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토버리스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37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당신의 취미가 독서라면 <서울대학교 권장도서 100권>이라는 도서 목록을 본 적 있을 거다(잘 모르면 검색해보시길). 아무튼 그것처럼 장르문학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자주 입에 오르는 필독도서 목록이 있다(이건 검색해도 안 나올걸). 이번에 읽은 것도 그중에 하나인데, 사실 제프리 디버야 워낙 유명하지만 이 책은 디버가 왜 본투비 넘사벽인지를 다시금 알게 해주었다. 마치 처음 달에 도착한 인류가 ‘제프리 디버 다녀감‘이라 적힌 팻말을 본 기분이랄까. 역시 아직까지는 나의 원픽은 디버옹이야.


딸을 납치한 괴한이 돈과 함께 옥토버리스트를 요구해온다. 그녀의 사장이 고객들의 돈을 들고 날랐단다. 경찰에 알리지 말라는 괴한의 협박과, 사장의 도주를 수사하는 경찰들 사이에서 피똥 싸는 그녀와 애인. 당장 거액의 돈을 어디서 구하며, 그놈의 옥토버리스트는 또 뭐란 말인가. 정신 못 차리는 그녀 앞으로 딸의 손가락 하나가 배달된다. 오, 하늘이시여...


줄거리만 보면 디버가 썼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평범 이하인데,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를 택한 이유가 따로 있다. 그것은 흐름이 역순으로 구성된 작품이기 때문. 36개의 짧은 챕터가 거꾸로 진행되다 보니 내용이 복잡하면 독자가 지나간 상황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시간을 거슬러가며 서서히 알게 되는 진실과 반전을 만끽할 수도 없다. 보통은 초반에 사건이 발생하고 후반에 범인을 밝혀내 사건이 종결되는 순서지만 이게 역순이 되니 시작부터 결말이라 맥이 빠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역으로 가는 이야기에서 무슨 반전을 볼 수 있겠나 싶은 의심도 들 거다. 심지어 흔한 내용에다 가도 가도 딱히 뭐가 없어 보이는 느낌을 계속 주거든. 그러나 끝까지 인내한다면 반드시 보상받을 것이므로 절대 의심치 말길. 역으로 읽는 게 생각보다 불편하진 않았지만 원한다면 뒤에서부터 앞으로 읽어도 된다. 물론 비추한다.


나 역시 <메멘토>라는 영화 얘기를 안할 수가 없겠다. 단기 기억상실증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인데, 과거에서 현재로 가는 시점과, 현재에서 과거로 가는 시점이 교차되다가 중간에 합쳐지는 영화다. 개인적으로는 따라가기도 벅차고 이해도 잘 안되고 반전에도 그냥 시큰둥했었는데, <옥토버리스트>는 하나의 시점으로 독자들과 호흡을 맞추었고, 한참 뒤에서 떡밥들을 회수하는데도 초중반의 장면들이 딱딱 떠오를 만큼 이해하기가 쉽다. 그래서 나는 <메멘토>보다 이 작품에 손을 들어준다. 반전에 반전은 뭐 말할 것도 없고.


이 책은 기승전결이 분명한 장르소설의 틀을 깨뜨린 것도 있지만, 늘상 악역과의 대결구도를 고집하던 디버의 스타일을 완전히 버렸다는 점에서 가히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디버가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말이 돌고서 내놓은 게 <옥토버리스트>라는데, 스타일도 전혀 다른 데다 줄거리마저 쏘쏘하니 그의 팬들은 더 당황했을거다. 그러나 끝까지 읽고 나면 역시는 역시나임을 알게 된다. 자신의 주 무기를 내던지고도 절대 승리하는 전략이라니, 참으로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 뇌섹남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깐.


작가 왈, 이 작품은 자신이 쓴 것 중에 가장 짧지만 가장 공들였다고 한다. <옥토버리스트>에는 그의 타 작품들처럼 전문 직업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항상 집필하기 전에 엄청난 사전조사와 연구를 하는 디버가 이처럼 단순한 내용에 무슨 투자를 했다는 걸까 싶었는데, 다 읽고 난 지금에서야 어떻게 공을 들인 건지를 알겠더라. 심플한 게 최고라는 뜻을 알고 싶다면, 또 나처럼 장르문학 매니아라면 꼭 사라. 정가는 13,8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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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11-28 15: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저 <메멘토> 굉장히 좋아했는데 메멘토 이상이라니 읽어보고 싶습니다!!

물감 2021-11-28 15:33   좋아요 1 | URL
지극히 개인적인 주장이라서 너무 기대하진 마세요ㅋㅋ 그냥 비교하지 말고 읽으시면 좋습니다🙂

공쟝쟝 2021-12-02 0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난다. 공유에 이어서 이동욱. 규탄한다. (그러나 알라딘에서 가장친한 친구 프사는 안젤리나 졸리...)

다락방 2021-12-02 10:0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공유일 때 공유인 줄 몰랐습니다.....

공쟝쟝 2021-12-02 10:04   좋아요 1 | URL
물감 혼내고 싶은데 안젤리나 졸리땜에 참는다

물감 2021-12-02 10:06   좋아요 0 | URL
뭐여뭐여 뭣땀시 공님은 욱해있고 다님은 웃고있는거여 ㅋㅋㅋ

공쟝쟝 2021-12-02 10:09   좋아요 1 | URL
몰라서 묻는 것입니까!!! 공유동욱님아 ㅋㅋ 서울대 권장만한 물감 권장 장르문학 탑 10써주세요. 내 세권 정도 읽어드리겠음. (요즘 추리물 맛붙여가는 중)

물감 2021-12-02 11:01   좋아요 1 | URL
음음 일단 연말연초는 넘긴다음 준비해보겠읍니다.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다면....

공쟝쟝 2021-12-02 12:24   좋아요 1 | URL
토닥토닥, 열심히 일해요... 그리고 살아남아서, 알라딘 서평계의 자린고비 이동욱의 너른 마음 장르 픽을 볼 날이 올 수 있기를... (안그래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