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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생거 사원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73
제인 오스틴 지음, 조선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평점 :
일단 나님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좋아한다. 주로 남녀의 썸씽을 다루는 작가라, 감수성 부족한 수컷들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남성 독자가 오스틴을 읽는다면 뭐랄까, 여성 회원들과 함께 플라잉 요가를 배우는 남정네의 부끄러움이 몽글몽글 솟아나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들은 나이 좀 들고 여성 호르몬이 많아진 다음에 읽어보기를 권하겠다. 아 글쎄, 소멸 직전의 연애 세포가 다시 살아난다니까요?
몰란드 가문의 차녀인 낭랑 17세 캐서린 양은 이웃집 부부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캐서린은 사교 활동으로 다양한 인연을 맺어가며 알지 못했던 세상을 배운다. 작중에서는 그녀가 다가간 T가문과, 그녀에게 다가온 S가문이 등장한다. 플러팅 폭격으로 캐서린 오빠와의 약혼이 확정된 S녀와, 이에 질세라 캐서린에게 냅다 들이대는 S남의 눈꼴 시린 콤비 플레이를 볼 수 있다. 그러다 T가문의 초청으로 노생거 사원을 가게 된 캐서린은 T남과 진도 나갈 생각에 막 좋아 죽는다. 헌데 그녀의 뾰로롱 샤랄라 한 망상을 가만히 보고있을 친절한 작가가 아니란 말씀이야.
딱 중반부터 노생거 사원의 배경으로 넘어간다. 책에서만 보던 사원의 매력에 푹 빠진 캐서린. 우쭐해진 T남의 부친께서 몸소 가이드를 해주는데, 그 친절함 속에서 느껴지는 쎄함은 대체 무엇일까. 결국 제멋대로 해석하여 부친의 명예를 먹칠한 캐서린과, 그 사실을 알게 된 T남의 애정 그래프가 급 하강해버린다. 그리고 얼마 뒤, 급히 어딘가로 떠나게 된 T가문은 캐서린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거의 뭐 내쫓기듯 사원을 나온 그녀는 T가문의 매몰찬 대우와, 돌변한 T부친의 태도에 눈물 수도꼭지가 고장 나버린다. 거기다 S녀의 바람으로 약혼이 깨진 오빠의 소식까지 더해져 집안 분위기는 아주 그냥 초상집이었다. 이런 말 해서 좀 그렇지만 진짜 볼만하더라.
<오만과 편견>처럼 이 작품도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원래는 활동 초기에 쓴 작품인데, 어쩌다 보니 한참 뒤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원제도 노생거 사원이 아니었다는데 어쩐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다 싶었다. 여튼 새내기 시절에 쓴 작품답게 풋풋한 맛이 가득해서 더 좋았다. 또한 <돈키호테> 2권처럼 작가가 화자로 개입해 이런저런 코멘트를 남기는데, 그게 그렇게나 통통 튀는 매력으로 작용할 줄이야. 서사의 재미 외에도 시대의 문화와 관습을 꿰뚫는 작가의 통찰과 비판, 풍자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한 가지. 오스틴의 작품에는 어긋난 사랑의 작대기가 매번 나오는데, 한 번도 같은 패턴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잘 생각해 보면 여성 개인의 성장이나 홀로서기를 다루었지, 무턱대고 사랑이 밥 먹여준다는 식의 이야기를 쓴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고로 남성들이여,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망붕토끼 가득한 연애물이 아니올시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