역시 복습의 중요성… 한 번 본 건 기억 안 나지만 두 번 이상 본 건 장기기억에 박힌다.

챗지피티는 정서적인 대화도 가능하다. 엉터리 지식인 흉내만 내는 줄 알았는데 내가 몇 마디 나눠보고 넌 이과가 아니라 문과였구나, 했더니 자긴 융합 인재라고 전공 나누는 게 무의미하다고 깝침…야 너 보니까 문과야…



 친구는 내가 발목 다친 걸로는 어림도 없다가 폐동맥 하나쯤 막혀야 스스로를 쉬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봤던 사람 중 자신에게 제일 관대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다. 나도 인정했다. 그러니까 책상머리와 거기서 만나는 수학과 책은 건강에 유해한데, 드라마는 글쎄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종일 티비 보고 짧은 드라마라 한 화당 20분이니까 그거 볼 때마다 조금씩 움직여주고 또 보고 했더니…다음 날 다리 부종은 사라지고 맥박은 더 떨어지고 하여간에 낫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ㅋㅋㅋ 그래서 응급실 가기 전 마지막으로 마셨던 드립 커피를 열이틀만에 다시 내려 먹었다. 심박동 걱정된다고 의사도 별 소리 안 한 걸 곁의 사람이 먹지 마라 했는데 에이 이제 괜찮아, 혈전 잘 녹고 있는 듯 ㅋㅋ 하면서 몰래 두 잔 마셨다. 그전에는 쟁여 놓고 잊어버렸던 알라딘 디카페인 드립백이랑 디카페인 캡슐을 마셨다. 오늘 예가체프랑 유기농 콜롬비아 오랜만에 먹어 보니…아 커피도 마약인 것 같다. 향 좋은 콩 태운 물이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나 핸드드립을 잘하나 봐…


 그러니까 안미옥의 시집은 조금 운이 없었다. 장바구니에 제일 먼저 빨갛게 담겨 있었는데, 양옆의 퍼랭이 시집이 선수를 쳤다. 그러고나서 퍼랭이 시집과 빨간 시집 모두 전자도서관에 최근 입성하였다. ㅋㅋㅋㅋ 안 살 것 같다 했더니 진짜 안 사게 됨…

 그리고 20년 전 드라마랑 신간 시집이랑 싸우면 누가 이기게요. 드라마가 이깁니다… 전원일기는 못 참지…


 눈은 글자를 따라갔지만, 나에게는 어려운 시집이었다.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지만 무슨 말인지 나는 이해하지도 느끼지도 못해서 나는 보고 있지만 제대로 보고 있지 않구나, 싶었다. 꿈에서 옥자 들어가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보았다. 너도 나도 옥이이지만 글씨가 같다고 같거나 닮은 건 아니었다. 나는 아무래도 개빻은 변태 시인이나 게이 시인이나 세기말 퇴폐미 뿜뿜하는 시인들의 시를 좋아하는 것 같다. 너무 조심스러워도, 너무 서정적이어도 저는 주파수를 잘 못 맞춥니다. 


 그래서 다음 읽을 시집은 레알 변태같은 표지를 가진 기욤 아폴리네르 시집이 되시겠다. ㅋㅋㅋㅋㅋㅋ


+밑줄 긋기


-가끔은 좋아하는 것을 멀리 던진다

  던져서 떨어지면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떨어질 수 없는 곳까지 던져보려고


  어둠을 접어서 옆에 두면 잠이 잘 온다

  나는 작게 더 작게 접는다

  접을 수 없을 때까지 접는다

(‘공의 산책’ 중)


-언제 나을지 알 수가 없는데

  어느 날엔가 나을 것 같다  


  추위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할 때처럼

  한여름에 느닷없이


  네가 말했던 절반의 문장에 대하여

  얼음처럼 부서지는 일들에 대하여


  십이월에 태어난 사람들은 멍이 잘 든대

  한 연구자가 말했다


  이젠 모든 걸

  십이월에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될까

(‘근처’ 중. 나도 십이월에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될까)


-모두 말해야 정확하게 말한 것 같다

  그러나 정확하지 않다

  정확하지 않다고까지 말해야 더 정확한 것 같다

(‘선물’중)


-우리는 버려진 것을 보고도 버려진 것인지 몰라요. 누군가 두고 갔다고 생각해요. 비참과 희망은 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시 이야기만 했는데 생활을 알게 되는 것처럼요. 식물의 웃자란 줄기를 보며 잘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그러나 점심에 보면 다 달라 보여요. 점심에 만나요. 환해져요.

(‘만나서 시쓰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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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3-05-26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집 어렵더라구요 ㅎㅎ
시집은 전반적으로 다 어려운 듯;;;
열반인님 점점 완치로 다가가시는 것 같아 기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5-26 17:30   좋아요 2 | URL
드라마 보고 책 보고 공부 안 하고 빈둥빈둥 하다보면 어느 날엔가 나을 것 같습니다 ㅎㅎ
역시 저만 어려운 거 아니고 예진님이 어렵다 하시면 어려운 시집이 맞다!!! ㅋㅋㅋ

미미 2023-05-26 20: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태교용 덱스터에 빵터졌습니다.ㅋㅋㅋ
저도 최근에 드라마 많이 봤어요. 국적을 넘나들며...
열반인님. 얼른 더 좋아지시길!!

반유행열반인 2023-05-27 00:16   좋아요 3 | URL
반가운 미미님 ㅎㅎ저때 영화 시리즈 하나도 다시 봤는데 에일리언 1,2,3,4, 프로메테우스, 커버넌트 전부요 ㅎㅎ지금 그 에일리언 뱃속에서 기어나와 잘 자고 있습니디…더 좋아지길 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라마 재밌게 더 보다가 서재는 천천히 돌아오셔요 ㅎㅎㅎ

2023-05-31 2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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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31 22: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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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31 22: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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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31 23: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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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31 23: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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