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맛있게, 덮밥 착한 레시피북 2
맛있는 테이블 지음, 박원민 사진, 육정민 / 참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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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맛있게덮밥_맛있는테이블 #참돌

단순한 레시피북이라기보다 음식과 함께 지나온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밥 위에 재료를 올려 한 그릇으로 먹는 음식이지만, 그 안에는 각자의 취향과 추억, 생활의 분위기가 담겨 있다. 특히 소고기 덮밥 부분이 인상 깊었다. 평범한 재료 같지만 고기를 조금 큼직하게 썰었을 때 식감이 살아나고 음식의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덮밥은 간단한 음식처럼 보여도 재료의 크기나 조합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남편과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부분에서 음식은 결국 혼자 먹는 것보다 함께 먹을 때 더 의미가 커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의외였던 음식은 가지튀김덮밥이었다. 어릴 때는 가지 특유의 식감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가지의 담백함과 부드러움을 알게 된다. 가지를 바로 썰어서 조리하기보다는 건가지를 좋아한다. 특히 튀김으로 만들었을 때의 바삭함과 촉촉함은 가지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만든다. 거기에 치킨과의 조합은 익숙하면서도 색다르게 느껴졌다. 평소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재료인데도 덮밥이라는 방식으로 새롭게 표현된다는 점이 좋았다.

또 이 책은 음식을 어렵게 설명하지 않는 점이 편안했다. 누구나 집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한 끼라는 느낌이 강했고,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바쁜 날에도 한 그릇으로 충분한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음식이 덮밥이라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했다. 화려한 미식보다 일상 속에서 자주 생각나는 음식, 그리고 부담 없이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힘이 얼마나 큰지도 알게 되었다. 특별한 요리 기술보다 평범한 재료와 익숙한 맛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읽고 나니 새로운 덮밥 메뉴를 따라 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 혼자 후다닥 차려먹는 걸 좋아하는데 간편식으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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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시간과공간사 클래식 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용안 옮김 / 시간과공간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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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_다자이오사무_김용안옮김 #시간과공간사 #재독5회

인간실격은 단순히 우울한 소설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밑바닥을 끝까지 응시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읽고 난 뒤 오래도록 마음이 가라앉았다. 지금만 벌써 5번째 재독하고 있다. 우울한 그의 글이 왜 자꾸 읽고싶어지게 되는 것일까.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함께 들여다보게 되면 그 우울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한 정서처럼 느껴진다. 그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정작 그의 내면에는 결핍과 불안, 인간에 대한 공포가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다자이 오사무의 환경이었다면...여러가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 삶이 파국으로 치닫았을까. 병약한 어머니와 공무로 바빴던 아버지 아래에서 유모의 손에 자랐고, 가까운 가족들의 죽음을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던 환경은 죽음을 낯선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감각으로 받아들이게 했던 것 같다. 다자이가 평생 죽음 가까이에서 서성였던 이유도 어쩌면 그때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의 작품은 허구를 쓰고 있지만 사실상 자기 고백에 가깝다. 특히 <인간실격> 속 요조는 다자이 자신과 거의 겹쳐 보인다. 요조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인간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들키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광대처럼 행동한다. 웃기고 장난스러운 태도로 자신의 불안과 공포를 감춘다. 나는 그 모습이 단순히 특별한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더 밝게 행동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가면을 쓰는 모습 말이다. 요조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인간 자체를 두려워한다.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가까워질수록 무너진다. 그 양가감정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읽으며 계속 생각했던 것은 왜 이렇게까지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다자이는 부유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배경을 부정하려 했고, 오히려 거기서 죄책감과 모순을 느꼈던 것 같다.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쌓은 집안에 대한 반감, 사회의 위선과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환멸, 그리고 자기 무능에 대한 절망이 뒤엉켜 있었다. 독립을 꿈꾸지만 현실적으로는 가족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는 더 깊은 자기혐오로 빠져들었다. 인간을 싫어하면서도 인간에게 기대어 살아야 하는 모순, 그것이 다자이 문학의 가장 처절한 부분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요조 주변의 인간관계였다. 사람은 혼자 무너지지 않는다. 요조 곁에는 다케이치와 호리키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착하다 못해 무른 사람 곁에는 반드시 그 틈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생긴다. 나의 삶과 오버랩되기도 했다. 좋은 게 좋은거라면서 거절하지 못하고, 상대를 실망시키기 싫어하며, 모든 상황을 떠밀리듯 받아들이는 태도는 결국 요조를 더 깊은 나락으로 끌고 갔다. 술과 약물, 여성 편력과 반복되는 자살 시도는 단순한 타락이 아니라 삶을 버티기 위한 방식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끝까지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했고,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계속 흘러갔다. 그래서 더 씁쓸하다.

“고독하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그의 삶 자체를 설명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너무 예민하게 세상을 받아들이고, 인간의 위선과 자기 내면의 추함까지 외면하지 못했던 사람. 그래서 더 괴로웠던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실격>을 단순히 절망의 소설로만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두운 부분까지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는 점에서 강렬했다. 사람은 누구나 밝음과 어둠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간다. 청춘 역시 찬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불안과 공허함, 방향을 잃은 감정이 공존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그것을 누구보다 적나라하게 써냈다.
결국 이 작품을 읽고 가장 크게 남은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이었다. 인간은 왜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자기 존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가. 다자이는 끝내 삶을 붙들지 못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문학은 지금까지도 인간 존재를 깊게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래서 <인간실격>은 단순한 우울한 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결핍과 고독, 자기혐오와 존재의 불안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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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명은 무엇인가요 - 일, 직업, 열정, 천직, 부르심
캐런 스왈로우 프라이어 지음, 윤종석 옮김 / 바람이불어오는곳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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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생 '나의 길'을 찾아 헤맨다.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발견하고, 그 일을 통해 사회적 성공을 거두며, 스스로를 하얗게 불태울 수 있는 뜨거운 열정을 소명(Calling)이라 믿어왔다. 나도 그런 사람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그 기대가 무거울수록 우리는 자주 길을 잃는다. 내가 하는 일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을 때, 혹은 열정이 예전만 못할 때 소명이 사라졌다고 자책하기 때문이다.

​책은 먼저 우리가 가진 소명의 개념을 해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흔히 소명을 내면에서 솟구치는 욕구나 개인적인 야망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소명의 어원인 Calling에 집중하며, 이것이 본래 신의 부름을 받은 일이라는 종교적 뿌리를 두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즉, 소명은 내가 나를 증명하기 위해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려오는 부름에 겸허히 응답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노트에 적었듯, 소명은 결코 돈벌이나 화려한 업적에 국한되지 않는다. 저자는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인의 삶을 예로 들어 지혜가 어떻게 일상에 통합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녀의 지혜는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시장과 가정,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가리지 않고 원만하게 흐른다. 지혜로운 소명자는 일상의 모든 일을 예배처럼 정성스럽게 대하며, 그 과정에서 진리와 선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나는 그럼 소명으로 살고있는가? 더욱 깊이있는 사유를 하게했다.

​많은 이들이 소명의 척도로 삼는 열정에 대해서도 저자는 통찰을 건넨다. "열정은 우리 안에서 타오르지만, 소명은 밖에서 온다"는 대목은 이 책의 백미다. 내면의 열정은 감정에 따라 요동치고 때로는 차갑게 식기도 한다. 열정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할 때, 우리는 열정을 소명과 동일시했음을 깨닫는다. 나 역시 뭐든 열정으로 임해야지만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소명은 내 기분이나 상태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처한 환경,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마주한 오늘의 과업이 곧 부름이다. 열정이 변하더라도 우리가 응답해야 할 부름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소명은 나를 불태워 소진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가 필요한 삶의 태도이며 주어진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는 힘이다.

​이 책은 소명을 찾는 과정이 곧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임을 역설한다. 공과 사의 구분 없이, 모든 일을 주님을 섬기듯 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소명에 가까워진다. 그것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지루한 일상을 견디고, 성과가 나지 않는 순간에도 선한 일을 멈추지 않으며, 공동체와 가족에게 두루 유익을 끼치는 삶. 저자가 말하는 소명은 이토록 낮고 가깝다. 그럼 나는 소명을 찾는 과정을 하고있는 중이다.

​책을 덮으며, 그동안 소명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옭아매었던 보이지 않는 약속들을 비워낸다. 소명은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압박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라는 초대다. 아직 나의 소명을 명확한 단어로 정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 내가 마주한 일상의 작은 조각들을 예배처럼 소중히 다루는 그 순간 이미 소명의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뜨거운 열정의 불꽃보다는, 꺼지지 않는 은은한 응답의 등불을 켜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더할 나위 없는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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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지 않은 날들에 대해 안녕 - 암 병동 간호사가 기록한 삶과 죽음 사이의 이야기
문경희 지음 / 파람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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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지않는날들의안녕_문경희 #파람북

안녕하지 않은 날들에 대해 안녕은 단순한 투병 에세이나 감동 실화에 머무르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삶의 마지막 곁을 오래 지켜본 간호사가 죽음을 통과하며 다시 삶을 바라보게 되는 기록에 가깝다. 저자 문경희는 약 27년 동안 암 병동과 호스피스 현장에서 환자들을 돌본 간호사이며, 이후 자신 역시 뇌종양을 겪으며 환자의 자리에도 서게 된다.

책 속 병동은 흔히 상상하는 차갑고 기계적인 공간이 아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병원 안에는 생의 끝자락에 선 사람들이 머물고 있다. 하지만 그곳이 평온하기만 한 공간은 아니다. 호스피스 병동이라는 장소는 결국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마지막 시간을 버티는 곳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 공간에서 환자들의 두려움, 체념, 분노, 후회, 그리고 아주 작은 희망까지 가까이서 지켜본다. 그래서 이 책의 문장들은 억지 위로나 낭만적인 생명 찬가로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삶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인상적인 점은 저자가 환자를 단순히 돌봄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병동 안의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서사를 가진 존재들이다. 누군가는 마지막까지 가족을 걱정하고, 누군가는 병이 든 뒤에야 비로소 욕심을 내려놓는다. 상처 난 밤알을 자신과 닮았다며 버리지 못했던 환자의 이야기나, 죽음을 앞두고도 내가 암에 걸려 다행이라고 말하는 환자의 고백은 단순한 감동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죽음을 가까이 경험한 사람들이 삶의 본질을 어떻게 다시 바라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저자는 간호사였지만 동시에 병든 몸을 견뎌야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에는 의료인의 시선과 환자의 시선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것이 이 책을 흔한 치유 서사와 다르게 만든다. 환자를 위로하던 사람이 어느 날 자신의 생존을 걱정하게 되었고, 건강했던 몸이 무너지는 경험을 통해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을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결국 저자는 살아남는 것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질문하게 된다.

이 책이 좋은 이유는 죽음을 소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눈물을 강요하거나 억지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은 결국 약한 존재이며, 누구도 병과 상실 앞에서 완전히 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서로를 붙들며 살아가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읽고 나면 삶을 거창하게 바꿔야겠다는 결심보다도,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보게 된다.
죽음 가까이에서 오래 일한 사람의 글은 결국 삶에 대한 글이 된다. 이 책 역시 그렇다. 안녕하지 않은 날들 속에서도 끝내 서로에게 안녕을 건네려는 사람들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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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엔의 힐데가르트 작품선집 KIATS 기독교 영성 선집 13
빙엔의 힐데가르트 지음, 김재현 엮음, 전경미 옮김 / KIATS(키아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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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엔의힐데가르트작품선집_빙엔의힐데가르트 #번역편집김재현 #키아츠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빙엔의 힐데가르트 작품선집>은 문장 자체가 난해하고 상징적이며 신학적 깊이가 있다. 그러나 읽는 동안 계속 느껴지는 것은 그녀의 확신이다. 자신의 신앙과 사유에 대한 흔들림 없는 태도가 문장 전체에 드러난다. 힐데가르트는 두 개의 수도원을 설립한 인물이자 비전가, 성경신학자, 선지자였다. 음악과 의학, 예술과 신학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12세기에 강한 영향력을 남긴 여성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표현 방식은 지금의 언어와는 결이 다르다.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이 아니라 오랜 묵상과 영적 훈련 안에서 나온 언어처럼 느껴진다.

P.72의 구절로
“세속적인 사랑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를 선택하지도 않으며,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스스로를 향해 끌어들인다.”

힐데가르트는 삶의 보상에 대한 기록 속에서 흉한 악들을 덕목들과 대비시킨다. 그중 세속적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세상을 좋아하는 태도를 의미하지 않았다. 하나님보다 자기 욕망을 우선에 두고 살아가는 상태에 가까웠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붙잡기 위해 끊임없이 정당화하고 변명한다. 그녀는 그 부분을 매우 냉정하게 바라본다.
이 구절을 읽으며 나 역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신념을 더 앞세운다. 나 또한 믿음을 따른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내 확신 위에 믿음을 덮어놓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힐데가르트의 글은 단순한 교훈처럼 읽히지 않았다. 인간 안에 존재하는 자기중심성을 직면하게 만들었다. 또 하나 깊게 남은 부분은

P.97의 문장으로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통치자처럼 내 위에 능력을 갖고 계신 분은 또한 내 자신의 능력인데, 왜냐하면 하나님 없이는 내가 어떠한 선한 행위를 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 내가 살아있는 영을 갖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인간 존재의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인간은 스스로 완전해질 수 없고 하나님 안에서만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고백이다. 힐데가르트의 영성은 인간 능력을 과장치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나 역시 삶 속에서 내 힘으로 방향을 통제하려다가 멈춰선 순간들이 있었다.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삶의 방향을 틀어놓으셨던 경험들도 떠올랐다. 그래서 이 구절이 단순한 신학적 문장이 아니라 실제 삶과 연결된 고백처럼 다가왔다.
힐데가르트는 화를 나태함의 이웃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의 감정과 죄성을 단순히 분리해서 보지 않고 영적인 문제로 연결해서 바라본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글은 인간 내면을 상당히 깊이 분석한다. 그래서 읽는 동안 편안하기보다 오히려 계속 자신을 점검하게 된다.

이 책은쉽게 읽고 지나갈 책은 아니다. 책은 포켓북으로 되어있다. 그녀의 글은 중세 신비주의 문헌이라는 범위를 넘어 인간의 신앙과 욕망, 영성의 본질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기독교 영성가로서의 깊이 있는 사유와 언어는 내 신앙을 다시 바라보게 했고, 영성을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 전체의 방향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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