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눕는다 - 김사과 장편소설
김사과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210919 김사과.

김사과의 소설을 네 권째 읽었다. 더 나쁜 쪽으로, 0영제로영, 영이02, 그리고 풀이 눕는다 순이었다. 읽을 때마다 나한테는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이번 소설은 조금 더 초기작인데 읽는 내내 너무너무 오글오글 했다. 그러니까 쌍팔년도 홍콩영화 보는 느낌이었다. 아비정전이나 해피투게더 같은 거. 이렇게 말하면 홍콩영화 팬들에게 실례지만 1990년대 영화 같은 느낌을 2009년에 쓴 소설에 푹 절여 놓은 걸 2021년에 읽는 건…뭐긴 뭐야 내가 늙었다는 뜻이지.

소설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소설가인 화자 내가 그림을 그리는 풀이란 남자를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그 사랑에는 현재만 있고, 내일은 없고, 자기 파괴적이면서 상호 파괴적이기까지 한 광기 뿐이다. 사실 사랑은 유일한 숨쉴 구멍 같은 것이고, 화자에게는 이미 뭘 잘해보고 싶은 의지도 잘 살고 싶은 마음도 하나도 없다.
김사과 소설은 일관되게 반자본주의적인데, 자본주의에 적응, 아니 그 안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꿈꿀 미래 자체가 없는 걸 나와 풀의 기행과 좌절로 보여주었다. 그저 글을 쓰고 싶고,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둘은 돈에 쪼들리고,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돈을 벌지 않으면 사람 구실 못한다는 취급을 받고, 그저 술이나 마시고 담배나 피우며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수 밖에 없다.

그런 좌절과 무기력감 잘 알 것 같은데 이제는 너무나도 체제순응형 인간이 되어 아파트 실거래가 조회를 취미삼고 주식 차트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 서사조차 읽기가 괴로워졌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짤리고 원룸에서 구질구질하게 참치캔 밑바닥에 남은 기름 찌꺼기에 밥 비벼 먹으려다가 캔을 놓쳐서 발걸레에 떨어뜨려서 맨밥을 먹어야 하나보다 하고 눈물 짓던 스물한 살 때로 돌아갈 거냐고 물어보면 절대 안 가! 그때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꼬신다고 과외비 탈탈 털어서 초밥도 사 주고 배스킨라빈스도 사 주고 파스타도 사 주고 그랬는데 막상 사귀게 되니까 돈이 하나도 없어서 으악 돈이 없으면 연애도 못하는 것인가 하고 좌절하던 기억이 난다. 사랑도 돈이 없으면 못해. 연애에도 섹스에도 동거에도 돈이 들어. 으악으악. 이제 석기 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금수저 물고 어마무시한 유산을 물려받지 않은 이상 사랑을 붙들고 있으려면 내내 노동력을 팔아 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면 사랑할 시간이 일에 녹아 사라지지. 어쩌라고!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09-20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20 0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21-09-20 0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김사과에 빠졌어요 ㅎㅎㅎ 애기syo(24/25)의 중2감성에 너무 부합하는..... 🤦

syo 2021-09-20 05:47   좋아요 2 | URL
아참, 즐겁고 단란하고 행복하고 안온하면서 사랑이 넘치는 세상 최고의 한가위 보내세요, 막 이런 표정으로 보내세요 🥰🥰🥰

반유행열반인 2021-09-20 07:06   좋아요 1 | URL
와 나 이 책 읽다가 syo님 생각했는데(왜?!) 책을 너무 많이 읽은 주인공이 나와서인가ㅎㅎ 내장산 맑스축제 생각나서인가ㅎㅎㅎㅎ syo님도 추석 연휴 편안하고 즐겁게 잘 지내셔요.

Yeagene 2021-09-20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봤을 때는 김수영을 생각했지만 내용을 보니 딱히 연관은 없나봐요...;;;; 열반인님 행복한 추석연휴 되세요!♡

반유행열반인 2021-09-20 16:53   좋아요 1 | URL
제목만 따오고 그냥 화자가 자기 애인한테 마음대로 풀이라고 불러요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9-21 07:13   좋아요 0 | URL
연휴 인사를 빼먹었네요 예진님 남은 이틀 건강히 푹 쉬시고 좋은 시간 보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