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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20191130 밀란 쿤데라
이번 달이 얼마나 안 읽고 빈둥댔냐면, 이 책까지 다섯 권 보았다. 이걸 고른 것도 아마 얄팍해서 권수 하나라도 늘리려는 얍삽한 마음이 끼어든 것 같다.
2014년에 읽고 5년 만에 다시 읽었다.
제목에 l’insignifiance 라는 말을 보고 프랑스어는 하나도 모르는 주제에 왠지 영어에 insignificant(맞나 스펠) 생각나면서 이거 무의미가 맞을까 하고 괜히 다른 제목을 생각해 보았다. 물론 무의미의 축제라는 제목이 간지나긴 하지만, 책의 내용은 왠지 하이고, 의미없다~ 뭐 이런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요하지 않은, 에 가까우니…
사소한 것들의 잔치
하찮음의 향연
아무말잔치
부질 없는 파티
…없던 걸로 합시다.
147쪽 밖에 안 되는 짧은 이야기 속에 80이 넘은 (이제는 90도 넘은...친구랑 할배는 아직도 설 거 같아! 막 이ㅈㄹ한 게 생각나니 왜…) 할배는 참 많은 위인들을 소환해 놨다. 야심이 느껴진다. 칸트, 헤겔, 스피노자 같은 철학자에다 도시 이름과 함께 스치기만 하는 마르크스 등등에다 스탈린과 흐루쇼프와 생전 처음 듣는 카레닌이랑 이름 비슷한 칼리닌이라는 전립성 비대 오줌 소태 양반이 나와서 소극을 보여준다.
야심찬 할배는 그들보다 오래 살고 더 나중까지 살아남은 자의 여유로 무겁고 무섭고 어렵고 위대한 이름조차 웃기는 짬뽕 희화하고 아 뭐 좋은 게 좋지, 웃어 웃자고, 농담이나 따먹다가 뒤질 인생 이러고 있다.
그래서 소설 자체는 그리 재미는 없었다.
작은 제목들 붙여 놓은 건 왠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느낌이 났다. 그거 할배 덕에 산 지도 5년 넘었는데 언제 볼 거니...
인물들도 딱 이렇다 하고 와 닿지가 않았다. 역시나 ㄱㅊ색히들만 잔뜩 흘러나오는데 아 분명 다들 늙은이가 아닌 설정인데 늙은이가 써서 다들 늙은이 같다.
라몽은 진짜 늙은이다. 늙은이 오브 늙은이
샤를은 음 그 중에 박식한 이야기꾼 쯤 되나. 칵테일 파티 플래너?
칼리방이 템페스트의 캘리번일 줄은. 게다가 자기 피부 검다고 파키스탄 사람 흉내낸다. 이거 다문화사회 비꼬는 거냐. 혐오를 멈춰주세요. 농담 따먹기도 희안하게 한다.
알랭은 어린 여자친구 마들렌과 세대차이 느껴진다. 등장인물들 도무지 나이 가늠이 안 된다. 어려서 자신과 아버지를 버리고 간 엄마 사진을 걸고 홀로 상상하며 대화 나누는 건 슬프다. 5부에 하와의 나무라는 장이 있는데 그곳에 하와에서 이어진 탯줄이 줄줄이 이어진 곳에 인류가 매달려 있는 상상은 마음에 들었다. 다만 알랭을 낳고 싶지 않았던 엄마가 그 나무를, 인류를 다 사라졌으면 하는 부분은 굉장히 슬펐다. 그런 상상을 하는 알랭이 불쌍했다.
두 유형의 바람둥이의 상징? 다르델로와 카클리크. 잘생긴 놈보다 존재감 없는 쪽이 승자라니.
그나마 특색있는 여성 인물이라고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가지고 생의 의지 타령하면서 멋진 척 하는 프랑크 부인 하나 나온다. 주목 받는 자신 외에는 관심 없고 다른 사람에 관심도 없는 불친절한. 이런 인물을 그린 할배가 제일 불친절해. ㅎㅎㅎ
무한히 좋은 기분, 농담, 웃음, 이런 건 역시 할배 답다. 마지막 책이라하면 충분히 할배에게 어울리지 싶다. 그래도 아쉽긴 해서, 100세 전에, 소천 전에 마지막 불꽃 활활 태워 뭐 하나 더 좋은 거 써 주시면 안 될까요, 되도 않는 바람을 해 본다.
그리고 할배 배꼽 타령은 틀린 거 같아요. 암만 봐도 가슴 허벅지 엉덩이는 멸망하지 않아요. 그건 아무리 봐도 진리에요.
다음 달에는 조금 더 읽어야지. 이런 좋은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