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 - 대단할 것 없지만, 위로가 되는 맛
김보통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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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3 김보통.

간밤 꿈에 반가운 목소리로 걸려온 전화에 나는 꿈속에서 조차 현실에서 하던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시간을 헤아리고, 현실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상대에게 일깨워주었다. 그랬던가, 하는 허탈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도 이게 꿈이구나, 했다.
마음이 쓰고 그런데 뭘 먹는다고 풀리는 사람도 아니고 책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날들이니 제목만 보고 달달한 거 골라 읽었다.
저자가 누군지도 몰랐다. 만화가인 줄도 몰랐네. 그런데 겸손한 거 치고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썼다. 내가 못 가 본 나라에도 많이 다녀왔다. 맛있는 디저트를 찾아 먹고 만들 줄도 알고 디저트를 소재로 칼럼도 잔뜩 써서 이 책을 냈다. 그냥저냥 좋은 말들이 많았다.

아침에는 스콘을 구워 드립커피랑 먹었다. 이것도 디저트인가. 마지막 마카롱을 사러간지 20일이 넘었다. 봄에는 단 과자에 재난지원금 아동돌봄수당 전부 탕진하며 다녔는데 살만 찌고 단맛에 질려 당분간은 쳐다보기 싫다. 지난 주에는 가족의 생일이라 치즈케익을 사다 다같이 나누어 먹었다. 이번주 가족이 회사에서 받아온 벌꿀 카스테라는 애기들이 너무 좋아해서 난 딱 반 조각 밖에 먹지 못했다. 휴가 끝나고 출근하면서 크로아상 구운지도 오래다. 오랜만에 출근해서 이틀 간은 커피 한 잔 조차 타 먹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그렇게 정신 없이 일하고, 수업을 들으러 가고, 그런 사이에 순식간에 이런저런 일이 정신도 못 차리는 틈에 일어나고
맞이한 주말은 보통 주말과 하나도 다른 게 없었다. 떡볶이를 만들어서 가족들을 먹였다. 오후에 디카페인 커피에 하겐다즈 카라멜 크륌브륄레 모찌??여하튼 비싼 아이스크림을 퐁당 빠뜨려 마셨다. 단맛이 주는 위로는 아주아주 짧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밑줄 긋기
베이글
“무기력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상대는 웃었다. 안도의 웃음일 수도 있고, 허탈한 웃음일 수도 있다. 왠지 너무 성의 없는 것 같아 덧붙였다.

  “그럴 때마다 저는 작은 성취를 이루는 것을 반복합니다”라고 답했다. 예를 들면 베이글을 만드는 것처럼.

다시 말하지만, 무기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당연히 한 방에 이 괴로운 감정을 잊게 해줄 해결책도 쉽게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당장의 무기력이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탓에 반전을 바라며 더 크고 강한 성취를 원한다. 하지만 큰 성취는 그만큼 성공 확률이 낮아 많은 경우 더 크고 강한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결국엔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무기력에 빠져 자신을 스스로 ‘뭣도 못하는 인간’으로 여기는 지경이 되는 것이겠지.
   
  그러니 베이글을 만들어 보시길. 삐뚤빼뚤 꽃을 그려보고, 턱없이 짧은 목도리를 짜보시길. 놀이터 철봉에 매달리고, 색종이로 거북이를 접어 보시길. 작은 성공의 연속에서 성장을 확신하시길. 사소한 실패를 겪으며 좌절에 둔감해지시길. 별것 없는 성취를 반복하며 승리를 체험하시길. 그런 나날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무기력을 등에 지고 살아갈 수 있는 어떤 신념이 생길지 모르니.

티라미수
티라미수는 이탈리아어로 ‘나를 끌어올린다’는 말로, 의역하자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뜻이다. 그때는 어원 같은 것은 몰랐으나, 그때의 티라미수는 여러 의미로 나를 구원해주었다. 솔직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첫 미사보다도 더 감동적인 맛이었다.

아마레티
“하지만 우리가 망하는 건, 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지 우리 탓이 아니에요. 미디어에는 성공한 사람들이 나와 싱글싱글 웃으며 노력해서 성공했다 말하지만 마이크를 쥐여줘야 하는 건, 망한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이에요. 정말 망한 건, 평범한 노력으로는 살기 힘든 우리 사회예요.”

“여러분. 우리 아무렇게나 살아, 아무거나 됩시다. 

바클라바
번잡스러운 인파 사이로 커플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상하지. 막상 나는 성희롱 당하고, 설거지하고, 빈 병이나 팔면서 여행했지만 다른 여행자들을 만날 때면 좋은 기억만 가졌으면 했다. 슬픈 일 없이, 아프지 않고 돌아가길 바랐다.

도넛
중요한 건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거나, 선택한 것의 결과를 미리 짐작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는 도넛을 고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마다 다른 맛의 도넛일 뿐, 어떤 맛이 더 우월한가를 따지는 것은 쓸데없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섭취한 칼로리만큼 살아내면 된다. 다소 고통스럽겠지만 도넛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당근케이크
케이크에 당근을 넣다니. 누가 그런 악의적 발상을 한 것일까. 아마 처음으로 해삼을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사람과 동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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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2020-06-14 1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익힌 당근 골라내는 사람인데. 당근케잌에 들어간 당근은 조아해요. 해삼을 좋아해서 그론가..

반유행열반인 2020-06-14 12:19   좋아요 0 | URL
저도 당근케익 좋아요 ㅎㅎㅎ해삼은 그냥저냥...익힌 당근 골라내신다니 왜 귀여워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