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페스트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평점 :
이제는 ‘재앙‘이라는 단어가 친숙한 시대가 된듯하다. 자연 재앙은 그렇다 치고, 인간이 만든 재앙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재앙들이 대부분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만, 전염병은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유일한 재앙이다. 세계를 사망으로 물들이는 코로나를 보며 더욱 실감한다. 과거 메르스나 에볼라처럼 코로나도 잠깐의 유행병으로 생각했다가 어느새 3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 엄청난 재앙 가운데서 재조명된 문학 작품이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이다. 일부 이기적인 사람들의 개념 없는 행동으로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이 사태 속에서 우리들이 갖춰야 할 것은 바로 공동체 의식이다. ‘페스트‘는 이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성의 교과서였다.
쥐 사체에서 발생한 페스트는 이례 없었던 고통을 선사했다. 계엄령이 내려진 도시는 외부와 차단되고 시민들은 강제로 유배생활에 들어갔다. 페스트는 멈출 방법이 없었고, 서서히 죽어가는 병자를 지켜보는 게 다였다. 감염자들은 시신이 되어 구석에 쌓여가고, 산 자들은 곧 있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사망에게 먹혀버린 이 도시에서 최후까지 페스트와 싸우는 의사 리외. 죽음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이 시기에 읽으면 더 와닿을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 봤던 영화를 또 보는 기분이 들어서. 그만큼 페스트와 코로나는 구석구석 닮아있었다. 사실 재난 소설의 내용은 그게 그거라서 숲보다는 나무에 더 주목해야 한다. 고갈되는 음식과 전기. 무너지는 경제. 증가하는 실업자. 고립된 도시와 정지한 시간 속에서 의미를 잃어버린 희망 등등. 집안에 갇힌 시민들이 하는 일은 지나간 시간들을 후회하고 자책하는 것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제 세상에 없거나,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사이가 돼버렸다. 그렇게 이별은 갑자기 찾아와 모두의 일상을 헤집어놓았다. 그러나 길어지는 재앙에 적응된 사람들은 슬픔에 무덤덤해지고, 고통으로 탄식하지도 않고, 타인의 불행에도 안타까워하지 않게 된다. 주인공은 이러한 변화들이 곧 불행이며 절망임을 지적하였다. 하지만 감정에 무뎌지지 않고서 어떻게 버티란 말인가.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은 묵묵히 죽을 차례를 기다렸다. 과연 인간은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존재였다.
등장인물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절묘하게도 셋 다 지금의 한국 상황과 딱 맞아떨어진다. 첫 번째는 종교에 의존하며 현실을 망각하는 자들. 재앙은 신의 뜻이니 죗값을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스스로 이겨낼 생각을 하지 않는 유형이다. 신천지가 여기에 해당된다. 남들이 죽든 말든 제 신앙만이 전부였던 그들의 결과가 어땠는지는 굳이 적지 않겠다. 두 번째는 사치를 부리며 현실을 부정하는 자들. 절대 재앙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돈과 허세로 자유를 외치는 유형이다. 이태원 클러버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철부지들은 자유를 무슨 돈 주고 사 먹는 삼각김밥처럼 생각하나 본데, 그들이 누렸던 자유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도 적진 않겠다. 때로는 오늘의 치킨을 내일로 미룰 줄도 알아줬으면 한다. 세 번째는 페스트에 맞서 저항하는 자들. 재난을 이겨내자는 국가 방침에 적극 동참하는 유형으로, 이들은 건강한 사회가 곧 개인의 행복이라 믿는다. 질병관리본부와 의료진들이 이 유형에 해당된다. 거창한 뜻을 품지 않아도 그와 비슷한 이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쉬지도 않고 치료에 전념하는 이들이 있어 코로나의 기세는 차츰 꺾여간다. 그러면 우리는 이 중에 어느 유형에 속해야 할까. 잘 생각해보시라.
카뮈가 이 작품으로 연대의식의 중요성을 일깨운다고 해설자는 기록했다. 아마도 이 교훈 때문에 지금 ‘페스트‘가 재조명 받은 게 아닐까. 코로나를 대하는 인식과 태도는 나라마다 판이했다. 개인의 자유를 더 우선시하는 나라도 있고, 무력으로 국민을 통제하는 나라도 있으며, 반대로 국민이 자발적으로 자유를 제한하는 나라도 있었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 국가인 러시아는 코로나가 돌자마자 외국인의 입국을 차단함으로 진정 국민을 위하는 화끈한 나라가 되었다. 반면 자유민주주의국가인 미국은 우월주의와 오만함으로 스스로를 방치하다 수많은 사망자를 만들어낸 무식한 나라가 되었다. 두 나라는 우리가 생각했었던 이미지와 상반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러시아는 관점을 국가와 단체에 맞추었고, 미국은 개인에게 맞춘 결과이다. 저자는 이런 연대의식의 부재가 몰고 오는 피해에 대해서 다양한 인간 군상으로 기록해두었으니 직접 읽어보길 권장한다.
또한 페스트는 사랑의 부재를 그려낸 작품이기도 하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얼마 없는 시간들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페스트는 그런 기회조차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페스트는 유독 잔인한 재앙이었다. 페스트가 지나간 도시의 변화는 하나뿐이었다. 괴로운 시간이 빨리 가길 바랬던 사람들은 제발 시간이 멈추길 바라고 있었다. 그동안 힘껏 사랑하지 못한 세월을 보상받고 싶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별한 후에야 가족과 연인의 소중함을 느꼈고, 사랑의 감정으로 긴긴 시련과 고난을 버텼다. 재앙이 끝난 후에도 사랑이 죽어버린 세상이라면 재앙이 끝났다고 볼 수 있을까.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