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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나의 임신중지 이야기 ㅣ 진실의 그래픽 3
오드 메르미오 지음, 이민경 옮김 / 롤러코스터 / 2020년 11월
평점 :
-20211120 오드 메르미오.
저자가 자신의 임신중지 경험과 임신중지를 맡아 여러 환자를 지켜본 의사 마르탱의 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남긴 책이었다. 내가 아이를 낳은 해에 오드는 아이를 낳지 않기를 선택하고 힘들어했다. 나는 내가 아이를 포기하면 견딜 수 없을 사람인 걸 알았다. 그래서 아이를 지우자는 곁의 사람과 엄마의 말을 물리치고 낳겠다고 했다. 그건 그거대로 힘든 일이었다. 내 고집으로 둘, 아니 세 사람의 인생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갔고, 오래도록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꼈다. 산후우울증, 휴직 없이 유축기를 들고 직장에서 젖을 짜다 나르는 나날, 가난한 지층집 벽에 피어오르는 곰팡이와 아기 얼굴에 번지는 아토피성 피부염, 감내했던 어려움과 고통을 생각하면 누구도 자기 의지가 아닌 다른 이유로 출산을 강요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준비되지 않고 원치 않는 상황에서는 낳아도 지워도 괴롭고 그 어려움은 매우 오래, 때로는 평생을 간다.
엄마는 내가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자신도 인공중절을 해봤고, 별거 아니라고, 더 준비가 된 다음이 나을 거라고 했다. 별거 아니라 하는 엄마를 보며 별거 아닌 걸 알았다. 돈도 제대로 안 벌고 술 먹고 폭력을 일삼는 남자의 아이를 더는 낫지 않기로 한 날, 아빠가 엄마 뺨을 때려 코피가 흐르고 엄마가 전에 없이 긴 외출을 하고 돌아온 그날, 아빠가 간만에 다정한 척 수퍼에 데려가 나와 동생에게 주전부리를 사주던 그날이었을까.
인구정책은 의도적으로 피임교육과 여성 건강에 대해 말하는 걸 회피하고 있을까. 피임법을 자세히 다루는게, 콘돔이나 피임약을 손쉽게 접근하도록 하는 게 성관계를 조장한다는 개소리는 그만 하고 자세하게 접근법을 의무로 가르쳐야 맞지 싶다. 병원에 가서 의사와 상담 후 정확한 복용법에 따라 약을 먹는 법, 장기간 효과가 있고 간편한 피하이식장치가 있다는 것(심지어 기혼 여성들조차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을 알려주고, 콘돔을 술 담배와 동급 취급해 성인인증 받아야지만 살 수 있는 이상한 상황을 개선해야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낙태죄 헌법불합치는 다행인 변화이지만 이전 읽은 책 아주 오래된 유죄를 보면 대체 입법도 이상한 방향으로 갈까 걱정이다. 아직 멀었다. 심지어 그나마 진일보한 제도와 법률을 갖춘 듯한 프랑스 사람들조차 마냥 속편한 상황이 아닌 걸 이 그래픽 노블을 통해 알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