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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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는 히틀러만큼이나 유명한 사람이다. 가수들의 가수가 조용필이라면, 작가들의 작가로 손꼽히는 그런 분이다. 보통 유명 작가들은 저마다 고유의 특징이 있다. 조지 오웰의 날카로운 통찰력, 정유정의 혼수상태 분위기 조성, 장강명의 강속구 팩트, 하루키의 우주를 갈아 넣은 감성, 스티븐 킹의 기괴한 상상력, 요나스 요나손의 B급 유머 코드 등등. 수많은 작가들의 다양한 장점들 중에 헤밍웨이는 문장의 간결함으로 유명하던데 과연 읽어보니 잘 알겠더라. 문장들이 주인공인 노인의 이미지를 닮아있다. 근육이 다 빠져서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느낌이랄까? 간결함의 영역을 초월하신듯. 이렇게 살을 붙이지 않으면 글의 방향이 뚜렷하고 읽기가 수월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같다. 단점은 글맛이 없어서 독자의 문학적 감성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글이 그렇다는 것이지, 작품 자체가 감성이 없다는 게 아닙니다.


노인이 바다에서 청새치 잡는 내용이 전부다. 이 단순한 이야기가 대체 어떤 교훈을 주길래 전 세계가 열광했을까. 짧은 내용을 더 짧게 요약해보자. 오랜만에 소개팅 나간 늙은 어부는 끈질긴 구애로 까칠한 그녀의 마음을 쟁취한다. 그녀와 드라이브 좀 하다가 집 구경도 시켜줄 계획이었는데 왠 양아치들이 쫓아와 두 사람을 방해한다. 격렬한 공방전 끝에 그녀는 목숨을 잃었고, 순정파 어부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 지난 시간들을 떠올린다. 비록 그녀를 지키진 못했지만 사람들은 그가 보여준 용맹함에 존경을 표한다. 디 엔드.


어쩌다 보니 슬픈 이야기가 돼버렸는데 절대 슬픈 이야기가 아닌 거 다들 아시제? 암튼 내용 자체는 별거 없었다. 얼핏 보면 노인의 생존기 같지만 사실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내용에 더 가까웠다. 먼저 노인은 84일간이나 고기를 잡지 못했다. 이건 마치 음식점에 파리만 날리는 꼴과도 같다. 엄청 괴로웠을 텐데도 노인은 자신을 따르는 소년 앞에서 허세 부리지 않았고 오로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또한 바다에서 홀로 긴 시간 동안 외로움에 버려졌지만 자신의 양손과 대화를 해가며 고독을 이겨내곤 했다. 특히 청새치와의 사투가 길어져 멘탈이 휘청일 때에도 노인은 끝까지 싸워서 스스로를 증명해 보였다. 이렇게 연속적인 시련에도 불평 없이 답을 찾아나가는 인생 선배님의 다이나믹한 이야기는 길이길이 전설로 내려오고 있었다.


물고기 잡으면 끝인 줄 알았더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상어의 등장도 쇼크였고, 청새치의 운명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오나 싶더니 그것도 아니고 말야. 상어들에게 다 뜯긴 청새치를 보고 허탈함에 빠진 노인이 혹여 바다에 목숨 버리진 않을까 걱정되더라. 어쩌면 이 여정은 한여름 밤의 꿈만도 못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괜히 항해를 했다는 생각까지 했다. 상어에게 죽을뻔 한 일이나 잡아온 고기를 다 뺏긴 것보다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지 못한 게 더 속상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년에게 증명해 보이지 못한 점에서 가장 괴롭지 않았을까. 곁에 아무도 없는 노인의 삶에 빛이 되어준 소년에게 늘 실망만 안겨주었던 지난날들. 겨우겨우 베테랑 어부의 위엄을 보여줄 기회였는데, 뼈만 남은 청새치를 가져가려니 그 비참함을 어떤 말로 표현하리. 그렇게 모든 면에서 대실패한 항해인 줄 알았으나 꼭 그렇지도 않았다. 비록 수확은 없었지만 소년과 어부들에게는 노장의 투혼을, 독자들에게는 고난을 헤쳐나가는 정신을 보여주었다. 


이 짧은 노인의 이야기는 작가의 모습을 많이 투영하고 있다. 헤밍웨이도 바다낚시를 즐겨 했고 고독과 자주 마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노인의 혼잣말이나 생각들이 그렇게 생동감 있었나 보다. 노인이 배 위에서 겪은 수난들처럼 작가도 많은 수난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헤밍웨이는 그 어려움들을 다 받아들이고 살다 간 게 아닌가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면서. 영웅이란 타이틀은 꼭 지구를 구하고 시민을 지켜야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책 속의 노인처럼 어떤 일에도 절대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모습을 가진다면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 나는 그런 영웅들을 매일매일 만난다. 집 앞에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청소부들, 낙엽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들, 새벽부터 김밥 팔고 토스트 만드는 어머님들... 노인처럼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모든 분들이 진정 이 시대의 영웅이다. 그러니 고난을 마주하여도 절대 기죽지 말자. 어차피 이번 거 지나가도 고난은 또 오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게 속 편하고 좋아. 어디든 오랫동안 제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다 그렇더라고. 여하튼 배울 점이 많았던 할배의 나이스한 이야기였습니다. 한 5년 주기로 읽어주면 좋을 듯 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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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19-11-26 0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침 읽은 지 5년이 넘었네요. 다시 읽어야되겠습니다. 이웃 영웅들이 주는 힘을 생각하면서요. 글 잘 읽었습니다

물감 2019-11-26 07:08   좋아요 1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위로를 받아 기분이 묘합니다. 우리 함께 알라딘의 영웅이 되길 소망해봅니다^^

coolcat329 2019-11-26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품 올해 두 번 읽었습니다.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온몸을 던져서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숭고함에 존경의 마음이 솟아납니다.글 잘 읽었습니다.

물감 2019-11-26 16:05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그런 분들이 없다면 우리는 날마다 위기를 맞을테죠. 세상에서 당연한건 정말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나비종 2019-11-26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헤밍웨이 문장의 간결함에서 까진 귤의 이미지를 보았습니다. 가끔 심심하면 껍질 까고 그물처럼 둘러싼 하얀 거를 한 가닥 한 가닥 떼어내어 훌러덩 벗길 때가 있잖아요. 그 말끔해진 이미지요. 지금 귤 먹고 있는 거, 맞습니다.ㅎㅎ
예전에는 기막힌 묘사로 데코된 표현들에 눈길이 가더니 요즘은 헤밍웨이풍의 직설 화법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더군요. 그래서 읽는 내내 후련했습니다.

양아치ㅋㅋㅋ 개고생하며 잡은 청새치를 인터셉트하여 가로챈 상어의 야비함을 어찌 그리 적절하게 비유하셨을까. 매번 느끼는 거지만 물감님의 표현력에 오늘도 감탄하며 빵터집니다.ㅎㅎ

이 책이 작가의 모습이 많이 투영된 작품이라 여겼는데 책 마지막 부분의 연보를 보고 생각이 복잡해지더라구요. 62세에 우울증 등에 시달리다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더군요. <노인과 바다>와 괴리감이 느껴졌습니다.
연보를 보며 두 가지 생각을 했어요.
첫째, 부모의 삶이 자식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요. 작가의 아버지 역시 우울증으로 권총 자살을 했다는 점이 작가의 무의식에 깊이 자리잡았을까요?
둘째, 건강하게 살아야 오래오래 글을 쓰겠다 싶었어요. 사냥 중 팔 부러지고, 권총 오발 사고로 다리에 총상 입고, 자동차 전복 사고로 늑골 부러지고 얼굴 찢기고, 두 차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중상을 당한 작가가 말년에 정신쇠약, 우울증, 고혈압, 간염, 알코올중독, 편집증에 시달린 건 그의 삶에 켜켜이 쌓인 흔적의 결과물인 것 같거든요. <노인과 바다>를 발표한 이후 10여 년 간 창작 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결국 삶을 마감한 작가를 보며 몸의 건강이 새삼스럽게 확 다가오더라구요.

매일매일 만나신다는 영웅들을 떠올려보면서 저와 비슷한 울림점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폐지 주워모으시는 어르신들도 자주 눈에 밟히더라구요.

‘어차피 이번 거 지나가도 고난은 또 오니까‘ㅋㅋ 물감님의 리뷰를 오래 기다린 보람을 찾도록 마지막까지 유쾌한 멘트를 날리시는군요~^^

물감 2019-11-26 23:06   좋아요 1 | URL
말끔하게 벗겨진 귤같은 문장이라... 멋진 비유네요! 제가 언급했던 살이 하나도 없는 문장이 그렇게도 표현될수도 있군요 ㅎㅎㅎ

줄거리 요약을 색다르게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다 아는 내용인데 어떻게 말하면 신선하고 재밌을지 계속 생각했어요. 이번 리뷰에서 가장 고민많이하고 시간투자도 많이된 단락이 저 두세줄의 요약글입니다 ㅋㅋㅋㅋ 꽤 만족하고 있습니다.

작품에만 집중하느라 작가에게 큰 관심을 못가졌었는데, 헤밍웨이의 배경이나 가족사는 심상치 않았군요. 제게도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저역시 온전치 못했을거 같아요. 저는 20대 중반에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졌던 적이 있는데요, 그후로 몇년을 좌절과 우울함으로 고생했거든요. 육체는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회복이 된다지만 그때 겪었던 괴로움은 어지간히도 회복이 안되더라구요. 하물며 저보다 더한 헤밍웨이는 더 괴로웠을거 같아요. 그 아픔들이 작품으로 탄생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노인같은 평범한 영웅들 덕분에 오늘도 세상은 무사히 굴러갑니다. 말씀하신 폐지줍는 어르신들도 당연히 해당되구요ㅎㅎ 여하튼 이번 모임도 이렇게 잘 끝나서 뿌듯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리뷰는 쓸 말이 없어서 걱정했거든요 ㅋㅋㅋ
다음 독서모임은 1월이 되겠네요! 연말 연초는 바빠질 것 같아요...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죠 뭐 ㅋㅋㅋ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