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아였을 때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ㅓㅓㅓㅓㅓㅓㅓ무 힘든 요즘이었다. 연휴 직전까지 미친 듯이 일하느라 매일매일 에너지를 150% 이상 쓴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온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아프다. 하필 이럴 때 읽은 책마저 오 마이 갓뎀이었으니, 얼마 전 국내에서 재조명된 가즈오 이시구로의 망작을 읽고야 말았다. 넘나 걸작이었던 <클라라와 태양>에 비하면 이번 작품의 수준은 정말 심각했다. 이 책만 본다면 작가의 맨 부커상, 노벨문학상 수상이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평소 같았으면 읽다 덮었을 테지만 다행히도 요즘 내가 맛이 가있어서 이런 뭐 같은 책도 아무 생각 없이 쭉쭉 읽어나갔더랬다. 고생한 나님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며, 이번 리뷰는 손가락 가는 대로 대충 써보련다.


부모가 실종된 후 상하이에서 영국으로 떠나온 소년의 이야기. 영국에서 나름 유명한 탐정이 된 그는 사교계 모임을 통해 인맥을 쌓고, 부모의 실종사건을 수사하고자 다시 상하이로 간다. 이렇게만 소개하면 무슨 추리소설, 스릴러소설인가 싶겠지만 전혀 그런 장르가 아니다. 그리고 수사에 대한 장면은 내 기준으로 제로에 가깝다. 절반은 주인공의 유년시절 회고록이고, 절반은 현시점이지만 사건 및 수사와는 무관한 내용들로 가득 차있다. 뭔가를 장황하게 말하고는 있는데 그것들이 대부분 의미 없거나 불필요한 내용이어서 내용 파악이 잘 안된다. 스토리에 뼈대가 없는 데다 진도는 더럽게 느리고 장면들은 좀처럼 시각화가 되지 않는다. 작품도 문제롭지만 이상한 번역도 한몫한다. 차라리 찬호박의 LA 시절 이야기가 더 재밌겠다 느꼈으니 말 다했다.


개인적으로 일본인 특유의 루즈하고 건조한 분위기를 안 좋아해서 ‘나쓰메 소세키‘나 ‘마쓰모토 세이초‘ 같은 일본 거장들의 책을 잘 안 읽는데, 이 책에 비하면 다들 양반이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영국에서 자랐음에도 어째서 이런 분위기의 글을 썼을까. <클라라와 태양>에서 보여준 동서양의 결합된 감성이 작가의 전매특허라고 생각했거늘, 그런 매력은 온데간데없고 이렇게 대실망을 안겨줄 수가 있나. 내가 지금 괜히 트집 잡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다. 내용이랄 게 있어야 비평을 하든가 말든가 하지, 뼈대도 없는데 살도 이상한 살만 잔뜩 붙여놔서 정체성을 모르겠다. 해석하기 난해한 현대음악 같은 장르랄까. 


그렇게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를듯한 내용만 나오다가 후반부에는 정신 좀 차렸는지 사건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필요한 살들로 분량만 늘려놔서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부모 찾으러 상하이까지 와놓고 유부녀와 눈 맞아서 귀국하겠다는 생각은 도대체 말이야 방구야? 부모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자신과 남들에게 여러 번 강조해놓고 여자 때문에 그냥 갑자기 수사를 포기한다? 원아웃. 상하이를 뜨기 직전에 부모가 있을만한 장소를 알게 되어 여자를 버려두고 목적지로 향하는 주인공. 태세 전환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참 줏대 없는 팔랑귀 같아서 투아웃. 그 장소가 전쟁 위험지역이라 지휘관이 접근 못하게 막았는데, 동행인들까지 동원시켜서 안내해달라는 이 남자. 죽을지도 모르는 동행인들의 목숨보다 제 사건이 최우선 인양 급발진해서 침 튀겨가며 지휘관에게 떼쓰는 모습에 쓰리아웃. 어쩜 이렇게 호감이 1도 안 생길 수가 있을까.


막바지에 가서 부랴부랴 정리하느라 바쁘다. 부모의 실종과 집안 내막을 알게 되고, 어렸을 때의 일본인 소꿉친구를 조우하고, 자식을 못 알아보는 모친을 만나고 등등. 급 전개로 많은 것이 생략되었고 그래서 뜬금없는 기승전결이 되어버렸다. 상하이에서 살던 주인공이 영국으로 가서 유명한 탐정이 되어 옛 고국으로 돌아온 이 내용은, 일본에서 태어나 영국에 가서 유명 소설가가 된 저자를 말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자전소설이라고도 하겠는데, 서양인의 주인공보다는 동양인의 소꿉친구 아키라가 저자와 더 닮아있지 않나 생각된다. 똑같이 외국 땅에 있으면서도 아키라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외국인의 신분과 일본인의 정체성 사이에서 근심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아키라의 분량은 매우 적지만 그 친구가 없었다면 이 작품은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었을 거라고 본다.


주인공도 일찍이 고아가 되고, 그가 커서 고아인 소녀를 입양하고, 좋아했던 여인도 고아였다는 점에서 ‘고아‘에 어떤 중점을 둔 것처럼 생각되나, 막상 읽어보면 제목이 내용에 별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 가족을 되찾고 싶어 하는 주인공과 정반대인 입양 소녀가 한 가족이 된 점도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만약 이 책이 이시구로 같은 이민자들의 정체성을 위해 기록한 거라면 대 실패라고 말해주고 싶다. 와닿는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비록 실망은 했지만 이 책이 유독 이시구로만의 감성이 약한 편이라고 하니까 넘어가 주겠다. 그럼 20000.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9-19 12: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넘 힘드실때는 책보다
휴식!

추석 연휴 동안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해피 추석~


∧,,,∧
( ̳• · • ̳)
/ づ🌖

물감 2021-09-19 13:57   좋아요 2 | URL
ㅎㅎㅎ스캇님도 메리 추석!

새파랑 2021-09-19 15: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시구로 책 한창 볼때도 이 책은 안읽었는데 별이 2개 군요 ㅜㅜ 그래도 별 2개 작품도 정성스럽게 리뷰 써주신 물감님의 열정에 👍

물감 2021-09-19 15:28   좋아요 2 | URL
근데 또 저만 평점이 낮은것 같던데요ㅋㅋㅋ 여튼 짜증나서 최근에 나온 리커버 에디션 다 질렀습니다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9-19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시구로 샘의 책 중에서
이 책이 가장 별로가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대가의 책이라고 해서 모두 좋
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감 2021-09-19 19:36   좋아요 0 | URL
나름 인간미 있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좋고 나쁨의 갭이 너무 커서 좀 거시기합니다. 여튼 저도 공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