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웨이 부인 세계문학의 숲 23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태동 옮김 / 시공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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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이 글은 당신의 귀중한 시간을 뺏길 수도 있음.



아무리 귀찮고 하기 싫은 일도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레 루틴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이걸 내가 싫어했던가 하는 때가 온다. 출근하자마자 집에 가고 싶다고 늘 징징대는 A양은 놀랍게도 지각을 한 적이 없다. 언제나 그녀의 책상엔 먹다 만 테이크아웃 커피컵이 두세 개씩 놓여있다. 저 정도면 커피를 마시지 말고 팔에다 꽂아넣는 게 더 빠른 각성효과를 얻지 않을까. 어제는 그렇게 화창하더니 오늘은 예보에 없던 비바람이 친다. 아침 기온은 영하였다가 낮에는 영상 20도를 넘는다. 어느덧 봄이 왔다는 누군가의 말에 하나둘씩 기분이 들뜬다. 봄. 봄날이라. 따뜻해도 봄이니까, 추워도 봄이니까, 공기가 좋아도 나빠도 다 봄이니까. 뭐 이런 지킬 앤 하이드 같은 계절이 다 있담. 모 가수의 노래 제목도 있었지. 봄이 좋냐. 제발 집에들 좀 있어라. 비싼 집에 살면서 집에 안 있으면 돈 아깝잖냐. 점점 표정에 변화가 없어지는 나에게 건네는 말들. 이직 준비하는 거 아니지? 그래요, 그래. 일이야 힘들지만 아직은 그럴 마음 없습니다요. 다만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내 자리에는 모니터 두 대와 키보드와 마우스를 제외한 짐이 단 하나도 없다는 거. 극강의 미니멀리즘을 고수한지 벌써 N년. 회식자리에서 취하신 팀장님이 그러데. 자발적 아싸인 척 이제 그만해~ 아닙니다, 팀장님. 척이 아니라 진짜입니다. 전 본투비 아싸랍니다. 그렇게 퇴근을 노래하던 A양이 회식만 가면 집이 싫다네? 어우 기빨려. 이놈의 인싸 알레르기는 정말 답이 없어 그래. 옆옆 테이블은 대학생들인가 봐. 분위기 주도하는 저 친구도 참 만만치 않은 핵인싸일세. 자네, 졸업하면 우리 팀에 입사할 생각 없나. 아냐, 그냥 지금 우리 테이블로 와서 저 A양 좀 마크해주라. 그리고 내가 너네 테이블로 가면 안 될까. 갑자기 휴대폰에 강아지 사진을 훅 들이미는 B양의 한 마디. 우리 집 초코 짱 귀엽죠? 이렇게 생긴 개들은 왜 다 이름이 초코일까. 드립의 민족 맞아? 썬더볼트나 볼케이노 같은 네이밍 정도는 돼야지. 어쩌다 방송이라도 탄다 생각해봐. 전 국민한테 사랑받는 거 순식간이라고. 얘는 개인기가 뭐 있니. 어, 아직 없어요. 그럼 공중제비 같은 거 가르쳐 봐. 강아지가 그런 걸 어떻게 해요. 연습하면 될걸? 그럼 선배님은 연습하면 다 되시나요. 아니 못하지. 그럼 개만도 못한 거네요. 얘도 취했네. 전화 온 척하며 밖으로 나왔더니 뒤따라 나온 C양이 저도 선배님하고 바람 쐴래요. 너도 아싸구나? 아니 그걸 어떻게. 그거 아세요? 당근 마켓의 당근이, 당신의 근처라는 뜻이래요. 많이 취했네. 아 진짜예요. 아니 왜 혼자 있는 사람한테 와서 쫑알쫑알 귀찮게 구는 걸까. 그만 들어가 놀아라. 이히히, 선배님은 반응이 진짜 재밌어요. 이런, 인기 많은 아싸는 모냥 빠지는데. 고기 먹었더니 목이 근질근질하네. 그~대 기억이~ 지~난 사랑이~~ 하루는 왜 24시간일까. 시간 참 빨리도 간다. 주 4일제를 하는 날이 오긴 할까. 그냥 주 5일제에서 4시 퇴근이었으면 좋겠는데. A양의 술 주정이 여기까지 들려온다. 두 여자가 주차장 자갈밭으로 간다. 아까 옆옆 테이블에 있던 대학생들이다. 전자담배를 꺼내며 누군가를 막 씹는데 아마도 아까 그 인싸 남학생인듯하다. 어쩌면 나도 저렇게 씹히는 중이려나. 둘 중 하나가 전화를 받더니 친구한테 손짓하며 헤어진다. 대리기사가 왔나 본데 어라, 두 사람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서로 멍하니 보고만 있다. 아니, 입술은 움직이는 게 보인다. 대리기사가 전남친인 딱 그런 상황인 듯. 아씨, 믹스 커피라도 뽑아올걸.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오빠, 요즘 대리 뛰나 봐? 나 버리고 김민희한테 간 결과가 이거야? ...세상 좁네 참. 이렇게 볼 줄 몰랐는데. 운전할게, 차에 타. 아니, 오랜만에 만났는데 오빠는 나한테 할 말이 그거밖에 없어? 다음에 얘기해. 지금 나 일중이야. 무슨 다음이야 다음은. 예전처럼 또 연락 끊고 잠수탈 인간이!... 모두가 꽐라일때 혼자 멀쩡히 귀가하는 이 기분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결국 설거지랑 빨래는 오늘도 못했다. 모 연예인이 마약 했대. 모 기업에서 횡령 터졌대. 치킨값이 또 오른대. 아주 그냥 세상은 조용할 날이 없구나. 평범하기도 참 힘들다 힘들어. 일본의 모 닌자 만화에서는 분신을 천개 이상 만들던데. 정말 부러운 능력이야. 졸려. 졸린데 잠들기 싫어. 지금 자놔야 내일 출근하지. 아는데 괜히 자기 싫어서 계속 잡생각을 해. 그만하고 빨리 자. 야 이 씨, 너 누구 편이야...



괜한 글 읽느라 수고한 그대에게 박수를 보낸다. 위의 글은 일명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이다. 이 족보 없는 형식의 글이 마음에 드시는지? 이 같은 의식의 흐름에 맡긴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읽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백장도 못 읽고 덮었다. 머리에 전혀 입력이 안되는 이 책의 리뷰들을 찾아봤더니 마지막까지 그렇게 흘러간다고 하여 그만 읽자는 빠른 판단을 내렸다. 그럼 읽은 것도 아닌데 굳이 평을 남겨야 하나 싶었지만 쓰기 위해 읽는 나님은 일단 쓰기로 했다. 의식의 흐름이라. 야, 이런 식이면 나도 하루 종일 써낼 자신 있다. 손가락 가는 대로 블라블라 하는 거? 전혀 어렵지 않다. 고전이니까 이런 형식의 작품도 높게 쳐주는 거지, 현대에 와서 이렇게 썼으면 온갖 욕을 먹고 장수했을 거다. 내가 본 고전 중에 가장 해설이 긴 작품이었는데, 그 해설마저 어려운 용어와 복잡한 설명으로 가득했다. 아니, 이해가 안 되는 해설도 해설이라 할 수 있는 건가. 뭐, 긴 해설이 필요할 정도로 쉽지 않은 작품이란 것만 알겠다. 제대로 된 작품 평을 보고 싶은 분들은 다른 리뷰들을 참고 하시라. 암튼 이번에도 읽었데는 데에, 아니 썼다는 데에 의의를 두기로 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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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27 14: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뭔가 의식의 흐름같은데 넘 재미있어요 ㅎㅎ 어디서든 초코 라고 외치면 개 짖는 소리 들릴거 같아요 ~ 저희 동네에도 초코 많아요 ㅋㅋ 근데 넘 재미있습니다 물감님 ~ 근데 포켓몬 하시나요 썬더볼트ㅎㅎ

물감 2022-03-27 14:21   좋아요 2 | URL
다행히 미니님의 시간을 뺏진 않은듯 하네요ㅎㅎ제 주변에도 초코 많이들 키웁니다요😀 인기종이었군요ㅎㅎ
썬더볼트가 포켓몬에 나오는 이름인가요? 전 그냥 즉석에서 생각한 거라ㅋㅋㅋ

mini74 2022-03-27 14:24   좋아요 2 | URL
네 ㅎㅎ 썬더볼트 포켓몬에 나오는데 예쁩니다 ~

물감 2022-03-27 14:34   좋아요 2 | URL
방금 검색해보고 왔는데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2-03-27 16: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왜 다 이름이 초코‘에서 터졌습니다 ㅋㅋㅋ
아 넘 재밌게 읽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 책 몇 권 있는데 다 중고임에도 새 책 같아요. ㅎㅎ
댈러웨이 부인을 소재로 한 마이클 커닝햄의 <디 아워스>가 좋았었기에 이 책도 읽고 싶긴 한데 손이 안 가긴 합니다. 😪
물감님 글을 보니 그래도 올해는 도전해볼까 싶어요.ㅋ

물감 2022-03-27 18:02   좋아요 4 | URL
제 마이너 코드를 좋아해주시는 몇 없는 이웃분들이 있어 글쓰는 맛이 난답니다😀 어쩐지 아재개그를 끊지 못하는 사람의 기분을 알겠네요ㅋㅋㅋ
그나저나 울프의 글이 많이 어렵나봐요. 그래도 뭐 이 책만 할까 싶네요ㅋㅋㅋ같이 도전해봐요🙂🙂🙂

북깨비 2022-03-30 16: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떡해요 ㅋㅋㅋㅋ 저도 너무 재밌어요!!! 🤣 이거 디스 아니고 책 홍보 글 아니에요? ㅋㅋㅋ 댈러웨이 부인은 어떤지 몰라도 물감님 의식의 흐름 기법은 책 한 권 분량도 술술술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물감 2022-03-30 16:52   좋아요 3 | URL
아이구야 의도치 않게 팬 한명을 또 확보해부렀군요ㅋㅋ
끄적인 저의 의식의흐름 글은 평상시 자주하는 생각의 일부라, 온종일 쓸수도 있어요ㅋㅋㅋ 이웃님들을 위해서 가끔씩 띄워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