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한 연구 - 상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1
박상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0221212 박상륭.

어느 이웃님이 박상륭 전집 모셔둔 사진을 보니 보기에 좋았다. 집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20년 전 나온 걸 모셔두고 있다. 스물에서 스물하나 사이에 가출하면서 컴퓨터는 못 들고 나오고 책 몇 권은 들고 나온 짐 속에 이 책이 끼어 있었다. 덩그런 원룸에서 엄마랑 나는 할 일이 없어 책이나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이 진짜 끝내줬다. 그러니까, 아직 만으로 십 대를 벗어나지 못한 내가 환장하는 소설들은 뭔가, 있어 보이는 척 이런저런 철학적 물음과 저 나름의 답변을 찾는 듯, 하면서 사실 주인공이 하는 짓이라곤 미친놈처럼 섹스하는 게 거의 다인 이야기들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백년의 고독은 몇 번을 읽을 동안 죽음의 한 연구는 그냥 잊혀 왔다. 봐야지, 다시 봐야지 하면서도.

그러다 결국에는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어 있지. 종이책 펼치기 귀찮아서 서울시 도서관 전자책을 빌렸는데, 붙들고 읽는데, 이게 왜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지. 그래 이거다. 이것이 내 취향. 그런데 서울시 도서관 전자책 뷰어는 다시 리뉴얼 했다고 하는데 원래도 개쓰레기 같더니 이제는 진짜 못쓸 수준이 되었다. 막 튕기고, 글자 깨지고, 나는 제9일까지 봤으니 이제 제10일 차례인데 막 다짜고짜 제15일이 나오는 것이다… 참고 보다 못 봐주겠어서 다시 책꽂이에서 종이책을 찾았다. 놀랄 만큼 책이 말짱하다. 볕드는 층으로 이사오는 바람에 1년 만에 책등들이 좀 바래기는 했지만.

이 책 떠올리면 기억 속에선 시님이 겁나 섹스만 하고 돌팔이중놈…했는데 역시나 시작부터 사람 죽고, 이 시님 발가벗고 마을 들어가자마자 비구니 엉덩이 스팽킹(…)하다가 폭풍섹스(…)하다가 사람 막 죽이고, 고양이도 죽이고, 하여간에 미친 gta같은 스님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시님, 저도 마른 늪에서 고기 낚는 중인데 그거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짓인데 시님도 그래서 비 오고 번개 치는 날 미친놈마냥 난리 버거지를 치던데 딱 봐도 보살 같은 임자 스님 버리고 장로님 댁 손녀랑 눈 맞을 분위기인데 야이 나쁜 새끼야… 불쌍한 보살 스님… 저런 새끼를 뭐 예쁘다고 밥해주고 안아주고 기다리고 그런대요…

나는 더 재미있을, 시님은 더 괴로워질 하권이 기다리고 있다… 수학 문제 많이 풀면 상으로 나놈한테 읽게 해주기로 한다… 아 물고기 필요 없고 재미난 책이면 그저 족한 것을… 난 왜… 이 광막하고 메마른 곳에서…

+밑줄 긋기
-“뜨거운 여름 한낮, 모두 서늘한 그늘에 누워 더위를 피하는 그럴 때라도 말이지, 수확을 기다리고 들이 누렇게 익은 저 정밀스런 가을 석양판에라도 말이지, 북풍이 으르렁거리고 눈발이 세상을 세차게 휘몰아치는 그런 캄캄한 밤에라도 말이지, 그리고 여보시구랴, 나는 말이지 모든 봄날마다, 들을 그저 목선모양 흘러가는 상여밖에 본 것이 없는 듯한데 말이지, 그런 상여들이 혼을 가시덤불에 조금씩 조금씩 찢어 붙여놓고 흘러간 그런 고단스런 봄날 길에라도 말이지, 글쎄 나는 그저 걷는 것이란 말이지.“(11)

-젠장맞을 늙은네는, 흙벽 절간 한 채를 오장육부에 처넣어놓고 밖으로 다니며, 그것을 찾으려 했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내가 늙어 어느녘에 죽었구나.(24)

-그럼에도 하나의 무서운 유혹을 버릴 수가 없는데, 그것은, 한번 마음만 먹은 것으로써 늪을 내려다보면, 거기 물이 넘치고, 고기가 빽빽히 유영하는, 그래서 고기를 낚아내는 일이 매찰나가능스러울, 저 가능성에의 집념이다. 그렇더라도 수면을 떠난 고기의 자연 소멸을 어떻게도 방지할 수 없는 한, 꾀는 그것이 어떻게 작은 것이라도, 내가 바랄 바가 못되는 것이다.(148-149)

-지붕의 구멍들을 통해, 하늘로부터 푸른 빛의 동앗줄이 몇 가닥 흘러내려져 있었지만, 몇 마리의 거미를 빼놓고, 혼령 같은 것은 하나도 매달려 있지는 않은 걸로 보아서, 복음이 좀 뒤늦게 내린 것 같았다. 복음도 광년 같은 것이어서, 이천 년 전쯤에 한번 반짝 했던 빛이, 이천 년 다 지나서야 보여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한 빛의 줄기는, 일종의 희망으로서 쏠려드는 듯이도 보였으나, 어떤 종류의 희망은 때로, 고문 같은 것으로 변해져 있기도 한다. 완전히 절망할 수 없을 때 고통이 따른다. 삶의 경우만 하더라도, 영혼에의 희망에 의해서 그것은 학대당하고, 비참하며, 구원에의 확신이 없을 때, 죽음이 가장 큰 두려움으로 화한다. 자기가 구원될 것이라는 확신은 그러나 구주 자신도 가질 수 없던 것이어서, 어찌 자기를 버리느냐고 깊이 탄식하며 죽어갔던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마 아닐지도 모르긴 하다. 어쨌든, 지붕으로부터 쏟아져내리는 몇 줄기의 빛이 없었다면, 이 안의 어둠은 차라리 아늑한 것일 수도 있었을 것이며, 황폐나 몰락이 슬픈 것으로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극락이란 저승에 향해서 고문으로 던져진 것이다. (271-272)

-“그라면 전에는, 그림자 없던 짐성도 있었다는 고 말배끼 더 되요이?”
“그 말씀이겠지요, 어쩄든 들어보시지요. 그래 그림자가 생겨서, 한쪽은 양지면 한쪽은 음지가 되고, 한쪽이 밝으면 다른 쪽은 어둡게 되어버린 것이지. 그건 겉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속까지도 그렇게 되었더라는 것이오. 한편으로는 흥겹고 기쁘면서도, 어쩐지 한편엔 근심이 자리잡고 있어, 괜스레 불안하고 초조하여 잠을 들 수가 없고, 어떤 땐 선한 마음이 들다가도, 어떤 떈 ‘에이 고놈 쥑이뿌릴 놈이여’하고 이가 갈려지기도 하더란 말입니다. 마음도 음양으로 나뉘어진 증거란 말이지.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는 사람들이 갑자기 죽기를 무서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오.”
“그라면 지금은, 미렉이며 상제며 모도 통세라도 가고 없단 요말이요?”
“그 말씀 잘하셨소. 그래서 그렇지, 듣기로는 한 이천 년 흘렀다고 합디다. 헌데, 워떤 하나님 하나가, 그 고양이와 싸워 한번 더 죽이려고 그 나무를 타고 그 밑으로 내려갔다고 합디다마는, 그 얘기까지 하려면 너무 길고, 그러니 이렇게 얘기해도 되겠습죠. 결국 모두 속에다 고양이 한 마리씩은 넣어서 기르고 산다는 말이지요.” (306-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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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12-13 0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재미있을거 같아요 ㅋ 박상륭 작가님은 처음들어봤는데 ㅎㅎ 딱 봐도 열반인님 스타일인듯 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12-13 09:22   좋아요 2 | URL
이 책이 박상륭 책 중에 쉬운 축이라 하더라구요. 인물들도 말투 다 다르게 입담 살아 있어서 개성이 분명하고… 제가 하는 고행 아니고 남이 고행하는 책은 하여간에 재미있습니다… ㅋㅋㅋㅋ

Falstaff 2022-12-13 17:42   좋아요 1 | URL
제가 읽어본 박상륭 가운데 제일 쉬웠던 건 단편집 열명길이었고요, 다음이 이 책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쉽게 접근을 허하지 않더라고요. 칠조어론, 아겔다마,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어쩌구 저쩌구 같은 건 아휴... 족탈불급이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12-13 18:37   좋아요 1 | URL
골드문트님 그래도 그 많은 걸 다 접해보신 것 아닙니까…연륜과 절륜과 수레바퀴 뱅뱅 구르신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ㅋㅋㅋ저는 집에 이 책이랑 잡설품만 갖췄는데 하권 읽고 또 언제 잡설품에 도전할지는 모르겠네요 ㅎㅎㅎㅎ

Yeagene 2022-12-13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작가님은 처음 들어봅니다.정말 세상은 넓고 작가님들도 많은데 열반인님은 이 분들을 어찌 아시는지..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2-12-13 14:41   좋아요 1 | URL
아마도 저희 어머니가 사둔 책이었을 거예요 ㅋㅋ저도 아는 작가가 많지 않고 책에서 책으로 연결되거나 북플에서 이웃님들에게 소개받은 작가가 꽤 많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