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 자본주의에 숨겨진 위험한 역사, 자본세 600년
라즈 파텔 외 지음, 백우진 외 옮김 / 북돋움 / 2020년 5월
평점 :
판매중지


-20210516 라즈 파텔, 제이슨 무어.

가성비 인생, 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경제학에서 기본으로 다루는 최소 비용, 최대 편익이라는 합리적 선택을 소비의 기준으로 두고 생활을 유지했다. 알뜰하게 산다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여기서 내가 누리는 혜택이란 어딘가의, 누군가의 손해로 더하기 빼기 빵을 만들고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저렴한 서비스에 만족한다면 누군가는 일한 것에 비해 충분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그렇지만 그런 불안과 죄책감은 심증일 뿐 가시적으로 삶에 드러나지 않았다.
‘까대기’라는 책을 보며 내가 누리는 택배 서비스의 편리함 뒤에 갈려나가는 노동자의 시간과 삶과 자존감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내가 볼 수 있는 아주 적은 부분일 것이다. 책 구경을 하다 보니 배달 노동자, 콜센터 직원, 방과후강사 등등 온갖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에 관한 책들의 목록이 이어졌다.
무엇이 노동을 폄하하고 충분한 대가를 받지 못하게 하는가, 가난은 어떻게 구조화되고 자본은 어떤 계층과 성별과 지역과 자연을 착취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들은 겨우 한 두 권 책을 읽어서는 답을 얻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랗다. 아마 남은 삶 내내 연구해도 해결책은 커녕 제대로 된 원인 파악도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이 책 제목을 본 순간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잡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참 관심을 갖다가 읽기 시작했다.
서문부터 만만치 않았다. 자꾸 졸려가지고…3월부터 읽기를 시도했지만 겨우 두 달 넘어서야 다 봤다. 1장의 자연과 2장의 돈에 관해서만 잘 넘기면 3장 노동, 4장 돌봄, 5장 식량, 6장 에너지, 7장 생명까지 저렴화된 생태계가 서로 연결되어 술술 넘어간다.(실제로 두 달 동안 2장까지 붙들려 있다가 나머지 절반은 하루 이틀 새로 다 봤다ㅋㅋㅋ) 여기저기서 파편적으로 주워듣던 세계사의 다양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유럽인의 신항로 개척과 식민지 건설, 서양사 시간에 그렇게 강조하던 인클로져 운동이 농업과 민중과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에 미친 영향을 일관되게 이어나가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초반에 마데이라의 설탕 산업 사례가 나왔다. 대항해시대 게임할 때 사탕수수 가져다가 설탕도 만들고, 럼주도 만들고 하면서 무역하던 기억에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 그 모든 생산 과정이 섬의 삼림을 황폐화하고 설탕 가격 폭락과 노동자 착취까지 이어지는 장면을 보니 이제 더는 그 게임을 즐길 수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 캐릭터부터 항로 개척과 식민화의 주역이던 유럽 국가 출신으로 설정되고, 커다랗고 빠른 배, 은행에 쌓인 더컷, 도시에 투자하고 명성과 기여도를 남기는 일 자체가 결국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자원과 주민들을 박살낸 결과라는 게 자명해서 그런 자본가 역할을 간접경험하면서 즐거움을 누리는 일 자체가 올바르지 않게 느껴졌다. 예전엔 암것도 몰랐지…그냥 세계여행하고 유적지나 자연 탐색하고 새 항구 도착하는 게 재미있었을 뿐…가만보니 이 게임 만든 놈들도 제국주의 식민지배로 자본 쌓을 궁리하던 일본 출신이구나…끄덕끄덕…안녕 대항해시대, 안녕 레메디오스…(내 캐릭터 이름…)
자본의 노동 착취는 지불되지 않는 노동인 돌봄과 연결되고, 우리나라 산업화 시기에 그랬던 것처럼 저임금 유지를 위해 농축산물 저가 정책을 유지하며 농민을 착취하고, 과학 기술 개발은 자연을 쥐어짜고 기후변화를 급격하게 만들면서 저렴하게 갈아낸 에너지로 저렴한 식량(저렴한 치킨…)을 만들고 마지막에는 보호될 만한 가치 있는 생명과 자연에 속하는 자원 취급되는 사람을 가르는 지경에 이른다. 그런 과정을 국민국가와 기업 등 자본이 정교하게 유지하고 발전시키면서 착취되는 이들의 저항을 분쇄해왔다. 책 내내 저렴화되는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당하지만 않고 끝없이 투쟁해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결론 부분에서 저자들이 주장하는 대안? 저렴화에 저항하기 위한 전략을 인식, 보상, 재분배, 재상상, 재창조라는 개념을 포함하여 압축적으로 제시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책 한 권은 나오지 싶었다. 그냥 맛보기로 소개하는 수준이라 그게 정말 더 나은 삶에 도움이 될지는 감조차 오지 않았다. 보상 생태(인간이 손상시킨 환경을 복원하기)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뭐라도 할 것인지는 아직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제 처음 이런 관점에서 자본의 역사와 생산, 소비, 경제 과정의 부조리를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정도?
그리고 나의 노동과 돌봄과 생명의 가치도 저렴화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너무 싼 거 좋아하지 말자, 누굴 죽이거나 죽을 만큼 고생시켜 놓고 내가 편한 건지도 모르니까, 하고 되돌아보는 정도. 어렵지만 포기 안 하고 한 번 읽어보길 잘 했다 싶은 독서였다. 얼마나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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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5-16 20: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지하고 학구적인 리뷰군요! 똘똘이 안경 쓰고 쓰신 것 같은 그런 느낌?? ㅎ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5-16 22:11   좋아요 1 | URL
책이 너무 어려웠어요...자본주의도 역사도 잘 모르는 자의 리뷰 ㅋㅋㅋ

2021-05-16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16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