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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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8 정세랑
눈뜨고 코베인-외계인이 날 납치할 거야
https://youtu.be/3d0SCv2lyZQ?list=PLIx4Qns7amGlHKZyv_SgsW95uTcoz7as2

고등학교 입학했을 때 두 한아가 있었다.
큰 눈에 볼록렌즈 안경까지 써서 외계인 안구 같은 걸 하고 있던 한아는 스쿨밴드 오디션에 기타를 지원했다 떨어졌다. 내가 쉬는 시간마다 빈 교실, 방송실, 과학실 같은 곳을 찾아 악을 쓰듯 노래를 부르면 한아는, 그 옆에서 가만히 들어주었다. 내 워크맨을 빌려 테이프를 감아가며 음악을 듣기도 했다.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멀어지고 연락도 끊겼다. 아주 오랜 후에야 한아가 트럭 때문에 다른 세상으로 간 것을 전해 들었다.
또다른 한아는 교내 봉사 동아리 소속의 남자애였다. 말이 좋아 봉사지 쓰레기장 분리수거라는 고된 일을 맡고 있었다. 한아는 그보다 선배인 연인과 늘 다정하게 쓰레기장 주위를 맴돌며 애정을 과시했다. 다른 한아와 나는 그애들이 일하고 부비대고 다투는 모습을 보며 괜시리 눈꼴셔했다. 그들이 지나가면 가비지 커플이다! 하고 놓치지 않았다. 지나고 보면, 예쁜 커플이었다. 그냥 부러웠던 것 같다. 둘은 이미 커플이 아니겠지만, 어디선가 각자 잘 살고들 있겠지만, 이상하게도 안경 쓴 짧은 머리의 그 어린 연인이 서로를 바라보던 눈길은 잊혀지질 않는다. 그애들하곤 말 한 마디 나눠보지 않았는데.

뭐 괜히 그런 기억이 나는 제목이었다. 이 소설의 한아는 지구를 사랑하는 저탄소 친환경 지속가능한 리사이클 업사이클 의류 디자이너이자 경민을 사랑하는 연인이다. 그런 한아에게 반해 모두를 모든 것을 던지고 2만 광년을 달려온 외계인이 있다.
설탕에다 올리고당에다 사카린 아스파탐 뭔 톨 붙는 온갖 감미료 다 친 듯한 소설이었다.
눈에서 하트 튀어나오는 연애물 드라마 안 좋아하는 나에게는 조금 버겁지만 그래도 그냥저냥 읽으면서 정서순화는 되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랑스럽다 느끼는 캐릭터와 스토리. 달달이와 해피엔딩에 대한 저항감은 만들어지는 건지 타고나는 건지도 궁금했다. 내가 워낙 현실적이라...라고 하면 누군가 옆에서 정색하며 그건 메말랐다고 하는 거에요! 하고 비난하는 장면도 떠올렸다.

8월부터 줄서서 전자도서관 예약을 기다릴 정도로 인기책이었는데, 우연히 본 명사들의 추천도서에서 윤덕원이 이 책을 권하고 있었다. 아니, 난 권해줘서 읽는 게 아냐! 원래부터 한 번 보려고 했어! 괜히 툴툴대 보고 싶었다. 사실 지난 번 첫 단편집을 망설이다 읽은 건 뭐 브로콜리너마저 유튜브 채널 시청에 힘입은 바 있지만...(비겁하다 비겁맨 인정해도 되지 않겠니.)

2만 광년 거리인지는 몰라도 수많은 우연이 겹쳐 내 곁에 오게 된 존재들이 있다. 내가 모질고 모지리 같이 굴게 되는 날은 그 우연의 놀랍고 감사함을 잊지 않고 사랑하는 데 전념해야 겠다.

+동네 사람 출신 외계 체류자가 반가워 뜬금없는 밑줄
“저기 진짜 지구인은 한 명도 없는 거네.”
“아니, 딱 한 명 있어. 지구 애호가가 불법으로 납치해간 사람이 한 명. 심지어 한국인이야. 용인 출신인데 어린 시절부터 아르바이트한 경험으로 해외 놀이공원에 취직하려다가 저기로 납치당했대. 지구 애호가가 죽고 다시 자유를 얻었지만 돌아오지 않고 저기 남았어. 천사의 애인이란 소문이 있는데 내가 봐도 꽤 뜨거워 보이더라.”
“외계인들의 납치는 진짜 있는 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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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0-08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환경인데 달콤하다니, 반칙이잖아요?? 원래 친환경은 밍밍한 게 정석 아닌가요....

반유행열반인 2019-10-08 18:33   좋아요 0 | URL
판타지에요 판타지...먹어도 0칼로리 같은...올바른 데다 달달하니 헤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1번째 마니아님 앞에서 제가 깝치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