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페스트 열린책들 세계문학 229
알베르 카뮈 지음, 최윤주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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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5 알베르 카뮈. 

눈병에 걸렸다. 안과에 가니 감기 같은 것인지, 전염성인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약 두 병을 주었다. 눈병 정도는 사이좋게 나눠가질 수 있을 법한데, 코로나19라면, 페스트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생과 사를 가르고 관계까지 박살내는 순간을 걱정한다. 실제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며칠 간의 움직임, 소비 패턴, 사는 곳, 만난 사람, 나이, 성별, 직업, 심지어 성정체성까지 시시콜콜 존재의 모든 것을 투명하게 세상에 드러내게 강제했다. 
얼마나 많은 곳에서 수시로 개인의 정보가 수집되고 축적되어 필요할 때마다 꺼내볼 수 있도록 거기에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공포되는 삶을 공포로 여기는 나는 떳떳하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70여년 전 나온 이 소설에서도 감염병을 다루고 있다. 도시 오랑은 페스트 발발과 함께 봉쇄된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고립과 이별, 사랑을 잃는 슬픔을 동시에 겪는다. 거기에 더해지는 죽음의 공포와 무기력. 서술자가 누군지 밝히지 않은 채 끝까지 담담하게 오랑의 약 10개월 간을 기록해놓았는데, 뭐 읽다보면 어느 순간(아무래도 천식 환자 노인의 옥상에 리유와 타루가 올라가 밖을 내려다 보는 무렵) 누구의 관점인지 금세 알게 된다. 약간 배신감도 드는 게, 그러니 의사 선생님을 제일 멋지게 그려놨지 싶기도 하다. ㅎㅎㅎㅎㅎ

카뮈의 책은 고등학교 때 시지프 신화, 약 십 년 전에 이방인을 읽었다. 지금은 하나도 기억 안 나는데, 여튼 이번에 읽은 페스트는 만나는 문장마다 어쩜, 이런 표현을, 하고 밑줄을 박박 긋고, 질병과 재난 속에 처할 수 있는 사람들의 심리, 사회적 혼란, 관료들의 비정함, 잃어버리는 것들, 병이 사라진 뒤 맞닥뜨릴 것까지 치밀하게 상상해서 그려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었다. 





등장인물(스포가 될 수도 있으니 싫은 분은 빠꾸-)


리유-의사 선생님. 요양을 위해 아내를 도시 밖으로 내 보낸 뒤 페스트가 퍼지면서 도시 곳곳을 돌고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페스트 시대를 관찰하는 사람. 
그랑-성실하고 늙은 박봉 공무원, 작가 지망생, 일찍이 사랑을 잃은 사람, 회복의 상징? 
랑베르-외부로부터 취재차 오랑에 왔다가 도시에 유배되고 약혼녀에게 돌아가기 위한 탈출을 시도한다. 
타루-리유의 기록을 보충하는 사람. 내내 도시에 호의적이고, 보건대를 조직해 봉사하다가 페스트가 물러갈 무렵 운 없게도. 
코타르-재난 상황이 오히려 이득이 되는 사람. 밀수꾼, 체포 위기에서 병이 발생되어 체포가 유예된 자, 자살 미수, 그리고 막판엔 난장판
파늘루 신부-종교에서 질병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 성실하게 봉사하고 사람들에게 질병의 의미?가치?같은 것을 설파하고자 하지만 리유나 작가나 그렇게 호의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음

도시로부터 들려오는 환희의 함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이 기쁨이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렇듯 기뻐하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책에서 알 수 있듯이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도 않고 사라져 버리지도 않으며, 가구들이며 이불이며 오래된 행주 같은 것들 속에서 수십 년 동안 잠든 채 지내거나 침실, 지하 창고, 트렁크, 손수건 심지어 쓸데없는 서류들 나부랭이 속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때를 기다리다가, 인간들에게 불행도 주고 교훈도 주려고 저 쥐들을 잠에서 깨워 어느 행복한 도시 안에다 내몰고 죽게 하는 날이 언젠가 다시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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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2020-06-07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월엔가 읽다가 언제부턴가 일시중지된 상태인데.. 다시 플레이해야 겠군요.

반유행열반인 2020-06-07 12:31   좋아요 0 | URL
저도 일시중지 오래 씨게 누르다 읽으니 또 읽히다요? 눈병으로 노란눈물 노란콧물 줄줄 흘리며 봤네요. ㅎㅎㅎ너무 어울리는 배경이야..,페스트와 괴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