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3 줄리언 반스보내야 하는 시간동안 책을 읽었다. 의외로 그 시간이 꽤 괜찮았다! 밖은 춥고 안은 따뜻했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그런데 무척 재미있었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많이 남은 게 신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 걱정이 들었다. 그저 평범하고 최악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던 살아온 날들, 그 작은 역사를 문득 돌아보다가 나야 말로 구제불능의 쓰레기였고 내 인생 자체를 부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어쩌나 하는. 그래서일까 미리부터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매번 되뇌이고 가깝고 먼 예전 일들을 돌아보며 부끄러워 하는 일을 반복한다. 다 부질없는 짓이다. 내가 상처주고 고약하게 굴었던 사람들은 내가 그러는 걸 모른다. 안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이십 대 어린 날. 나는 이제 두 사람 분을 먹어야겠군, 하며 커다란 오리지널 와퍼를 꼭꼭 씹어 삼켰다. 두 줄이 그어진 사진을 보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니어 와퍼 하나를 겨우 꾸역대며 삼키고 밤새 토하던 옆 사람 모습이 기억난다.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 너무 무서워서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그 정도의 충격을 받을 정도로 준비되지 않은 임신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사건이다. 그래도... 배부른 채 수근대는 소리 무시하며 낳기 며칠 전까지 돈벌러 나가고 찢어지는 고통으로 낳고 젖먹이고 안아 재우는 건 누구였을까요. 목을 매거나 욕조에서 손목을 긋지 않은 건 감사할 일이지만. 그냥 십 년 전의 그런 일들 생각이 난다.주제는 사뭇 다르지만, 잃었던 기억을 되짚어가는 구성에서 올드보이가 생각났다. 전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아니, 자기가 겪은 일을 어찌 잊지? 기억에도 있고 일기도 쓰고 편지도 쓰고 하잖아. 그런데 그런 것들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진실을 담는데 취약하고 편향된 관점이 담기는지 뒤늦게 알았다. 거기에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축복인양 바라던 망각이 기억을 잠식하는 꼴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 이런 거구나...내가 틀릴 수도 있겠구나...그걸 모르고 누굴 미워하고 누구에게 미움받는 걸 모르고 살 수도 있겠구나… 약간 무서워진다. 어릴 때는 여럿이 몰려다니고 농담 따먹고 궤변 늘어놓고 그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특히 남자애들 패거리 노는게 너무 재미있어 보였는데. 그깟 빻은 놀이가 뭐가 부러웠나 모르겠다. 면밀히 주변인으로 관찰하며 배운 거라곤 음담패설과 욕뿐, 남남이고 여여고 여남이고 셋 이상의 이너써클에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사춘기 남자아이들이 노닥거리는 소설 보면 괜히 회한에 젖는다. 지나고 보면 걔들도 다 저 살기 바빠서 안 만날 걸...토니가 친구도 없고 부인하고도 이혼하고 자식도 안 찾아오고 하는 걸 보면 대체 말년에 남는 사람이란 누굴까 무얼까 싶다. 저놈처럼 눈치없고 생각 없이 살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착하게 대하며 살아야겠다 싶다. 급 교훈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