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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별의 푸가 - 철학자 김진영의 이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평점 :
-20200628 김진영.
장기하와 얼굴들-가장 아름다운 노래
https://youtu.be/1zlNEGGnXSE
“밝게 빛나는 너처럼 예쁜 내 노래는
주인을 잃고 파란 하늘에 흩어지네
나의 노래가 별이 되어 뜬 밤하늘 아래
너의 마음은 그를 향해서 밝게 빛나네”
술을 거의 먹지 않던 집인데, 몇 주 전부터 곁의 사람이 맥주를 사온다. 주말마다 술을 마셨다. 경복궁, 파울라너, 서머스비, 백록담, 광화문, 에델바이스, 남산, 이름 예쁜 것들이 꽃냄새와 과일냄새를 풍기며 뱃속을 채웠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거울에 비친 새빨개진 얼굴을 보고 몰래 조금 울었다. 샤워로 울음을 지우고 쿨쿨 잤다.
나는 유디트가 되어보려고 짧은 이별을 위한 긴 편지를 쓰고, 총도 쏘고, 소매치기를 시켜 린치도 하고, 모가지도 베어보지만 잘 안 되었다. 그래서 진부한 키워드를 검색해 진부해보이는 책들 사이에서 들어본 것 같은 제목의 책을 골라 읽었다. 들어본 것 같은 책은 언제나 늦게 좇아 읽은 걸 늦게 안다. 밑줄을 하나도 치지 않고 그냥 눈을 글자에 문질렀다. 진부한 이야기의 좋은 점은 내가 겪는 일이 하나도 특별하지 않고 보편적인 일이고 감정이라고, 그러니 오래 빠져 있을 필요도 없고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이유도 없다고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남의 슬픔을 보면 또 왜 닭살이 돋는 또라이라 저렇게 궁상 떨고 있으면 남보기에 나도 참 싫겠구나 하면서 감추고 참고 숨기고 시간이나 얼른 가라고 아무거나 주워읽는다.
밀란쿤데라 영감님 책 다시 읽기를 작년 말쯤 시작했는데, 겨우 두세 권 책을 읽을 시간만 있었고, 아직도 다시 읽고 싶은 책은 잔뜩 남았는데 뭐 그럼 혼자 열심히 다시 읽으면 되지, 뭐가 문제야 하고 책등을 훑는다. 그러고보니 이별의 왈츠도 있었다. 5년 전에 읽었지만 안 읽은 거나 다름 없는 상태니까 다음은 너로 정했다, 밀란츄! 노구를 이끌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먼 프랑스로부터 나를 때리러 쫓아오는 영감님 상상은 정말 웃겼다. 할아버지 코로나 조심하세요. 제가 사는 관악구는 코로나 성지가 되었어요. 하나님이 있다면 왜 가장 신실한 사람들 사이에 병이 퍼지는 걸 냅두셨나요. 저는 오랑의 시민이 되어 유폐되었습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게 아니지만 아무도 없고 병이 옮고 병을 옮기지 않기 위해 조용히 집에서 올릴 기도를 생각하지만 저는 기도할 줄을 모르는 인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