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남자가 숨어있다 - 배수아의 아름다운 몸 이야기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20230315 배수아.

배수아가 쓴 소설은 ‘뱀과 물’을 읽었고, 어려웠다. 그가 번역한 리스펙토르의 ‘달걀과 닭’이랑 ‘G.H.에 따른 수난’을 읽었는데, 둘다 어렵다 못해 무시무시했다. 배수아의 신간 에세이 소식이 종종 올라오던데, 나는 헌책으로 모은 소설이 두 권, 에세이가 한 권 꽂혀 있더라. 새 거 읽기 전에 그거나 읽자 하고 에세이를 꺼냈다.
소설이나 번역소설 모두 무시무시한 문장을 자랑했는데, 나보다 이십살 쯤 많은 배수아가 이십여 년 전, 내 또래이던 (아 나 이제 마흔이지…) 서른 중반 무렵 쓴 에세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몸과 욕망과 인간성과 죽음 등등을 엮은 짤막한 글들이 여럿 실려 있었다. 지금 읽기에는 너무 담담하고 새로울 것도 없게, 그 시간 동안 몸에 대한 담론은 넘치다 못해 식상해진 면도 있었다. 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어떤 육체 관계, 신체적 상호작용은 사람들이 거부하거나 비난하거나 기이한 취급을 한다. 여전히 몸에 대한 집착은 멈추지 않는다. 다른 극장에선 다 내린 영화를 보러 신사동에 갔었는데, 주변 건물이 다 성형외과라 조금 놀랐었다. 열살 쯤 어린 직장 동료에게 살이 많이 빠졌다고 하자 진지하게 바프 준비 중이거든요, 해서 물음표 백만 개 머리 위에 띄웠지만 바로 묻지 않고 집에 와서 검색을 했다. 운동과 식단 조절로 체지방 줄이고 근육량 늘려서 가장 아름다운 몸 상태로 기념 촬영을 남기는 일, 그 의식을 위해 메이크업과 촬영 스튜디오를 잡고 적당한 노출의 스포츠웨어를 구입하는 일, 그걸 바디프로필이라고 부른다는 게 생소했다. 와 나 옛날 사람이야… 화장도 안 하고 미용실도 일년에 한 두번 겨우 가고 몸에 초연한 듯 굴지만, 독서 레퍼토리 보면 주기적으로 몸에 관한 이런 저런 책을 읽는 나야…검색해서 나오는 은밀한 몸 이라는 책은 언제 본 거야…
앵그르의 바이올린 사진은 한 번쯤 본 적 있을, 만 레이의 1920-30년대 작품 사진이 글 사이마다 수록되어 있었다. 책 종이질도 요즘에는 잘 안 쓰는 반질반질한 재질이고 2000년도라는 게 이렇게 어색할 만큼 옛날이 되었나, 그때 나는 뭐했나, 고1이라서 공부해야 했는데 스쿨밴드하고 채팅하고 연애에 실패해서 눈물 줄줄 짜고 그랬었지… 그때도 몸은 중요했겠지… 그냥 가볍고 너무 재미있지 않고 그래서 너무 오래 붙들고 있지 않을 책 밤마다 공부 끝나고 머리 식힐려고 본다고 본 건데 뭐 소임을 다 했다… 재미없었다는 소리다… 정작 읽고 싶은 책들은 이상하게 자꾸 미루고 아끼고 뒷전이다… 그러다가 산 책 반도 못 보고 죽을지도 몰라… 나말고 그런 사람 많은 동네 내가 알지…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수하 2023-03-16 0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동네… 저도 알 것 같네요 ^^

반유행열반인 2023-03-16 00:29   좋아요 2 | URL
그 동네…혹시 저 말고 못 읽고 죽는 책 아까워하시는 분 또 계신지요? ㅎㅎㅎ

건수하 2023-03-16 00:30   좋아요 2 | URL
많을 것 같아요 ㅋㅋ 저는 죽기 전에 눈 나빠져 못 읽을까 걱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