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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꽃
아마노 세츠코 지음, 고주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포르투갈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는 50세가 넘어서 데뷔를 했다는데 이 작가는 무려 60세에 데뷔를 하였고, 있는 영혼을 전부 긁어모아 이 책을 써냈다. 이 데뷔작은 엄청난 판매수를 기록했고, 드라마까지 찍었을 정도로 탄탄한 구성을 보여준다. 작가의 연세가 있어서 그런지 글이 가볍지 않고, 심하게 올드하지도 않다. 내가 늘 지적하는 일본 문학의 단점인 일회용 킬링타임 소설과는 다른 분위기였는데, 담담한 문체로 독자의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완급조절이 대단했다.
세노 쿄코는 집안도, 남편도, 본인에게도 만족할 만큼 완벽한 삶이지만 단 한 가지, 불임이라서 오래도록 아이가 없다. 동창회를 다녀온 날, 낯선 여자의 전화를 받았는데 본인은 남편의 애인이며 그의 아이를 가졌으니 이혼해달라는 협박을 한다. 순간 눈 뒤집힌 주인공은 남편의 서재에서 그녀의 집 열쇠를 발견하고 몰래 찾아가 그 집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 병에 농약을 탄다. 이후 그녀가 죽었다는 뉴스는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임신 중이었다는 보도가 없다. 주인공은 무고한 사람을 죽인 걸까? 그 낯선 여자는 누구였던 걸까? 이제는 철저한 연기만이 수사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이다.
사실 기본 플롯만 보면 흔하기도 하고 뻔하기도 하고 그렇다. 그런데 이런 베이직한 내용에 서스펜스 기법이 엄청나다. 단서나 증거가 너무 없어서 이런저런 추측을 해가며 한 걸음 한 걸음씩 수사하느라 진행이 더딘데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또한 주인공이 처음 전화받은 순간부터 밀려드는 불안과 의심들이 자신의 목을 조여오는 올가미가 되어 멘붕오는 장면들도 볼거리이다.
긴 싸움 끝에 쿄코는 검거되었고 배후들도 다 밝혀졌으나 그녀는 재판에서 무죄 판정을 얻어낸 빅 픽처의 끝판왕이었다. 그 빅 픽처를 꿰뚫어보는 수사관의 집념에 존경을 표한다. 이로써 작가의 내공은 100% 증명되었다. 강력 추천.