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괜찮은 사람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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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1 강화길.

강화길의 소설을 처음 읽은 건 2017년 6월이라고 한다. 클라우드노트에 그렇게 적혀있다! 그해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처음 읽었고, 책 한 권에서 김금희, 최은영, 최은미, 백수린까지 다 처음 만났다. 와우. 새삼 놀랍네. 그게 벌써 4년 전이야. 한국문학 독서가 1980년대 이전 수능 출제(예상)작에만 멈춰 있던 나에게는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다. 노트에는 지금처럼 재잘재잘대는 긴 평은 거의 없는데 기억나는 건 강화길 ‘호수’를 읽고 별로다, 했던 생각은 난다… 너무 노골적이라 세련되지 못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진짜 불안한 사람들은요. 그 불안에 관해 묘사할 힘도 없어요… 그냥 그 불안을 간접 체험 시키려는 시늉 같은 걸로 읽고 또 그렇게 등장 인물을 괴롭히고 물에 처박고 두들겨 맞고 죽음에 임박하게 두는 게 마냥 짜증이 났던 것 같다.
‘화이트 호스’는 진짜 어쩌다보니 읽었는데, 나쁘진 않지만 좋지도 않다, 강화길 역시 나랑 안 맞네 했었다. 그러다가 새 장편소설 읽다가 등장한 ‘니꼴라 유치원-귀한 사람’이 잘 써지지 않아서 고민하는 소설가의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또 그 소설이 무척 궁금해졌다. 그래서 ‘니꼴라 유치원’이 실린 ‘괜찮은 사람’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집의 맨 첫번째 소설이 그 처음 읽고 별로라고 느낀 ‘호수’라서 이건 제일 나중에 읽기로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소설이 화이트 호스랑 비슷한 불안의 정서인데도 희한하게 마음에 들었다. 장편의 씨앗쯤 되는 장면들도 느껴지고 문장도 간결하고 별 어려움 없이 읽혔다. 등단작인 ‘방’도 슬프고 구질구질한데도 괜찮았고, ‘벌레들’도 지긋지긋한데 또 내가 잘 못 그려내는 세 사람 사이의 긴장을 잘 표현했다 싶었다. 표제작 ‘괜찮은 사람’도 괜찮았다ㅋㅋㅋㅋ 호수랑 비슷한데 그것보다는 더 절제된 느낌이랄까. 하여간에 실컷 잘 읽고서 다시 처음의 ‘호수’로 돌아와 읽어보니…두 번째 읽어도 나는 달라진 것이 없고 소설도 달라진 것이 없고… 그렇죠 모든 게 다 좋을 수는 없는 것…
한동안 주식책과 과학책만 줄창 파고들다가 다시 소설의 계절이 온 건지 소설에 관심이 가고 잘 읽히는데 같은 작가 책을 같이 읽는 게 좋은 점도 있고(그러니까 장편을 읽기 전에 단편을 읽으며 적응?을 거치고 마음의 준비를 한달까…) 나쁜 점도 있는(이제 당분간은 좀 쉴게요 작가님…빠이…) 것 같다. 읽을 책이 너무 많아…그래서 행복하다…킬킬킬킬킬킬(이거 대불호텔의 유령에서 자꾸 나오는 웃음 소리…이상한 거만 배움…웃음 소리가 kill kill kill해….ㅋㅋㅋㅋㅋㅋ)

+밑줄 긋기
-그래서일 것이다. 안진에는 짓궂은 농담이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불행하다는 느낌이 들 때,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둘러싼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저 답답하고 원망스러울 때. 사람들은 피곤한 얼굴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다 내가 니꼴라 유치원에 다니지 않아서 그래.
남편과 나도 가끔 그런 농담을 한다.
민우는 남자아이 후보 2번으로 접수되었다.
(‘니꼴라 유치원-귀한 사람’ 중)

-그건 정말로 실수였다. 정전이었다. 그 역시 당황했고, 나를 찾는다며 아무렇게나 팔을 뻗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많이 주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의 손이 닿는 곳에 내가 있었다. 그는 내가 그 앞에 서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 역시 어둠 속에 있었으니까.
-나는 그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들이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늘 신경이 쓰였다. 누군가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실망하거나,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이 빈약하고 허름한 트랙에서조차 떨어져나갈 것 같은 불안이 밀려왔다. 그러나 나는 이런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불안은 순식간에 번지는 곰팡이 같아서 쉽게 눈에 띄었고, 그러면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자신을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느끼는 것과 정말 함부로 대해도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건, 굉장한 차이였으니까.
-며칠 후 그는 내게 불안해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는 내게 아름답다고 말했다.
(‘괜찮은 사람’ 중)

-뭐든 확인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호의를 의심하고, 칭찬을 믿지 않으며 잘못한 일은 오래도록 기억한다고 했다. 나는 웃었다. 나를 가리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어, 그 말을 전한 이는 그들이 정말로 확인받고 싶어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것이라고 했다.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지금 정말 잘하고 있다는 것. 나는 역시 또 웃었다. (‘당신을 닮은 노래’중)

-그때 한 남자가 슈퍼로 들어왔다. 그는 비듬이 심했다. 걸을 때마다 눈이 날리는 것처럼 하얀 비듬이 떨어져내렸다. 그는 슈퍼 안을 둘러보지 않았다. 라면 한 박스를 찾더니 계산을 마치고 곧장 나갔다. 그 남자가 걸어간 자리에 비늘처럼 희끗희끗한 조각들이 남아 반짝였다. 나는 야체 코너에서 오이와 상추를 집어들었다.
-복숭아 먹고 싶다.
나는 돌아가면 황도 한 박스를 사주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회색 입술을 벌려 웃었다. 그녀는 종일 복숭아만 먹자고 대꾸했다. 방에서 안 나갈 거야. 이어 그녀는 손을 들더니 복숭아를 쥔 자세를 취했다. 입을 벌리고 복숭아를 베어무는 시늉을 했다.
이때 즙이 흐르는 거야.
수연이 내 손을 잡았다. 수연은 내 손목을 주무르며 계속 복숭아에 대해 떠들었다. 우리는 곧 잠들었다.
(‘방’ 중)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싸웠다. 그녀는 울면서 그에게 항의했다. “사랑 때문이야.” 나중에는 거의 소리쳤다. “아직도 사랑 때문에 사람이 죽어.” 얼마 후, 그들은 헤어졌다. 굴 말리크는 추방당했다. 그들은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굴 말리크가 그들에게 유품을 남겼다.
-왜일까요.
어째서 불안은 두 사람 중 꼭 한 명에게만 더 강하게 나타날까. 다른 한 명은 상대가 절대 떠나지 않을 거라 무작정 믿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구였을까, 더 불안해한 쪽은. 타니 칸이었을까, 굴 말리크였을까. 어쨌든 싸움이 있었다. 너는 너무 겁이 많고, 용기가 없고, 모든 일을 피하려고만 한다는 비난들. 타니 칸이 굴 말리크에게, 굴 말리크가 타니 칸에게. 이전의 판단과 선택을 흔들어대는 말들. 확신을 짓누르는 의심. 역시 누구였을까. 모든 것은 끝났고, 지금은 단지 견디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먼저 생각해낸 사람은. 말을 꺼내지 못한 건 아마 의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로의 목숨을 지켜주며 보듬었던 시간. 살아남았다는 위안과 결속. 도시를 찾아온 건 더 나아지기 위함이지 끝을 위해서가 아니었다는 미련. 지금까지 이룬 것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는 욕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결단을 내렸다.
누구였을까. 다른 사람이 생긴 건.
아니,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믿은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배신감과 수치심을 느낀 누군가가 밀고를 했다. 배신자들이 있습니다. 고향에 편지를 보냈다. 여기에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같이 걸려들 걸 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누군가에게 떠나보낼 거라면, 차라리 함께 죽는 것이 나았다.
끔찍한 일이죠. 사랑했던 사람이 불행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온다는 건.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행동한다는 것도.
(‘굴 말리크가 기억하는 것’ 중)

-다른 친구들도 내게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말했다. 그는 무척 좋은 사람 같다고. 민영은 행복하다고. 나는 중얼거렸다.
“그건 모르는 거야.”
친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제발, 남자를 좀 믿으라고. 나는 아무 말도 더 할 수 없었다. 사실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나도 뭐가 뭔지 확신할 수 없는, 그저 느낌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었으니까.
(‘호수-다른 사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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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1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21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21-08-22 1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호수 되게 좋아서 강화길에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ㅋㅋㅋㅋㅋㅋ
반님도 까시지만 사람일 알 수 없는거다? 저 어제 제가 전에 쓴 글 읽다가 제가 금희 누나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너무 한낮의 연애가 제일 별로였다는 댓글 달아놓은 거 보고 기함했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8-22 11:45   좋아요 1 | URL
그리고 몇 년 뒤 그 아이는 너무 한낮의 연애 티비문학 드라마까지 챙겨보고 권하며 금희누나 금희누나 하는 나돌이가 되었다고 한다… ㅋㅋㅋ 제가 강화길한테 이렇게 호의적인 리뷰 쓸 줄 정말 몰랐지만…호수는 안 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