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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평점 :
-20190906 델리아 오언스
아이패드미니2가 고장났다. 블루투스 키보드 붙여 글쓰는 도구. 전자책 뷰어. 상심이 컸다. 얼마나 컸냐면 윤이형 작가와의 만남 당첨되었는데도 안 간다고 할 정도였다. 당첨 문자 받은 순간이 고장난 기기 맡기기 전 그동안 써 둔 글이며 온갖 어플을 지우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엘이디 패널 가는 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고 했다. 월요일에 맡겼는데 아직도 연락이 없다. 혹시 어디 울란바토르 같은 데로 유유히 흘러가 버린 건 아니지. 아니겠지.
그래도 빌려둔 전자책이 있어 손바닥보다 작은 아이폰5s 화면으로 마저 보았다. 원래 베스트셀러라고 광고하는 책은 좋아하지도 않고 잘 안 보는데 이 책은 기대보다 재미있었다.
연세 지긋한 동물학자의 첫 소설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습지와 해안에 대한 묘사, 온갖 조류와 패류, 야생동물에 대한 묘사가 정말 좋았다. 나처럼 방구석에서 옹벽 위로 보이는 조각 하늘 보며 쓴 글이 아니라 진정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붕 아래 있는 시간보다 많은 사람의 글 다웠다.
카야(캐서린)가 어린 나이에 습지의 판잣집에 홀로 남아 성장하고 사랑하며 습지생물을 연구하는 삶을 누리게 되는 이야기이다. 온갖 이야기가 섞여 있다. 가정폭력과 아동 유기를 넘어선 성장소설에다 사랑과 배신과 다시 찾은 사랑을 다룬 로맨스 소설에다 의문의 살인 사건과 피고로 몰려 재판을 받는 과정까지 다룬 추리 범죄 법정소설...어린 시절인 1950년대부터 카야가 생존에 분투하는 과정과 현재 시점인 1969년에 발생한 동네 청년 체이스 살해 사건을 교차로 넘나들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성이다.
중반까지는 그럭저럭 잘 읽다 중간에 연애소설처럼 풀리는 부분은 좀 통속적이네 하다가, 오빠 로디가 다시 등장하는 부분은 좀 뜬금없네, 혹시 이놈이?(응 아니야) 하다가, 중간중간 시 읊는 부분 나오면 유명한 작가인가? 나 시 잘 모르는데? 그런데 왜 자꾸 시야? 하다가... 굳이 노년기와 사망까지 왜 나와 하다가... 결말은 그랬구나. 그런데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어쨌든 끝까지 의문과 비밀을 안고 궁금해서 읽게 만든 점은 인정해야겠다.
반딧불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는데 자연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기억도 느낌도 가물거려서 어려움에 빠져 있다. 저자가 야생에 대해 풀어 놓은 모습을 보면 이런 건 그냥 상상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겠구나, 평생 자연과 동물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오래 바라보고 함께한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이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그런 아름다움을 깊이 느꼈구나 하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소녀와 소년이 희귀한 깃털을 나무 둥치 위에 주고받으며 교류를 시작하는 이야기는 환상 같지만 낭만적이었다. 스마트폰이 없어도, 종이 편지나 문자가 없어도 서로 교감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법에 대한 상상이 좋았다. 갈매기 떼가 날아들고 그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소녀, 해변의 갈매기들 틈에 잠드는 소녀, 소년과 소녀가 소풍 나간 들판 위 하늘을 가득 메우다 그들 주변으로 날아 앉는 흰기러기 등... 자연과 생명을 소재로 한 묘사는 이 소설의 최강점이었다. 구성의 미흡함이나 진부함이 약간 있더라도 그 강점이 소설을 살린 것 같다.
홀로 외롭게 고립되어 사는 소녀 이야기가 중심 이야기지만, 사실 카야가 그렇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완전한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섯 살 까지는 엄마와 오빠 조디가 함께 하며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었고, 열 살까지는 주정뱅이지만 그런 아버지라도 함께 하며 푼돈을 주고 보트로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이후에는 홍합을 매입해주는 점핑과 그의 아내 메이블이 소녀의 안위를 살피고 경제활동을 도와주었고, 테이트가 글을 알려주고 책을 날라다 주면서 소녀가 지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주었다. 이들은 카야의 법정에서도 그녀의 뒤에 앉아 그녀를 믿고 함께 있어 주었다. 그들 외에도 소녀를 변호해준 톰, 그녀의 책 편집인인 로버트, 테이트의 아버지 스커퍼도 그녀의 무죄를 믿고 힘을 보탰다. 세상에는 홀로된 소녀를 악용하려는 체이스 같은 파렴치들도 있지만, 자신의 이익이나 혈연과 상관없더라도 약하고 외로운 이를 돕고 돌보려는 사람도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 물론 소설은 소설이고 지나치게 판타지인 측면도 있다. 부모가 버려 혼자 남아 굶고 병들어 죽은 어린아이들, 세상으로 나왔지만 성적으로 경제적으로 학대 당하다 몸과 마음이 다친 아이들, 파괴되고 교육받지 못하고 병들고 꿈꾸지 못하고 그렇게 겨우 어른이 되어도 고통받는 사람을 더 많이 본다. 사랑받고 함께 하는 삶이 사람을 구할 수 있지만 그 하나를 얻는 게 그렇게나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