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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대 1 - 봄.여름
로버트 매캐먼 지음, 김지현 옮김 / 검은숲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최근 읽었던 별 두세 개짜리 작품들로 독서 슬럼프가 와서 그간 아껴두었던 흥행 보증수표인 매캐먼의 책을 꺼내버렸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이 책은 미국의 교과서에도 나올 만큼 탄탄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진지하거나 심각한 장면이 나오지만 그때마다 주인공의 독백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 시키는 기교가 일품이다. 어찌 보면 제목부터 내용까지 그렇게 확 끌리는 작품은 아님에도 남녀노소 사랑받는 작품이 된 건 그만큼 작가의 대중성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좋은 책을 많이 만났지만 다시 읽고 싶은 책은 없었는데 이 책은 읽으면서도 다시 읽고 싶어진다. 스티븐 킹과 호각이라면서 왜 국내엔 매캐먼의 책들이 많지 않을까. 출간하면 전부 소장할 텐데.
이 책은 피카레스크 형식이라 독립된 스토리들이 서로 연결되는 재미가 있다. 아빠와 우유배달을 하던 코리는 한 자동차가 호수에 빠지는 사건을 목격한다. 차 주인을 구하러 물에 뛰어든 아빠는 벌거벗은 남자의 끔찍한 몰골을 보게 되고 이 사건 이후로 아빠는 악몽에 시달려 시름시름 앓게 된다. 책 소개는 이렇게 되어있지만 주 내용은 소년의 일상과 성장 스토리이다. 사랑과 동경, 관용과 우정, 용기와 배려, 인내와 체념. 이 외에도 어린 친구들이 느낄 수 있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골고루 엿볼 수 있다. 작가의 풍부한 감수성이 주인공에게 고스란히 녹아들어있어 과연 자전소설답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자라나면서 겪는 수많은 아픔과 기쁨, 설렘과 두려움을 글로 담아내기란 쉬운 게 아니다. 그러나 작가는 주인공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로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잠잠하게 들려주고 있었다.
우리 주변에는 소년 감성을 가진 어른들이 간혹 있긴 하다. 마블 명예 회장 ‘스탠 리‘와 미스틱 소속사 대표 ‘윤종신‘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프로페셔널하면서도 순수함과 유쾌함을 지녔다는 건데 로버트 매캐먼도 그런 소년 감성을 보여준다. 12살 주인공의 눈으로 깨닫는 삶의 작은 진리들이 퍽퍽한 세상살이에 잊고 살던 옛적 우주 세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제는 다 컸다고 생각하지만 작은 일에도 쉽게 무너지는 친구들. 유한한 시간 속에서 영원한 꿈을 심어주는 학교 선생님. 나이는 많지만 애들만도 못한 행동을 하는 할아버지. 듬직해 보여도 알맹이는 여린 아빠. 연약하다는 이유로 자식의 운동을 금하는 이웃집 엄마. 아이들의 말은 걸러듣는 어른들과 귀 기울여주는 어른들. 이 좁은 마을에서 만나는 별별 사람들로 서서히 세상의 이치를 배워가는 소년의 이야기. 코리의 삶은 작가의 삶이자 우리 모두가 겪어온 이야기이다. 그래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며, 그동안 내가 놓치고 살아온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걱정할 게 없던 시절에 뭐가 그렇게 고민이 많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것들에 왜 그리도 매달렸을까.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울면 그만이었던 나의 유년시절이여.
코리 아빠의 멘트 중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게 있다. 삶이란 질서보다 혼란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어른이 된다는 말. 어릴 적엔 누구나 되고 싶었던 그 어른이 왜 그렇게 되고 싶었나 하는 때가 온다. 철 좀 들라는, 나잇값 좀 하라는 소리를 들을 때면 자신의 행동과 생각들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으로 인식이 된다. 그래서 저마다 아이의 허물을 벗고 어른이 되려는 연습을 한다.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못 먹던 원두커피의 맛을 알아버렸다던가, 더러운 사회에 굴복하는 법을 터득한 것만이 아니다. 코리처럼 세상의 중심이 자신에서 타인에게로 옮겨져갈 때에 비로소 참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존경받는 어른은 되기 어려워도 손가락질 받는 어른은 되기 쉽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아무튼 나이가 들면 시간만큼 아까운 것도 없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무의미한 시간은 적당히 보내고 책이라도 한 권 더 읽는 습관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