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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를 베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평점 :
-20200107 윤성희
어느 새벽 잠을 자다 깨서 베개에 대한 글이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저런 메모도 해 두었다. 베개를 다르게 부른다면. 잠기둥 잠들보 머리받침 머리도마. 나는 왜 머리도마가 제일 마음에 드냐. 뎅겅 할 것 같다. 결국 베개에 관해서 뭘 쓰지는 못했다.
그래서 소설집 이름을 보고 끌려서 빌렸다. 윤성희의 소설은 처음 보았다. 막 엄청 재밌고 술술 넘어가고 하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오래 보다 말다 했는데 또 읽고 있으면 좋았다. 읽고 나서도 그럭저럭 좋았다.
엄마, 딸, 언니, 형부, 전부인, 친구, 친구의 부인, 친구의 자녀, 외삼촌, 조카, 직장 동료, 다양한 관계들이 등장했다. 그런데 자꾸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은 사람 사이의 다양한 관계에 관한 이야기지 참, 싶었다. 내가 이 년 간 끄적인 습작 속 관계들도 돌아보았다.
아내와 남편과 단식농성 중인 내연남/시간강사와 그의 한 학기짜리 제자들/중학생과 중학생/고3수험생과 담임과 아버지/교사와 중학생/고등학생과 독서실 주인/아내와 남편/동아리 부원과 신입생/또 동아리 부원과 신입생/형과 동생/딸과 아버지와 언니/일기 쓰는 나와 친한(친했던) 언니와 옛 남자사람 친구/외할머니와 엄마와 아들/소개팅에서 만난 먹방유튜버와 한국사검정능력시험 대리로 쳐주는 대학원생과 주선자인 뷰티유튜버/또 아내와 남편/교사와 복학생/남자와 갑자기 쳐들어온 모르는 여자와 그 여자 전남친과 남자의 전남친/동네 꼬마아이들/남자와 약혼자와 전여친과 전여친의 남편/여자와 남편과 여자의 남자인 친구들과 아이/중학생 연인/엄마와 나와 실종됐다 돌아온 아버지
사람 사는게 뻔하고 관계도 뻔하다 싶다. 그 뻔한 관계에 대해 나의 이해는 너무나 협소하고 상상력은 부족하고 할 이야기는 별로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 뻔한 걸 뻔하지 않게 관찰하고 생각해서 쓰는 사람들이 작가가 된다. 뭐가 되고 싶어서 썼던 건 아닌데 그래도 꾸준히 일 년 반 가까이 끄적이던 걸 초고 하나 쓰지 않은지는 두 달이 넘었다. 퇴고조차 하지 않게 된 건 한 달 쯤 됐다. 내가 잠시 쉬고 있는 건지 아예 그만 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이번에 읽은 소설가는 이 십년 넘게 쓰고 있는 사람이다.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오 년 후에 쓸 글은, 십 년 후에 쓸 글은. 나아질까. 계속 쓸 수 있을까. 쓰지 않는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떻긴 지금처럼 살고 있겠지. 요즘 나는 조금씩 읽고 가끔 멍때리고 누군가를 무언가를 자주 기다리며 산다. 얼른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이 들면 좋겠다.
소설집에서는 휴가라는 소설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낮술도 좋았던 것 같다. 베개를 베다도 쪼끔 좋았다. 제목을 보고 딱 어떤 내용이었지, 하고 떠오르지가 않는다. 읽다 보면 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 또 다르기도 했는데. 대체로 덤덤한 서술인데 읽고 있으면 자꾸 서글픈 느낌이 드는 소설들이었다.
가볍게 하는 말 …… 『문학동네』 2015년 여름호
못생겼다고 말해줘 …… 『현대문학』 2012년 5월호
날씨 이야기 …… 테마 소설집 『헬로, 미스터 디킨스』(이음, 2012)
휴가 …… 『창작과비평』 2014년 가을호
베개를 베다 …… 『세계의문학』 2012년 가을호
팔 길이만큼의 세계 …… 『문학동네』 2013년 여름호
낮술 …… 『한국문학』 2014년 겨울호
모서리 …… 『자음과모음』 2013년 봄호
다정한 핀잔 …… 『악스트』 2015년 11·12월호
이틀 …… 『21세기문학』 2013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