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7일 모중석 스릴러 클럽 25
짐 브라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일이 년 전만 해도 슬림핏이 유행이더니 지금은 와이드핏이 유행이다. 과거의 각 잡고 꾸민듯한 패션은 이제 동네 마실 나가듯 프리한 감성의 패션으로 바뀌었다. 분위기가 확 바뀐 거리와 사람들을 바라보니 그전의 패션들이 너무 투머치 했었구나 싶다. 사람들은 뭐든 적당한 게 좋다고들 하고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한다. 저마다 적당함의 범위는 다를 테지만, 과하다고 느끼는 포인트는 비슷할 것이다. 여러 방면에서 볼 수 있는 이 투머치함을 소설에서 만나는 신선한 경험을 하고 말았으니 벌써부터 손가락이 근질근질 거린다. 그러나 리뷰까지 투머치하면 안 되므로 적당히 써보겠다.


열 두 명의 남녀가 한 섬에 모여서 일주일간 서바이벌 게임을 진행한다. 방송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 리얼리티 쇼의 승자가 되면 거액의 상급과 별도의 혜택이 주어진다. 그런데 오프닝 도중 사회자가 죽어버리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이윽고 섬 전체에 들려오는 한 목소리. 참가자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으며 7일 동안 24시간마다 백신을 맞아야 살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의 모습은 섬 전체에 설치된 캠을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며, 전 국민의 투표에 따라 매일 한 명씩 죽게 된다. 대체 어떤 정신병자가 이런 엽기적인 쇼를 기획한 걸까. 


규칙을 어기는 행위에는 그만한 응징이 주어졌고, 정체 모를 바이러스 때문에 국방부도 올 수 없었다. 투표수가 많은 사람은 백신을 맞지 못해 죽음을 맞이한다. 딱 추리소설의 밀실 살인사건과 닮아있다. 폐쇄된 공간, 연쇄 살인사건, 그리고 숨어있는 범인. 그런데 전 국민이 다 알고 있으니 폐쇄라 볼 수가 없고, 범인이 직접 죽이지도 않으니 연쇄 살인이라 하기도 애매하다. 진퇴양난의 베이스와 예측불허의 설정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참가자들을 투표해 사형을 내리는 국민들과, 바이러스가 퍼지지 못하게 섬을 지우려는 국방부. 보다시피 미국은 참가자들을 구해낼 마음이 전혀 없다. 이번 쇼의 목적은 잠재돼있는 인간의 악한 면을 끄집어내는 것이었고, 범인의 시나리오대로 국민들은 살인 공범자가 되었으며 미국의 정의나 위상은 완전히 추락해버렸다. 저자가 베테랑 방송인이라는데, 그동안 보고 느낀 미디어의 위험성과 인간의 이중성을 샅샅이 고발하고 싶었던 듯하다. 아쉽지만 실패입니다.


자 이제 비평의 시간. 저자의 투머치한 자신감은 과다한 욕심으로 변형되어 흉측한 괴물을 낳았다. 일단 서바이벌 플롯인 만큼 등장인물이 정말 많다. 그 많은 인원을 일일이 체크할 수 없으니 캐릭터들의 입체감도 그만큼 줄어든다. 비중 없는 인물들이 한 명씩 퇴장한다 해서 남은 이들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작품이 사건 중심이라면 모를까, 참가자마다 사연이 있는데 너무 간소화해서 다루지 않는 것만 못했다. 특히 트라우마와 싸워야 하는 이 중요한 장면들마저 짧게 지나가는데, 분량 조절 문제도 있고 하니 이해한다지만 너무 가벼워서 영 불만스러웠다. 이럴 거면 중요 인물 두세 명만 골라서 집중하는 게 훨씬 나았을거다. 배스킨 라빈스의 서른 세 가지 맛을 다 사 먹으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욕심은 이게 다가 아니다. 인물들도 잘 챙기지 못하는 마당에 섬 밖의 상황도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섬에 접근하던 군 헬기는 알 수 없는 오작동에 추락하였고, 통제불능의 두려움과 바이러스의 무서움이 백악관을 지배하였다. 대통령은 기자 한 명을 골라 정보를 흘려주어 언론을 장악하기로 한다. 이 기회를 통해 벼락 스타가 된 기자는 자신의 추리력으로 정보의 조각들을 모아 섬의 진실에 다가간다. 이어서 그 기자를 노리는 또 다른 그림자가 등장하고... 진짜 대책 없이 판을 키운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그 많은 스텝들이 전부 진실에 닿기 위한 것도 아닌 데다, 섬 안의 상황만으로도 모자란 분량을 왜 자꾸 쪼개고 쪼개는 건지 원. 


참가자들은 빠져나갈 구멍도, 역전시킬 카드도 없다. 범인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고, 백신을 맞지 못한 누군가는 무조건 죽어야 한다. 여기에는 변수도 없고 반전도 없으므로 서스펜스 또한 전혀 볼 수가 없다. 이 쇼가 전 국민을 관음증에 걸린 빅 브라더로 바꿔놓았지만 딱 거기까지 일 뿐, 이 현상이 독자에게 아무런 경고장이 되어주지 못했는데 저자는 꽤나 만족했는 갑다. 그리고 죽음이 오늘내일하는 긴박한 와중에 로맨스가 웬 말이며,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데 격정적인 몸의 대화가 웬 말인가. 다시 말하지만 실패입니다. 


장르소설이란 집안을 꾸미는 일이다. 벽지와 장판으로 베이스를 갖추고, 가구 배치로 동선을 체크하고, 조명으로 분위기를 만들고, 액자 같은 소품으로 포인트를 줘야 한다. 신경 쓸 게 많아서 힘들다면 적당히 미니멀리즘으로 가도 된다. 허나 저자는 그럴 생각이 1도 없었고, 있는 대로 가구와 소품을 구겨 넣음으로 집안을 무슨 창고처럼 만들어놨다. 혹시나 해서 다른 작품도 있나 했더니 국내에는 이 책 뿐이더군. 이제 책은 됐으니까 본업에 충실하시길 바라바라바라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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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8-23 23:25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저자가 들으면 뼈맞아 아프겠네요~ㅎㅎㅎㅎ

물감 2021-08-23 23:57   좋아요 1 | URL
이렇게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들은 좀 아파볼 필요가 있습니다ㅋㅋㅋ

새파랑 2021-08-23 23:45   좋아요 2 | URL
왠지 빡침이 글에서 물씬 느껴지네요. 내 아까운 시간! 하는 물감님의 절규가 눈에 보인다는 😅

물감 2021-08-23 23:59   좋아요 1 | URL
광고에 낚인 제 잘못도 있죠 뭐...ㅋㅋㅋ이젠 예전처럼 정성을 다해서 까는 게 힘드네요😔

독서괭 2021-08-24 02:07   좋아요 1 | URL
아이고 저자 욕심이 과했군요… 설정이 좋은데 구성력이 떨어지는 소설 보면 좀 안타깝죠^^;

물감 2021-08-24 07:17   좋아요 0 | URL
아이디어가 아까워요. 이걸 다른 작가가 썼으면 좋았을걸,싶어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