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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큰 아이 - 박목월 동화 ㅣ 빨간우체통 1
박목월 지음, 원혜영 그림 / 이가서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20221223 박목월.
어릴 때, 어리다기보다 그냥 아기였을 때, 엄마가 국민서관에서 나온 366일 이야기 동화 전집을 사 주셨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책 사는 과정도 놀라웠다. 그때는 어린이책을 팔러 방문판매원이 집에 찾아 왔다고 한다. 12권의 책에 날짜별로 하루 하나 동화나 동시가 있고, 윤달 2월의 29일까지 꼭 맞게 366개 이야기를 읽어주는 테이프까지, 엄마 보기에 책의 만듦새가 정말 탐나게 좋았단다. 가격이 형편상 만만치 않았지만, 엄마는 결국 아빠 허락도 받지 않고 그 자리에서 지르기로 한다. 그런데 책값을 지불할 돈이 없었고 아직 아기인 나와 집에 있으니 돈을 구하러 나갈 수도 없었다. 판매원이 그럼 대신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온다 했고, 엄마는 통장과 도장을 맡기고, 책과 자기 짐을 둔 판매원은 은행에 가서 돈을 출금해다가 들고 집에 와서 엄마에게 통장을 확인시켜주고 책값을 챙겨 돌아간다.
…헐. 신뢰와 평화의 대한민국. 1980년대.
아빠는 새로 들인 책을 보고 길길이 날뛰고 미친놈처럼 화를 내고 했지만, 그 책은 아직 걷지도 못하던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글 모를 땐 테이프로 듣고, 글을 알고 나서는 활자 읽는 재미로 다시 또 아는 이야기를 읽고, 읽고 읽다가 책이 다 찢어지고 너덜너덜해진 걸 장판테이프로 붙이고, 색연필로 낙서도 하고, 그러다가 더 어린 사촌 동생들 물려줄 때까지 정말 마르고 닳도록 읽었다.
그래서 아직도 몇몇 이야기는 기억에 남고 그냥 그 책 안 줘버렸으면 내 애들도 읽었을까, 다 찢어져서 못 봤을까, 한다.
오늘 그 전집에 실린 동화 하나가 생각나서 도서관 찾아보니 박목월 선생이 쓴 동화만 모아둔 책이 있어 빌려 금세 보았다. 이 책은 내가 사진 않고 국민학교 저학년 때 학급문고에 있던 걸 빌려 읽었던 모양이다. 이야기 대부분이 생각났고, 366일 이야기에도 나무 스케이트나 호박말이나 연날리는 이야기 같은 게 실려 있던 것 같다.
나는 그 좋다는 문장들 꾸역꾸역 눈으로 삼키고도 개똥같이 지저분한 말과 글만 맨날 내뱉어 놓는데, 와, 이 짤막한 동화들 모은 작은 책의 이야기들은 곱기도 고왔다. 시인이 쓴 동화라 그런가 이야기인데 시 같은 느낌이었다. 기분은 맑아지는데 나란 인간 자체가 정화되진 않겠지만… 읽었던 이야기들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좋았다.
궁금한 길에 366일 이야기 검색했더니… 누군가 일부나마 동화책과 테이프 녹음된 낭독을 유튜브에 올려놓았다!!! 블로그에 책의 목차와 페이지 일부를 올려둔 사람도 있었다.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5월 어린이날 동화인 과자로 만든 집을 하나 들어보았다. 햇님께 어린이날 선물로 과자집을 받은 아이가 피아노 건반 모양 과자 하나 뚝 떼어먹을 때마다 음마다 다른 맛이 났다는 부분을 정말 좋아했는데 그 이야기는 아직 남아 있었다. 어린이날은 과자를 선물로 받는 날이 아니란다. 어린이날은 책 선물 받는 날이었죠. 원하면 매일매일 책 선물 받을 수 있으니 나는 이제 매일매일 어린이날을 살고 있다.
+밑줄 긋기
-‘이 일기책은 하루에 꼭 한 장씩 넘겨야 합니다. 하루를 거르고 이튿날 두 장을 넘길 수는 없습니다. 만일 그러려면, 아무리 넘기려 해도 넘겨지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이 일기책은 날마다 계속해 쓰면 겉장 빛깔이 철따라 변한답니다. 즉 겨울에는 하양, 봄에는 분홍, 여름에는 초록, 가을에는 황금빛으로. (‘이상한 일기책’중)
-나야의 두 귀가 갑자기 쭉 뻗으며 나야는 토끼가 되어 버렸습니다. 가야는 깜짝 놀랐습니다. 가야의 귀도 쭉 뻗고 있었습니다. “큰일났군. 토끼가 됐네.“
그러나 가야도, 동생 나야도 즐겁기만 하였습니다. 토끼가 되었기 때문에 더욱 두 귀를 쫑긋거리며 힘차게 깡총깡총 뛰어갔습니다. (‘심부름’중)
-갈매기는 툭툭 털고 일어나서 마루로 올라가 빠끔히 열려 있는 교실 문으로 들어섰습니다. 분필을 물고 칠판에 글씨를 쓰다가 분필 가루만 잔뜩 묻혔스니다. 아기 갈매기는 어항을 보았습니다. 금붕어 두 마리가 나를 좀 보라는 듯, 입을 뻐끔거리며 꼬리를 내저었습니다. “가엾어라! 저 금붕어는 집에 갇히고, 방에 갇히고, 어항에 갇히고……, 그러니 모두 몇 번 갇힌 셈이야?” 아기 갈매기는 겁이 더럭 났습니다. “나도 잡혔다간 가두어 두고 볼는지 몰라.” 아기 갈매기는 헐레벌떡 운동장으로 달려나왔습니다. (‘갈매기’ 중)
-호박 덩굴에서 떨어진 호박을 주워, 나뭇가지로 발을 만듭니다. 그리고 강아지풀을 뜯어다가 꼬리를 만듭니다. 호박말은 뛰지를 못합니다. 그래도 노마와 쌍가마는 호박말을 나란히 세워 놓고 경주를 시킵니다.(‘노마와 호박말’중)
+과자로 만든 집-강준영 지음(박목월 선생이 지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반가워서 링크 퍼옴 ㅋㅋㅋㅋ)
https://m.youtube.com/watch?v=tLNe_ivke_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