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페미니스트인가 - 100년후 독자에게 던지는 물음 일제강점기 새로읽기 2
나혜석 지음 / 가갸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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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6 나혜석.

제목은 묶은 이들이 붙인 것이고, 여덟 개의 산문이 묶인 책이다. 역사 만화책 보다가 나혜석이 나온 부분에 꽂힌 무렵 전자책으로 작가의 소설집도 사고, 이 책도 샀다. 오디오북으로 윤석화가 읽어주는 나혜석의 ‘경희’도 들었다.

시대를 앞서 간-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래한 시대는 그 앞서 간 사람과 같은 행보를 보이는 사람을 포용할 만큼 달라졌는가?
아이를 가지고 낳고 조리하고 키우는 동안 겪는 고통을 넘는 굴욕과 수치와 자괴감은 여전하다.
개성적이고 남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을 뒤에서 혹은 앞에서 손가락질하고 입에 올리고 그런 사람은 함부로 대하고 함부로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며 혐오하는 것도 여전하다.
성에 따라 다르게 판단되는 정조의 관념, 이제 정조라는 말은 잘 쓰이지도 않고 조금이나마 변한 인식도 있겠지만 이성과 관계를 많이 맺는 남자에게는 부러움과 매력과 능력을 부각하고 여자에게는 헤프고 걸레 같고, 그런 비난과 동시에 나도 한 번 안 될까 하고 들이대는 이중적인 태도도 여전하다.

1920-30년대에 배우고 다른 세상을 접하고 예술하던 여성이 가정과 배우자와 시댁에 얽매여 고충을 겪던 모습은 100년이 지났어도 다른 여성들의 삶 속에서 반복되고 재현된다. 이혼 뒤에 독신의 나은 점, 불행하면서도 행복하다고 부르짖는 글은 요즘의 비혼주의자가 늘어나면서 나오는 이야기랑도 크게 동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삶에 대한 자각, 해명, 선언, 의지와 다짐이 꾹꾹 담겨 있는데, 글에 드러나지 않고 연표 아래 칸에 말년에 양로원에 들어가고 시설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사실은 슬프다. 그림을 그려 상을 받고 자기 주장을 지면에 글로 발표하고 홀로 서는 삶을 꾸려가고자 했지만, 그 10년 가까운 연표의 공백 동안 작가가 겪은 녹록치 않은 현실은 어땠을까 상상이 가지만 상상하기가 싫다. 자식을 잃고, 사랑을 잃고, 사회에서 배척 당하고, 자신의 삶이라는 배경 때문에 그림은 팔리지 않고, 경제적으로 곤궁하고, 정신을 놓고, 길을 떠돌고, 그리고…
인형의 집을 나간 노라는 어디로 갔을까,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물음을 자주 접하는데,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 하는 나혜석이 지은 노래 가사가 이 책에도 실려 있는데,
막상 나혜석은 자식과 경제적 곤궁 앞에 최린과의 일을 두고 오해다, 나는 이혼하고 싶지 않다, 매달렸지만 김우영은 이미 다른 여자를 얻고 나혜석에게 돈 한 푼 주지 않고 아이 넷도 시댁에서 끼고 있고 (나중에 신문 기사에서 본 것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친모가 남자랑 바람나서 나간 걸로 되어 있고 지워진 사람이 되어 나혜석의 자녀들은 노년까지 친모가 누군지 숨기고 살았다고 한다) 결국 시댁과 주변인과 남편의 배척으로 가정 밖으로 내몰린 것처럼 읽혔다. 그렇다고 파리에서 애정을 주고 받던 최린이 받아줬던 것도 아니라, 나혜석은 최린에게 정조유린에 대한 배상 소송을 청구했지만 패소했다.
삶이 꼬여도 참 지랄같이 꼬이고 마냥 슬픈데 어쨌거나 그녀의 글을 읽고 그녀의 삶에 대해 찾아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삶의 불행이라는 건 개인 만의 문제나 책임이나 운과 우연의 문제일 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와 제도와 통념과 주변 사람들의 인식과 그를 바탕으로 한 행동이 뒤섞여 나타난다. 항상 바닥으로 떨어지는 불안과 공포와 자책으로 사는 나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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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7-26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슬프다 ㅠㅠ 슬픕니다 ㅠㅠ 그때나 저때나 달라진 게 그닥 많지 않게 느껴지는 건 저뿐일까요? 유열님

반유행열반인 2020-07-26 11:42   좋아요 1 | URL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그나마 비슷한? 생각과 마음과 처지의 사람들이 어딘가 모여 슬픕니다 슬프다 할 수단이 늘어난 게 위안일까요. 이런 책도 읽을 수 있고.

2020-07-26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6 1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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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6 1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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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6 12: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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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6 12: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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