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었다. 그러면 책도 안 들여다보고 목도 어깨도 덜 아플 테니까. 목표지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폴바셋으로 하고, 1.7킬로미터(이게 가깝니…)라고 하니까 왕복하면 거리도 딱 적당, 가서 카페라떼 한 잔, 그런데 어제보다 9.9도 낮습니다…라고 해서 그냥 포기했다. 언제부터 카페에서 커피 사 먹었다고… 저지방고칼슘 우유를 전자렌지에 뜨겁게 데워서 스타벅스 이탈리안 로스트? 뭐 그런 캡슐을 내려서 한모금 했더니…세상 맛없는 카페라떼였다…사양하고 싶은 맛엔 사양벌꿀을…웃기지도 않는 아재 드립을 치며 맛없다 맛없다 하고 커피를 마셨다.
시험 끝나면 세상 영화 다 조질 것처럼 굴더니 지난 주 극장 가서 헤어질 결심 한 번 더 보고는 그냥 책만 조졌다. 걷는 대신 영화를 보자! 아이패드 저장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는 버닝을 보기로 했다. 보려고 결심한 지 4년 만에 보았다. 영화는 좋았다. 유아인 글은 안 좋아하는데 연기는 좋아한다. 대놓고 자본주의, 여기는 부, 여기는 빈, 사랑 하나 남은 사람한테 그거 하나마저 앗아가는 게 너무 슬펐다. 원래 줬다 뺏는 게 제일 잔인하다. 차라리 너를 몰랐더라면. 흑흑.
영화를 보고나니까 하루키가 썼다는 원작 헛간을 태우다, 도 다시 읽고 싶어서 읽었다. 놀랍게도 내가 이걸 읽었다고? 할 정도로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짧은 소설 가지고 두 시간 반짜리 영화로 재해석 한 쪽이 조금 더 좋았다. 자본주의 돼지의 심장에 강렬한 베이스 대신 죽창을 퍽퍽퍽, 타보지도 못한 슈퍼카엔 스러져간 비닐하우스들에 대한 복수의 불꽃을 활활활, 하는 건 조금 더 어렸을 때라면 열광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그렇다. 그렇다고 더 나은 매조지도 모르겠음…그냥 참 잘했어요…
하루키는 십대인지 이십대인지 쯤에 상실의 시대 읽고 삼사년 전에 반딧불이 읽고 왜 팬이 많은 거지 갸우뚱…했었다. 나랑은 안 맞나 봐…하고. 오늘 영화 보고 다시 한 편 보니 뭔가 잘 쓰는 거 같긴 한데, 역시나 아저씨 자아는 꼴보기 싫어서, 헛간 찾아 달리기나 했지 퍽퍽퍽, 활활활, 이건 원작에 없어서 예전에 이웃이 말하던 빵가게 재습격을 같이 꺼내놨다가, 김이 빠져 나중에 읽기로 하고 조금 가까운 곳에 꽂아만 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