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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 혼술에서 중독까지, 결핍과 갈망을 품은 술의 맨얼굴
캐럴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17년 11월
평점 :
일전에도 말한 바 나님은 알코올 섭취를 일절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들은 내가 건강관리에 진심인 줄로만 아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알코올 러버들에게는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자신에게 늘 관대했던 캐럴라인 냅과 달리 나는 일평생을 통제하고 채찍질하면서 커왔다. 그랬으면서도 이것을 금욕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건 좀 내가 봐도 모순이기는 하다. 나의 성장 배경과 환경들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에 따른 보상심리에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감정을 절제하고 욕구를 누르곤 했었기에 그걸 못 참는 사람들, 그것도 다 큰 어른들이 그러는 게 전혀 이해가 안 되었다. 정말 전형적인 애늙은이의 표본이었던 것.
어렸을 때는 막연히 반듯하게 커야 한다는 교육 때문이었고, 지금 돌이켜보면 ‘나‘라는 인간이 ‘중독‘에 매우 취약하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던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소위 ‘나쁜 것들‘을 줄곧 멀리해왔는데, 반대로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 선에서 내가 꽂힌 것들마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광기가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갑자기 어떤 디자인의 신발이 갖고 싶어졌다 치자. 그러면 내 마음에 드는 제품이 나올 때까지 10시간이고 20시간이고 미친 듯이 아이쇼핑을 해댄다. 이런 일이 거의 없지만 뭔가에 꽂혔다 하면 아주 그냥 영혼을 갈아 넣는 거다. 그걸 아니까 중독될만한 것, 아니, 중독이란 단어는 나한테 없는 셈 치며 살아온 것도 있다. 이건 이거대로 썩 나쁘지 않았는데,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나 자신의 평화, 그것이 주는 기분은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알코올만이 준다는 그놈의 알딸딸한 기분, 현실도피로 얻은 가짜 만족이 아니어도 기쁨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법이거든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 그러니까 술이라는 정신의 마취제 없이도 하루하루를 밀고 나가는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막연한 기대를 하지 않으며, 개인의 진정한 힘과 희망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경험의 축적을 통해서, 즉 자기 앞에 닥친 과제들을 하나하나 해내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사실을 터득하고 있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사람은 그러지 못한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뚫고 지나가는 것과 그것을 외면하는 것의 다른 점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멍청히 앉아 술을 들이켜다가 취하는 것 뿐이다. (156p)
술 중독자에게 이만한 통찰이라니, 진정 박수 쳐줄만하다. ‘중독‘이란 단어가 좋게 쓰일 때도 있으나, 대부분이 쾌락을 좇는 데에 쓰여서 탈이 된다. 이에 쾌락주의자들이 하는 멘트도 정해져 있다. 남들한테 피해만 안 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꼭 통제 불가한 기분파들이 그런 변명을 늘어놓는다. 내가 보아온 술꾼의 다수가 쾌활하고 털털한 면이 있는데, 본인의 무례함을 그걸로 무마하려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것 또한 저자의 말처럼 제멋대로의 합리화일 뿐이다. 이게 습관이 되다 보니 술꾼들은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해지고, 백 명의 알코올 중독자가 하나의 모습을 띄게 된다는 것. 일반화해선 안되지만 내가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부류는 하나같이 대단한 술고래였다.
고통과 불행에 무너지지 않으려 마시는 거겠지만 과음은 또 다른 방식으로 무너지게 만든다. 고달픈 삶을 외면하고 싶고,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내게도 세상이 무너질 만한 사건 상황이 많았었고, 확 삐뚤어져 버릴 순간이 꽤 있었거든. 나는 군대 전역하고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런 생각을 정말 많이도 했다. 이토록 괴롭고 힘들 바에야 차라리 나도 쾌락에 몸을 맡기는 게 낫지 않겠냐고. 그렇게 위태로울 때마다 술에 절어 나날이 망가져가는 주변인들을 지켜보면서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고 버틸 수 있었다. 어느 집단이든지 다들 술도 안 마시고 뭔 재미로 사냐며 나를 비웃거나 딱하다는 듯 보곤 했는데, 나는 이런 행태가 사리분별 못하고 주위에 피해끼치는 술주정이라고 생각한다. 여하간에 지금은 내가 그들을 비웃고 딱하게 여긴다. 저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때마다 더더욱.
술이 들어감으로써 맘에 안 들던 평상시의 나를 벗어던지고, 항상 되고 싶어 했던 워너비가 될 수 있다는 저자의 대답은 매우 그럴싸하고 또 유혹적이다. 그래서 매번 술을 찾고 마실 때마다 ‘이거야!‘ 하는 감각에 사로잡힌다는 건데, 그렇담 술 없이 맨정신일 때의 자신은 뭐 짝퉁이란 말인가? 취했을 때만 생기는 용기와 자신감이 나의 자아와 정체성을 대변한다면 글쎄, 내 입장에서는 너무 불쌍하게만 느껴지는데. 술이 자신을 좀 더 유연하게 해주고 타인과의 결속을 다져준다고는 하나, 과한 음주 가운데 맺어진 결실은 허상에 가깝다. 그래서 당신은 어떤 종류의 사람이냐는 심리치료사의 질문에 저자는 대답하지 못하였다. 냅이 그나마 자각해서 이 정도였지, 일반 사람들은 자기한테 유리한 말로 설득하려 들며 포장해대기 바쁠 것이다.
음주와 무관한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캐럴라인 냅의 글을 좋아하기도 하고, 또 숱하게 보아온 술꾼들에게 쓴소리 좀 하고 싶어서였다. 여튼 이렇게 금주를 장려하는 책이 있어줘서 내가 다 고맙더라. 개인적으로 냅의 작품 중 이 책이 가장 베스트 인 듯. 그런데 정작 읽어야 할 대상들은 읽지 않거나, 읽고 나서도 평소대로 산다는 안타까운 현실. 저자도 경각심은 늘 있었으나 프롤로그의 사건이 나기 전까진 똑같았거든. 이렇듯 술 때문에 나락 갈 때에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꼭 피해를 끼치게 돼있다. 이 헬조선에서 술 문화는 절대 개선되지 않을 테지만, 습관적으로 술을 찾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분들은 이 책을 읽고 움찔하시길 바란다. 나의 글로 심기 불편했을 분들도 있겠지만 어떤 싸움을 조장하고자 쓴 것이 아니므로 너그럽게 봐주시면 좋겠다. 당신의 뇌 손상 회복을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