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 내 감정을 똑바로 보기 위한 신경인류학 에세이
박한선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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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인류학자가 정신과 의사로서 집필한 감정 탐구 에세이다. 솔직히 가벼운 주제를 다루는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알찬 내용이었다. 게다가 읽기 좋게 글까지 잘 쓰셨는데, 아무래도 숱한 환자들을 상대하며 다듬어진 온유한 성품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저자의 말대로 인간의 마음은 여리고 연약하다. 게다가 내 마음인데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문명과 과학이 발달해갈수록 마음의 질병은 점점 더 커져가고 상처는 깊어만 간다. 마음에는 설계도도 없고 설명서도 없어서 어떻게 다스릴지 몰라 방황하는 현대인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아프고 슬프고 우울한 감정은 오히려 마음이 고장 없이 잘 작동 중인 증거라고 했다. 누구나 기쁨과 행복의 감정만을 원하겠지만 고통과 외로움의 감정을 신께서 뜻 없이 만들진 않았을 것이다. 그게 과하거나 컨트롤이 안되면 좀 문제인 거지. 아무튼 이 책은 해결방안을 제시하기보다, 다양한 사례와 연구 결과와 과학적 근거를 총망라해서 위로 아닌 위로를 하는 책이다. 네 가지의 카테고리로 정리해본다.


1.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정
이 서평 도서를 받은 당일, 나는 직장에서 종말의 날을 맞았다 싶을 정도로 감정이 격해져있었다. 그래서였는지 ‘감정‘에 대한 글들이 유독 쏙쏙 들어왔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감정들이 눈과 귀와 혀를 스쳐지나 끊임없이 교차해댄다. 그런데 현존하는 감정의 상당수가 부정적, 불행적이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나쁜 감정에 더 많이 노출되어있다. 그중에 가장 강력하고 원초적인 감정은 ‘불안‘이며, 이 감정이 근심, 걱정, 두려움, 공포를 지배하는 기본 베이스가 된다. 그러나 이 불안이 오히려 인류의 진화를 가져오고 개인의 마음과 정신까지도 성장시킨다. 따라서 불안도 슬픔도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일부러 슬픈 영화를 찾아보는 사람이 비정상일까? 슬픔은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재설정하게 하며 모든 관계를 돌아보게 해준다. 이런 건 기쁨의 감정이 줄 수 없다. 우리 몸에는 불필요한 것은 없으며 전부 존재의 의미를 가진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어보신 분들은 금방 이해될 것이다.

서양은 죄의 문화를 가졌고, 동양은 수치의 문화를 가졌다는 말이 있다. 서양에선 별거 아닌데 동양에서는 수치스럽고 낯 뜨겁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뭐가 다른 걸까? 죄책감은 내면에서 나오고, 부끄러움은 외부에서 오는 차이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외부에서 오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양은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행동범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혐오스러운 시선을 받는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약간 특이한 행동을 해도 ‘빌런‘이라 부르며 SNS라는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당사자는 부끄러운 줄 알아라‘ 하는 심정으로 저격을 해댄다. SNS에는 이런 글들이 하루에도 수만 개씩 올라온다. 우리는 매일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수치심을 주고받으며 산다. 그러다 보니 멀쩡한 사람들도 하루아침에 정신병자가 되기 쉽고, 어느 날 갑자기 곪았던 상처가 터지면서 마음에 장애를 입기도 한다. 이처럼 타인의 부정적인 평가와 집단에서의 고립은 깊은 수치심과 죄책감을 유발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떤 감정은 심각한 강박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를 사랑해서 광적으로 집착하거나, 결벽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손을 씻는 사람도 있다. 조절이 안되는 감정을 조절해보라는 게 아니라, 그걸 어떻게 못하는 나 자신은 지극히 정상이며 그 감정들이 내가 인간일 수 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라고 권장한다. 너무 지나치거나 과도한 사람은 조금씩 나를 내려놓으며 유연성을 기르는 연습을 하면 된다. 어쨌거나 삶은 편안한 쪽이 더 좋지 않겠나.


2. 가끔 터무니없이 이상한 이성

자신을 과하게 어필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인기를 위해서 창피함도 무릅쓰고 관심을 끌거나, 혹은 노이즈 마케팅으로 어그로를 자청하는 경우도 많다. 누가 봐도 ‘왜 저래?‘란 말이 나올 만큼 주목받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 말이다. 저자는 한국이 타인 지향적인 사회라서 관심을 추구하는 게 사실 자연스러운 것이라 한다. 그러나 거기에만 매달리면 내면은 점점 공허해진다. 최근 마약 하고도 부인하고 거짓말하던 모 연예인을 보면 이성적인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똑같이 교육과정을 밟았는데 왜 그의 태도는 대중의 생각과 다를까? 어째서 기본적인 옳고 그름의 판단조차 못할까? 정상인이 비정상으로 바뀌는 건 어쩜 이리도 간단할까. 감정이야 설명이 불가하다고 하면 그러려니 할 텐데, 이성도 그러하다니 참 난해하다. 하여튼 인간이란...

최종 목적을 결혼과 인생 성공 중 한쪽에만 올인하는 것도 예를 든다. (둘 다 잘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보통은 하나를 택한다. 일찍부터 얼굴을 가꾸고 몸을 관리하고 이성에게 사랑받기 위한 투자는 아끼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연애 감정은 억누르고 스펙 쌓기에 투자한 사람은 이른 나이에 유명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양쪽 다 후회가 드는 시점이 온다. 왕년에 공부 좀 해둘걸, 왕년에 이성 좀 많이 만나볼걸 하면서. 그러나 자신이 선택한 길을 후회할 필요는 없다. 무의식적으로 이득과 손해를 계산하고 판단했던 것일 뿐, 이제야 자원 할당의 원칙을 바꿀 때가 된 것이므로.

이렇듯 개개인도 선명하게 다른 사회 속에 외국인까지 섞여 살고 있는 게 오늘의 한국이다. 그만큼 사는 건 더 힘들어지고 있으며, 각종 불안과 근심과 강박이 작든 크든 누구나 지니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다 ‘생존‘과 연관되어있다. 오히려 걱정 가득한 사람이 위험에 더 많은 대비를 하기 때문에 더 오래 생존한다. 그니까 그런 사람들을 너무 병자 취급할 필요도 없고, 본인 스스로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3.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공감
타인을 움직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이다. 당근, 채찍, 그리고 공감이다. 비용도 안 들고 효과는 만점인 공감대를 잘 사용하는 사람이 다방면에서 살아남는다. 어느 조직이든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혼자만의 시간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처음부터 말수가 없거나 수다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어쩌다 입이 트이면 신나서 떠드는 사람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을 잘 들여다보면 공감 좀 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다. 얼마나 공감 받을 일이 없었으면 그렇게도 필사적으로 신호를 보낼까. 같은 공감대를 가지게 되면 서로는 안심한다. 그러나 그게 잘 안되니까 대화가 단절되고 자발적으로 고립되어 상처받는 통로를 봉쇄해버린다. 가끔씩 살갑게 말좀 붙여보면 그렇게나 어색해하고 무슨 말로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를 몰라 난처해하는 걸 쉽게 본다.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 꼭 술이 목구멍에 들어가야만 말문이 열리는 걸까. 다들 마음이 너무 닫혀있다.

저자는 너와 내가 ‘같다‘라고 느낄만한 동기애를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은 경쟁 사회라서 동기애를 갖기 어렵다. 동기애는 다른 말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믿음은 의심 생기기가 너무 쉽다. 내 기준과 맞지 않거나, 저 사람은 이럴 것이라는 편견으로. 간혹 별 내용도 없는 글에 ‘좋아요‘가 많은 걸 볼 때면 이해가 안가지만 다들 공감을 해서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분위기에 휩쓸려 억지로 공감을 하고, 나도 그 범주 안에 드는 사람임을 무의식적으로 어필하기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걸 비정상적 공감능력이라고 하며, 과도하게 감정이입이 되기가 쉽다. 그러나 이것 또한 안정된 곳에 소속감을 가지기 위함이다. 요즘 ‘인싸‘가 되기 위해서라면 죽는 거 빼고 다 할듯한 학생들을 자주 본다. 단지 관심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공감해주는 사람들에게서 얻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깐의 쇼맨십으로 얻는 공감은 얼마 못 가 나를 야위게 만든다. 공감 얻기에 목마르면 위험하고 자극적인 행동도 스스럼없이 하게 된다. 이런 걸 공감의 역설이라고 한다. 뭐든지 적당한 게 좋다.


4. 불완전하기에 기대되는 삶
아이들은 뛰어놀면서 크는 거다. 그런데 이제는 노는 것까지 돈 주고 시간을 내야만 놀 수 있다. 그렇게 자라서 성인이 되고 몸은 성숙해졌어도 정신은 십 대에 계속 머무는 미성숙한 모습을 간직하게 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 빼고 모두가 완벽해 보인다. 공부도 잘하고 재능도 있고 집도 잘 살고 인기도 많은 사람들. 내가 경쟁에서 밀린 게 아니라 시작부터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고 느낄 때가 온다. 부모가 없거나 가족이 부재중인 집의 자녀들은 이른 나이에 몸도 마음도 성숙해져버린다. 이처럼 인간에게는 불안정 혹은 결함이 항상 가까이에 붙어있다. 그러면 우리의 몸에서 나쁜 유전자들과 감각기관을 제거해버리고, 좋은 유전자만 강화시키면 무조건 좋아질까? 그런 것도 아니다. 걱정 하나 없는 사람은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고 위험한 상황도 인지 못한 채 사고를 당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유전자라도 과다하면 치매 같은 질병을 일으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해진다. 이렇게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희망을 노래하고 미래를 움직일 수 있는 존재 또한 사람이 유일하다. 스스로를 정상이 아니라고 여기는 자들이여, 자책하지 말라.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살아갈 뿐, 우리는 모두 정상인 혹은 비정상인이다. 저자는 위로를 하지 않으니 나라도 위로해주리라. 정 힘들면 나랑 같이 이선희 노래 들으며 마음을 달래자. 나도 최근에 펑펑 울었다우.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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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5-07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안이 나를 키우기도 하고 힘들게도 하고... 결국은 나하기 나름이지 않나 싶네요.

이선희의 어떤 노래로 마음을 달랬을까나요. 한바탕 웃음으로가 문득 떠올랐어요. ^^

물감 2019-05-07 18:25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해요^^
저는 그중에 그대를 만나-뮤직비디오 보고 오열했습니다. 가사도 좋지만 영상속 스토리가... 흑흑

목나무 2019-05-07 18:28   좋아요 1 | URL
그 노래 정말 좋죠. 인연과 함께 가장 즐겨듣는 노래에요. ^^ 뮤비 저도 오늘 봐야겠어요

물감 2019-05-07 18:48   좋아요 0 | URL
ㅎㅎㅎ사실 이선희 노래는 뭘들어도 위로를 받아요. 꼭 뮤비 보셔요^^

coolcat329 2019-05-07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너무 잘해주셔서 제가 책을 읽은 기분이네요.나에게 안좋다고 생각했던 감정들도 살아가는데 역시나 필요한 것들이라는, 어찌보면 당연한 사실이 위안이 되는 글 같습니다.잘 읽었습니다.

물감 2019-05-07 19:10   좋아요 1 | URL
제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니, 황송하네요^^ 그만큼 마음이 약해져있었겠죠. 저랑 같이 나쁜감정을 받아들이는 연습해요ㅎㅎ

나비종 2019-05-07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몸에는 불필요한 것은 없으며 전부 존재의 의미를 가진다.‘라는 문장을 몇 번이나 읽어봅니다. 우리 마음에도 같은 맥락으로 존재의 의미가 있는 감정들이 담겨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지금 제 안에서 출렁이는 슬픔도, 우울함도 나름 의미가 있는 것이겠죠. 위안이 되었습니다. 많이 지치는 날을 보냈거든요. 감사합니다..

물감 2019-05-07 21:56   좋아요 1 | URL
계절은 여름이 되가는데 마음은 아직도 겨울인 이웃들이 많네요. 한명 한명 위로해드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독서도 좋지만 가끔은 야외에서 햇빛도 쐬고 그늘에서 바람도 맞으면서 여유를 찾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