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맥도날드
한은형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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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4 한은형.

정동 거리.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맥도날드가 있던 그곳을 나는 평가원 가는 길로 기억한다. 삼청동 시절부터 정동빌딩에 있던 시기까지 평가원은 초임 박봉이던 나에게 적지 않은 부수입을 주었다. 수업 촬영 공개하고, 문항 개발하고, 교육과정 개정 참여하라면 하고, 인터뷰하고, 질문지 작성하고, 자문서 쓰고, 온갖 주제 연구에 참여, 협력하라고 연락이 오면 했다. 내 교과 담당 연구원들은 처음에는 대학 때 학부 수업 가르치던 선생님들, 조금 윗학번 선배들, 그러다가 같이 학교 다니던 선배들이나 동기까지, 점차 바뀌었다. 박사학위한 사람들이 대학에 교수 자리 날 때까지 연구하면서 대기타는 기관 느낌…
회의가 있는 날이면 조퇴하고 시청역이나 서대문역까지 갔다. 시청역에서 출발하면 덕수궁 돌담을 지나 미술관을 지나 온갖 브런치 카페들, 정동극장, 이화여고와 예원학교 지나 외관이 번뜩이는 건물로 들어갔다. 대사관도 입주해있고 이런저런 기관들이 있어서 엘리베이터가 여러 개 있었다. 회의가 끝나면 아래층 파스타집이나 주변 여러 음식점에서 내 돈 주고는 못 사 먹을 비싼 식사를 했다. 그거 가지고 뉴스에서 엄청 뭐라고 했지만… 그러고는 멀리 진천으로 이전한 뒤로 온라인 협력 몇 번 이후로 평가원은 안녕…했지만…
평가원 연구원들이 교과 연구하는 게 멋져 보여서, 그리고 첫 연구 협력 때 만난 대학 때 은사 겸 선배 겸 연구원님이 대학원에 꼭 진학하라고 하셔서 대학원에 갔다. 교수가 될 생각은 못 해보았고, 평가원 취업하면 좋겠다… 멋있음… 이랬는데 막상 대학원 가서 보니 내 전공 학문, 진짜 뭐 하자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음… 관심도 애정도 수업 들을수록 점점 말라버려서 석사조차 안 하고 그냥 수료만 하고 땡…

하여간에 그렇게 정동 드나들던 시절 일부와 겹친다. 텔레비전에 맥도날드 할머니가 나온 무렵이. 방송은 보지 못했지만, 인터넷 기사 여기저기에서 방송 화면 캡처 일부와 함께 할머니에 관해 다루었고 나도 기사를 보았으니 아마도 그 이름만은 기억을 하겠지.
실존 인물로 픽션을 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이 소설이 나온 걸 보고 궁금해서 사두었다. 레이디 맥베스, 하고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제목도 거기에 운이 맞게 레이디 맥도날드가 되었다. 모티프는 따왔더라도 픽션이니까 방송의 시기나 할머니의 생몰은 조금 조정이 되었다.

소설 거의 후반부 될 때까지도 읽기가 힘들었다. 일단 피디나 주변 관찰자들의 눈으로 뭔가 다른, 독특한, 신비한, 놀라운, 이렇게 경이롭게 그녀의 존재를 수식했지만 그게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거리의 사람들은 대개 이렇다,라는 편견과 선 긋기에 기반해서 그녀는 거기에 맞지 않는다, 하는 식이라. 인물의 개별성과 개성은 중요한 것이지만 그러기 위해서 다른 모든 누구들은 오히려 뭉뚱그려 너절하고 지저분한 하위의 것으로 취급하는 느낌이, 의도는 아니라도 그런 인식이 소설 내내 흐르고 있었다. 고귀한 늙은이와 냄새나고 염치없고 구질구질한 늙은이 양분…누군들 그렇게 되고 싶었겠냐고요…뭐 나도 별 수 없지…로 귀결되긴 하지만…

직장 다니던 시절을 가장 좋았던, 빛나던 때로 그리고, 그때 익힌 경험들로 그녀가 익히 알고, 즐길 줄 아는 호텔 식사와 호텔 사우나에 마지막으로 방문하는 장면들도 싫었다. 작가는 할머니에게 글로나마 가장 좋은 걸 대접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지. 글이니까 가능하고. (그런데 다 읽고 나중에 표지에 보니 실제로 취재진이 할머니를 모시고 호텔 레스토랑에 갔었다고 한다…) 그치만 그 장면 읽는 독자 기분은 생각 안 한 것 같다… 사십 년 가까이 살도록 고급 호텔 근처도 못 가본 사람이 대다수 아닌가요… 한 끼 먹으면 오십만 원 넘는 그런 식당… 한 달 치 장보기 비용인데요… 궁금했다. 작가는 그런 곳에 가보지 않고 상상해서 썼을까? 가봤겠지… 프렌치 먹는다고 해서 뭐 그런 음식이 있어? 했잖아… 저 어제저녁에 이탈리안 먹었어요… 냉동 피자로다가…

초반부는 김윤자가 워낙 홀로 지내다 보니 주로 그의 내면 독백 위주로 전개되고 거기에서 바깥세상에 대한 이런저런 소회를 푸는데, 젊은이들에 대한 생각, 가족관, 결혼관, 불평등 같은 것들, 그런데 그게 그 인물이 말하고 있다기 보다 할머니 껍질 빌려서 남이 말하는 것 같이 따로 노는 느낌이라 별로였다.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겪은 할머니라도 나름의 통찰이나 날카로운 시선 있을 수 있겠지만 그냥, 그런 훈계와 설파 위해 장치처럼 사용하는 느낌… 이것 역시 의도와 다른 것이겠지만 뭐 잘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십 년 전만 해도 노인들이 패스트푸드점이나 스타벅스 같은 커피전문점 내내 있는 게 신기한 일이었는지 몰라도,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우리 동네는 맥도날드가 없으니까… 몇 년 전에도 서울대입구역이랑 봉천역에 KFC에 가보면, 낮이고 저녁이고 어르신들로 가득 차 있었다. 커피가 저렴하고, 식사 시간 제외하면 젊은이들이 그리 많지 않고, 자리 널럴하고, 그래서 혼자 또는 여럿이 죽치고 앉아서 큰소리로 이야기 나누는 어르신이 요즘도 많이 있다. 주문한 음식을 건네는 일 하시는 분조차 어르신일 때도 있다. 그러니까 요즘 같으면 거기 할머니가 맨날 있다고 방송국 게시판에 제보하고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게 밤중이라도 뭐…

책을 다 보고 검색해 보니 실존 인물이던 맥도날드 할머니는 2013년 시설에서 돌아가신 모양이었다. 책 속에선 약 7년간으로 고달픈 기간을 줄여주었지만 실제로는 20년 가까이 거리 생활을 했다고도 하고… 빈곤과 불평등 문제, 복지 제도의 구멍, 1인 가구의 가장 피하고 싶은 미래, 여성으로 살다 늙다 죽는 일 등 보는 사람마다 하고 싶은 말, 바라보는 시선 다 다르겠지만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특별하게 전해진 남긴 말도 없다. 나름의 해석과 수식과 묘사를 덧붙이는 일이 픽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제약이 많다. 나쁜 평가는 애써 자제하게 되고 유가족이 있다면 동의와 명예훼손 같은 것도 신경 쓰게 될 것이고 그런 게 없다고 또 자기 마음대로 그려내면 양아치 같고 나름대로 최대한 조사하고 조심하고 애를 쓰겠지만 하물며 가상의 인물도 그렇게 해도 결국에는 누군가 다치고 그러는데. 이미 미디어로 사람들에게 덧씌워진 고정관념 선행 이미지도 극복하거나 혹은 절충해야 하고. 어려운 일이다.

소설 말미는 작가의 상상 비중이 더 높고, 그러니까 외국인의 도움을 받거나 시설 앞에서 쓰러지거나 하지 않고 깔끔해 보이고 고통이 길지 않은 죽음을 선사하고, 그전에 인물의 깨달음이나 인정, 회한 같은 게 차라리 내가 선호하는 진행 방향이라 (그러니까 나는 인물의 불행을 좋아하는 못된 새끼) 나쁘지 않았다. 그치만 그렇게 끝나니까 또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이 생각나고… 마츠코… 준코… 참 슬픈 인생… 나처럼 별로야 하는 놈들 있을까 봐 미리 불행 포르노 던지면서 신피디가 버럭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그거야 말로 되게 이중적으로 느껴졌다… 흥밋거리로 만들지 않으면서 세상에 알리고 관심을 끌겠다…라는 게 동시 달성 가능한 목표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에 읽을 때는 아이 별로야…하다가도 다 읽고 나니 생각이 많아져서 밤새 잠을 설쳤다. 그리고 자주 김윤자를, 레이디를 생각했다. 커피를 마셔서 그런가, 하다가 커피를 생각하고, 스타벅스를 생각하고, 맥도날드와 버거킹과 KFC와 도심의 노숙인들과 학교 다닐 때 학생회관을 배회하던 아저씨와 공부하다 미쳐버려 삭발하고 아무 데서나 옷을 벗던 어느 학생 등등을 생각하다 겨우 잠이 들었다.


+밑줄긋기
-그들은 다른 가능성들을 상상하지 못한다. 집이 어디라고 말하는 게 곤란할지도 모른다는 것, 남편이 처음부터 없을 수도 있다는 것,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자식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자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안부를 묻고 지내는 사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방식, 그러니까 흔히 평범하다고 일컬어지는 삶의 방식 말고는 잘 상상하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평범하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면서 말이다.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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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2-12-05 1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은 쓰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유족의 동의는 받았겠죠?

반유행열반인 2022-12-05 13:15   좋아요 2 | URL
여동생 한 분 계신 거 같던데 그러니 절차는 거쳤겠지요 ㅎㅎ 그러면 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scott 2022-12-05 13: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분 다큐에서 봤는데
가족의 문제가 있어서
나름 복잡하게 얽힌 사연들이 많더군요
열반인님 새내기 초임 시절
삼청동 정동 맛집 탐방
행복했던 시절 ^^

반유행열반인 2022-12-05 14:35   좋아요 2 | URL
저는 워낙 먹는 거 안 좋아하니까 회의 후 먹는 자리도 불편했어요. 밥 안 먹고 그냥 간다 그러면 막 먹고 가라고 연구원 선생님들이 붙드시고 ㅋㅋㅋ 그때는 너무너무 가난해서 별로 안 행복했어요. 지금이 제일 좋아요. (그러면서 아침부터 수학 풀기 싫어서 찔찔 짬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