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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ㅣ 시간과공간사 클래식 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용안 옮김 / 시간과공간사 / 2026년 5월
평점 :
#인간실격_다자이오사무_김용안옮김 #시간과공간사 #재독5회
인간실격은 단순히 우울한 소설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밑바닥을 끝까지 응시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읽고 난 뒤 오래도록 마음이 가라앉았다. 지금만 벌써 5번째 재독하고 있다. 우울한 그의 글이 왜 자꾸 읽고싶어지게 되는 것일까.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함께 들여다보게 되면 그 우울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한 정서처럼 느껴진다. 그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정작 그의 내면에는 결핍과 불안, 인간에 대한 공포가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다자이 오사무의 환경이었다면...여러가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 삶이 파국으로 치닫았을까. 병약한 어머니와 공무로 바빴던 아버지 아래에서 유모의 손에 자랐고, 가까운 가족들의 죽음을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던 환경은 죽음을 낯선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감각으로 받아들이게 했던 것 같다. 다자이가 평생 죽음 가까이에서 서성였던 이유도 어쩌면 그때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의 작품은 허구를 쓰고 있지만 사실상 자기 고백에 가깝다. 특히 <인간실격> 속 요조는 다자이 자신과 거의 겹쳐 보인다. 요조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인간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들키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광대처럼 행동한다. 웃기고 장난스러운 태도로 자신의 불안과 공포를 감춘다. 나는 그 모습이 단순히 특별한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더 밝게 행동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가면을 쓰는 모습 말이다. 요조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인간 자체를 두려워한다.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가까워질수록 무너진다. 그 양가감정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읽으며 계속 생각했던 것은 왜 이렇게까지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다자이는 부유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배경을 부정하려 했고, 오히려 거기서 죄책감과 모순을 느꼈던 것 같다.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쌓은 집안에 대한 반감, 사회의 위선과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환멸, 그리고 자기 무능에 대한 절망이 뒤엉켜 있었다. 독립을 꿈꾸지만 현실적으로는 가족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는 더 깊은 자기혐오로 빠져들었다. 인간을 싫어하면서도 인간에게 기대어 살아야 하는 모순, 그것이 다자이 문학의 가장 처절한 부분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요조 주변의 인간관계였다. 사람은 혼자 무너지지 않는다. 요조 곁에는 다케이치와 호리키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착하다 못해 무른 사람 곁에는 반드시 그 틈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생긴다. 나의 삶과 오버랩되기도 했다. 좋은 게 좋은거라면서 거절하지 못하고, 상대를 실망시키기 싫어하며, 모든 상황을 떠밀리듯 받아들이는 태도는 결국 요조를 더 깊은 나락으로 끌고 갔다. 술과 약물, 여성 편력과 반복되는 자살 시도는 단순한 타락이 아니라 삶을 버티기 위한 방식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끝까지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했고,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계속 흘러갔다. 그래서 더 씁쓸하다.
“고독하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그의 삶 자체를 설명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너무 예민하게 세상을 받아들이고, 인간의 위선과 자기 내면의 추함까지 외면하지 못했던 사람. 그래서 더 괴로웠던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실격>을 단순히 절망의 소설로만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두운 부분까지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는 점에서 강렬했다. 사람은 누구나 밝음과 어둠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간다. 청춘 역시 찬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불안과 공허함, 방향을 잃은 감정이 공존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그것을 누구보다 적나라하게 써냈다.
결국 이 작품을 읽고 가장 크게 남은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이었다. 인간은 왜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자기 존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가. 다자이는 끝내 삶을 붙들지 못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문학은 지금까지도 인간 존재를 깊게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래서 <인간실격>은 단순한 우울한 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결핍과 고독, 자기혐오와 존재의 불안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