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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외로움에 쉽게 무너지는 인간이었다. 예고도 없이 찾아드는 이 감정에 사무칠 때면, 지독한 생각의 저주에 갇혀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그랬었는데 뭐랄까, 이제는 외로움과 제법 어울리며 살고 있다. 고독은 부딪혀야 할 대상이 아니라 친구처럼 지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혹여 이런 게 세월이 가져다주는 선물이려나.
그런데 말이다. 외로움이야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소외감만큼은 도무지 꼼짝을 못 하겠다. 그럴 때면 두 팔에 수갑이 채워지고 입에 재갈이 물린 듯한 망상에 빠진다. 또 초라함의 늪에서 솟아나는 불안을 방전될 때까지 곱씹어야 한다. 이 사이클이 한 번씩 돌고나면 정말이지 인류애가 바닥이 나버린다. 외로움과 소외감. 그게 그거 같겠지만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내가 모르는 집단에서 혼자인 것이고, 후자는 내가 아는 집단에서 홀로 된 것이다. 난 내가 소외되는 것도 싫고, 누군가가 그리 되는 꼴도 못 본다. 이 뭣 같은 기분 때문에 인원이 많은 자리를 꺼리게 된다. 인싸들한테 기가 빨려서 싫다는 건, 그들로 인해 소외되는 이들이 만든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최근 들어서 오래 유지했던 또 하나의 모임을 끝내버렸다. 더 이상 소외받고 싶지 않아서. 그만 좀 상처받고 싶어서. 어째서 인류애가 넘치는 나의 노력들은 그리도 쉽게 외면받는 걸까. 이런 와중에 읽은 책이 나를 몇 번이고 들었다 놨다 했는데, 적다 보니 또 흥분되어서 무슨 말을 쓸지 걱정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미결수를 통해 세상을 이해해보려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정서불안 끝판왕인 주인공은 죽어버리겠다며 초반부터 생난리를 친다. 전 가족이 포기한 마당에 고모만이 유일하게 주인공을 감싸준다. 주인공은 수녀인 고모를 따라 교도소에 가서 죄수들을 교화시키는 일에 합류한다. 거기서 만난 강간살인범에게 모종의 동질감을 느꼈고 결국 저 죄수와 자신이 다를 게 없음을 깨닫는다. 죄수의 교화를 보면서 그녀도 조금씩 세상을 향해 용서의 손길을 내밀게 된다는 내용이다.
멀쩡해 보이지만 정서가 불안정한 사람들이 참 많다. 그 원인은 대부분 화목치 못했던 집안생활에 있다. 그로 인해 성숙은커녕 평범할 수조차 없는 이들의 태도는 모 아니면 도다. 지나치게 밝다거나, 반대로 차갑고 방어적이거나. 이 책의 주인공과 죄수도 마찬가지이다. 무책임한 부모한테서는 자녀의 건강한 자아를 기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주인공은 큰 상처를 입고도 침묵해야 했고, 버림받은 죄수도 세상을 증오해야만 했다. 나의 이 아픔과 진실에 관심조차 없으면서, 왜 나의 말들과 행동들을 한낱 먼지 조각 취급하는 걸까. 이렇게 세상이 날 등졌다 싶어지면 전부 다 가식 같고 위선처럼 느껴져서 진심이 전혀 먹히질 않게 된다. 아홉 번 잘해줘도 한번 실수하면 너도 결국 똑같구나 할 테니까.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마음이 열릴까. 작중에서는 주인공들이 제 상처를 공유하여 같은 처지와 심정이란 걸 확인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혀 다른 성장 배경과 신분인 두 사람의 마음이 일치한 건 죽음이라는 갈망 때문이다. 아무도 내 삶에 일말의 기대를 갖지 않는다. 나 또한 미련도 없어 죽는 게 두렵지 않다. 그렇다면 살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내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목소리만 들려오는데? 이랬던 두 사람이 서로의 갈망을 안타까워하게 되고 삶에 대한 미련이 생기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오만가지의 감정들이 교차하지만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간접체험을 하게 해 준다. 그런데 간접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했거나,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독자라면 어떨까. 그래, 지금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전혀 무관한 삶이지만 그들의 감정 하나하나를 경험했던 나라서, 이 책은 정말 읽는 내내 아팠고, 그래서 다시는 읽고 싶지가 않다. 작가님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국가대표 아싸로써 몇 마디 적자면, 지 잘난 맛에 사는 인간들아...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존중할 줄도 몰라서는 안된다. 본인이 상처제조기는 아닌지 스스로 좀 돌아보고 그래라. 그럼 꼰대는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