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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원래 벽돌책 다음은 얇은 책 읽는 게 국룰 아잉교. 그래서 사내 도서관을 갔다가 이 책이 있길래 빌렸다. 사실 나는 어린이/청소년 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으나 문학수상작이면 볼만하겠다 싶더라고. 표지 그림대로 코뿔소와 펭귄의 이야기인데 이건 또 무슨 조합일까 해서 빠르게 읽어봤다. 어린이 책이라 유쾌한 내용을 기대했더니 오히려 어두워가지고 좀 의외였던.
코끼리 보육원에서 나고 자란 코뿔소 한 마리. 때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 가정을 이루지만, 얼마 못 가서 밀렵꾼들에게 아내와 딸을 잃는다. 이후 어찌어찌해서 옮겨진 동물원이 정체 모를 폭발로 불바다가 된다. 그곳을 가까스로 탈출한 코뿔소와 펭귄 한 마리, 그리고 알을 담은 양동이. 이들의 발걸음은 어딘지도 모를 바다로 향했고, 결국 펭귄의 죽음으로 또다시 혼자가 된 코뿔소. 다행히 부화한 새끼 펭귄과 여행을 이어가지만 이번에는 코뿔소가 걸음을 멈추고 만다.
먼저 알아둘 것은, 집단생활하는 코끼리나 펭귄과 달리 코뿔소는 혼자를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종마다 차이는 있어도 대개 그렇단다. 이 같은 태생의 코뿔소가 코끼리들과 지내면서 공동체를 배웠다는 점이 핵심이라 하겠다. 독립을 선언한 뒤로도 코뿔소는 더불어 사는 삶을 꼭 기억했다. 그래서 소중한 이들이 죽어 방황도 많이 했지만, 그때마다 곁을 내어준 누군가로 인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동물원을 떠나온 코뿔소와 펭귄. 두 친구는 종을 초월한 우정을 다진다. 그러나 펭귄은 죽고, 코뿔소는 또다시 혼자 남겨진다. 무엇보다 알을 맡아달라는 부탁은 코뿔소에게 난처한 과제였다. 그럼에도 그는 정성으로 알을 부화시킨다. 자신이 친구에게 입었던 은혜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고마운 마음을 새끼 펭귄에게 전해주게 된다. 보다시피 이 작품의 화두는 유대관계를 말한다. 코끼리와 코뿔소, 코뿔소와 펭귄. 모습이 전혀 다른 서로가 애정을 나누고 마음과 마음을 잇는다. 그것은 마음이 여유롭고 풍족한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힘없고 소외된 사회의 약자들까지도 얼마든지 사랑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랑에는 적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참 좋아하는 문구인데, 오래전에 들었던 이 말의 진가를 이제서야 깨닫고 있다. 코뿔소와 펭귄이 다르듯이 남들도 나랑 다르다는 걸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사랑의 모양과 방식은 전부 제각각이지만 유대감은 다 같은 성질이다. 지구상에 혼자 남은 흰바위 코뿔소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오늘은 나에게도 긴긴밤이 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