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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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루헤인은 나랑 안 맞는 작가다. 느와르 장르도 나랑 안 맞는다. 그렇다면 이 책은 나랑 완전 물과 기름 사이 아닌가! 무턱대고 겉표지에 혹해서 구매했던 건데 후회된다. 그래도 한 번은 읽고 되팔아야 하지 않겠나. 3편도 있는데 읽을 생각하니 벌써 지친다. 물 없이 사막을 횡단하러 가는 기분이다.


보스턴 경찰 경장의 아들인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마피아들과 일하며 살고 있다. 그는 라이벌 갱단의 아지트에서 강도질하다가 우두머리의 정부에게 마음을 뺏긴다. 이후 우두머리는 마피아 두목을 총살하고, 주인공에게 일자리를 추천한다. 그 제안을 거절하여 갱단에게 공격받고, 경찰에게 체포된 되는 게 없는 주인공. 감옥에서 출소된 후 갱단의 우두머리를 치러 간다......... 이후 80% 생략.


살면서 느와르 물은 거의 안 보고 살았다. 그래서인지 느와르 물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다. 의리도 자비도 없는 거친 사내들의 이미지라던가, 잔혹한 살인 장면에서도 재즈 트럼펫 음악이 나오는 그런 거? 그런데 이 책에서는 느와르 다운 느낌은 하나도 받지 못했다. 일반 하드보일드 소설하고 뭐가 다르지? 이제껏 읽은 루헤인 작품 중 그나마 번역은 좋은 편인데, 그럼에도 설명하기 힘든 지저분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은 영상으로 만들어 보는 게 더 낫겠어.


스탠드얼론이든 시리즈물이든 주연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할 텐데, 이 책은 주인공 빼곤 전부 조연뿐이다. 주연이 있긴 있지만 조연과 별 차이 없는 일회용 인물들만 같다. 두목도 죽고, 아버지도 죽고, 파트너들도 애인도 사라지고.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도 결국엔 헤어지고. 그렇다고 자기 혼자 다 해먹는 잭 리처 장르도 아니고. 대체 뭐지. 등장인물도 엄청 많고, 배경도 계속 바뀌고, 사건도 줄줄이 터져서 흐름 놓칠까 봐 집중하고 읽었는데 절반쯤 가서야 그럴 필요가 없었음을 알았다. 인물들은 한번 나왔다가 사라지기 일쑤고, 사건과 사건 간에 복잡한 연결점도 없어서 대강 읽어도 이해된다. 그러나 결국 절반만 읽고 덮었다. 역시 루헤인이야. 진심 재미 1도 없음. 벌써 몇 번째 실망하는 건지. 현재 내 블랙리스트 중에 그대가 넘버 원이라오. 내가 아니어도 그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넘쳐나니 그들에게 잔뜩 사랑받으시오. 굿 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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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11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리뷰 시작할때 특유의 그 냄새가 나는 문장이 나를 웃게 합니다...’나랑 안 맞는 작가다...,이런 식의 문장 ㅎㅎ

물감 2018-12-11 17:47   좋아요 1 | URL
저의 시니컬 코드가 맞다니, 기쁩니다ㅋㅋ이래서 글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가 봅니다 😀

카알벨루치 2018-12-11 17:50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제가 감히 흉내낼수없는 그 분위기, 그 모드!!! 물감님 매력!!!
 
김경집의 통찰력 강의 - 질문하는 습관이 만드는 생각의 힘
김경집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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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는데 올해 9월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도서였다. 부제목은 ‘질문하는 습관이 만드는 생각의 힘‘이다. 이미 세상에는 거의 모든 정답이 내려져있다. 그러나 머리말에 나와있듯이 지금은 창조, 혁신의 세대라서 지식과 정보만 끌어모은들 소용이 없다고 한다. 티끌 모아 티끌이듯이 기존의 정형화된 정답들이 이제는 효력을 잃은 것이다. 자, 이제 저자가 말하는 질문의 힘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정답에 반기를 들 시간이다. 다섯 가지의 주제로 구성된 내용을 정리해본다.


첫 번째, 두 개의 문이 있어야 바람이 통한다.

어느 한 쪽으로만 답을 내리거나 생각이 치우쳐지지 말라는 뜻이다. 누구나 우선시하는 게 있고 중요도가 달라서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럴 필요가 없다. 둘 다 선택하고 챙기라는 게 아니라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하는 극단적인 생각을 할 이유가 없다. 결과만 중요한 것도 아니고 과정만 보자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하나만 고집하고 강요해야 하는가. 세상은 언제나 양면이 존재하고 서로가 의미를 가지므로 하나만 선택하여 ‘소탐대실‘하지 말라고 한다. 나의 선택도 정답도 재해석해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우리가 배웠던 길이 옳은 길은 아니다.

내가 브라스밴드 활동하던 고딩때 선배들이 해주던 말이 있다. 악기는 입으로 불든, 똥구멍으로 불든 소리만 잘 나면 된다고. 어디 음악뿐인가? 세상엔 정답이 없는 것 투성이다. 그런데 모두가 한 우물만 무식하게 파고 있다. 영어를 잘하려면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를 다 공부해야 하는데 단어만 외운다고 영어가 늘까? 무작정 한 길만 걷다가는 제자리걸음도 모자라 싱크홀에 빠질지 모른다. 막다른 길이 나오면 돌아 나올 줄도 알아야 하는데 지나온 게 아까워서 가던 길 고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는 이런 지배적 사고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덧셈만 가지고는 곱셈의 수학적 확장은 불가하듯이 알려진 정보만 흡수하는 수직적 사고보단, 새로운 가정에 계속 도전하는 수평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현명하다는 맹자의 어머니는 교육 환경이 중요하면서 왜 시장 근처로 이사 갔나...에 대한 질문은 지금 봐도 참신하다.


세 번째, 속도보다 방향이 우선이다.

요즘 한국인은 뭐든지 잘하는 것 같다. 외국어, 운동, 노래, 음식... 자기관리가 이처럼 철저한 나라도 없을걸? 그러나 이런 부러움은 남들의 피나는 노력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다이어트를 실패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간절하지 않아서이다. 그만큼 목적의식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또 완벽주의자가 되라는 게 아니다. 완벽주의자들이 실제로 완벽한가? 준비가 안되면 시도조차 못하고 성격만 예민해져서 본인조차 피곤해한다. 오히려 사람들은 빈틈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지인에게 들은 골프 얘기가 있는데 아마추어의 눈에는 공의 궤도가 여러 개로 보이고, 프로의 눈에는 두세 개 밖에 안 보인다고 한다. 방향만 제대로 잡아도 실패 확률이 줄고 그러다 보면 프로가 된단다. 이처럼 잘못된 길로 빨리 가기보다 방향부터 잘 잡고 볼일이다.


네 번째, 맥락을 읽어야 역사가 보인다.


각국의 역사, 사건, 문화 들은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가 있는데 앞의 내용들과 비슷비슷하니 궁금하면 읽어보시길. 근데 내용이 죄다 중국사라서 지겨움. 그냥 패쓰.


다섯 번째, 새로운 세상에 맞는 시대정신을 준비하라.

페미니즘이 대표적인 예이다. 천지창조 이후로 여성은 늘 차별을 받아왔고, 현대사회는 그 차별화를 없애기 위해 많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게 된지 수 년이 지났어도 남성들의 인식은 겉으로만 바뀌었을 뿐, 아직도 차별 대우는 여전해 보인다. 남자로 태어난 게 무슨 벼슬도 아닌데 똑같은 실수도 ‘여자니까‘라고 판단해버리는 남성들의 사고 회로는 납득이 안된다. 개개인을 욕할게 아니라 사회현상을 지적하고 바로잡을 생각을 해야 한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아직도 90년대 교육방식을 추구하는 교사와 학교도 많고, 잘못된 정보와 지식의 교과서들도 개정되지 않고 있다. 작가는 박정희 시절부터 ‘나라의 발전을 위해 국민은 의무를 다해야 한다‘라는 국민정신을 주입시켜왔고, 그 결과 개인의 자유주의를 잃었다고 한다. 기성세대는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쳤고, 그걸 배운 아이들이 자라서 그대로 나를 가르쳤다. 이렇게 보수주의는 정작 지켜야 할 것보다 바꿔야 할 것들을 지키고 있다.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혼자 ‘예‘라고 하는 게 잘못된 게 아니라, 왜 남들이 아니라고 하는지 들어나보란 말이다. 특히 박사모 들아!!!



새로운 사실과 정보도 많았지만 아는 정보들을 보기 좋게 정리한 내용도 많아서 별점은 3개 준다. ‘상식이란 18세까지 습득한 편견의 집합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을 생각하면, 상식이 된 정답과 진리들은 사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도 된다. 질문의 힘을 길러 편견의 폭을 좁혀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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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의 삶 - 혼자라는 것을 잊게 해줄 쓸데없이 당돌한 생각들
김리뷰 지음, 노선경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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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걸 다 리뷰 쓰는 김리뷰씨의 리뷰... 라기보단 글 모음집으로서 특정 대상에 대한 설명이 아닌 온갖 잡생각과 병맛글로 이루어져 있다. 게임용어나 유행어나 별별 드립들이 난무하는 글 모음집이지만 핵심은 놓치지 않는다. 약간 유병재와 허지웅을 섞은 듯한 스타일이랄까. 할 말은 하지만 품격은 떨어지는? 솔직하기 때문에 가식 없어서 좋다지만 어디까지나 젊은 층만 알아들을 내용이 태반이다. 이처럼 의식의 흐름과 블라블라식으로 영업 마감 때까지 카페에서 수다떨기가 가능한 나는 나름 소프트한 돌아이인데 저자는 하드한 돌아이다. 암튼 나랑 비슷한 과라서 재미있게 읽었지만 남들은 과연 어떨는지.


내가 예전에 쓴 리뷰 중 이런 내용이 있다. 소설 리뷰는 고작 몇십 개인데 인문학 리뷰는 몇천 개나 되는 대한민국은 병들어있다고. 그런데 저자는 나랑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삶이 예체능도 아닌데 일이 등 못하면 패배자 취급하는 병든 한국 사회를 고발하는 김리뷰씨. 은근 내 스타일인데? 나는 이런 허례허식 없는 삐딱이들을 좋아합니다. 문체는 심플하지만 내용까지 심플하진 않다. 후배들을 군기 잡는 학교 선배, 평균 키와 몸무게에 들지 못하면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요즘 것들은 열정도 없고 노력도 안 한다는 꼰대들, 군대든 사회이든 적응 못하는 신참을 비난하는 선배들 같은 사회현상에 대한 내용과, ‘나‘를 증명해주는 게 없다고 정체성마저도 흔들리는 것, 노력하면 뭐든지 된다는 말의 반박 등 자존감에 대한 내용 등등 이래저래 볼거리가 많다. 글쟁이는 이렇게 창의적이어야 한다. 되게 광범위한 말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창의적인 글쟁이는 생각이 많고 그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사람이다. 길가에 핀 꽃 한 송이만으로도 오십 줄이든 백 줄이든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생각이 많아야 하고, 생각이 많은 사람은 발상과 표현력도 늘어나니까. 이렇게 말하면 꼭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만 글 쓰란 법 있냐고 반문할까 봐 겁남. 그런 뜻이 아닌데 꼭 그렇게 삐뚤어진 인간들이 있다. 요지는 폭 넒은 생각을 하자는 것, 틀에 박힌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이런 내 생각과 일치하는 사람이 김리뷰이다. 예를 들어 두 번째 챕터의 리뷰 제목이 ‘가방‘인데, 이 별거 아닌 것에 관하여 다섯 페이지나 썼다. 가방의 역사나 종류나 브랜드 같은 이런 흔한 내용을 쓰라면 나도 열 페이지는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흔한 내용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뭔 말인가 싶으면 읽어보길 바람. 아무튼 글쟁이라면 사물도 세상도 다르게 볼 줄 아는 시각을 가지자는 말이다.


솔직히 이런 글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글 좀 써본 친구들이라면 다 따라 할 수준이다. 평소에 드립 잘 치는 애들이 한번 진지하게 써볼까 하고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나올 수준인데 이런 글을 모아서 책으로 출간했다니 저자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나이 먹고 자제해서 그렇지 나도 한 똘끼 하는데... 여하튼 저자처럼 나도 내 문체를 끝까지 밀고 나갈 거다. 머리가 나빠서 우아하고 세련된 문장은 쓸 줄도 모르겠고, 애초에 내가 그렇게 문학적인 사람이 아닌 걸 인정하기 때문에 누군가 내 글 보고 이런 것도 리뷰냐! 욕해도 상관없다. 사실 내가 리뷰를 쓰는 계기는 모든 책마다 ‘좋아요‘ 밖에 쓸 줄 모르는 교양인들에게 대항하고 싶어서였다. 근데 의외로 내 글이 좋다고 봐주신 분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그게 원동력이 되어 지금도 이러고 있다. 리뷰를 본격적으로 써보자고 마음먹었을 때 컨셉을 ‘병맛‘으로 잡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컨셉이 아니라 진짜 병맛이긴한데 난 그래도 내가 쓴 글이 좋다. 심심할 때는 지난 내 글을 읽으며 즐거워한다. 항상 내 감정에 솔직했고, 짧든 길든 언제나 정성을 다했기에 지금 봐도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없다. 여튼 여러모로 나랑 닮은 김리뷰씨가 갑자기 좋아지려고 한다. 왜 페이스북 팔로워가 45만이나 되는지 알겠네. 나도 김리뷰처럼 ‘오리지널리티‘를 잃지 않겠다. 아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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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유물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7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7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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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감성터치 원탑 센언니 테스 게리첸의 베스트 작품이다. 6권은 작가의 슬럼프 극복 못한 작품으로 유명해서 그냥 건너뛰었다. 어쩐지 5권 읽을 때 뒷심이 딸린다 싶더라. 여튼 이분도 글을 참 잘 쓰시는데 마니아층에서만 이름난 듯해서 좀 더 알려졌으면 하는 작가이다. 출판사에서 홍보를 안 해주면 나라도 해줘야지. 여러분, 이분 작품 1권부터 읽어보세요. 꽤 괜찮아요. 하지만 소장가치는 약하니까 빌려서만 읽으세요. 


보스턴 박물관에서 약 2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미라가 발견되어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았다. 미라의 CT 촬영 결과 오른쪽 다리뼈에 총알이 박혀있었고, 수상한 냄새를 맡은 리졸리는 박물관을 조사한다. 박물관의 지하창고에는 관리자도 모르는 비밀공간이 있었고 또 다른 미라 머리들이 발견되는데 이 머리들은 오래된 골동품이 아니라 비교적 최근 것으로 밝혀졌다. 이 광경을 처음부터 지켜본 고고학자인 주인공은 현장에서 발견되는 증거물들이 자신의 과거와 자꾸 연관되어 두려움에 떤다. 이후 주인공의 자동차 트렁크에서 또 다른 미라가 발견되었다. 첫 번째 미라의 치아 상태를 확인한 결과 25년 전 실종된 한 여성의 정보와 일치한 것으로 나왔다. 더 놀라운 것은 주인공도 24년 전에 죽은 사람으로 추가 확인이 되었다. 주인공의 정체는 무엇이고, 실종자들을 미라로 만드는 살인범은 누구인가.


범죄소설과 고고학 소재의 컬래버레이션이라니. 이런 건 어떤 식으로 만들고 소화하나 궁금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미라는 25년 전 실종된 사람이었고 이제 25년 전 사건의 범인을 찾는다? 뭔가 시작부터 김빠지는 듯했는데 작가는 과거 사건을 현재진행형으로 방향을 180도 틀었다. 실종자와 피해자 모두 고고학과 연관됨을 알아내 그쪽 세계 사람들을 파고들어서 주인공을 사냥하려는 범인을 잡는 폭풍전개 방식은 이제껏 나온 작품 중에 가장 시원시원했다. 작가 중에는 플롯을 미리 구성해놓고 글을 쓰는 타입과, 글을 쓰면서 고쳐가는 타입이 있는데 이 책은 확실히 전자이다. 전자의 경우 스토리의 탄탄함이 장점이고, 후자의 경우 자연스러움이 장점이 되겠다. 예전에 말한 보컬 트레이너와 가수의 차이와도 같은 맥락인데, 이 작가는 좀 더 특별하게 두 장점이 골고루 있는 편이다. 내가 테스 게리첸을 좋아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가독성이다. 가독성 하면 ‘히가시노 게이고‘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그 작가의 책조차 며칠에 걸쳐서 읽을 만큼 나는 독서 속도가 느린 편이다. 근데 테스 게리첸 작품은 이삼일 이면 다 읽는다. 내가 이 정도라면 말 다한 거임. 둘째는 스릴러소설에 감성이 웬 말이냐!라는 편견을 깨주었기 때문이다. 1~3권의 ‘의사 시리즈‘를 보면 작가가 전직 의사로서, 또 여성으로써 지닌 풍부한 감성들을 불어넣어 장르소설의 거칠고 딱딱함을 없애주곤 했다. 그런 작가의 고유 감성이 좋았던 건데 어째 이번에는 그런 감성이 거의 빠져있고 사건 위주의 글만 보인다. 그래서 스토리 구성은 훌륭하나 별점은 높게 주기 어려웠다.


이번 사건의 모든 원인은 주인공을 사랑한 엄마로부터 비롯되었다. 딸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모녀는 수차례 명의도 장소도 바꿔가며 경찰을 피해 다녔다. 그렇게 평생을 거짓말로 무장해야 하는 딸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려 껍데기만 남았다. 번역자는 말하길, 자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식의 정체성을 여러 번 죽인 ‘엄마‘라는 이름의 이중성에 대한 작품으로 해석하였다. 자식 사랑이 집착으로 변해버리면 부모는 누구보다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본 작품에서는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사람이 여럿 나오지만 제목의 악녀는 범인보다도 자식에게 집착하는 엄마였다. ‘모성‘을 다루는 작품들을 보면 해피 엔딩도 많지만 배드 엔딩은 더 많다. 뭐든지 적당해야 하는데 꼭 지나쳐서 문제다. 아 근데, 주인공을 납치한 범인을 프로파일링 하다가 범인의 범죄 패턴이 바뀌었다고 강조한 장면에서 제 삼자가 있음을 눈치챘어야 하는데 마지막에서야 알았다. 아직도 난 추리능력이 한참 부족하구나. 분발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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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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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워낙 청개구리라서 베스트셀러도 싫어하고, 모두가 찬양하는 작가의 책도 이상한 거부감 때문에 잘 안 본다. 그러던 내가 하루키의 작품에 도전(?)을 했고 지금은 뭔가 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느낌이다. 입문용 작품으로는 좀 아니었지만 확실히 읽기 전과 후의 나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조지 오웰의 1984와 제목이 비슷해서인지 ‘하루키‘ 하면 이 책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개발서 위주로 읽는 한국인들도 이 책은 많이들 읽었고 리뷰도 엄청 많다. 그래서 이런 유명작의 리뷰를 쓸 때면 왠지 에너지 낭비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다 아는 내용이라 아무도 안 읽을까 봐.


이 책도 남녀의 시점이 교차되는 방식이다. 한 여학생의 응모작인 ‘공기 번데기‘가 문학 신인상 후보에 오른다. 출판사 편집자와 남주는 이 응모작을 날조하여 완벽한 작품을 만들었고, 출간된 작품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이후 한 변호사가 남주에게 접근하여 ‘공기 번데기‘의 비밀에 관하여 입단속을 하고자 한다. 그 책 내용은 ‘선구‘라는 신흥종교에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었고, 여학생은 그 신흥종교 신자의 집안에서 탈출했던 일명 배도자였다. 선구의 비밀을 들춰내는 책의 내용들은 절대 세간에 알려져선 안되는 내용이었고, 남주는 본인이 엄청난 일에 휘말렸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한편 스포츠 클럽 강사인 여주가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한 노부인과 연을 맺는다. 노부인은 폭행을 일삼던 사위 때문에 딸이 자살한 뒤로 사회의 악을 제거하는 일에 앞장섰고, 여주를 암살자로 고용하여 신흥종교 ‘선구‘의 리더를 암살하기로 계획한다. 그리고 암살 현장에서 리더에게 남주의 소식과, 현재의 1984년 세계와, 또 다른 1Q84 년의 세계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제 사랑하는 남주를 살리고 자신이 죽을 것인지, 혹은 그 반대의 길을 갈 것 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눈으로 보이는 게 전부 사실이 아니라는 리더의 말을 증명하듯 하늘에는 달이 두 개가 떠있었다.


한 서평가가 깔끔하게 정리한 문장을 빌리자면, 남주는 공기 번데기 소설을 통해 1Q84 세계에 닿았고, 여주는 두 개의 달을 통해 1Q84 세계에 존재함을 알게 되었으며 이 비현실 세계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남녀의 이야기이다. 두툼한 분량답게 다루는 내용도 많은데 저마다 패턴이 비슷비슷하다. 작가는 ‘진실을 알게 되면 고통도 감당해야 한다. 그래도 알고 싶은가.‘ 라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알면 다칠 테니 조용히 살라는 갑과, 그래도 책임져보겠다는 을의 이야기가 기본 뼈대 같다. 일단 작품이 3권이나 되기 때문에 진도는 느리지만 분량만큼 정성도 대단해서 평점은 우수한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시 읽고 싶은 마음도, 누군가에게 추천할 마음도 안 든다. 하루키 팬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 게 현실과 판타지를 심히도 어중간하게 섞어 놓았고, 특히 3권에서 쌓아올린 탑이 와르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니까 ‘글맛‘ 때문에 읽은 거지, 스토리가 좋아서 읽은 건 아니었다.


어디서 읽었더라. 모든 연습의 최종 단계는 ‘자연스러움‘이라고 들었다. 하루키의 글쓰기는 이 최종 단계에 도달했다고 할 만큼 글이 자연스럽다. 불필요한 문장이 하나도 없는 완벽한 글을 추구하는 유명 작가들도 있지만 하루키는 그렇지 않아 인간미가 있다. 그저 그런 문장도 잘 사용해서 잘 쓴 문장을 더 돋보이게 한다. 강조하고 싶은 글에도 가벼운 비유나 은유를 넣을 뿐, 자연스러움에서 절대 벗어나는 법이 없고, 딱히 빼어난 문장을 쓰지 않아도 고유의 분위기가 있다. 마치 화려한 단풍잎으로 단장한 가을산보다, 돌밖에 없는데도 웅장한 그랜드 캐니언 같은 감성이랄까. 사람들이 하루키를 왜 찬양하는지 알 것 같아. 19금 장면만 빼면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좋을 듯. 왜 일본은 19금 장면에 이토록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여튼 2권까지는 분위기 진짜 좋았는데 3권부터 한숨 나오기 시작했다. 독자들 사이에서 3권이 문제였다는 말이 많았다. 먼저 열매는커녕 자라지도 않을 씨앗을 심은 것부터 얘기해보자. 그렇게 여러 번 나오던 남주의 엄마 소식은 끝까지 남주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게다가 남주도 그렇게까지 엄마 소식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중요하지도 않은 엄마의 기억을 왜 수차례 강조했을까? 그리고 남주와 여주의 집문을 두드리던 수금원의 정체도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NHK에서 보낸 적 없는 직원이란 게 밝혀졌으면 그다음은 누군지도 알려줘야 하잖아. 그런데 그 뒤로 수금원 내용은 쏙 들어감. 이런 것도 맥거핀이야? 맥거핀이 몇 개야 대체.


두 번째로 설명 부족과 개연성 부족도 짚고 넘어가자. 요양원에서 보았던 어린 여주의 분신이 들어있는 공기 번데기는 전개상 매우 중요한 장면인데 그 등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분신이 나와서 어떤 액션을 취한다던가, 리틀 피플이 분신을 조종한다던가, 아무런 설명도 뒤 내용도 없음. 공기 번데기를 딸랑 한번 등장시키고 말 거면 뭐 하러 집어넣은 걸까. 이거 말고도 여학생이 남주의 집을 갑자기 나가더니 어디로 갔는지, 앞으로 뭘 한다던지 이런 보충 내용도 없음. 특히 여주가 만난 적도 없는 남주의 아이를 잉태한 건 정말 막장에 가까웠다. 이런 부실함에 대하여 스토리 작가와 같이 작품을 만드는 웹툰 작가를 예로 들어보자. 스토리 작가가 방향을 잘못 잡아서 내용이 산으로 가면 독자는 더 이상 웹툰을 안 보거나 아니면 내용보단 그림체 때문에 보게 된다. 1Q84는 후자의 케이스다. 스토리 작가가 갑자기 퇴사를 했는지(따로 있는진 모르지만) 3권부터는 상황의 앞뒤 설명도 없고 개연성도 떨어지면서 스토리에 탄력을 잃었고, 그저 하루키의 필력 때문에 꾸역꾸역 읽었다. 총이 나왔으면 발사가 되어야 한다는 ‘체호프‘의 대사를 넣었으면 말 그대로 해주셔야지, 이 책에서 나온 총들은 방아쇠가 고장 났는지 발사하는 장면이 전혀 없다. 이건 정말 마이너스 요소였음.


마지막으로 갑자기 무너진 흐름. 가장 심각했던 건 여주가 임신한 뒤로 그동안 보여주던 액션이 뚝 끊어져 버린 것. 아 진짜 3권에 문제가 많긴 많다. 이 작품이 액션물은 아니지만 초중반에 나오는 여주의 암살 과정과, 소프트볼 선수로 활약했던 과거와, 마셜 아츠를 가르치는 내용 등 작품에 탄력을 주는 씬이 꽤 많았다. 비가 와도 절대 뛰는 법 없는 양반 같은 전개에서 그나마 여주가 완급조절을 해주고 있었는데 그게 하필 멈춘 거다. 남주는 원체 조용하고 재미없는 타입이고, 여주는 은신처에서 방콕만 하니 한없이 루즈해진다. 작가도 그걸 알고 보완 차원에서 변호사 시점의 글을 넣은 게 아닐까 싶은데, 변호사조차 똑같이 방콕하면서 카메라만 찍고 있다. 뭐 하자는 겨 이게. 그렇게 작품은 다 끝나가는데 벌려놓은 판을 어떻게 수습하나 했더니 남녀가 만나 가상세계를 탈출하는 것으로 끝내버렸다. 와 진짜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닙니까, 하루키 센세? 매듭지어야 할 내용이 얼마나 많았는데 싹 다 무시하고 끝내버리는게 어디있습니까. 요리를 많이 하면 당연히 설거지 거리도 늘어나요. 근데 설거지가 하기 싫었으면 요리를 조금만 했어야죠. 사건도 인물도 매번 엄청나게 비중 있는 것처럼 포장해놓고 정작 내용물은 없는 빈 상자였으니 이건 욕먹어도 쌉니다. 할 말이 아직도 많은데 이쯤에서 끝내렵니다. 이게 베스트 작은 아니니까 아직은 봐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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